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1950년 할리우드는 어떤 모습…‘헤일, 시저!’

입력 2016.03.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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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코엔, 이선 코엔 형제 감독이 1950년대 할리우드를 소재로 한 영화로 돌아왔다. 과거 '바톤 핑크'(1991)에서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그때처럼 음울한 분위기는 아니다. 영화의 정조는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의 코믹함과 비슷하다.

영화 '헤일, 시저!'에서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는 1950년 할리우드 스튜디오인 캐피톨 픽쳐스의 제작부장이다.

스튜디오 운영을 총괄하고 있으나 사실상 '해결사'에 가깝다. 배우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영화 제작에 차질이 생기면 그가 나서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매닉스에게 다양한 골칫거리가 발생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 '헤일, 시저!'의 주인공인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 실종되고, 자신을 '미래'라고 소개한 괴한으로부터 협박 편지를 받는다. '미래'는 후에 공산주의자 집단임이 밝혀진다.

싱크로나이즈 영화 '조나의 딸'의 여주인공 디애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했다고 털어놓는다.

첩보수사극 '즐겁게 춤을'을 연출하는 로렌스 로렌츠 감독(랄프 파인즈)은 새롭게 투입된 신예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이 발연기를 펼치자 영화를 못 찍겠다고 매닉스에게 항의한다.

가십 칼럼니스트인 쌍둥이 자매 쏘라 대커와 테살리 대커(틸다 스윈튼)는 베어드 휘트록 관련 추문을 기사화하겠다고 매닉스를 몰아붙인다.

한편 매닉스는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는다. 영화산업은 미래가 없다고, 괴짜나 스타병 환자들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지 말라는 록히드 측의 설득에 동요한다.

매닉스는 한바탕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하루 일과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헤일, 시저!'는 코엔 형제가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1950년대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 일종의 경외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할리우드는 광활한 사막에 다양한 야외·실내 세트를 짓고 전속 감독, 배우, 기술자들을 데리고 영화를 제작했다.

흔히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이라고 일컫는데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듯 할리우드는 영화제작 과정을 분업화, 표준화해 영화를 대량 생산했기 때문이다.

'헤일, 시저!'에서 캐피톨 픽쳐스가 '헤일 시저!', '조나의 딸', '흔들리는 배', '즐겁게 춤을', '게으른 달' 등의 제작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과거 스튜디오 시스템의 제작 방식이다.

할리우드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영화를 대량생산하기에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할 방안을 만들어야 했다. 그 수단이 바로 장르와 스타 시스템이다.

장르는 관객들의 인기를 얻은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정형한 것을 뜻한다. 뮤지컬과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가 할리우드를 통해 성립됐다. '헤일, 시저!'는 영화 속 영화의 방식으로 당시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장르 영화의 면면을 소개한다.

또 매닉스가 디애나 모란의 임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방법을 쓰는 것은, 스타로 하여금 가공의 이미지에 맞춰 살도록 한 스타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실 1950년대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전성기를 지나 쇠락기로 접어든 때다.

1948년 연방 대법원의 반독점 판결로 제작-배급-상영이라는 수직통합체제가 무너졌고,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의 광풍이 1940년대 말 할리우드를 휩쓸고 지나갔다. 또 새로운 대중매체로 부상한 TV가 극장 관객을 흡수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닉스는 비록 협잡과 술수로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 하나 어쨌거나 영화 제작현장이 돌아가도록 애쓴다.

납치당한 휘트록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스튜디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매닉스를 책망하자 매닉스는 그의 뺨을 때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사는 너와 이곳에 일하는 모두에게 최선을 다했어. 가서 '헤일, 시저!'나 마무리해. 진심으로 연기하라고. 영화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

영화는 산업과 예술로서의 특성을 두루 갖춘 대중예술이다. 상업성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다.

코엔 형제는 '헤일, 시저!'에서 예술로서 영화가 정립할 수 있도록 진흙탕 역할을 했던 고전적 할리우드 제작시스템에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할리우드 시스템이 가진 결함을 숨기지도 않는다.

코엔 형제는 이 영화에 다양한 장치를 설계해 놓아 영화사적 맥락을 알면 '찾아보는' 재미가 있지만 그런 것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코믹하게 끌어간다.

영화는 지난달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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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1950년 할리우드는 어떤 모습…‘헤일, 시저!’
    • 입력 2016-03-15 14:54:49
    연합뉴스
조엘 코엔, 이선 코엔 형제 감독이 1950년대 할리우드를 소재로 한 영화로 돌아왔다. 과거 '바톤 핑크'(1991)에서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그때처럼 음울한 분위기는 아니다. 영화의 정조는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의 코믹함과 비슷하다.

영화 '헤일, 시저!'에서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는 1950년 할리우드 스튜디오인 캐피톨 픽쳐스의 제작부장이다.

스튜디오 운영을 총괄하고 있으나 사실상 '해결사'에 가깝다. 배우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영화 제작에 차질이 생기면 그가 나서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매닉스에게 다양한 골칫거리가 발생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 '헤일, 시저!'의 주인공인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이 실종되고, 자신을 '미래'라고 소개한 괴한으로부터 협박 편지를 받는다. '미래'는 후에 공산주의자 집단임이 밝혀진다.

싱크로나이즈 영화 '조나의 딸'의 여주인공 디애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했다고 털어놓는다.

첩보수사극 '즐겁게 춤을'을 연출하는 로렌스 로렌츠 감독(랄프 파인즈)은 새롭게 투입된 신예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이 발연기를 펼치자 영화를 못 찍겠다고 매닉스에게 항의한다.

가십 칼럼니스트인 쌍둥이 자매 쏘라 대커와 테살리 대커(틸다 스윈튼)는 베어드 휘트록 관련 추문을 기사화하겠다고 매닉스를 몰아붙인다.

한편 매닉스는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는다. 영화산업은 미래가 없다고, 괴짜나 스타병 환자들 뒤치다꺼리나 하며 살지 말라는 록히드 측의 설득에 동요한다.

매닉스는 한바탕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하루 일과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헤일, 시저!'는 코엔 형제가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1950년대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 일종의 경외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할리우드는 광활한 사막에 다양한 야외·실내 세트를 짓고 전속 감독, 배우, 기술자들을 데리고 영화를 제작했다.

흔히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이라고 일컫는데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듯 할리우드는 영화제작 과정을 분업화, 표준화해 영화를 대량 생산했기 때문이다.

'헤일, 시저!'에서 캐피톨 픽쳐스가 '헤일 시저!', '조나의 딸', '흔들리는 배', '즐겁게 춤을', '게으른 달' 등의 제작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과거 스튜디오 시스템의 제작 방식이다.

할리우드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영화를 대량생산하기에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할 방안을 만들어야 했다. 그 수단이 바로 장르와 스타 시스템이다.

장르는 관객들의 인기를 얻은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정형한 것을 뜻한다. 뮤지컬과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가 할리우드를 통해 성립됐다. '헤일, 시저!'는 영화 속 영화의 방식으로 당시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장르 영화의 면면을 소개한다.

또 매닉스가 디애나 모란의 임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방법을 쓰는 것은, 스타로 하여금 가공의 이미지에 맞춰 살도록 한 스타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실 1950년대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전성기를 지나 쇠락기로 접어든 때다.

1948년 연방 대법원의 반독점 판결로 제작-배급-상영이라는 수직통합체제가 무너졌고,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의 광풍이 1940년대 말 할리우드를 휩쓸고 지나갔다. 또 새로운 대중매체로 부상한 TV가 극장 관객을 흡수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닉스는 비록 협잡과 술수로 위기 상황을 타개하려 하나 어쨌거나 영화 제작현장이 돌아가도록 애쓴다.

납치당한 휘트록이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스튜디오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매닉스를 책망하자 매닉스는 그의 뺨을 때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사는 너와 이곳에 일하는 모두에게 최선을 다했어. 가서 '헤일, 시저!'나 마무리해. 진심으로 연기하라고. 영화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

영화는 산업과 예술로서의 특성을 두루 갖춘 대중예술이다. 상업성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다.

코엔 형제는 '헤일, 시저!'에서 예술로서 영화가 정립할 수 있도록 진흙탕 역할을 했던 고전적 할리우드 제작시스템에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할리우드 시스템이 가진 결함을 숨기지도 않는다.

코엔 형제는 이 영화에 다양한 장치를 설계해 놓아 영화사적 맥락을 알면 '찾아보는' 재미가 있지만 그런 것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코믹하게 끌어간다.

영화는 지난달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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