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人] 히딩크의 애제자는 박지성 아닌 이천수였다?

입력 2016.01.25 (00:04) 수정 2016.01.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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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화 : 본격 스포츠지식 배양프로그램, 스포츠 대백과! 스물일곱 번째 장을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인 : 요즘 날씨가 정말 추워졌는데요. 그래서 오늘의 스포츠 인은 정말 핫한 분을 초대했습니다.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이자 현 예능 꿈나무, 이천수 선수입니다! 환영합니다.

이천수 : (인사)

이병진 : 그런데 스포츠 인이 맞는 거냐. 예능인 아니야?

이천수 : (답변)

제인 : 또 이천수가 어떤 선수였는지~ 오늘 취재 노트를 공개해준다고 약속한 서호정 기자도 함께 합니다.

서호정 : (인사)

이병진 : 또 이천수 선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대학 후배죠. 김태륭 해설위원도 자리했습니다.

김태륭 : (인사)

강승화 : 이천수 선수, 대학 후배가 나왔는데~ 혹시 내가 뭐 실수한 거 없었나. 불안하지 않나요?

이천수 : (답변)

김태륭 : 제가 신입생 때 3학년이었던 이천수. 하지만 그때부터 이미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터라 학교에서 잘 볼 수 없었다.

제인 : 아~ 벌써 기사 한 줄 나오는 건가요? “이천수 대학 열심히 안 다녔다.”

이천수 : (답변)

이병진 : 정말 이런 식으로 이천수 선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사화 되고~ 악동 이미지가 쌓였던 선수였는데요. 오늘 이 자리에서 그동안 못 했던 이야기, 마음껏 하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 표제어 ①-1 ‘천재와 악동 사이’ 이천수

강승화 : 요즘은 이천수하면 예능인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은데~ 오늘은 예능인이 아니라 축구인으로서 함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서호정 기자, 이천수는 어떤 선수였나요?

서호정 : 애정과 애증 사이에 있는 선수. 악동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기량과 승부욕만큼은 대한민국 최고였다. 스무 살에 태극마크를 달고 2002 월드컵, 2006 월드컵을 포함. 총 78번 나라를 대표해 뛰었다. 잦은 해외진출 와중에도 K리그 신인왕과 MVP를 수상했다.

이병진 : 어려서부터 정말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해왔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선수로서 언제가 가장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이천수 : (답변)

제인 : 김태륭 위원은 이천수 선수랑 비슷한 또래면...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을 거잖아요. 그렇게 잘 했나요?

김태륭 : 박지성 선수보다 대단한 존재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천수라는 선수가 전국에서 제일 잘한다고 들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에서 마주쳤다. 엄청 잘했다. 흔히 사기 캐릭터라고 하지 않나. 너무 얄미울 정도로 잘해서 일부러 반칙하려고 하면 그것조차 빠져나왔다.

서호정 : 2000년 1월, 4개국 친선대회. “밀레니엄 특급”이라는 별명의 탄생

이병진 : 그럼 본인이 생각하기에 당시 이천수는 어느 정도 선수였다고 생각하세요?

이천수 : (답변)

제인 : 이 정도로 잘 했으면... 소녀 팬들도 많았을 거 같은데~ 김태륭 위원이 증언해주시죠?

김태륭 :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학교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훈련했는데 연습 경기를 하는 고등학교에 도착하면 전교생이 다 나와서 구경했다.

제인 : 그 학교... 남고였나요? 여고였나요?

김태륭 : (답변)

강승화 : 그런데 당시에 고종수, 이동국, 이관우, 김은중...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았는데 유독 이천수가 더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

서호정 : 다들 실력도 좋고 유명했지만 이천수 선수는 저들보다 2~3살 어리다. 형들과 함께 시드니올림픽에 출전. 월반할 정도로 실력 면에서 뛰어났다. 고려대에서 바로 유럽진출을 추진하기도. 당시 프랑스 ‘릴’이라는 팀과 협상을 벌이고 있어 히딩크 감독이 이천수 선수에게 “릴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 표제어 ①-2 2002 한일월드컵 & 2006 독일월드컵

강승화 : 이천수 선수의 축구 인생에서~ 사실 월드컵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열렸으니까. 감회가 남달랐을 거 같아요?

이천수 : (답변)

김태륭 : 2002년 월드컵 때 한 경기도 못 뛴 선배들도 있는데~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이천수 선수가 막내가 3-4위전까지 전 경기를 다 뛰었다.

제인 : 히딩크 감독이 나를 믿는 구나, 그런 게 느껴졌나요?

이천수 : (답변)

이병진 : 근데 완~~ 전히 믿지는 않았나 봐요. 선발 출장이 아니라 대부분 교체투입이었죠?

이천수 : (답변)

강승화 : 서호정 기자, 혹시 취재 노트에 히딩크 감독과 이천수 선수의 관계는 없나요?

서호정 : 사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가지 않았나. 히딩크 감독이 원래 PSV로 데려가려 했던 선수 1순위가 바로 이천수였다.

제인 : 오호! 그 말은 박지성과 이천수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는 얘기잖아요? 이천수 선수, 사실인가요?

이천수 : 사실이다. 당시 박항서 대표팀 코치를 통해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나도 좋은 기회라 가고 싶었지만 당시 울산과 계약한 상태라서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서호정 : 울산이 이천수 보낼 수 없었던 상황. 적은 이적료와 월드컵 후 인기가 높아진 이천수

김태륭 : 이천수 선수가 2002년 월드컵 전 경기 출전했지만 골이 없어서 아쉬웠다. 특히, 독일과의 4강전에서 정말 들어가는 줄 알았던 슛을 당대 최고 골키퍼였던 올리버 칸이 막아냈다.

이병진 :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보는 저도 정말 아쉬웠거든요. 직접 찼던 선수는 더 아쉬웠을 거 같아요? 골이라 생각했죠?

이천수 : (답변)

제인 : 하지만 그 아쉬움을 4년 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만회했어요?

이천수 : (답변)

이병진 : 그런데 그 프리킥을 사실 이을용 선수가 차려고 했다는데~ 이을용 선수 찼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 다음 주에 2편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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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人] 히딩크의 애제자는 박지성 아닌 이천수였다?
    • 입력 2016-01-25 07:05:32
    • 수정2016-01-25 10:40:07
    운동화
강승화 : 본격 스포츠지식 배양프로그램, 스포츠 대백과! 스물일곱 번째 장을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인 : 요즘 날씨가 정말 추워졌는데요. 그래서 오늘의 스포츠 인은 정말 핫한 분을 초대했습니다.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이자 현 예능 꿈나무, 이천수 선수입니다! 환영합니다.

이천수 : (인사)

이병진 : 그런데 스포츠 인이 맞는 거냐. 예능인 아니야?

이천수 : (답변)

제인 : 또 이천수가 어떤 선수였는지~ 오늘 취재 노트를 공개해준다고 약속한 서호정 기자도 함께 합니다.

서호정 : (인사)

이병진 : 또 이천수 선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대학 후배죠. 김태륭 해설위원도 자리했습니다.

김태륭 : (인사)

강승화 : 이천수 선수, 대학 후배가 나왔는데~ 혹시 내가 뭐 실수한 거 없었나. 불안하지 않나요?

이천수 : (답변)

김태륭 : 제가 신입생 때 3학년이었던 이천수. 하지만 그때부터 이미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터라 학교에서 잘 볼 수 없었다.

제인 : 아~ 벌써 기사 한 줄 나오는 건가요? “이천수 대학 열심히 안 다녔다.”

이천수 : (답변)

이병진 : 정말 이런 식으로 이천수 선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사화 되고~ 악동 이미지가 쌓였던 선수였는데요. 오늘 이 자리에서 그동안 못 했던 이야기, 마음껏 하시고 가시길 바랍니다.

▶ 표제어 ①-1 ‘천재와 악동 사이’ 이천수

강승화 : 요즘은 이천수하면 예능인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은데~ 오늘은 예능인이 아니라 축구인으로서 함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서호정 기자, 이천수는 어떤 선수였나요?

서호정 : 애정과 애증 사이에 있는 선수. 악동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기량과 승부욕만큼은 대한민국 최고였다. 스무 살에 태극마크를 달고 2002 월드컵, 2006 월드컵을 포함. 총 78번 나라를 대표해 뛰었다. 잦은 해외진출 와중에도 K리그 신인왕과 MVP를 수상했다.

이병진 : 어려서부터 정말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해왔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선수로서 언제가 가장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이천수 : (답변)

제인 : 김태륭 위원은 이천수 선수랑 비슷한 또래면...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을 거잖아요. 그렇게 잘 했나요?

김태륭 : 박지성 선수보다 대단한 존재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천수라는 선수가 전국에서 제일 잘한다고 들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에서 마주쳤다. 엄청 잘했다. 흔히 사기 캐릭터라고 하지 않나. 너무 얄미울 정도로 잘해서 일부러 반칙하려고 하면 그것조차 빠져나왔다.

서호정 : 2000년 1월, 4개국 친선대회. “밀레니엄 특급”이라는 별명의 탄생

이병진 : 그럼 본인이 생각하기에 당시 이천수는 어느 정도 선수였다고 생각하세요?

이천수 : (답변)

제인 : 이 정도로 잘 했으면... 소녀 팬들도 많았을 거 같은데~ 김태륭 위원이 증언해주시죠?

김태륭 :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학교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훈련했는데 연습 경기를 하는 고등학교에 도착하면 전교생이 다 나와서 구경했다.

제인 : 그 학교... 남고였나요? 여고였나요?

김태륭 : (답변)

강승화 : 그런데 당시에 고종수, 이동국, 이관우, 김은중...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았는데 유독 이천수가 더 주목받은 이유는 뭘까?

서호정 : 다들 실력도 좋고 유명했지만 이천수 선수는 저들보다 2~3살 어리다. 형들과 함께 시드니올림픽에 출전. 월반할 정도로 실력 면에서 뛰어났다. 고려대에서 바로 유럽진출을 추진하기도. 당시 프랑스 ‘릴’이라는 팀과 협상을 벌이고 있어 히딩크 감독이 이천수 선수에게 “릴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 표제어 ①-2 2002 한일월드컵 & 2006 독일월드컵

강승화 : 이천수 선수의 축구 인생에서~ 사실 월드컵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열렸으니까. 감회가 남달랐을 거 같아요?

이천수 : (답변)

김태륭 : 2002년 월드컵 때 한 경기도 못 뛴 선배들도 있는데~ 당시 대표팀 막내였던 이천수 선수가 막내가 3-4위전까지 전 경기를 다 뛰었다.

제인 : 히딩크 감독이 나를 믿는 구나, 그런 게 느껴졌나요?

이천수 : (답변)

이병진 : 근데 완~~ 전히 믿지는 않았나 봐요. 선발 출장이 아니라 대부분 교체투입이었죠?

이천수 : (답변)

강승화 : 서호정 기자, 혹시 취재 노트에 히딩크 감독과 이천수 선수의 관계는 없나요?

서호정 : 사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가지 않았나. 히딩크 감독이 원래 PSV로 데려가려 했던 선수 1순위가 바로 이천수였다.

제인 : 오호! 그 말은 박지성과 이천수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는 얘기잖아요? 이천수 선수, 사실인가요?

이천수 : 사실이다. 당시 박항서 대표팀 코치를 통해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나도 좋은 기회라 가고 싶었지만 당시 울산과 계약한 상태라서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서호정 : 울산이 이천수 보낼 수 없었던 상황. 적은 이적료와 월드컵 후 인기가 높아진 이천수

김태륭 : 이천수 선수가 2002년 월드컵 전 경기 출전했지만 골이 없어서 아쉬웠다. 특히, 독일과의 4강전에서 정말 들어가는 줄 알았던 슛을 당대 최고 골키퍼였던 올리버 칸이 막아냈다.

이병진 :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보는 저도 정말 아쉬웠거든요. 직접 찼던 선수는 더 아쉬웠을 거 같아요? 골이라 생각했죠?

이천수 : (답변)

제인 : 하지만 그 아쉬움을 4년 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만회했어요?

이천수 : (답변)

이병진 : 그런데 그 프리킥을 사실 이을용 선수가 차려고 했다는데~ 이을용 선수 찼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 다음 주에 2편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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