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재활환자가 병원을 떠도는 이유

입력 2016.01.04 (09:00) 수정 2016.01.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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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활 난민’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재활난민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재활'과 '난민'을 합성해 만든 조어인데 처음 들어보면 언뜻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재활난민이란 질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장기간 입원한 상태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한 병원에 원하는 만큼 머물지 못하고 마치 난민처럼 타의에 의해 이곳저곳 병원을 떠돌아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는 데서 생긴 말입니다. 재활난민이 왜 생겼고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 “치료보다 병원 옮겨 다니는 게 더 힘들어요”

재활 환자재활 환자


이른바 재활난민을 만나봤습니다. 강원도에 사는 60대 여성으로 4년 전 새벽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뇌출혈이 원인이었는데 왼쪽 몸 전체를 쓰지 못하는 마비가 왔습니다. 바로 치료를 받은 뒤 재활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한때 몸이 조금 호전됐을 당시 딸을 따라 외국에 1년여를 머문 기간을 제외하고 3년 동안 병원을 8군데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큰 불편과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환자의 하소연입니다. "병원에 두 달간 좀 적응해서 치료하겠다 싶으면 해당 병원에서 옮겨가라고 하는 거에요. 또 옮겨가서 두세 달 있으면 또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합니다. 제일 힘든 게 병원 옮겨 다니는 거에요."

1년 전 집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져 마비가 온 70대 남성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 병원 3군데를 옮겨 다니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재활치료를 해주던 병원에서 갑자기 계속 나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데 그 병원에선 입원실이 없다고 하지, 참 난감하고 힘들더라고요. 겨우 병원을 찾았는데 집에서 너무 멀어 보호자가 다니기 힘들어했습니다."

■ ‘재활 난민’ 양산하는 건 누구?

재활 환자재활 환자


지금까지 환자의 말을 들어서는 재활난민의 일차적 책임은 병원처럼 보입니다. 환자를 돌봐야 할 병원이 치료도 끝나지 않았는데 환자를 내쫓는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병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환자가 다인실에 입원을 하면 입원료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환자 본인은 본인부담금으로 조금만 내고 입원을 하게 되고, 대신 병원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입원 수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입원 수가가 환자의 입원 기간이 보통 두세 달을 넘기면 40% 이상이 삭감됩니다. 지역마다 수가가 삭감되는 입원 기간에 차이는 있습니다.

입원 수가 삭감으로 인해 경영에 타격을 받게 되는 병원으로선 환자를 계속 수용할 수 없게 됩니다. 보험수가를 심사해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과잉 입원이나 의료기관의 부당청구 등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입원 수가를 삭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필요한 입원 등으로 건강보험수가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섭니다.

재활 환자재활 환자


하지만 일괄적으로 삭감하다 보니 입원 상태에서 지속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까지 병원 측은 운영상 퇴원을 종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환자가 장기간 입원해도 수가를 삭감하지 않는 병원이 있습니다. 요양병원인데요, 그러나 요양병원은 명칭대로 설립목적이 환자의 재활치료가 아닌 요양에 있고, 환자가 장기가 체류해도 수가가 깎이지 않다 보니 재활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요양병원은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면 오히려 수가가 깎이게 돼 재활치료에 더더욱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 “재활병원제도 도입해야”

재활전문의들은 기본적으로 입원 수가가 일괄적으로 삭감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장기간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 한해서는 수가를 삭감하지 않고 입원 기간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선 장기간 입원이 필요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정교하게 골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재활병원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재활전문의들은 말합니다. 일반병원과 요양병원으로만 구분된 현재 우리나라의 병원종별에 재활병원을 포함함으로써 재활환자를 전문적이고 연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 뇌병변 장애로 장기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4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재활전문의들은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통해 환자를 가정이나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연관 기사]

☞ 쫓겨나는 ‘재활 난민’…“전문 병원 필요” (201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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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재활환자가 병원을 떠도는 이유
    • 입력 2016-01-04 09:00:08
    • 수정2016-01-04 09:01:54
    취재후·사건후
■ ‘재활 난민’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재활난민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재활'과 '난민'을 합성해 만든 조어인데 처음 들어보면 언뜻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재활난민이란 질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장기간 입원한 상태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 한 병원에 원하는 만큼 머물지 못하고 마치 난민처럼 타의에 의해 이곳저곳 병원을 떠돌아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는 데서 생긴 말입니다. 재활난민이 왜 생겼고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 “치료보다 병원 옮겨 다니는 게 더 힘들어요”
재활 환자
이른바 재활난민을 만나봤습니다. 강원도에 사는 60대 여성으로 4년 전 새벽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뇌출혈이 원인이었는데 왼쪽 몸 전체를 쓰지 못하는 마비가 왔습니다. 바로 치료를 받은 뒤 재활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한때 몸이 조금 호전됐을 당시 딸을 따라 외국에 1년여를 머문 기간을 제외하고 3년 동안 병원을 8군데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큰 불편과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환자의 하소연입니다. "병원에 두 달간 좀 적응해서 치료하겠다 싶으면 해당 병원에서 옮겨가라고 하는 거에요. 또 옮겨가서 두세 달 있으면 또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합니다. 제일 힘든 게 병원 옮겨 다니는 거에요." 1년 전 집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져 마비가 온 70대 남성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 병원 3군데를 옮겨 다니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재활치료를 해주던 병원에서 갑자기 계속 나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데 그 병원에선 입원실이 없다고 하지, 참 난감하고 힘들더라고요. 겨우 병원을 찾았는데 집에서 너무 멀어 보호자가 다니기 힘들어했습니다." ■ ‘재활 난민’ 양산하는 건 누구?
재활 환자
지금까지 환자의 말을 들어서는 재활난민의 일차적 책임은 병원처럼 보입니다. 환자를 돌봐야 할 병원이 치료도 끝나지 않았는데 환자를 내쫓는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병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환자가 다인실에 입원을 하면 입원료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환자 본인은 본인부담금으로 조금만 내고 입원을 하게 되고, 대신 병원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입원 수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입원 수가가 환자의 입원 기간이 보통 두세 달을 넘기면 40% 이상이 삭감됩니다. 지역마다 수가가 삭감되는 입원 기간에 차이는 있습니다. 입원 수가 삭감으로 인해 경영에 타격을 받게 되는 병원으로선 환자를 계속 수용할 수 없게 됩니다. 보험수가를 심사해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과잉 입원이나 의료기관의 부당청구 등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입원 수가를 삭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필요한 입원 등으로 건강보험수가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섭니다.
재활 환자
하지만 일괄적으로 삭감하다 보니 입원 상태에서 지속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까지 병원 측은 운영상 퇴원을 종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환자가 장기간 입원해도 수가를 삭감하지 않는 병원이 있습니다. 요양병원인데요, 그러나 요양병원은 명칭대로 설립목적이 환자의 재활치료가 아닌 요양에 있고, 환자가 장기가 체류해도 수가가 깎이지 않다 보니 재활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요양병원은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면 오히려 수가가 깎이게 돼 재활치료에 더더욱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 “재활병원제도 도입해야” 재활전문의들은 기본적으로 입원 수가가 일괄적으로 삭감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장기간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 한해서는 수가를 삭감하지 않고 입원 기간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선 장기간 입원이 필요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정교하게 골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재활병원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재활전문의들은 말합니다. 일반병원과 요양병원으로만 구분된 현재 우리나라의 병원종별에 재활병원을 포함함으로써 재활환자를 전문적이고 연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 뇌병변 장애로 장기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4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재활전문의들은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통해 환자를 가정이나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연관 기사] ☞ 쫓겨나는 ‘재활 난민’…“전문 병원 필요” (201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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