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없는 생태 촬영 - 드론의 위협

입력 2016.01.18 (15:09) 수정 2016.01.1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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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군무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는 저는 불편합니다. 화면을 보면 카메라가 하늘에서 해변을 따라 이동하고 그 앞에서 새들이 잇따라 날아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뜬 드론을 보고 새들이 놀라서 날아오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영상은 한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 첫 화면입니다. 프로그램 중간에 드론으로 촬영한 화면은 또 나옵니다.



이번에는 드론이 바다에서 모래사장으로 접근합니다. 모래 위에 모여서 쉬고 있던 새들이 또 무리를 지어 날아오릅니다. 검은머리물떼새는 발에 물갈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새입니다. 주로 바닷가 모래사장이나 갯벌에서 쉽니다. 밀물 때면 밀려오는 물을 피해 좁은 해변으로 전체 집단이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모여 있는 검은머리물떼새 위에 드론을 띄운 겁니다.

검은머리물떼새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는 개체 수가 3천 마리 정도에 불과한 멸종위기2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입니다. 주로 서해안의 무인도 등에서 번식하다가 월동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개체가 금강 하구 갯벌 일대에 모여듭니다. 한곳에 모여 월동하는 만큼 월동지 서식 여건이 열악하면 개체군 유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들이 나는 것을 멋있다고 하지만 새들에게는 고행일 수 있습니다. 새들은 멋이 아니라 '살기 위해' 납니다. 한번 날 때마다 에너지 소모가 심합니다.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날지 않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 박진영 박사는 "겨울에는 새들이 추위와 싸워야 하고 먹이도 부족하기 때문에 새들이 자주 날게 될 경우 생존에 더 많은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철새들에게 사람의 접근은 늘 위협입니다. DSLR 카메라의 보급으로 사람들의 간섭이 잦아지더니 최근에는 드론의 등장으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앞에 언급된 프로그램의 마지막 화면도 드론으로 촬영한 화면입니다. 제작을 담당한 피디는 "새들의 전체 개체 수를 파악하고 전체 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드론을 띄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납득이 어렵습니다. 꼭 드론을 띄워야 했을까요?

프로그램 첫 부분과 마지막 장면이 모두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입니다. 새들이 집단으로 날고 있는, 그래서 멋있어 보이는 화면을 얻기 위해 드론을 띄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드론으로 촬영한 것이 분명한 장면이 4분가량의 프로그램에서 세 차례 나옵니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는 몇 차례나 드론을 띄워서 새들을 날렸을지요.



드론을 이용한 촬영은 최근 들어 부쩍 늘었습니다. 위의 영상은 한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 등장했습니다. 가창오리 위로 드론이 접근하자 가창오리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창오리 무리의 정 중앙을 따라 드론이 접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기자는 "가급적 가창오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높은 곳에 띄워 촬영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가창오리가 날 정도라면 충분히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화면을 보면 드론의 반경을 따라 가창오리가 날아오르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가창오리는 밤에 먹이활동을 하고 낮에는 물 위에 떠서 휴식을 취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자주 날게 된다면 역시 생존 자체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창오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관찰된 곳은 주남저수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남저수지에 가창오리가 없습니다. 주남저수지에 어민들이 배를 띄워 어로작업을 하면서 새들을 날려보낸 것이 가창오리가 그곳을 떠난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국립생물자원관 박진영 박사는 "새들이 월동지에서 잦은 방해를 받아 스트레스가 반복될 경우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된다. 이럴 경우 월동지를 다른 곳으로 바꾸게 되는데, 기존의 월동지에 비해 먹이터나 천적 등 생존 여건이 더 열악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가창오리가창오리


겨울 철새의 아름다운 비상, 그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으려면 사람들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위의 사진처럼 물 위에서 편히 쉬고 있는 새들의 모습 역시 충분히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우리가 지켜줘야 하지 않나요? '생태 촬영'을 위해 자연의 생태를 방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른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새들의 둥지 주변을 훼손해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자주 있습니다. 환경기자클럽 임항 회장은 "새들을 날리기 위해 돌을 던지거나 새들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드론을 띄워 새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문제다. 생태 촬영의 기준을 만들어 기자들에게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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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을 일부러 날리는 사람들, 그 마음에는 새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좀 더 좋은 사진이나 영상을 얻으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자꾸 앞세우다가는 새들이 영영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새들이 함께 있는 자연을 후손들에게도 물려주려면 새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그 생태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생태 촬영 장비를 챙기기에 앞서 생태를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가다듬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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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18 15:09:59
    • 수정2016-01-18 18:17:21
    취재K


새들의 군무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는 저는 불편합니다. 화면을 보면 카메라가 하늘에서 해변을 따라 이동하고 그 앞에서 새들이 잇따라 날아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뜬 드론을 보고 새들이 놀라서 날아오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영상은 한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 첫 화면입니다. 프로그램 중간에 드론으로 촬영한 화면은 또 나옵니다.



이번에는 드론이 바다에서 모래사장으로 접근합니다. 모래 위에 모여서 쉬고 있던 새들이 또 무리를 지어 날아오릅니다. 검은머리물떼새는 발에 물갈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새입니다. 주로 바닷가 모래사장이나 갯벌에서 쉽니다. 밀물 때면 밀려오는 물을 피해 좁은 해변으로 전체 집단이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모여 있는 검은머리물떼새 위에 드론을 띄운 겁니다.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는 개체 수가 3천 마리 정도에 불과한 멸종위기2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입니다. 주로 서해안의 무인도 등에서 번식하다가 월동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개체가 금강 하구 갯벌 일대에 모여듭니다. 한곳에 모여 월동하는 만큼 월동지 서식 여건이 열악하면 개체군 유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들이 나는 것을 멋있다고 하지만 새들에게는 고행일 수 있습니다. 새들은 멋이 아니라 '살기 위해' 납니다. 한번 날 때마다 에너지 소모가 심합니다.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날지 않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 박진영 박사는 "겨울에는 새들이 추위와 싸워야 하고 먹이도 부족하기 때문에 새들이 자주 날게 될 경우 생존에 더 많은 위협을 받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철새들에게 사람의 접근은 늘 위협입니다. DSLR 카메라의 보급으로 사람들의 간섭이 잦아지더니 최근에는 드론의 등장으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앞에 언급된 프로그램의 마지막 화면도 드론으로 촬영한 화면입니다. 제작을 담당한 피디는 "새들의 전체 개체 수를 파악하고 전체 영상으로 보여주기 위해 드론을 띄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납득이 어렵습니다. 꼭 드론을 띄워야 했을까요?

프로그램 첫 부분과 마지막 장면이 모두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입니다. 새들이 집단으로 날고 있는, 그래서 멋있어 보이는 화면을 얻기 위해 드론을 띄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드론으로 촬영한 것이 분명한 장면이 4분가량의 프로그램에서 세 차례 나옵니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는 몇 차례나 드론을 띄워서 새들을 날렸을지요.



드론을 이용한 촬영은 최근 들어 부쩍 늘었습니다. 위의 영상은 한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 등장했습니다. 가창오리 위로 드론이 접근하자 가창오리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창오리 무리의 정 중앙을 따라 드론이 접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기자는 "가급적 가창오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높은 곳에 띄워 촬영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가창오리가 날 정도라면 충분히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화면을 보면 드론의 반경을 따라 가창오리가 날아오르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가창오리는 밤에 먹이활동을 하고 낮에는 물 위에 떠서 휴식을 취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자주 날게 된다면 역시 생존 자체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창오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관찰된 곳은 주남저수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남저수지에 가창오리가 없습니다. 주남저수지에 어민들이 배를 띄워 어로작업을 하면서 새들을 날려보낸 것이 가창오리가 그곳을 떠난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국립생물자원관 박진영 박사는 "새들이 월동지에서 잦은 방해를 받아 스트레스가 반복될 경우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된다. 이럴 경우 월동지를 다른 곳으로 바꾸게 되는데, 기존의 월동지에 비해 먹이터나 천적 등 생존 여건이 더 열악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가창오리


겨울 철새의 아름다운 비상, 그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으려면 사람들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위의 사진처럼 물 위에서 편히 쉬고 있는 새들의 모습 역시 충분히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우리가 지켜줘야 하지 않나요? '생태 촬영'을 위해 자연의 생태를 방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른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새들의 둥지 주변을 훼손해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자주 있습니다. 환경기자클럽 임항 회장은 "새들을 날리기 위해 돌을 던지거나 새들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드론을 띄워 새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문제다. 생태 촬영의 기준을 만들어 기자들에게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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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을 일부러 날리는 사람들, 그 마음에는 새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좀 더 좋은 사진이나 영상을 얻으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을 자꾸 앞세우다가는 새들이 영영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새들이 함께 있는 자연을 후손들에게도 물려주려면 새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그 생태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생태 촬영 장비를 챙기기에 앞서 생태를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가다듬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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