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비경’ 바이칼, 속이 썩어가고 있다
입력 2016.02.16 (09:16)
수정 2016.02.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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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비경 ‘바이칼’
"우와 참, 바다 같은 호수다."
바이칼 호수를 처음 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회다.
바이칼로 가는 관문인 시베리아 이르쿠츠크까지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모스크바에서는 6시간이 걸린다.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차로 4시간 정도를 달리면, 바이칼 호수 최대의 섬인 알혼섬에 이른다.
광대한 시베리아 벌판 남쪽에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바이칼 호수. 남북 길이가 636km, 둘레 2,200km, 수심은 최고 1,700m, 남한 면적의 1/3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다. 전 세계 인구가 40년을 마실 수 있다는 천연 광천수를 담고 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모든 것이 얼어붙었는데 그 얼음 빛깔이 참으로 신기하게도 에메랄드 빛이 난다.
호숫가 절벽 바위틈마다 10m에 달하는 거대한 얼음기둥이 줄줄이 생겨났다. 장난기 많은 사람들은 적당한 고드름을 떼어내 미니 칼싸움을 즐기기도 한다. 물결치던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얼음조각들도 있다. 마치 판유리를 켜켜이 쌓아 놓은 듯한 얼음들도 보인다.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다.
바이칼 호수는 워낙 물이 깨끗해서 얼음 밑으로 물고기도 보이고, 밑바닥이 보이기도 한다. 물밑 가시거리는 40m를 넘기도 한다. 얼음 밑으로 보이는 호수는 푸른색이 대부분이라 보기에도 참 예쁘다. 익살맞은 사람들은 큰 대자로 호수 위에 널브러져 그 오묘한 색깔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런데 제법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할 경우 갑자기 물밑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호수 위를 달리는 자동차
한겨울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얼음 두께는 50cm에서 최대 1m에 달한다. 얼어붙은 호수 위를 자동차들이 거침 없이 달려간다.
뭍에서 알혼섬까지는 통상 배로 20분 정도 걸린다. 호수가 얼어붙으면 배 대신 호버크래프트가 손님들을 실어 나른다. 사실, 선착장 근처에는 얼음이 깨질 수 있으니 자동차 타고 함부로 호수 위를 다니지 말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련한 섬사람들은 거침없이 호수 위를 내달린다. 섬사람들에게는 모처럼 지름길이 생긴 셈이다. 뭍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거나 급히 병원에 갈 일이 있다거나 기타 볼일 보러 차를 타고 호수 위를 달린다. 알혼섬에서 뭍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 광활한 호수 위로 나름 도로가 생겨났다. 섬사람들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얼음이 제대로 두꺼운지 여부를 살핀 뒤 안전한 '길'을 찾아서 여행을 계속했다. 자동차들의 질주는 오는 4월까지 계속된다.
관광객들을 주로 실어나르는 차는 '우아즈'라고 불리는 미니버스다. 우아즈는 군용트럭을 개조한 것인데 차 안이 꽤 넓어서 7~8명은 충분히 태울 수 있다. 게다가 차 밑바닥이 높아서 어지간한 비포장 도로나 눈·얼음길도 끄덕없이 돌파한다.
한겨울에는 주로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특히, 바이칼 호수 일대가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뒤 한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3월에는 바이칼 호수 위에서 미니 골프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골프공이 얼음 위를 한없이 굴러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군데군데 요철이 많아서 일반 골프장만큼 비거리가 나온다고 한다.
■ 바이칼의 아픔
천혜의 생태보고인 바이칼 호수에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다. 환경오염 문제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25개 섬 가운데 최대 섬인 알혼섬과 일대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장을 찾아가 봤다. 쓰레기 매립장 책임자인 안드레이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쓰레기 처리량이 2~3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문제는, 관광객들이 함부로 버리고 간 쓰레기는 미처 수습을 못하기 때문에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4월이 지난 다음에나 수집한다고 했다.
알혼섬에 있는 캠핑장에 가보니, 여름철 텐트촌 일대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병, 비닐 봉지들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호숫가 경치 좋은 곳에는 불법 캠핑한 흔적들이 많았고, 함부로 나무 밑동을 잘라서 불쏘시개로 사용한 흔적도 보였다. 호숫가 바로 옆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 뒤 그대로 방치한 것도 보였는데, 그 주변의 얼음들은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수중촬영된 화면을 보니 더욱 충격적이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 시베리아 지부 호소학 연구소 잠수연구팀장인 이고르 카나예프 박사는 25년간 바이칼 호수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실을 방문해 보니, 그동안 찍은 바이칼 수중 영상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가 촬영한 화면을 보노라니, 맑고 깨끗하던 호수 밑바닥에 각종 생활 하수와 오수가 흘러들면서, 자정 작용을 담당하던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카나예프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칼 호수의 수심 40m 정도 얕은 물가에 전체 생물의 60%가 서식하고 있고, 바이칼 해면동물 같은 것들이 자정 작용을 담당해,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단다. 그런데 섬사람들의 생활하수와 관광객들이 버리는 오수들이 흘러들면서 그런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 나가고 부영양화(호수, 하천 등의 정체된 수역에 질소나 인 등의 오염된 유기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되어 발생하는 수질의 악화현상)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오염된 지역의 대명사격인 녹조류와 청록색 세균들이 바이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중 화면을 보니, 사람들이 마구 버린 그물들도 여기저기 얽혀 있는 것도 보였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바이칼'이라고 하는 환경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는 나데즈다는 "현재 바이칼 호수를 지킬 어떤 법적 보호조치가 아무것도 없다. 관광객들은 마음대로 아무 곳이든 가서 무슨 짓이든 하는데, 그걸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어떠한 규제 조치도 없다. 따라서,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나서서 우선 보호조치부터 만들어야 한다. 왜냐면 바이칼은 이곳 시베리아의 보물이 아니라 전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처음 가본 바이칼 호수였지만, 이곳은 러시아의 한 지방 시베리아의 자산이 아니라, 온 인류가 자자손손 누려야할 생태계의 보고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바이칼이 상처를 받아 신음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가기]
☞ [특파원 eye] 태고의 신비 바이칼호…혹한에 ‘장관’ (2월 13일)
☞ [KBS 9시 뉴스] 호수 위 버스 질주…혹한 속 바이칼호를 가다 (2월 13일)
"우와 참, 바다 같은 호수다."
바이칼 호수를 처음 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회다.
바이칼로 가는 관문인 시베리아 이르쿠츠크까지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모스크바에서는 6시간이 걸린다.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차로 4시간 정도를 달리면, 바이칼 호수 최대의 섬인 알혼섬에 이른다.
광대한 시베리아 벌판 남쪽에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바이칼 호수. 남북 길이가 636km, 둘레 2,200km, 수심은 최고 1,700m, 남한 면적의 1/3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다. 전 세계 인구가 40년을 마실 수 있다는 천연 광천수를 담고 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모든 것이 얼어붙었는데 그 얼음 빛깔이 참으로 신기하게도 에메랄드 빛이 난다.
호숫가 절벽 바위틈마다 10m에 달하는 거대한 얼음기둥이 줄줄이 생겨났다. 장난기 많은 사람들은 적당한 고드름을 떼어내 미니 칼싸움을 즐기기도 한다. 물결치던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얼음조각들도 있다. 마치 판유리를 켜켜이 쌓아 놓은 듯한 얼음들도 보인다.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다.
▲ 얼음 아래로 보이는 바이칼 호수 바닥
바이칼 호수는 워낙 물이 깨끗해서 얼음 밑으로 물고기도 보이고, 밑바닥이 보이기도 한다. 물밑 가시거리는 40m를 넘기도 한다. 얼음 밑으로 보이는 호수는 푸른색이 대부분이라 보기에도 참 예쁘다. 익살맞은 사람들은 큰 대자로 호수 위에 널브러져 그 오묘한 색깔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런데 제법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할 경우 갑자기 물밑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호수 위를 달리는 자동차
한겨울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얼음 두께는 50cm에서 최대 1m에 달한다. 얼어붙은 호수 위를 자동차들이 거침 없이 달려간다.
뭍에서 알혼섬까지는 통상 배로 20분 정도 걸린다. 호수가 얼어붙으면 배 대신 호버크래프트가 손님들을 실어 나른다. 사실, 선착장 근처에는 얼음이 깨질 수 있으니 자동차 타고 함부로 호수 위를 다니지 말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련한 섬사람들은 거침없이 호수 위를 내달린다. 섬사람들에게는 모처럼 지름길이 생긴 셈이다. 뭍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거나 급히 병원에 갈 일이 있다거나 기타 볼일 보러 차를 타고 호수 위를 달린다. 알혼섬에서 뭍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 광활한 호수 위로 나름 도로가 생겨났다. 섬사람들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얼음이 제대로 두꺼운지 여부를 살핀 뒤 안전한 '길'을 찾아서 여행을 계속했다. 자동차들의 질주는 오는 4월까지 계속된다.
▲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달리는 미니버스 ‘우아즈’
관광객들을 주로 실어나르는 차는 '우아즈'라고 불리는 미니버스다. 우아즈는 군용트럭을 개조한 것인데 차 안이 꽤 넓어서 7~8명은 충분히 태울 수 있다. 게다가 차 밑바닥이 높아서 어지간한 비포장 도로나 눈·얼음길도 끄덕없이 돌파한다.
한겨울에는 주로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특히, 바이칼 호수 일대가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뒤 한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3월에는 바이칼 호수 위에서 미니 골프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골프공이 얼음 위를 한없이 굴러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군데군데 요철이 많아서 일반 골프장만큼 비거리가 나온다고 한다.
■ 바이칼의 아픔
▲ 바이칼 호수 쓰레기 매립장
천혜의 생태보고인 바이칼 호수에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다. 환경오염 문제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25개 섬 가운데 최대 섬인 알혼섬과 일대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장을 찾아가 봤다. 쓰레기 매립장 책임자인 안드레이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쓰레기 처리량이 2~3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문제는, 관광객들이 함부로 버리고 간 쓰레기는 미처 수습을 못하기 때문에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4월이 지난 다음에나 수집한다고 했다.
▲ 알혼섬 일대 불법 캠핑의 흔적
알혼섬에 있는 캠핑장에 가보니, 여름철 텐트촌 일대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병, 비닐 봉지들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호숫가 경치 좋은 곳에는 불법 캠핑한 흔적들이 많았고, 함부로 나무 밑동을 잘라서 불쏘시개로 사용한 흔적도 보였다. 호숫가 바로 옆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 뒤 그대로 방치한 것도 보였는데, 그 주변의 얼음들은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 호수 바닥에 버려진 그물
수중촬영된 화면을 보니 더욱 충격적이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 시베리아 지부 호소학 연구소 잠수연구팀장인 이고르 카나예프 박사는 25년간 바이칼 호수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실을 방문해 보니, 그동안 찍은 바이칼 수중 영상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가 촬영한 화면을 보노라니, 맑고 깨끗하던 호수 밑바닥에 각종 생활 하수와 오수가 흘러들면서, 자정 작용을 담당하던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카나예프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칼 호수의 수심 40m 정도 얕은 물가에 전체 생물의 60%가 서식하고 있고, 바이칼 해면동물 같은 것들이 자정 작용을 담당해,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단다. 그런데 섬사람들의 생활하수와 관광객들이 버리는 오수들이 흘러들면서 그런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 나가고 부영양화(호수, 하천 등의 정체된 수역에 질소나 인 등의 오염된 유기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되어 발생하는 수질의 악화현상)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오염된 지역의 대명사격인 녹조류와 청록색 세균들이 바이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중 화면을 보니, 사람들이 마구 버린 그물들도 여기저기 얽혀 있는 것도 보였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바이칼'이라고 하는 환경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는 나데즈다는 "현재 바이칼 호수를 지킬 어떤 법적 보호조치가 아무것도 없다. 관광객들은 마음대로 아무 곳이든 가서 무슨 짓이든 하는데, 그걸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어떠한 규제 조치도 없다. 따라서,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나서서 우선 보호조치부터 만들어야 한다. 왜냐면 바이칼은 이곳 시베리아의 보물이 아니라 전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처음 가본 바이칼 호수였지만, 이곳은 러시아의 한 지방 시베리아의 자산이 아니라, 온 인류가 자자손손 누려야할 생태계의 보고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바이칼이 상처를 받아 신음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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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eye] 태고의 신비 바이칼호…혹한에 ‘장관’ (2월 13일)
☞ [KBS 9시 뉴스] 호수 위 버스 질주…혹한 속 바이칼호를 가다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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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 ‘비경’ 바이칼, 속이 썩어가고 있다
-
- 입력 2016-02-16 09:16:10
- 수정2016-02-16 09:18:08
■ 겨울 비경 ‘바이칼’
"우와 참, 바다 같은 호수다."
바이칼 호수를 처음 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회다.
바이칼로 가는 관문인 시베리아 이르쿠츠크까지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모스크바에서는 6시간이 걸린다.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차로 4시간 정도를 달리면, 바이칼 호수 최대의 섬인 알혼섬에 이른다.
광대한 시베리아 벌판 남쪽에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바이칼 호수. 남북 길이가 636km, 둘레 2,200km, 수심은 최고 1,700m, 남한 면적의 1/3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다. 전 세계 인구가 40년을 마실 수 있다는 천연 광천수를 담고 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모든 것이 얼어붙었는데 그 얼음 빛깔이 참으로 신기하게도 에메랄드 빛이 난다.
호숫가 절벽 바위틈마다 10m에 달하는 거대한 얼음기둥이 줄줄이 생겨났다. 장난기 많은 사람들은 적당한 고드름을 떼어내 미니 칼싸움을 즐기기도 한다. 물결치던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얼음조각들도 있다. 마치 판유리를 켜켜이 쌓아 놓은 듯한 얼음들도 보인다.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다.
바이칼 호수는 워낙 물이 깨끗해서 얼음 밑으로 물고기도 보이고, 밑바닥이 보이기도 한다. 물밑 가시거리는 40m를 넘기도 한다. 얼음 밑으로 보이는 호수는 푸른색이 대부분이라 보기에도 참 예쁘다. 익살맞은 사람들은 큰 대자로 호수 위에 널브러져 그 오묘한 색깔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런데 제법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할 경우 갑자기 물밑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호수 위를 달리는 자동차
한겨울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얼음 두께는 50cm에서 최대 1m에 달한다. 얼어붙은 호수 위를 자동차들이 거침 없이 달려간다.
뭍에서 알혼섬까지는 통상 배로 20분 정도 걸린다. 호수가 얼어붙으면 배 대신 호버크래프트가 손님들을 실어 나른다. 사실, 선착장 근처에는 얼음이 깨질 수 있으니 자동차 타고 함부로 호수 위를 다니지 말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련한 섬사람들은 거침없이 호수 위를 내달린다. 섬사람들에게는 모처럼 지름길이 생긴 셈이다. 뭍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거나 급히 병원에 갈 일이 있다거나 기타 볼일 보러 차를 타고 호수 위를 달린다. 알혼섬에서 뭍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 광활한 호수 위로 나름 도로가 생겨났다. 섬사람들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얼음이 제대로 두꺼운지 여부를 살핀 뒤 안전한 '길'을 찾아서 여행을 계속했다. 자동차들의 질주는 오는 4월까지 계속된다.
관광객들을 주로 실어나르는 차는 '우아즈'라고 불리는 미니버스다. 우아즈는 군용트럭을 개조한 것인데 차 안이 꽤 넓어서 7~8명은 충분히 태울 수 있다. 게다가 차 밑바닥이 높아서 어지간한 비포장 도로나 눈·얼음길도 끄덕없이 돌파한다.
한겨울에는 주로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특히, 바이칼 호수 일대가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뒤 한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3월에는 바이칼 호수 위에서 미니 골프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골프공이 얼음 위를 한없이 굴러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군데군데 요철이 많아서 일반 골프장만큼 비거리가 나온다고 한다.
■ 바이칼의 아픔
천혜의 생태보고인 바이칼 호수에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다. 환경오염 문제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25개 섬 가운데 최대 섬인 알혼섬과 일대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장을 찾아가 봤다. 쓰레기 매립장 책임자인 안드레이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쓰레기 처리량이 2~3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문제는, 관광객들이 함부로 버리고 간 쓰레기는 미처 수습을 못하기 때문에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4월이 지난 다음에나 수집한다고 했다.
알혼섬에 있는 캠핑장에 가보니, 여름철 텐트촌 일대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병, 비닐 봉지들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호숫가 경치 좋은 곳에는 불법 캠핑한 흔적들이 많았고, 함부로 나무 밑동을 잘라서 불쏘시개로 사용한 흔적도 보였다. 호숫가 바로 옆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 뒤 그대로 방치한 것도 보였는데, 그 주변의 얼음들은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수중촬영된 화면을 보니 더욱 충격적이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 시베리아 지부 호소학 연구소 잠수연구팀장인 이고르 카나예프 박사는 25년간 바이칼 호수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실을 방문해 보니, 그동안 찍은 바이칼 수중 영상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가 촬영한 화면을 보노라니, 맑고 깨끗하던 호수 밑바닥에 각종 생활 하수와 오수가 흘러들면서, 자정 작용을 담당하던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카나예프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칼 호수의 수심 40m 정도 얕은 물가에 전체 생물의 60%가 서식하고 있고, 바이칼 해면동물 같은 것들이 자정 작용을 담당해,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단다. 그런데 섬사람들의 생활하수와 관광객들이 버리는 오수들이 흘러들면서 그런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 나가고 부영양화(호수, 하천 등의 정체된 수역에 질소나 인 등의 오염된 유기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되어 발생하는 수질의 악화현상)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오염된 지역의 대명사격인 녹조류와 청록색 세균들이 바이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중 화면을 보니, 사람들이 마구 버린 그물들도 여기저기 얽혀 있는 것도 보였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바이칼'이라고 하는 환경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는 나데즈다는 "현재 바이칼 호수를 지킬 어떤 법적 보호조치가 아무것도 없다. 관광객들은 마음대로 아무 곳이든 가서 무슨 짓이든 하는데, 그걸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어떠한 규제 조치도 없다. 따라서,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나서서 우선 보호조치부터 만들어야 한다. 왜냐면 바이칼은 이곳 시베리아의 보물이 아니라 전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처음 가본 바이칼 호수였지만, 이곳은 러시아의 한 지방 시베리아의 자산이 아니라, 온 인류가 자자손손 누려야할 생태계의 보고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바이칼이 상처를 받아 신음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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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eye] 태고의 신비 바이칼호…혹한에 ‘장관’ (2월 13일)
☞ [KBS 9시 뉴스] 호수 위 버스 질주…혹한 속 바이칼호를 가다 (2월 13일)
"우와 참, 바다 같은 호수다."
바이칼 호수를 처음 본 사람들이 느끼는 감회다.
바이칼로 가는 관문인 시베리아 이르쿠츠크까지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모스크바에서는 6시간이 걸린다. 이르쿠츠크에서 다시 차로 4시간 정도를 달리면, 바이칼 호수 최대의 섬인 알혼섬에 이른다.
광대한 시베리아 벌판 남쪽에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바이칼 호수. 남북 길이가 636km, 둘레 2,200km, 수심은 최고 1,700m, 남한 면적의 1/3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다. 전 세계 인구가 40년을 마실 수 있다는 천연 광천수를 담고 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모든 것이 얼어붙었는데 그 얼음 빛깔이 참으로 신기하게도 에메랄드 빛이 난다.
호숫가 절벽 바위틈마다 10m에 달하는 거대한 얼음기둥이 줄줄이 생겨났다. 장난기 많은 사람들은 적당한 고드름을 떼어내 미니 칼싸움을 즐기기도 한다. 물결치던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얼음조각들도 있다. 마치 판유리를 켜켜이 쌓아 놓은 듯한 얼음들도 보인다.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다.
바이칼 호수는 워낙 물이 깨끗해서 얼음 밑으로 물고기도 보이고, 밑바닥이 보이기도 한다. 물밑 가시거리는 40m를 넘기도 한다. 얼음 밑으로 보이는 호수는 푸른색이 대부분이라 보기에도 참 예쁘다. 익살맞은 사람들은 큰 대자로 호수 위에 널브러져 그 오묘한 색깔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런데 제법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할 경우 갑자기 물밑 색깔이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호수 위를 달리는 자동차
한겨울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얼음 두께는 50cm에서 최대 1m에 달한다. 얼어붙은 호수 위를 자동차들이 거침 없이 달려간다.
뭍에서 알혼섬까지는 통상 배로 20분 정도 걸린다. 호수가 얼어붙으면 배 대신 호버크래프트가 손님들을 실어 나른다. 사실, 선착장 근처에는 얼음이 깨질 수 있으니 자동차 타고 함부로 호수 위를 다니지 말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련한 섬사람들은 거침없이 호수 위를 내달린다. 섬사람들에게는 모처럼 지름길이 생긴 셈이다. 뭍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거나 급히 병원에 갈 일이 있다거나 기타 볼일 보러 차를 타고 호수 위를 달린다. 알혼섬에서 뭍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 광활한 호수 위로 나름 도로가 생겨났다. 섬사람들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얼음이 제대로 두꺼운지 여부를 살핀 뒤 안전한 '길'을 찾아서 여행을 계속했다. 자동차들의 질주는 오는 4월까지 계속된다.
관광객들을 주로 실어나르는 차는 '우아즈'라고 불리는 미니버스다. 우아즈는 군용트럭을 개조한 것인데 차 안이 꽤 넓어서 7~8명은 충분히 태울 수 있다. 게다가 차 밑바닥이 높아서 어지간한 비포장 도로나 눈·얼음길도 끄덕없이 돌파한다.
한겨울에는 주로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특히, 바이칼 호수 일대가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뒤 한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3월에는 바이칼 호수 위에서 미니 골프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골프공이 얼음 위를 한없이 굴러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군데군데 요철이 많아서 일반 골프장만큼 비거리가 나온다고 한다.
■ 바이칼의 아픔
천혜의 생태보고인 바이칼 호수에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다. 환경오염 문제다.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25개 섬 가운데 최대 섬인 알혼섬과 일대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장을 찾아가 봤다. 쓰레기 매립장 책임자인 안드레이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쓰레기 처리량이 2~3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문제는, 관광객들이 함부로 버리고 간 쓰레기는 미처 수습을 못하기 때문에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4월이 지난 다음에나 수집한다고 했다.
알혼섬에 있는 캠핑장에 가보니, 여름철 텐트촌 일대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병, 비닐 봉지들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호숫가 경치 좋은 곳에는 불법 캠핑한 흔적들이 많았고, 함부로 나무 밑동을 잘라서 불쏘시개로 사용한 흔적도 보였다. 호숫가 바로 옆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 뒤 그대로 방치한 것도 보였는데, 그 주변의 얼음들은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수중촬영된 화면을 보니 더욱 충격적이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 시베리아 지부 호소학 연구소 잠수연구팀장인 이고르 카나예프 박사는 25년간 바이칼 호수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실을 방문해 보니, 그동안 찍은 바이칼 수중 영상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가 촬영한 화면을 보노라니, 맑고 깨끗하던 호수 밑바닥에 각종 생활 하수와 오수가 흘러들면서, 자정 작용을 담당하던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카나예프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칼 호수의 수심 40m 정도 얕은 물가에 전체 생물의 60%가 서식하고 있고, 바이칼 해면동물 같은 것들이 자정 작용을 담당해,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단다. 그런데 섬사람들의 생활하수와 관광객들이 버리는 오수들이 흘러들면서 그런 유익한 생물들이 죽어 나가고 부영양화(호수, 하천 등의 정체된 수역에 질소나 인 등의 오염된 유기물질이 과도하게 유입되어 발생하는 수질의 악화현상)가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오염된 지역의 대명사격인 녹조류와 청록색 세균들이 바이칼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중 화면을 보니, 사람들이 마구 버린 그물들도 여기저기 얽혀 있는 것도 보였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바이칼'이라고 하는 환경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는 나데즈다는 "현재 바이칼 호수를 지킬 어떤 법적 보호조치가 아무것도 없다. 관광객들은 마음대로 아무 곳이든 가서 무슨 짓이든 하는데, 그걸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어떠한 규제 조치도 없다. 따라서, 이르쿠츠크 주 정부나 연방 정부가 나서서 우선 보호조치부터 만들어야 한다. 왜냐면 바이칼은 이곳 시베리아의 보물이 아니라 전 인류의 유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처음 가본 바이칼 호수였지만, 이곳은 러시아의 한 지방 시베리아의 자산이 아니라, 온 인류가 자자손손 누려야할 생태계의 보고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바이칼이 상처를 받아 신음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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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9시 뉴스] 호수 위 버스 질주…혹한 속 바이칼호를 가다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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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수 기자 ha6666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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