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이슈] 끊이지 않는 체육계의 폭력 문제

입력 2016.01.11 (00:27) 수정 2016.01.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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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어 ②-1 전 금메달리스트의 후배 폭행 사건

강승화 : 이번에 함께 할 얘기는 무겁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하는 얘기입니다.

제인 : 새해 벽두부터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폭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죠.

이병진 : 더욱이 그 가해자가 오뚝이 역사로 유명한 역도 대표팀의 사재혁 선수였기에 그 충격이 더 컸는데요. 체육계에 폭력 사건이 잊을 만하면 “왜” 되풀이 되는지 함께 고민해 보기 위해 KBS 정재용 기자가 함께 합니다.

정재용 : (인사)

제인 : 또 전직 야구 선수이자, 체육계 폭력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는 최익성 선수도 자리했습니다.

최익성 : (인사)

이병진 : 정말 여러 팀의 유니폼을 입었던... 저니맨으로 유명한 최익성 선수잖아요. 요즘은 한 군데에서 잘 정착해서 지내나요?

최익성 : 요즘은 실력은 물론, 올바른 인성까지 갖춘 프로야구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야구 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강승화 : 새해부터 어두운 얘기를 하게 돼서 안타까운데요. 사실 사재혁 선수하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 남자 역도의 에이스였잖아요.

제인 : 도대체 사재혁 선수와 후배 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정재용 : 2015년 초 태릉선수촌에서 후배의 뺨을 때렸던 사재혁. 그러다 지난해 12월 31일에 후배를 불러내서 얘기를 하다가 다시 구타. 30여분 동안 폭력을 행사했고 결국 전치 6주 상해를 입었다.

강승화 : 사건의 피해자인... 황우만 선수의 심경을 들어보도록 하자.

이병진 : 사건이 터지자, 대한역도연맹은 신속하게 처리했는데요. 지난 4일 선수위원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사재혁 선수에게 자격 정지 10년의 징계를 내렸다. 만약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게 되면 연금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제인 : 사재혁 선수가 32살인데... 자격 정지 10년이면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징계네요?

정재용 : 이번 징계가 얼마나 강력한 처벌인지와 강력한 처벌을 내린 이유

▶ 표제어 ②-2 체육계 폭력이 발생하는 이유

강승화 : 지난해 9월에 있었던 쇼트트랙 대표팀의 폭행 사건이 잊혀 지기도 전에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보니까 이게 특정 종목이나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제인 : 아니, 그러면 최익성 대표도 선수 시절에 많이 맞아봤나요?

최익성 : 선배에게 많이 맞았다. 하도 맞다 보니까 안 맞으려고 잔꾀도 부렸다. 맞을 때 더 아픈 척을 해서 맞는 대수를 줄여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른 애들이랑 눈이 마주쳐서 웃음이 터져서 더 맞기도 하고

이병진 : 그런데 정재용 기자도 중학생 때는 축구 선수를 꿈꾸면서 축구부 생활을 했었다면서요?

정재용 : 중학교 1학년까지 축구를 했는데 나도 많이 맞았다. 낮에는 코치한테 맞고 밤에는 선배한테 맞고 365일 중에 300일은 맞았다.

제인 : 왜 그렇게 때리는 거예요?

정재용 : 선배보다 빨리 뛰면 선배를 제쳤다고 맞고 선배보다 늦게 뛰면 못 뛴다고 맞고

최익성 : 아무래도 단체 종목이고 하니까 단체 생활을 하니까 실수를 하거나 했을 때 규율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때렸다. 워낙 분위기가 그렇다보니까 중고등학교 때는 맞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

강승화 : 일부에서는 학생들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나이 때부터 자기들만의 합숙 생활을 하다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라는 말도 있는데~ 유독 우리는 합숙을 강요하는 걸까요?

최익성 : 일단 우리나라는 성적지상주의다. 성적이 나기 위해서는 훈련양이 많아야한다는 생각. 그래서 학창시절부터 관습적으로 장기 합숙

정재용 : 중학교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다른 지역의 학생을 스카웃하기도 하는데 이런 학생들일 경우, 합숙을 하지 않으면 운동 끝나고 돌아갈 집이 없다. 이 역시 승리 지상주의 단면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어린 학생들이 집을 떠나고 부모와 떨어져 생활을 하게 되는 거다.

제인 :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게... 너무 맞고 그러면 그만 둘 거 같거든요?

최익성 : 절대 그만둘 수 없다. 요즘은 달라졌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운동부는 수업도 안 들었다. 운동을 선택하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운동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미 운동 아니면 할 게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만 둘 수 있겠냐.

제인 : 그럼 감독이나 코치는요?

정재용 : 오히려 감독이나 코치가 때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 역시 성적을 내야지, 자기들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진 : 아무리 그래도 부모는 사랑하는 자기 자식이 맞고 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거 같은데?

정재용 : 학교 진학, 프로 입단 같은 자기 자식들의 미래가 볼모로 잡혀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어떤 부모는 우리 아이가 더 정신 차릴 수 있게 더 때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강승화 : 최익성 대표는 야구 사관학교를 운영하면... 학생 선수들도 많이 만나잖아요. 그런 학생들도 폭력 때문에 고민하나요?

최익성 : 폭력을 당하고 온 아이들을 감싸주지 않는다. 어차피 운동부를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겨내는 법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네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게 복수가 아니라 더 좋은 선수, 큰 선수가 되는 게 복수라고 얘기해준다.

제인 : 최익성 대표의 말대로 폭력을 참고 견디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지금 상황에서... 그렇다면 폭행을 당하고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정재용 : 사실상 선수를 그만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그냥 참고 넘어가야한다.

▶ 표제어 ②-3 체육계 폭력의 부작용

강승화 : 그런데 문제는 체육계의 폭력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스포츠에 정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최익성 : 우선 제 주변에도 맞는 게 싫어서 운동부를 관둔 친구들이 있다. 또 심지어는 맞다가 다쳐서 운동부를 그만 두게 된 친구들도 있다.

정재용 : 최근에 루지 대표팀 선수가 코치한테 썰매날로 맞는 등 지속적인 폭행을 당해서 올림픽의 꿈을 접어야했던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그래서 선수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이병진 : 이렇게 되면... 자식 한 명만 낳고 키우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겁나서 운동을 시킬 수 있겠어요?

정재용 : 종목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운동부가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목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경우도 있다.

제인 : 근데 더 큰 문제는 맞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결국은 때려도 당연하다고 생각으로 이어지는 거 아니야?

최익성 : 가정 폭력도 대물림 되듯 선후배 구타도 대물림 된다. 자기는 안 때린다고 해놓고도 막상 선배가 돼서 그 상황이 되면 자기도 그 상황에서 맞았기 때문에 또 때리는 되는 거다. 때리는 사람은 분명 맞아본 경험이 있다.

정재용 : 이번에 사재혁 선수가 후배를 때린 건 이유를 떠나서 무조건 잘못한 거고 가해자다. 그런데 큰 관점에서 보면 사재혁 역시 맞으면서 배웠고 때리면서 배운 “구조화된 폭력”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병진 : 실제로 예전에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유도 왕기춘 선수가 자신의 SNS에 폭력을 옹호하는 듯 한 글을 남겨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핵심은 자기도 맞아봤고 잘못을 했으니까 맞는 거다.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였다.

▶ 표제어 ②-3 체육계 폭력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강승화 :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단순히 “폭행”에 국한되거나 한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정재용 : 그동안의 대한민국 스포츠는 경기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과거에 우리가 못 살 때는 프로 선수가 되면, 금메달을 따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래서 경기력 강화... 금메달... 대학 진학 같은 목적 아래 인권, 학습권, 폭력 모두 묵인돼왔다. 즉,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인 : 사실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텐데... 그만큼 구조를 바꾼다는 게 어렵다는 반증 아니겠냐? 최익성 대표도 승리만을 위해 다른 걸 포기하거나 버려야했던 경험이 있나?

최익성 : (답변)

이병진 : 언제까지 이럴 수만은 없는 거잖아요? 변화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은데...

정재용 : 근본적인 시스템이 이제야 변환기를 맞고 있다. 우선 법이 개정됐는데 바로 “학교체육진흥법”이다. 운동하는 일반인, 공부하는 선수라는 모토로 엘리트 스포츠를 하는 학생과 일반 학생의 구분을 두지 말자는 취지다. 그래서 실제로 2012년부터 평일에는 수업을 받고 주말에 경기에 나가는 주말리그제가 도입됐다. 또 초중고 학생 전체의 10분의 1 수준인 약 50만 명의 일반 학생들이 스포츠클럽에서 활동 중이다.

이병진 : 그러니까 우리 때는 운동부면 수업에 아예 안 들어오거나 엎드려 자고 그랬는데~ 이제는 운동부 학생들도 똑같이 수업을 받고, 반대로 일반 학생들도 운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건강도 챙기고, 몰랐던 자신의 소질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제인 : 운동부 학생들도 똑같이 공부를 한다면 이렇게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당당히 알리면서 바꿔갈 수 있고~ 또 일반 학생과 운동부의 간격이 좁혀지다보면 운동부만의 폐쇄적인 분위기도 바뀌지 않을까?

강승화 : 만약에 최익성 대표는 요즘처럼 평일에는 공부를 하면서 주말에 야구를 했다면... 인생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냐?

최익성 : (답변)

강승화 : 큰 틀에서 구조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이런 변화와 함께 또 노력해야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최익성 :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나눌 게 아니라 어릴 적부터 지속적인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 벌을 주거나 징계를 때리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우리 어린 선수들을 보면, 소통할 줄을 모른다. “시키면 하고, 때리면 맞고”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한다.

정재용 : 지난해부터 불거진 심판매수니, 승부조작, 파벌 싸움, 뇌물... 그리고 이번 폭력 사건까지! 다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승리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 체육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다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치, 경제, 사회 같은 분야들은 점점 선진국을 쫓아가고 있는데 체육계만 유독 발걸음이 느렸던 게 문제다. 매번 반복되던 자정의 목소리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법이 개정되고 시행됐으니까 자리를 잡는다면,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병진 : 정재용 기자나 최익성 대표 모두 “체육계”가 일터잖아요. 그 치부를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었을 텐데... 두 분 덕분에 오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강승화 : 스포츠를 향한 여러분의 생각을 다방면에서 넓혀주기 위해 저희는 다음 주에도 더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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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이슈] 끊이지 않는 체육계의 폭력 문제
    • 입력 2016-01-11 07:08:41
    • 수정2016-01-15 10:52:19
    운동화
▶ 표제어 ②-1 전 금메달리스트의 후배 폭행 사건

강승화 : 이번에 함께 할 얘기는 무겁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하는 얘기입니다.

제인 : 새해 벽두부터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폭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죠.

이병진 : 더욱이 그 가해자가 오뚝이 역사로 유명한 역도 대표팀의 사재혁 선수였기에 그 충격이 더 컸는데요. 체육계에 폭력 사건이 잊을 만하면 “왜” 되풀이 되는지 함께 고민해 보기 위해 KBS 정재용 기자가 함께 합니다.

정재용 : (인사)

제인 : 또 전직 야구 선수이자, 체육계 폭력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는 최익성 선수도 자리했습니다.

최익성 : (인사)

이병진 : 정말 여러 팀의 유니폼을 입었던... 저니맨으로 유명한 최익성 선수잖아요. 요즘은 한 군데에서 잘 정착해서 지내나요?

최익성 : 요즘은 실력은 물론, 올바른 인성까지 갖춘 프로야구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야구 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강승화 : 새해부터 어두운 얘기를 하게 돼서 안타까운데요. 사실 사재혁 선수하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 남자 역도의 에이스였잖아요.

제인 : 도대체 사재혁 선수와 후배 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정재용 : 2015년 초 태릉선수촌에서 후배의 뺨을 때렸던 사재혁. 그러다 지난해 12월 31일에 후배를 불러내서 얘기를 하다가 다시 구타. 30여분 동안 폭력을 행사했고 결국 전치 6주 상해를 입었다.

강승화 : 사건의 피해자인... 황우만 선수의 심경을 들어보도록 하자.

이병진 : 사건이 터지자, 대한역도연맹은 신속하게 처리했는데요. 지난 4일 선수위원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사재혁 선수에게 자격 정지 10년의 징계를 내렸다. 만약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게 되면 연금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제인 : 사재혁 선수가 32살인데... 자격 정지 10년이면 사실상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징계네요?

정재용 : 이번 징계가 얼마나 강력한 처벌인지와 강력한 처벌을 내린 이유

▶ 표제어 ②-2 체육계 폭력이 발생하는 이유

강승화 : 지난해 9월에 있었던 쇼트트랙 대표팀의 폭행 사건이 잊혀 지기도 전에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보니까 이게 특정 종목이나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제인 : 아니, 그러면 최익성 대표도 선수 시절에 많이 맞아봤나요?

최익성 : 선배에게 많이 맞았다. 하도 맞다 보니까 안 맞으려고 잔꾀도 부렸다. 맞을 때 더 아픈 척을 해서 맞는 대수를 줄여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른 애들이랑 눈이 마주쳐서 웃음이 터져서 더 맞기도 하고

이병진 : 그런데 정재용 기자도 중학생 때는 축구 선수를 꿈꾸면서 축구부 생활을 했었다면서요?

정재용 : 중학교 1학년까지 축구를 했는데 나도 많이 맞았다. 낮에는 코치한테 맞고 밤에는 선배한테 맞고 365일 중에 300일은 맞았다.

제인 : 왜 그렇게 때리는 거예요?

정재용 : 선배보다 빨리 뛰면 선배를 제쳤다고 맞고 선배보다 늦게 뛰면 못 뛴다고 맞고

최익성 : 아무래도 단체 종목이고 하니까 단체 생활을 하니까 실수를 하거나 했을 때 규율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때렸다. 워낙 분위기가 그렇다보니까 중고등학교 때는 맞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

강승화 : 일부에서는 학생들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나이 때부터 자기들만의 합숙 생활을 하다보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다, 라는 말도 있는데~ 유독 우리는 합숙을 강요하는 걸까요?

최익성 : 일단 우리나라는 성적지상주의다. 성적이 나기 위해서는 훈련양이 많아야한다는 생각. 그래서 학창시절부터 관습적으로 장기 합숙

정재용 : 중학교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다른 지역의 학생을 스카웃하기도 하는데 이런 학생들일 경우, 합숙을 하지 않으면 운동 끝나고 돌아갈 집이 없다. 이 역시 승리 지상주의 단면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어린 학생들이 집을 떠나고 부모와 떨어져 생활을 하게 되는 거다.

제인 :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게... 너무 맞고 그러면 그만 둘 거 같거든요?

최익성 : 절대 그만둘 수 없다. 요즘은 달라졌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운동부는 수업도 안 들었다. 운동을 선택하는 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운동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미 운동 아니면 할 게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만 둘 수 있겠냐.

제인 : 그럼 감독이나 코치는요?

정재용 : 오히려 감독이나 코치가 때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 역시 성적을 내야지, 자기들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진 : 아무리 그래도 부모는 사랑하는 자기 자식이 맞고 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거 같은데?

정재용 : 학교 진학, 프로 입단 같은 자기 자식들의 미래가 볼모로 잡혀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어떤 부모는 우리 아이가 더 정신 차릴 수 있게 더 때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강승화 : 최익성 대표는 야구 사관학교를 운영하면... 학생 선수들도 많이 만나잖아요. 그런 학생들도 폭력 때문에 고민하나요?

최익성 : 폭력을 당하고 온 아이들을 감싸주지 않는다. 어차피 운동부를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겨내는 법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네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게 복수가 아니라 더 좋은 선수, 큰 선수가 되는 게 복수라고 얘기해준다.

제인 : 최익성 대표의 말대로 폭력을 참고 견디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지금 상황에서... 그렇다면 폭행을 당하고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정재용 : 사실상 선수를 그만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그냥 참고 넘어가야한다.

▶ 표제어 ②-3 체육계 폭력의 부작용

강승화 : 그런데 문제는 체육계의 폭력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스포츠에 정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최익성 : 우선 제 주변에도 맞는 게 싫어서 운동부를 관둔 친구들이 있다. 또 심지어는 맞다가 다쳐서 운동부를 그만 두게 된 친구들도 있다.

정재용 : 최근에 루지 대표팀 선수가 코치한테 썰매날로 맞는 등 지속적인 폭행을 당해서 올림픽의 꿈을 접어야했던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그래서 선수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이병진 : 이렇게 되면... 자식 한 명만 낳고 키우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겁나서 운동을 시킬 수 있겠어요?

정재용 : 종목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운동부가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목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경우도 있다.

제인 : 근데 더 큰 문제는 맞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결국은 때려도 당연하다고 생각으로 이어지는 거 아니야?

최익성 : 가정 폭력도 대물림 되듯 선후배 구타도 대물림 된다. 자기는 안 때린다고 해놓고도 막상 선배가 돼서 그 상황이 되면 자기도 그 상황에서 맞았기 때문에 또 때리는 되는 거다. 때리는 사람은 분명 맞아본 경험이 있다.

정재용 : 이번에 사재혁 선수가 후배를 때린 건 이유를 떠나서 무조건 잘못한 거고 가해자다. 그런데 큰 관점에서 보면 사재혁 역시 맞으면서 배웠고 때리면서 배운 “구조화된 폭력”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병진 : 실제로 예전에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유도 왕기춘 선수가 자신의 SNS에 폭력을 옹호하는 듯 한 글을 남겨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핵심은 자기도 맞아봤고 잘못을 했으니까 맞는 거다.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였다.

▶ 표제어 ②-3 체육계 폭력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강승화 :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단순히 “폭행”에 국한되거나 한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정재용 : 그동안의 대한민국 스포츠는 경기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과거에 우리가 못 살 때는 프로 선수가 되면, 금메달을 따면 집안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래서 경기력 강화... 금메달... 대학 진학 같은 목적 아래 인권, 학습권, 폭력 모두 묵인돼왔다. 즉,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인 : 사실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텐데... 그만큼 구조를 바꾼다는 게 어렵다는 반증 아니겠냐? 최익성 대표도 승리만을 위해 다른 걸 포기하거나 버려야했던 경험이 있나?

최익성 : (답변)

이병진 : 언제까지 이럴 수만은 없는 거잖아요? 변화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은데...

정재용 : 근본적인 시스템이 이제야 변환기를 맞고 있다. 우선 법이 개정됐는데 바로 “학교체육진흥법”이다. 운동하는 일반인, 공부하는 선수라는 모토로 엘리트 스포츠를 하는 학생과 일반 학생의 구분을 두지 말자는 취지다. 그래서 실제로 2012년부터 평일에는 수업을 받고 주말에 경기에 나가는 주말리그제가 도입됐다. 또 초중고 학생 전체의 10분의 1 수준인 약 50만 명의 일반 학생들이 스포츠클럽에서 활동 중이다.

이병진 : 그러니까 우리 때는 운동부면 수업에 아예 안 들어오거나 엎드려 자고 그랬는데~ 이제는 운동부 학생들도 똑같이 수업을 받고, 반대로 일반 학생들도 운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건강도 챙기고, 몰랐던 자신의 소질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제인 : 운동부 학생들도 똑같이 공부를 한다면 이렇게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당당히 알리면서 바꿔갈 수 있고~ 또 일반 학생과 운동부의 간격이 좁혀지다보면 운동부만의 폐쇄적인 분위기도 바뀌지 않을까?

강승화 : 만약에 최익성 대표는 요즘처럼 평일에는 공부를 하면서 주말에 야구를 했다면... 인생이...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냐?

최익성 : (답변)

강승화 : 큰 틀에서 구조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이런 변화와 함께 또 노력해야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최익성 :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나눌 게 아니라 어릴 적부터 지속적인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 벌을 주거나 징계를 때리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우리 어린 선수들을 보면, 소통할 줄을 모른다. “시키면 하고, 때리면 맞고”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한다.

정재용 : 지난해부터 불거진 심판매수니, 승부조작, 파벌 싸움, 뇌물... 그리고 이번 폭력 사건까지! 다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승리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었을 때 체육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다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정치, 경제, 사회 같은 분야들은 점점 선진국을 쫓아가고 있는데 체육계만 유독 발걸음이 느렸던 게 문제다. 매번 반복되던 자정의 목소리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법이 개정되고 시행됐으니까 자리를 잡는다면,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병진 : 정재용 기자나 최익성 대표 모두 “체육계”가 일터잖아요. 그 치부를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었을 텐데... 두 분 덕분에 오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강승화 : 스포츠를 향한 여러분의 생각을 다방면에서 넓혀주기 위해 저희는 다음 주에도 더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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