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갑질 끝판왕’의 비참한 말로

입력 2016.01.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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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허가 공무원은 영원한 '갑'

부산 식약처 수입식품 검사소에 근무하는 박 모(44)씨와 홍 모(44) 씨는 수입업자들에게 그야말로 영원한 '갑'이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수입식품 검사를 통해 통관 여부를 결정하는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식품을 들여오는 수입업자 입장에선 국내에서 통관 검사를 받는 대기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사업 경쟁력이 높아진다.

식약처에 수입신고서를 제출하고 수입 '적합' 또는 '부적합' 판정이 나기까지 일정 기간 수입식품을 보세구역 창고에 보관하게 된다. 수입 '적합' 판정이 빨리 나면 시중에 식품을 유통시켜돈을 벌 수 있다. 반대로 수입 '부적합' 판정이 나면 애써 들여온 식품들을 전량 다시 반송하거나 폐기 처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비용이나 관리비용 등은 모두 수입업자가 그대로 손실로 떠안게 된다. 따라서 수입식품 통관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식약처 공무원 박 씨와 홍 씨는 수입업자들에게 말 그대로 '저승사자'같은 존재였다.

압수된 현금압수된 현금


"좋은 게 좋은 거다"... 공무원과 업자의 끈끈한 결탁

이런 우월적 지위를 가진 공무원 박 씨와 홍 씨는 수입업자나 통관 대행업자들에게 로비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입업자들은 이들에게 수입식품 검사 때 처리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주고 식품 검사 결과도 '적합'으로 판정이 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끈질기게 로비를 벌였다. 또 관세사나 통관업자들은 통관의 편의를 위해 모범적으로 작성된 타 업체의 '수입 신고서'나 '식품위생 단속계획서' 같은 식약처 내부의 비공개 정보를 은밀히 제공해 달라고 유혹했다. 그 대가로 홍 씨와 박 씨에게는 갖가지 뇌물과 향응이 수년 동안 집요하게 제공됐다.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박 씨와 홍 씨는 수입업자나 통관 대행업자 19명에게 모두 670여 차례나 뇌물과 향응을 받았고, 비공개 행정정보 1,400여 건을 넘겨줬다. 수입식품 검사나 통관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한 건당 평균 10만 원에서 50만 원씩 현금으로 뇌물을 받았고,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로도 송금을 받았다. 또 밥값, 술값, 골프비, 선물비, 휴가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정기적인 향응을 받았다. 스위스 명품 시계, 골프채, 골프가방 등 값비싼 선물도 직접 요구해 받았고, 유흥주점에서의 성 접대로 빈번하게 이어졌다.

압수된 스위스제 명품 시계압수된 스위스제 명품 시계


'갑질'의 비참한 말로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끈끈한 결탁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수입업자들 간 영업권을 둘러싼 갈등이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했고, 이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경찰에게 추악한 결탁의 꼬리가 밟히게 됐다. 경찰은 한달여간 박 씨와 홍 씨의 통화내역, 친인척 계좌추적, 이메일 분석 등을 통해 공무원과 수입업자, 통관 대행업자들 간 공생의 고리를 파헤쳤다.

경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8일(오늘) 부산 식약처 7급 공무원 박 씨와 부산시 위생과 6급 공무원 홍 씨를 '뇌물수수'와 '전자정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 이들에게 상습적으로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관세사 김 모(44)씨와 수입업자 최 모 씨 등 19명을 불구속 입건해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체크 카드체크 카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으로….

식약처는 국내로 유입되는 농·임산물, 가공식품, 건강 기능식품 등 다양한 식품류에 대해 '수입자 정보','제품 정보','포장 상태'.'식품기준 적합 여부' 등을 검사한다. 이를 통해 적합한 식품에 대해서만 국내에 유통되도록 함으로써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처럼 뇌물과 향락에 찌든 비양심 공무원과 탐욕스런 업자들이 결탁하면 국내 식품 유통질서가 무너져 국민들 식품 안전에 큰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즉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부적합 식품이나 밀수식품들이 국내에 마구 유통됨으로써 국민 건강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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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갑질 끝판왕’의 비참한 말로
    • 입력 2016-01-28 18:22:02
    취재K
인허가 공무원은 영원한 '갑'

부산 식약처 수입식품 검사소에 근무하는 박 모(44)씨와 홍 모(44) 씨는 수입업자들에게 그야말로 영원한 '갑'이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수입식품 검사를 통해 통관 여부를 결정하는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식품을 들여오는 수입업자 입장에선 국내에서 통관 검사를 받는 대기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사업 경쟁력이 높아진다.

식약처에 수입신고서를 제출하고 수입 '적합' 또는 '부적합' 판정이 나기까지 일정 기간 수입식품을 보세구역 창고에 보관하게 된다. 수입 '적합' 판정이 빨리 나면 시중에 식품을 유통시켜돈을 벌 수 있다. 반대로 수입 '부적합' 판정이 나면 애써 들여온 식품들을 전량 다시 반송하거나 폐기 처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비용이나 관리비용 등은 모두 수입업자가 그대로 손실로 떠안게 된다. 따라서 수입식품 통관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식약처 공무원 박 씨와 홍 씨는 수입업자들에게 말 그대로 '저승사자'같은 존재였다.

압수된 현금


"좋은 게 좋은 거다"... 공무원과 업자의 끈끈한 결탁

이런 우월적 지위를 가진 공무원 박 씨와 홍 씨는 수입업자나 통관 대행업자들에게 로비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입업자들은 이들에게 수입식품 검사 때 처리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주고 식품 검사 결과도 '적합'으로 판정이 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끈질기게 로비를 벌였다. 또 관세사나 통관업자들은 통관의 편의를 위해 모범적으로 작성된 타 업체의 '수입 신고서'나 '식품위생 단속계획서' 같은 식약처 내부의 비공개 정보를 은밀히 제공해 달라고 유혹했다. 그 대가로 홍 씨와 박 씨에게는 갖가지 뇌물과 향응이 수년 동안 집요하게 제공됐다.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박 씨와 홍 씨는 수입업자나 통관 대행업자 19명에게 모두 670여 차례나 뇌물과 향응을 받았고, 비공개 행정정보 1,400여 건을 넘겨줬다. 수입식품 검사나 통관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한 건당 평균 10만 원에서 50만 원씩 현금으로 뇌물을 받았고,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로도 송금을 받았다. 또 밥값, 술값, 골프비, 선물비, 휴가비 등 갖가지 명목으로 정기적인 향응을 받았다. 스위스 명품 시계, 골프채, 골프가방 등 값비싼 선물도 직접 요구해 받았고, 유흥주점에서의 성 접대로 빈번하게 이어졌다.

압수된 스위스제 명품 시계


'갑질'의 비참한 말로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끈끈한 결탁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수입업자들 간 영업권을 둘러싼 갈등이 고소·고발전으로 비화했고, 이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경찰에게 추악한 결탁의 꼬리가 밟히게 됐다. 경찰은 한달여간 박 씨와 홍 씨의 통화내역, 친인척 계좌추적, 이메일 분석 등을 통해 공무원과 수입업자, 통관 대행업자들 간 공생의 고리를 파헤쳤다.

경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8일(오늘) 부산 식약처 7급 공무원 박 씨와 부산시 위생과 6급 공무원 홍 씨를 '뇌물수수'와 '전자정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 이들에게 상습적으로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관세사 김 모(44)씨와 수입업자 최 모 씨 등 19명을 불구속 입건해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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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으로….

식약처는 국내로 유입되는 농·임산물, 가공식품, 건강 기능식품 등 다양한 식품류에 대해 '수입자 정보','제품 정보','포장 상태'.'식품기준 적합 여부' 등을 검사한다. 이를 통해 적합한 식품에 대해서만 국내에 유통되도록 함으로써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처럼 뇌물과 향락에 찌든 비양심 공무원과 탐욕스런 업자들이 결탁하면 국내 식품 유통질서가 무너져 국민들 식품 안전에 큰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즉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부적합 식품이나 밀수식품들이 국내에 마구 유통됨으로써 국민 건강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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