[취재후] 나이 들수록 가속도 붙는 시간 붙잡는 법

입력 2016.01.01 (09:41) 수정 2016.01.0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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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던 시계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을 넘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역동적인 20대를 보낸 뒤 30대가 되자 회사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고 남들이 말하듯 '틀에 박힌 일상'이 반복됐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느끼는 희열이나 보람보다는 평범한 직장인 마인드로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비슷한 뉴스를 전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세 몇 년이 흘렀습니다. 갑자기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지?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지? 하고 스스로 되묻게 됐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30대는 시속 30km, 50대는 50km처럼 정말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하는 게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인파인파


■ ‘시간’은 “고요한 바다” VS “달리는 기차”

시간 인식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30년대에 시작됐습니다. 특히 심리학자들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 인식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여러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1960년대에 나온 논문을 읽다 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균 연령이 70세인 노인 그룹과 18살에서 20살에 이르는 어린 그룹을 대상으로 '시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어린 친구들은 '고요한'(quiet) '움직임 없는'(motionless) '바다'(ocean) 같은 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했습니다. 반대로 노인 그룹에선 '달리는'(speeding) '기차'(train) 등 동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느리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손꼽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는 아직 멀었고 어른이 될 날은 과연 오기나 하는 건지 정말 까마득하게만 느껴졌죠.

‘시간’ 연상 실험‘시간’ 연상 실험


■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던 그대가…

시간에 대한 인식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를 먼저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이 들수록 기억에 남을 만한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새삼 느끼는 점들이 많은데요. 모빌을 보며 눈동자를 빛내던 아이가 조금 크더니 처음 본 비눗방울에 비명을 지르며 좋아하고 이제는 거리에서 만난 강아지에 열광합니다. 아이의 기억 속에는 모든 낯선 것들이 의미 있는 기억으로 아로새겨지겠죠.

어른들 역시 첫 사랑이나 첫 키스, 결혼 등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고 그 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지잖아요. 그렇지만 나이 들면 어떤가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없기 때문에 허무함도 밀려오고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웃던 소년 소녀는 이제 별다른 일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이 돼버린 거예요.

나이나이


■ 한국인의 시계는 더 빠르다?

외국의 논문 위주로 살펴보다가 자문을 위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황 교수는 한국 특유의 문화도 시간이 마구 달려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직장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나이 들수록 가족을 챙기고 회사 일에 빠져 살다 보니 나의 시간이 정작 내 것이 아니게 됐다는 겁니다. 오롯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지나온 시간에 만족과 안정감을 느끼게 될 텐데요.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시간이 자신의 통제 밖에서 너무나 빨리 간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또 황 교수는 어른이 되면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이 빨라진다는 이론에도 색다른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경험이라는 게 상대적이라는 건데요.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보다 성인기에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겁니다. 해외여행이나 수많은 직장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세요.

그런데 경험의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닌 아빠나 회사 팀장 등 내가 처한 환경이다 보니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마치 좀비처럼 경험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수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마치 아무 경험도 안 한 것 같고 무의미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거죠. 결국 '내가 없는 기억'은 '주인공 없는 자서전'처럼 텅 비어버립니다.

■ 느려지는 생체시계, 원인은 도파민 감소

심리적인 요인 말고 생물학적인 요인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피터 맹건 교수는 노인이 될수록 시간을 '과대평가'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20대와 40대, 60대로 피실험자들을 구분해 초를 세는 방식으로 3분의 길이를 추정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어린 집단은 3분의 길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맞혔습니다. 오차는 불과 3초 정도였어요. 그러나 40대는 3분 16초를 3분이라고 느꼈고 60대는 3분 40초가 지난 뒤 비로소 3분이 됐다고 소리쳤어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느리게 가는 시계'로 변한 것 같았지요. 내가 느끼는 시간보다 외부의 시계가 더 빠르게 갈 때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게 되고요.

과거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시간을 추정하는 능력은 나이와 함께 발달합니다. 보통 20살 때 절정에 이르렀다가 이후에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요. 여기에는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행복이나 쾌락을 맛볼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데 분비량이 20살에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10년마다 5~10%씩 감소하면서 자극에 대한 흥분이 떨어지고 시간도 빠르게 느껴집니다.

도파민 분비량도파민 분비량


■ 시간의 가속도를 줄이는 방법

이 밖에도 '시간의 비율(ratio) 이론'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난 1년이 5살 짜리에게는 인생의 20%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지만 50세 어르신에겐 어떨까요? 2%에 불과한,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당연히 기억의 선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또 인생의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조바심 때문에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총알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까요? 그러기에는 우리의 남은 인생이 너무 소중한 걸요. 전문가들은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합니다.

처음에는 별로 떠오르는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적다 보면 내가 1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구나,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렇게 지나온 시간에 의미 부여를 하다 보면 앞으로의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또 나이 들었다고 새롭고 낯선 경험을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요? 영어 회화 수업을 듣거나 동호회 활동을 하고 친구를 새로 사귀는 등 낯선 자극을 경험하다 보면 쏜살같은 시간의 가속도는 줄어들 거예요. 마치 스무 살로 돌아간 것처럼 시간이 천천히, 밀도 높게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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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나이 들수록 가속도 붙는 시간 붙잡는 법
    • 입력 2016-01-01 09:41:40
    • 수정2016-01-01 09:44:39
    취재후·사건후
느리게 가던 시계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을 넘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역동적인 20대를 보낸 뒤 30대가 되자 회사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고 남들이 말하듯 '틀에 박힌 일상'이 반복됐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느끼는 희열이나 보람보다는 평범한 직장인 마인드로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비슷한 뉴스를 전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세 몇 년이 흘렀습니다. 갑자기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지?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지? 하고 스스로 되묻게 됐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30대는 시속 30km, 50대는 50km처럼 정말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하는 게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인파
■ ‘시간’은 “고요한 바다” VS “달리는 기차” 시간 인식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30년대에 시작됐습니다. 특히 심리학자들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 인식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여러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1960년대에 나온 논문을 읽다 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평균 연령이 70세인 노인 그룹과 18살에서 20살에 이르는 어린 그룹을 대상으로 '시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어린 친구들은 '고요한'(quiet) '움직임 없는'(motionless) '바다'(ocean) 같은 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했습니다. 반대로 노인 그룹에선 '달리는'(speeding) '기차'(train) 등 동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느리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손꼽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는 아직 멀었고 어른이 될 날은 과연 오기나 하는 건지 정말 까마득하게만 느껴졌죠.
‘시간’ 연상 실험
■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던 그대가… 시간에 대한 인식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를 먼저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이 들수록 기억에 남을 만한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새삼 느끼는 점들이 많은데요. 모빌을 보며 눈동자를 빛내던 아이가 조금 크더니 처음 본 비눗방울에 비명을 지르며 좋아하고 이제는 거리에서 만난 강아지에 열광합니다. 아이의 기억 속에는 모든 낯선 것들이 의미 있는 기억으로 아로새겨지겠죠. 어른들 역시 첫 사랑이나 첫 키스, 결혼 등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고 그 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지잖아요. 그렇지만 나이 들면 어떤가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없기 때문에 허무함도 밀려오고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꺄르르 웃던 소년 소녀는 이제 별다른 일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이 돼버린 거예요.
나이
■ 한국인의 시계는 더 빠르다? 외국의 논문 위주로 살펴보다가 자문을 위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습니다. 황 교수는 한국 특유의 문화도 시간이 마구 달려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보다는 가족이나 직장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나이 들수록 가족을 챙기고 회사 일에 빠져 살다 보니 나의 시간이 정작 내 것이 아니게 됐다는 겁니다. 오롯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지나온 시간에 만족과 안정감을 느끼게 될 텐데요.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시간이 자신의 통제 밖에서 너무나 빨리 간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또 황 교수는 어른이 되면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이 빨라진다는 이론에도 색다른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경험이라는 게 상대적이라는 건데요.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보다 성인기에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겁니다. 해외여행이나 수많은 직장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세요. 그런데 경험의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닌 아빠나 회사 팀장 등 내가 처한 환경이다 보니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마치 좀비처럼 경험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수많은 경험을 하더라도 마치 아무 경험도 안 한 것 같고 무의미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역설이 발생하는 거죠. 결국 '내가 없는 기억'은 '주인공 없는 자서전'처럼 텅 비어버립니다. ■ 느려지는 생체시계, 원인은 도파민 감소 심리적인 요인 말고 생물학적인 요인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피터 맹건 교수는 노인이 될수록 시간을 '과대평가'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20대와 40대, 60대로 피실험자들을 구분해 초를 세는 방식으로 3분의 길이를 추정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어린 집단은 3분의 길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맞혔습니다. 오차는 불과 3초 정도였어요. 그러나 40대는 3분 16초를 3분이라고 느꼈고 60대는 3분 40초가 지난 뒤 비로소 3분이 됐다고 소리쳤어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느리게 가는 시계'로 변한 것 같았지요. 내가 느끼는 시간보다 외부의 시계가 더 빠르게 갈 때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느끼게 되고요. 과거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시간을 추정하는 능력은 나이와 함께 발달합니다. 보통 20살 때 절정에 이르렀다가 이후에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요. 여기에는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행복이나 쾌락을 맛볼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데 분비량이 20살에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10년마다 5~10%씩 감소하면서 자극에 대한 흥분이 떨어지고 시간도 빠르게 느껴집니다.
도파민 분비량
■ 시간의 가속도를 줄이는 방법 이 밖에도 '시간의 비율(ratio) 이론'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난 1년이 5살 짜리에게는 인생의 20%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지만 50세 어르신에겐 어떨까요? 2%에 불과한,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당연히 기억의 선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또 인생의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조바심 때문에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총알처럼 날아가는 시간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까요? 그러기에는 우리의 남은 인생이 너무 소중한 걸요. 전문가들은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합니다. 처음에는 별로 떠오르는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적다 보면 내가 1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구나,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렇게 지나온 시간에 의미 부여를 하다 보면 앞으로의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또 나이 들었다고 새롭고 낯선 경험을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요? 영어 회화 수업을 듣거나 동호회 활동을 하고 친구를 새로 사귀는 등 낯선 자극을 경험하다 보면 쏜살같은 시간의 가속도는 줄어들 거예요. 마치 스무 살로 돌아간 것처럼 시간이 천천히, 밀도 높게 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생생과학]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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