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면세점 직원에게 용돈 주며 관리”…국산 화장품 대량 불법 유통
입력 2016.02.22 (19:29) 취재K
해외여행이 설레는 이유 가운데 하나, 시중보다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는 곳, '면세품 쇼핑'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해외 관광객에게만 허용된 면세 구역, 면세점을 누군가 매일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면서 면세화장품을 싹쓸이 한다면? 그렇게 싹쓸이 한 면세화장품을 중국이나 국내로 대량 불법유통시키고 있다면? 이는 상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 서울, 그것도 독보적 업계 1, 2위를 달리고 있는 시내 주요 면세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누가, 어떻게,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딛을 틈 없는 서울 시내 한 면세점. 2015년 면세점 매출 81억 4,257달러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 매출은 44억 7,574만 달러로 52%를 차지했다.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딛을 틈 없는 서울 시내 한 면세점. 2015년 면세점 매출 81억 4,257달러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 매출은 44억 7,574만 달러로 52%를 차지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 연휴(지난 1일~14일) 기간, 서울 시내 면세점은 중국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국산 화장품 매장이었다. 몇몇 인기 제품은 준비된 물량이 모두 동날 정도였다. 오전에 면세점을 개장할 땐 제품이 있었지만, 워낙 많이 팔려서 늦은 오후엔 모든 재고가 소진된 것이다. 관광객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국산 화장품 매장에서 '단 한 개라도 살 수 없냐'고 여러 번 묻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제품들은 과연 관광객들이 다 사간 것일까?

다음날, 면세점 개장 시간에 맞춰 면세점을 다시 찾았다. 대형 버스가 들어오고 단체 관광객이 내리고,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었다. 오전 9시 반, 면세점 문이 열렸다.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이 가운데 수상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국산 화장품 매장만 돌며, 화장품을 구입하는 일행. 이들은 한 면세점에서 수십, 수백 박스를 사들였다. 화장품이 가득 담긴 대형 쇼핑가방을 들고 와 승합차에 실었다. 면세점 주차장을 빠져나간 차량이 도착한 곳은 서울 시내 또 다른 면세점. 이번에도 국산 화장품 매장만 돌며 특정 제품만 골라 담은 대형 쇼핑가방을 줄줄이 끌고 나왔다. 점심을 먹고, 이들을 태운 차량이 도착한 목적지도 역시 시내 면세점이었다. 똑같은 방법으로 화장품을 사들였다. 화장품 하나에 6만 원에서 10만 원이 넘는 걸 감안하면, 하루에만 수천만 원어치를 이렇게 사들인 것이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화장품을 많이 사는지 물었다. 그는 "여행객들이 쓸 화장품과 친구와 지인들에게 선물한 것을 구입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평범한 여행객의 모습은 아니었다. 주문한 물량이 많아 1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도 다른 매장을 구경하지 않았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아무 대화도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취재진은 이들을 끝까지 쫓아가 보기로 했다.

종일 면세점 세 곳을 돌면서 화장품을 사재기 한 사람들은 여행자 숙소가 아닌 서울 동대문구의 한 상가 건물로 갔다. 건물 관계자는 이 건물에 여행사가 있고, 그 회사 사람들이 매일같이 대량의 화장품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 안에는 미처 풀지 못한 면세점 쇼핑백 더미와 화장품들이 쌓여 있었다. 수백 개는 택배 박스에 다시 포장되고 있었다. 중국으로 보낸다고 했다. 업체는 중국에서 온 중국관광객들에게 한국 여행을 안내하는, 이른바 중국 관광객 전담 인바운드 여행사였다.

여행사 관계자는 여행객이 아닌 중국 보따리상을 데리고 다니면서, 중국에서 인기 있는 국산 화장품을 지속해서 사들였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메르스로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상당수 여행사들이 비슷한 영업을 하고 있다." 중국으로 화장품을 유통하려면 위생허가도 받고 관세도 내야 했지만 이런 절차는 무시됐다. 매출·매입 장부조차 없는 무자료 거래, 밀수였다.



직접 국산 면세 화장품 사재기에 나선 여행사도 많다.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를 통해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빌려줄 사람을 찾아 구매대행 직원으로 모집하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중국 여권 소지자, 이 가운데 중국행 티켓이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 면세점에 여권과 비행기표를 들고 가 물건을 구입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엔 여행사가 직접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 물건을 구입하고, 제품을 가지고 나온 뒤 티켓을 취소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면세품 구입은 내국인의 경우 600달러를 넘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은 구매한도가 없다. 또 내국인은 공항 출국장에서 제품을 인도받지만 외국인은 시내 면세점에서 주류와 담배를 제외한 물건을 직접 받아갈 수 있다. 하지만 대리 구매는 관세법으로 금지된 일로 엄연 불법이다.

일부 여행사들은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를 통해 국산 면세 화장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고 있다. 일부 여행사들은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를 통해 국산 면세 화장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고 있다.


이렇게 사들인 면세 화장품은 중국에 밀수출되거나 인터넷 등을 통해 국내에 다시 팔린다. 면세품을 국내에 유통하는 건 내국세 탈루로 불법이다.

면세 화장품 불법 유통 뒤엔 면세점과 여행사 간 거래가 있다. 한 면세점과 여행사가 주고받은 서류엔 여행사에게 매출의 3%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른바 '인센티브'다. 월 구매객이 50명을 넘어서면 최대 8%까지 인센티브를 또 지급한다. 매출이 일정 규모에 도달했을 때 제공되는 '추가 인센티브' 등을 합하면 구매 금액의 20%정도가 다시 여행사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에 문서로 존재하지 않는 리베이트도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었다.

국산 화장품의 경우 세금 면제 혜택 15~18%에 더해 면세점이 제공하는 리베이트와 면세점과 연계된 카드 혜택까지 받으면 여행사는 거의 절반값에 면세 화장품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행사는 물건을 많이 살수록 돌려받는 돈이 많고, 면세점은 물건을 많이 팔수록 이익이 생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여행사 사장은 "평소 면세점 직원에게 용돈을 주며 관리를 하고, 인기 제품이 입고되면 따로 문자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면세점은 여행사에 매출의 최대 20%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리베이트와 카드 혜택 등을 감안하면 여행사는 거의 절반값에 면세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다. 면세점은 여행사에 매출의 최대 20%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리베이트와 카드 혜택 등을 감안하면 여행사는 거의 절반값에 면세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다.


면세품은 관광 진흥을 위해 정부가 관세, 부가세, 소비세 등을 받지 않고 파는 제품이다. 면세 혜택이 관광객이 아닌 일부 여행사나 보따리상에게 돌아간다면 유통질서의 붕괴는 물론, 애써 가꾼 한국 화장품의 인기도, 면세점 업계의 신뢰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면세점 측은 평소 직원을 상대로 각종 부정행위에 대해 예방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탈행위가 있다면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관세청도 조직적인 사재기와 음성적인 유통 실태를 잘 모르고 있었다. 김종호 관세청 수추입물류과장은 "관련 규정은 없는 상태"라며 "여행사를 관리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세청 등이 함께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면세점 직원에게 용돈 주며 관리”…국산 화장품 대량 불법 유통
    • 입력 2016-02-22 19:29:28
    취재K
해외여행이 설레는 이유 가운데 하나, 시중보다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는 곳, '면세품 쇼핑'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해외 관광객에게만 허용된 면세 구역, 면세점을 누군가 매일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면서 면세화장품을 싹쓸이 한다면? 그렇게 싹쓸이 한 면세화장품을 중국이나 국내로 대량 불법유통시키고 있다면? 이는 상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 서울, 그것도 독보적 업계 1, 2위를 달리고 있는 시내 주요 면세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누가, 어떻게,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걸까?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딛을 틈 없는 서울 시내 한 면세점. 2015년 면세점 매출 81억 4,257달러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 매출은 44억 7,574만 달러로 52%를 차지했다.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딛을 틈 없는 서울 시내 한 면세점. 2015년 면세점 매출 81억 4,257달러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 매출은 44억 7,574만 달러로 52%를 차지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 연휴(지난 1일~14일) 기간, 서울 시내 면세점은 중국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국산 화장품 매장이었다. 몇몇 인기 제품은 준비된 물량이 모두 동날 정도였다. 오전에 면세점을 개장할 땐 제품이 있었지만, 워낙 많이 팔려서 늦은 오후엔 모든 재고가 소진된 것이다. 관광객들은 콩나물시루 같은 국산 화장품 매장에서 '단 한 개라도 살 수 없냐'고 여러 번 묻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제품들은 과연 관광객들이 다 사간 것일까?

다음날, 면세점 개장 시간에 맞춰 면세점을 다시 찾았다. 대형 버스가 들어오고 단체 관광객이 내리고,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었다. 오전 9시 반, 면세점 문이 열렸다.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이 가운데 수상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국산 화장품 매장만 돌며, 화장품을 구입하는 일행. 이들은 한 면세점에서 수십, 수백 박스를 사들였다. 화장품이 가득 담긴 대형 쇼핑가방을 들고 와 승합차에 실었다. 면세점 주차장을 빠져나간 차량이 도착한 곳은 서울 시내 또 다른 면세점. 이번에도 국산 화장품 매장만 돌며 특정 제품만 골라 담은 대형 쇼핑가방을 줄줄이 끌고 나왔다. 점심을 먹고, 이들을 태운 차량이 도착한 목적지도 역시 시내 면세점이었다. 똑같은 방법으로 화장품을 사들였다. 화장품 하나에 6만 원에서 10만 원이 넘는 걸 감안하면, 하루에만 수천만 원어치를 이렇게 사들인 것이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화장품을 많이 사는지 물었다. 그는 "여행객들이 쓸 화장품과 친구와 지인들에게 선물한 것을 구입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평범한 여행객의 모습은 아니었다. 주문한 물량이 많아 1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도 다른 매장을 구경하지 않았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아무 대화도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취재진은 이들을 끝까지 쫓아가 보기로 했다.

종일 면세점 세 곳을 돌면서 화장품을 사재기 한 사람들은 여행자 숙소가 아닌 서울 동대문구의 한 상가 건물로 갔다. 건물 관계자는 이 건물에 여행사가 있고, 그 회사 사람들이 매일같이 대량의 화장품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 안에는 미처 풀지 못한 면세점 쇼핑백 더미와 화장품들이 쌓여 있었다. 수백 개는 택배 박스에 다시 포장되고 있었다. 중국으로 보낸다고 했다. 업체는 중국에서 온 중국관광객들에게 한국 여행을 안내하는, 이른바 중국 관광객 전담 인바운드 여행사였다.

여행사 관계자는 여행객이 아닌 중국 보따리상을 데리고 다니면서, 중국에서 인기 있는 국산 화장품을 지속해서 사들였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메르스로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상당수 여행사들이 비슷한 영업을 하고 있다." 중국으로 화장품을 유통하려면 위생허가도 받고 관세도 내야 했지만 이런 절차는 무시됐다. 매출·매입 장부조차 없는 무자료 거래, 밀수였다.



직접 국산 면세 화장품 사재기에 나선 여행사도 많다.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를 통해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빌려줄 사람을 찾아 구매대행 직원으로 모집하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중국 여권 소지자, 이 가운데 중국행 티켓이 있는 사람이 대상이다. 면세점에 여권과 비행기표를 들고 가 물건을 구입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엔 여행사가 직접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 물건을 구입하고, 제품을 가지고 나온 뒤 티켓을 취소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면세품 구입은 내국인의 경우 600달러를 넘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은 구매한도가 없다. 또 내국인은 공항 출국장에서 제품을 인도받지만 외국인은 시내 면세점에서 주류와 담배를 제외한 물건을 직접 받아갈 수 있다. 하지만 대리 구매는 관세법으로 금지된 일로 엄연 불법이다.

일부 여행사들은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를 통해 국산 면세 화장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고 있다. 일부 여행사들은 중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를 통해 국산 면세 화장품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를 모집하고 있다.


이렇게 사들인 면세 화장품은 중국에 밀수출되거나 인터넷 등을 통해 국내에 다시 팔린다. 면세품을 국내에 유통하는 건 내국세 탈루로 불법이다.

면세 화장품 불법 유통 뒤엔 면세점과 여행사 간 거래가 있다. 한 면세점과 여행사가 주고받은 서류엔 여행사에게 매출의 3%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른바 '인센티브'다. 월 구매객이 50명을 넘어서면 최대 8%까지 인센티브를 또 지급한다. 매출이 일정 규모에 도달했을 때 제공되는 '추가 인센티브' 등을 합하면 구매 금액의 20%정도가 다시 여행사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에 문서로 존재하지 않는 리베이트도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었다.

국산 화장품의 경우 세금 면제 혜택 15~18%에 더해 면세점이 제공하는 리베이트와 면세점과 연계된 카드 혜택까지 받으면 여행사는 거의 절반값에 면세 화장품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행사는 물건을 많이 살수록 돌려받는 돈이 많고, 면세점은 물건을 많이 팔수록 이익이 생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여행사 사장은 "평소 면세점 직원에게 용돈을 주며 관리를 하고, 인기 제품이 입고되면 따로 문자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면세점은 여행사에 매출의 최대 20%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리베이트와 카드 혜택 등을 감안하면 여행사는 거의 절반값에 면세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다. 면세점은 여행사에 매출의 최대 20%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리베이트와 카드 혜택 등을 감안하면 여행사는 거의 절반값에 면세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다.


면세품은 관광 진흥을 위해 정부가 관세, 부가세, 소비세 등을 받지 않고 파는 제품이다. 면세 혜택이 관광객이 아닌 일부 여행사나 보따리상에게 돌아간다면 유통질서의 붕괴는 물론, 애써 가꾼 한국 화장품의 인기도, 면세점 업계의 신뢰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면세점 측은 평소 직원을 상대로 각종 부정행위에 대해 예방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탈행위가 있다면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관세청도 조직적인 사재기와 음성적인 유통 실태를 잘 모르고 있었다. 김종호 관세청 수추입물류과장은 "관련 규정은 없는 상태"라며 "여행사를 관리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세청 등이 함께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