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공에서 전면 중단까지…우여곡절 13년
입력 2016.02.10 (23:11)
수정 2016.02.1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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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개성공단은 올해로 출범 13년이 됐습니다.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는데,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개성공단 13년의 역사를 정홍규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3년 6월 첫 삽을 뜬 개성공단은 1년 뒤 시범단지 준공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첫 제품이 생산됩니다.
<녹취> 고윤옥(북한 근로자/2004년 12월) : "진짜 50여 년 동안 갈라져 있었다가 서로 이렇게 힘을 합쳐서 하니까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2007년 누적 생산액 1억 달러를 넘어서며 순항하던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첫 위기를 맞습니다.
북한이 2008년 전단 살포 등 우리의 대북정책에 반발하며 체류인원을 800명으로 제한하고 출입횟수를 줄인 겁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한미 군사 훈련을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육로 통행을 차단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13년 4월에는 일방적으로 근로자들을 철수시켜 공단을 잠정 폐쇄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4월) :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 공업지구 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이후 5개월의 가동 중단 사태 거쳐 극적으로 정상화되는 등 남북관계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온 개성공단,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개성공단은 착공 1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개성공단은 올해로 출범 13년이 됐습니다.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는데,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개성공단 13년의 역사를 정홍규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3년 6월 첫 삽을 뜬 개성공단은 1년 뒤 시범단지 준공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첫 제품이 생산됩니다.
<녹취> 고윤옥(북한 근로자/2004년 12월) : "진짜 50여 년 동안 갈라져 있었다가 서로 이렇게 힘을 합쳐서 하니까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2007년 누적 생산액 1억 달러를 넘어서며 순항하던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첫 위기를 맞습니다.
북한이 2008년 전단 살포 등 우리의 대북정책에 반발하며 체류인원을 800명으로 제한하고 출입횟수를 줄인 겁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한미 군사 훈련을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육로 통행을 차단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13년 4월에는 일방적으로 근로자들을 철수시켜 공단을 잠정 폐쇄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4월) :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 공업지구 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이후 5개월의 가동 중단 사태 거쳐 극적으로 정상화되는 등 남북관계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온 개성공단,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개성공단은 착공 1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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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6-02-11 01: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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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은 올해로 출범 13년이 됐습니다.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는데,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개성공단 13년의 역사를 정홍규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3년 6월 첫 삽을 뜬 개성공단은 1년 뒤 시범단지 준공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첫 제품이 생산됩니다.
<녹취> 고윤옥(북한 근로자/2004년 12월) : "진짜 50여 년 동안 갈라져 있었다가 서로 이렇게 힘을 합쳐서 하니까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2007년 누적 생산액 1억 달러를 넘어서며 순항하던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첫 위기를 맞습니다.
북한이 2008년 전단 살포 등 우리의 대북정책에 반발하며 체류인원을 800명으로 제한하고 출입횟수를 줄인 겁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한미 군사 훈련을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육로 통행을 차단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13년 4월에는 일방적으로 근로자들을 철수시켜 공단을 잠정 폐쇄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4월) :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 공업지구 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이후 5개월의 가동 중단 사태 거쳐 극적으로 정상화되는 등 남북관계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온 개성공단,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개성공단은 착공 1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개성공단은 올해로 출범 13년이 됐습니다.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는데,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개성공단 13년의 역사를 정홍규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3년 6월 첫 삽을 뜬 개성공단은 1년 뒤 시범단지 준공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첫 제품이 생산됩니다.
<녹취> 고윤옥(북한 근로자/2004년 12월) : "진짜 50여 년 동안 갈라져 있었다가 서로 이렇게 힘을 합쳐서 하니까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2007년 누적 생산액 1억 달러를 넘어서며 순항하던 개성공단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첫 위기를 맞습니다.
북한이 2008년 전단 살포 등 우리의 대북정책에 반발하며 체류인원을 800명으로 제한하고 출입횟수를 줄인 겁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한미 군사 훈련을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육로 통행을 차단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13년 4월에는 일방적으로 근로자들을 철수시켜 공단을 잠정 폐쇄합니다.
<녹취> 조선중앙TV(2013년 4월) :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 공업지구 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이후 5개월의 가동 중단 사태 거쳐 극적으로 정상화되는 등 남북관계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온 개성공단,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개성공단은 착공 13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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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규 기자 dwarf@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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