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는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입력 2016.02.01 (17:2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완벽한 '타짜'를 꿈꾸다.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사는 30살 이 모 씨는 변변한 직업 없이 도박판을 전전하는 도박꾼이었다. 한탕을 꿈꾸던 이 씨는 동료 사 모 씨 등을 규합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영화 '타짜'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한 사기도박을 계획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한적한 사무실을 임대했다. 사업 성공을 위해 임대한 사무실을 완벽한 '타짜 하우스'로 개조했다.

사무실 천장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파 수신용 안테나를 설치했다. 또 쌀 한 톨 크기만 한 초소형 무선 이어폰과 무전기가 장착된 러닝셔츠도 청계천 등지에서 구입했다. 사기도박에 참여해 바람을 잡는 김 모 씨 등 선수(?)도 확보했고, 모니터 영상을 통해 상대방 패를 판독하는 관측 기술자들도 외부에서 영입했다. 도박장 맞은편 건물,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진 모텔에는 방을 하나 잡고 모니터와 무전기 등 전자 장비들을 설치했다.

몰카로 판독한 사기도박 카드몰카로 판독한 사기도박 카드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

몰래 카메라에 잡힌 포커 카드를 판독해 낼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하고, 이를 도박판에 앉아 있는 일당에게 무전으로 송신할 무전기까지 갖춤으로써 사기도박을 총지휘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를 모텔방에 꾸린 것이다.

맨눈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몰래 카메라로 읽으면 상대방 패를 훤히 알아낼 수 있는 '무늬목 카드'도 몇 벌 준비했다. 카드 뒷면에 형광물질로 'V','+','O','X' 등 약속된 표시를 해놓고 몰래 카메라를 통해서 상대방 패를 낱낱이 읽을 수 있었다. 판돈을 따는 건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웠다. 사기도박을 위한 완벽한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다.

설계는 완벽히 잘 됐는데…

사기도박 현장 영상사기도박 현장 영상


고객 모집책인 사 씨는 피해자들을 끌어들였다. 주변에 돈 많고 실력은 형편없는 도박꾼들이 있으니 한탕 크게 벌어보자며 속칭 '호구'들을 유혹했다. 물(?) 좋은 도박판이 있다는 소식에 물정 모르는 도박꾼들이 하나둘씩 걸려들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먹잇감인 줄도 모르고 밤마다 '타짜 하우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종목은 속칭 '바둑이'라 불리는 포커 도박이었다.

압수된 판돈압수된 판돈


피해자들은, 도박 게임 초반엔 늘 상승세를 타며 제법 목돈을 따기도 했다. 도박판에 앉은 사기도박 선수(?)들이 초반엔 슬금슬금 돈을 잃어주며 바람을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막판에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늘 아슬아슬하게 상대방 보다 한, 두 끗 낮은 패를 잡고서 베팅을 하다가 그동안 딴 돈을 한방에 모두 잃었다.

운이 없어 돈을 잃게 됐다는 아쉬움에 피해자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날 또다시 사기도박판을 찾았다. 이렇게 단 사흘 만에 피해자 5명에게 딴 돈은 무려 6천만 원이 넘었다. 매일 밤 수천만 원씩 돈을 잃으면서도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사기도박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첨단장비로 중무장한 사기도박 사업은 완벽히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업(?)은 말 그대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초소형 이어폰초소형 이어폰


정체 모를 '괴전파'...

완벽한 것처럼 보이던 사기도박 범죄는 우연히 꼬리가 잡혔다. 밤마다 강릉시 교동 일대에서 괴전파가 발생하는 것이 강릉 전파 관리소에 포착됐다. 사기도박 관측 기술자가 모텔방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도박장 선수들(?)에게 상대방 패를 알려주는 무전기 신호가 전파 관리소 관측 모니터에 포착된 것이다.

전파 관리소 측은 즉각 이 괴전파 발신 지점을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이 이 괴전파를 감청한 결과, 사기도박단 일당의 범죄 행각이 실시간으로 생생히 포착됐다. 마침내 지난 29일 새벽 2시쯤, 경찰은 모텔과 도박장을 동시에 급습했다.

'타짜'... 일망타진되다

사기도박 증거자료사기도박 증거자료


강원도 강릉 경찰서는 오늘(1일), 이 씨와 김 씨 등 사기도박단 6명 가운데 4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공범 1명을 추적하고 있다. 범행 현장에서 사용된 판돈 1 천 100 만원과 감청장비, 무선장비 일체도 압수했다. 또 이 장비를 제작, 판매한 제조 기술자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IT 기술 발달에 힘입어 최첨단 무선 장비들이 범죄 현장에 악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사기도박 범죄가 언제든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타짜’는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 입력 2016-02-01 17:24:52
    취재K
완벽한 '타짜'를 꿈꾸다.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사는 30살 이 모 씨는 변변한 직업 없이 도박판을 전전하는 도박꾼이었다. 한탕을 꿈꾸던 이 씨는 동료 사 모 씨 등을 규합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영화 '타짜'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한 사기도박을 계획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한적한 사무실을 임대했다. 사업 성공을 위해 임대한 사무실을 완벽한 '타짜 하우스'로 개조했다.

사무실 천장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전파 수신용 안테나를 설치했다. 또 쌀 한 톨 크기만 한 초소형 무선 이어폰과 무전기가 장착된 러닝셔츠도 청계천 등지에서 구입했다. 사기도박에 참여해 바람을 잡는 김 모 씨 등 선수(?)도 확보했고, 모니터 영상을 통해 상대방 패를 판독하는 관측 기술자들도 외부에서 영입했다. 도박장 맞은편 건물,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진 모텔에는 방을 하나 잡고 모니터와 무전기 등 전자 장비들을 설치했다.

몰카로 판독한 사기도박 카드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

몰래 카메라에 잡힌 포커 카드를 판독해 낼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하고, 이를 도박판에 앉아 있는 일당에게 무전으로 송신할 무전기까지 갖춤으로써 사기도박을 총지휘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를 모텔방에 꾸린 것이다.

맨눈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몰래 카메라로 읽으면 상대방 패를 훤히 알아낼 수 있는 '무늬목 카드'도 몇 벌 준비했다. 카드 뒷면에 형광물질로 'V','+','O','X' 등 약속된 표시를 해놓고 몰래 카메라를 통해서 상대방 패를 낱낱이 읽을 수 있었다. 판돈을 따는 건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웠다. 사기도박을 위한 완벽한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다.

설계는 완벽히 잘 됐는데…

사기도박 현장 영상


고객 모집책인 사 씨는 피해자들을 끌어들였다. 주변에 돈 많고 실력은 형편없는 도박꾼들이 있으니 한탕 크게 벌어보자며 속칭 '호구'들을 유혹했다. 물(?) 좋은 도박판이 있다는 소식에 물정 모르는 도박꾼들이 하나둘씩 걸려들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먹잇감인 줄도 모르고 밤마다 '타짜 하우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종목은 속칭 '바둑이'라 불리는 포커 도박이었다.

압수된 판돈


피해자들은, 도박 게임 초반엔 늘 상승세를 타며 제법 목돈을 따기도 했다. 도박판에 앉은 사기도박 선수(?)들이 초반엔 슬금슬금 돈을 잃어주며 바람을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막판에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늘 아슬아슬하게 상대방 보다 한, 두 끗 낮은 패를 잡고서 베팅을 하다가 그동안 딴 돈을 한방에 모두 잃었다.

운이 없어 돈을 잃게 됐다는 아쉬움에 피해자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날 또다시 사기도박판을 찾았다. 이렇게 단 사흘 만에 피해자 5명에게 딴 돈은 무려 6천만 원이 넘었다. 매일 밤 수천만 원씩 돈을 잃으면서도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사기도박에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첨단장비로 중무장한 사기도박 사업은 완벽히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업(?)은 말 그대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초소형 이어폰


정체 모를 '괴전파'...

완벽한 것처럼 보이던 사기도박 범죄는 우연히 꼬리가 잡혔다. 밤마다 강릉시 교동 일대에서 괴전파가 발생하는 것이 강릉 전파 관리소에 포착됐다. 사기도박 관측 기술자가 모텔방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도박장 선수들(?)에게 상대방 패를 알려주는 무전기 신호가 전파 관리소 관측 모니터에 포착된 것이다.

전파 관리소 측은 즉각 이 괴전파 발신 지점을 경찰에 통보했다. 경찰이 이 괴전파를 감청한 결과, 사기도박단 일당의 범죄 행각이 실시간으로 생생히 포착됐다. 마침내 지난 29일 새벽 2시쯤, 경찰은 모텔과 도박장을 동시에 급습했다.

'타짜'... 일망타진되다

사기도박 증거자료


강원도 강릉 경찰서는 오늘(1일), 이 씨와 김 씨 등 사기도박단 6명 가운데 4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공범 1명을 추적하고 있다. 범행 현장에서 사용된 판돈 1 천 100 만원과 감청장비, 무선장비 일체도 압수했다. 또 이 장비를 제작, 판매한 제조 기술자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IT 기술 발달에 힘입어 최첨단 무선 장비들이 범죄 현장에 악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사기도박 범죄가 언제든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