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도 만든다던 세운상가…그때 그 추억과 미래 모습

입력 2016.01.16 (09:04) 수정 2016.01.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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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당시 서울 상공에서 내려다본 세운상가의 모습 / 서울시청 제공

세운상가는 1968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고(故)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고급복합타운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가 60년대 말 강북 한복판에 들어선 셈이다.

강북판 타워팰리스라는 표현은 빈말이 아니다. 세운상가에는 당시에는 드물었던 골프연습장은 물론, 휘트니스 클럽이 입주했었다.


▲당시 일간지에 실린 세운상가 내 골프연습장에 대한 기사

교회와 학교도 입주할 대상이었다(학교는 교육부의 반대로 입주하지 못했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도 되기 전이라는 점을 가만하면 세운상가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서울시장과 함께 세운상가 준공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8년 열린 세운상가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 / 서울시 제공


▲세운상가의 초창기 모습 / 서울시 제공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이뤄지기 전 서울의 모습. 가운데 흐르는 강이 한강이다 /서울시 제공

세운상가는 한국의 산업화와 그 궤를 함께 했다. 기계·부품은 물론 전기, 귀금속, 출판업의 중심에 세운상가가 있었다. 유동인구고 많았다. 1988년부터 세운상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해 왔다는 고영계(64)씨는 "하루 매출이 100만원도 넘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1970년대의 세운상가는 ‘미사일과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농담반 진담반처럼 들렸다. 월남전에 파병됐던 군인들이 가져온 녹음기, 카세트, 카메라 등도 거래되는 등 못 구하는 게 없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세운상가는 80년대로 접어들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 됐고, 용산전자 상가가 들어서면서 제 기능을 내줬다.

당시에도 재개발 계획 논의는 있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 상가를 허물고 공원화 한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발표됐지만, 입주민과 상가 운영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진척되지 못했다.

그렇게 또 십여년... '고급복합타운'은 어느덧 '도심 속 흉물'이 됐다.

☞ [연관 기사] [르포] 슬럼화된 세운상가…그곳에 사는 사람들

한때 명성이 자자했던 세운상가가 정녕 도심 흉물로 남아있어야 할까?

"모더니즘의 이상을 담은 독특하고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The Seunsangga is an eye-catching monument, a unique Modernist mega structure)"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도시계획 심포지엄에 참석한 제프 헤멀 암스테르담대 교수가 세운상가를 가리킨 말이다. 헤멀 교수는 세계적인 도시 계획자이자 이 분야 석학으로 꼽힌다.

우리 기억 속의 세운상가는 음란물이나 불법 게임을 사던 도심 속의 흉물. 어쩌면 세운상가처럼 그 가치를 평가절하 당하는 곳도 없을지 모른다.

요 몇년 새 세운상가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작년 말에는 '세운상가'가 가진 역사성과 미래 구상을 되짚어보는 작업이 한 권의 책(세운상가 그 이상: 대규모 계획 너머)도 나오기도 했다. 저자들은 "도심 산업의 내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지역의 자산"이라고 표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서면서 세운상가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 보는 작업이 시작됐다. 2013년에는 서울시의 세운상가 재정비촉진지구 변경계획이 발표됐다.

시는 세운상가를 연결해 남산까지 잇는 공중보행도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세운상가는 사실 건물이 아닌 8개의 건물이 함께 연결된 건물군(群)이다. 서울 종묘 앞 종로부터 을지로를 지나 퇴계로가 지나는 충무로역까지 남북으로 1km쯤 되는 띠의 형태를 하고 있다. 각 건물은 별도지만 3층 옆 데크(난간)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이른바 도시재생 계획(비슷한 사업이 서울역 고가도로부터 시작됐다)이다. 시는 이르면 이달 말 이 같은 계획의 세운상가 리모델링 사업을 발표하고, 다음달부터 착공할 계획이다.


▲서울역고가 프로젝트의 완공 후 모습 / 서울시 제공

일각에서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완공예정시기인 2017년 말에는 대선이 있다. 서울시장은 대선 때마다 유력 대통령 후보로 꼽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 이유 중 중요한 것 하나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사업의 성공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작년 말 전직 관료들과 함께 복원 10년을 맞은 청계천을 찾은 모습.

이영범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많은 건축물은 정치적 목적성을 담고 있다”며 “(세운상가 개발이)정치적 일정을 염두에 두고 서두른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이번 계획이 세운상가 주거자, 주변 상권과의 조화가 빠진 반쪽짜리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들도 회의적이다. 세운상가 내 부림아파트 관리소장 진철남(72)씨는 "1979부터 나오던 재개발 계획이 계속 틀어지다 보니 건물이 낡을 대로 낡은 상태"며 "주민들은 도시재생이니 그런 것보다 제대로 된 보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2015년에 찍은 세운상가의 모습 / 사진작가 =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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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탱크도 만든다던 세운상가…그때 그 추억과 미래 모습
    • 입력 2016-01-16 09:04:10
    • 수정2016-01-16 09:22:25
    사회

▲준공 당시 서울 상공에서 내려다본 세운상가의 모습 / 서울시청 제공

세운상가는 1968년 준공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고(故)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고급복합타운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가 60년대 말 강북 한복판에 들어선 셈이다.

강북판 타워팰리스라는 표현은 빈말이 아니다. 세운상가에는 당시에는 드물었던 골프연습장은 물론, 휘트니스 클럽이 입주했었다.


▲당시 일간지에 실린 세운상가 내 골프연습장에 대한 기사

교회와 학교도 입주할 대상이었다(학교는 교육부의 반대로 입주하지 못했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도 되기 전이라는 점을 가만하면 세운상가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서울시장과 함께 세운상가 준공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8년 열린 세운상가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 / 서울시 제공


▲세운상가의 초창기 모습 / 서울시 제공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이뤄지기 전 서울의 모습. 가운데 흐르는 강이 한강이다 /서울시 제공

세운상가는 한국의 산업화와 그 궤를 함께 했다. 기계·부품은 물론 전기, 귀금속, 출판업의 중심에 세운상가가 있었다. 유동인구고 많았다. 1988년부터 세운상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해 왔다는 고영계(64)씨는 "하루 매출이 100만원도 넘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1970년대의 세운상가는 ‘미사일과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농담반 진담반처럼 들렸다. 월남전에 파병됐던 군인들이 가져온 녹음기, 카세트, 카메라 등도 거래되는 등 못 구하는 게 없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세운상가는 80년대로 접어들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강남 개발이 본격화 됐고, 용산전자 상가가 들어서면서 제 기능을 내줬다.

당시에도 재개발 계획 논의는 있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2000년대 들어서 상가를 허물고 공원화 한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발표됐지만, 입주민과 상가 운영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진척되지 못했다.

그렇게 또 십여년... '고급복합타운'은 어느덧 '도심 속 흉물'이 됐다.

☞ [연관 기사] [르포] 슬럼화된 세운상가…그곳에 사는 사람들

한때 명성이 자자했던 세운상가가 정녕 도심 흉물로 남아있어야 할까?

"모더니즘의 이상을 담은 독특하고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The Seunsangga is an eye-catching monument, a unique Modernist mega structure)"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도시계획 심포지엄에 참석한 제프 헤멀 암스테르담대 교수가 세운상가를 가리킨 말이다. 헤멀 교수는 세계적인 도시 계획자이자 이 분야 석학으로 꼽힌다.

우리 기억 속의 세운상가는 음란물이나 불법 게임을 사던 도심 속의 흉물. 어쩌면 세운상가처럼 그 가치를 평가절하 당하는 곳도 없을지 모른다.

요 몇년 새 세운상가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작년 말에는 '세운상가'가 가진 역사성과 미래 구상을 되짚어보는 작업이 한 권의 책(세운상가 그 이상: 대규모 계획 너머)도 나오기도 했다. 저자들은 "도심 산업의 내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지역의 자산"이라고 표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서면서 세운상가의 역사적 가치를 다시 보는 작업이 시작됐다. 2013년에는 서울시의 세운상가 재정비촉진지구 변경계획이 발표됐다.

시는 세운상가를 연결해 남산까지 잇는 공중보행도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세운상가는 사실 건물이 아닌 8개의 건물이 함께 연결된 건물군(群)이다. 서울 종묘 앞 종로부터 을지로를 지나 퇴계로가 지나는 충무로역까지 남북으로 1km쯤 되는 띠의 형태를 하고 있다. 각 건물은 별도지만 3층 옆 데크(난간)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이른바 도시재생 계획(비슷한 사업이 서울역 고가도로부터 시작됐다)이다. 시는 이르면 이달 말 이 같은 계획의 세운상가 리모델링 사업을 발표하고, 다음달부터 착공할 계획이다.


▲서울역고가 프로젝트의 완공 후 모습 / 서울시 제공

일각에서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완공예정시기인 2017년 말에는 대선이 있다. 서울시장은 대선 때마다 유력 대통령 후보로 꼽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 이유 중 중요한 것 하나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사업의 성공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작년 말 전직 관료들과 함께 복원 10년을 맞은 청계천을 찾은 모습.

이영범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많은 건축물은 정치적 목적성을 담고 있다”며 “(세운상가 개발이)정치적 일정을 염두에 두고 서두른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이번 계획이 세운상가 주거자, 주변 상권과의 조화가 빠진 반쪽짜리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들도 회의적이다. 세운상가 내 부림아파트 관리소장 진철남(72)씨는 "1979부터 나오던 재개발 계획이 계속 틀어지다 보니 건물이 낡을 대로 낡은 상태"며 "주민들은 도시재생이니 그런 것보다 제대로 된 보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2015년에 찍은 세운상가의 모습 / 사진작가 =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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