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 사태, ‘영향 예보’로 막을 수 있었다?

입력 2016.03.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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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이 관심을 끌면서 기상 예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슈퍼 컴퓨터에 많이 의존하는 데이터 분석을 알파고 수준의 인공 지능(AI)에 맡기면 더 정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폭설과 강풍으로 2박 3일간 여행객들을 노숙자로 만들어버린 제주공항 사태도 제주 지역에 대한 정밀한 '영향 예보'와 이에 따른 사전 대처가 이뤄졌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기상청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1월 폭설과 강풍으로 제주공항이 45시간 동안 폐쇄되면서 수천명이 공항서 노숙하는 대란이 벌어졌다. (2016.1.25)지난 1월 폭설과 강풍으로 제주공항이 45시간 동안 폐쇄되면서 수천명이 공항서 노숙하는 대란이 벌어졌다. (2016.1.25)


'영향 예보(Impact Forecasts)'로 국지적 재난 대비

제주공항 폭설과 강풍이 발생하기 며칠 전부터 기상청은 항공기의 이착륙과 여객선의 운항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예보를 했다. 그러나 제주공항 폐쇄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이용객들이 3일간 제주공항에 발이 묶이면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항공사도 대부분 출발 직전에 결항을 결정했으며, 결항 사태 장기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3~4일 전에 '기상 악화로 제주 지역의 항공기와 여객선이 3일 가량 결항할 가능성이 크므로 대비가 필요하다'고 예보하고 관계 당국에서 미리 공항과 항만을 통제했더라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제주공항 사태와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기상청이 기존의 기상 현상만을 알려주는 예보 방식에서 두 세 단계 업그레이드 된 '영향 예보(Impact Forecasts)'를 준비하고 있다.

영향 예보란 기상 변화로 생길 수 있는 재해의 가능성과 사회.경제적인 영향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다.

다시 말해 각종 기상 상황의 영향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예측을 위기 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별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맞춰 기상의 영향을 받는 수요자와 재해 대책 기관에서 사전에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사 결정을 돕는 일종의 맞춤형 기상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신의 한 수'가 '헛수'로

실제로 제주공항 마비 사태 열흘 전 제주에서는 기상청의 제주지역 영향 예보 기반 조성을 위한 업무보고가 있었다. 제주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영향 예보를 확충하는 데 주력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실제로 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10일 후에 있었던 제주 지역 폭설 때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았다면 이용객들이 불편과 불만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기상청의 영향 예보가 힘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묘수'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론과 대책 회의만 있고 실행은 없었던 '헛수'만 둔 셈이다.

공항에서 노숙한 이용객 대부분이 저비용 항공 이용자로 항공사 측은 결항에도 불구하고 공항에 와야 빨리 갈 수 있다는 응답만 했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됐다. 영향 예보를 제대로 해 3일간 결항 할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을 전파하고 지자체와 항공사 숙박 업소가 협조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기상청에서 관계자들을 상대로 제주 지역 영향 예보 관련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6. 1. 13)기상청에서 관계자들을 상대로 제주 지역 영향 예보 관련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6. 1. 13)


지역별 호우·침수 등 세밀한 '영향 예보' 가능

'영향 예보'가 제대로 이뤄지면 지난 2011년 7월 강남역 침수 사태처럼 국지성 호우가 잦아 예상 예상 밖의 침수 사태가 잦아 지고 있는 상황이 닥치면 지역별로 세분화된 호우와 침수에 대한 대비도 가능할 것으로 기상청은 보고 있다.

'영향 예보'는 또 지난해 100대가 넘는 차량이 연쇄 추돌한 영종대교 사고 등 각종 사고의 원인이 된 국지적 안개의 영향 예보도 가능하고 국지적 강풍이나 결빙 지역 등도 세분화해 알려 줌으로써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다. 개화 시기나 가뭄 예보 등 관광이나 산업 분야에도 영향 예보가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충남 보령시 천북면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광천IC 부근에서 차량 10여 대가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카니발 승용차에 타고 있던 4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2016.1. 3) 충남 보령시 천북면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광천IC 부근에서 차량 10여 대가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카니발 승용차에 타고 있던 4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2016.1. 3)


기상청은 가뭄에 대비한 관계 부처 통합 예보와 경보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올해 상반기에 부분적으로 영향 예보를 시범 실시하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으로 분야를 넓혀가다 2020년에 본격적인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영국과 미국 등 '영향 예보' 부분 실시

영국은 이미 위험 가능성 도표를 바탕으로 영향 예보를 시행하고 있다. 비와 바람 눈,안개, 결빙 등 5가지 기상 현상에 대한 특보에 영향 예보를 적용해, 기상 재해의 강도와 발생 가능성을 고려해 4단계로 특보를 발령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영향 예보를 실시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올해 초 미동부 폭설 때에도 영향 예보가 시범 운영돼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기상 기구는 지난해 영향 예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취약성와 노출 정도에 따른 함수를 바탕으로 영향을 정량화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영향 예보

영향 예보가 재난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걸림돌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다.

우선 섣부른 '영향 예보'에 따른 책임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항공 운송 업계, 관광 업계, 기상에 예민한 농수산 분야, 야외 작업장이나 공연장에서는 예보가 잘못됐을 때 막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지자체나 재난 대응 부서 등과의 협력 문제 등도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상 예보 인력과 장비 도입 등에 따르는 예산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인공지능과 인간 두뇌의 협업으로 문제 해결?

전세계 모든 지역의 장기간에 걸친 방대한 기상 자료를 담은 클라우드 서비스와 이른바 ‘나비 효과’까지 계산해 낼 수 있는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영향 예보의 정확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경험과 '감'으로 무장된 기상 전문가들이 제대로 분석해내고 예측해 낸다면 영향 예보의 현실화 시기도 앞당겨 질 것이다.



예보 정확도가 90% 선으로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기상 예보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기상 예보에 대한 신뢰도 확보와 함께 다소 불편하더라도 재난 예방에 대한 국민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진다면 영향 예보의 성공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을 것이다.

기상청으로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사업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준비 과정이 '헛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미생'을 거쳐 '완생'이 될 것인지는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분석,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 여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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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공항 사태, ‘영향 예보’로 막을 수 있었다?
    • 입력 2016-03-15 17:36:42
    취재K
인공 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이 관심을 끌면서 기상 예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슈퍼 컴퓨터에 많이 의존하는 데이터 분석을 알파고 수준의 인공 지능(AI)에 맡기면 더 정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폭설과 강풍으로 2박 3일간 여행객들을 노숙자로 만들어버린 제주공항 사태도 제주 지역에 대한 정밀한 '영향 예보'와 이에 따른 사전 대처가 이뤄졌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기상청은 판단하고 있다.

지난 1월 폭설과 강풍으로 제주공항이 45시간 동안 폐쇄되면서 수천명이 공항서 노숙하는 대란이 벌어졌다. (2016.1.25)

'영향 예보(Impact Forecasts)'로 국지적 재난 대비

제주공항 폭설과 강풍이 발생하기 며칠 전부터 기상청은 항공기의 이착륙과 여객선의 운항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예보를 했다. 그러나 제주공항 폐쇄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이용객들이 3일간 제주공항에 발이 묶이면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항공사도 대부분 출발 직전에 결항을 결정했으며, 결항 사태 장기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3~4일 전에 '기상 악화로 제주 지역의 항공기와 여객선이 3일 가량 결항할 가능성이 크므로 대비가 필요하다'고 예보하고 관계 당국에서 미리 공항과 항만을 통제했더라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제주공항 사태와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기상청이 기존의 기상 현상만을 알려주는 예보 방식에서 두 세 단계 업그레이드 된 '영향 예보(Impact Forecasts)'를 준비하고 있다.

영향 예보란 기상 변화로 생길 수 있는 재해의 가능성과 사회.경제적인 영향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다.

다시 말해 각종 기상 상황의 영향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예측을 위기 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별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맞춰 기상의 영향을 받는 수요자와 재해 대책 기관에서 사전에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사 결정을 돕는 일종의 맞춤형 기상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신의 한 수'가 '헛수'로

실제로 제주공항 마비 사태 열흘 전 제주에서는 기상청의 제주지역 영향 예보 기반 조성을 위한 업무보고가 있었다. 제주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영향 예보를 확충하는 데 주력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실제로 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10일 후에 있었던 제주 지역 폭설 때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았다면 이용객들이 불편과 불만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기상청의 영향 예보가 힘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묘수'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론과 대책 회의만 있고 실행은 없었던 '헛수'만 둔 셈이다.

공항에서 노숙한 이용객 대부분이 저비용 항공 이용자로 항공사 측은 결항에도 불구하고 공항에 와야 빨리 갈 수 있다는 응답만 했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됐다. 영향 예보를 제대로 해 3일간 결항 할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을 전파하고 지자체와 항공사 숙박 업소가 협조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기상청에서 관계자들을 상대로 제주 지역 영향 예보 관련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2016. 1. 13)

지역별 호우·침수 등 세밀한 '영향 예보' 가능

'영향 예보'가 제대로 이뤄지면 지난 2011년 7월 강남역 침수 사태처럼 국지성 호우가 잦아 예상 예상 밖의 침수 사태가 잦아 지고 있는 상황이 닥치면 지역별로 세분화된 호우와 침수에 대한 대비도 가능할 것으로 기상청은 보고 있다.

'영향 예보'는 또 지난해 100대가 넘는 차량이 연쇄 추돌한 영종대교 사고 등 각종 사고의 원인이 된 국지적 안개의 영향 예보도 가능하고 국지적 강풍이나 결빙 지역 등도 세분화해 알려 줌으로써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다. 개화 시기나 가뭄 예보 등 관광이나 산업 분야에도 영향 예보가 많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충남 보령시 천북면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광천IC 부근에서 차량 10여 대가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카니발 승용차에 타고 있던 40대 남성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2016.1. 3)

기상청은 가뭄에 대비한 관계 부처 통합 예보와 경보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올해 상반기에 부분적으로 영향 예보를 시범 실시하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으로 분야를 넓혀가다 2020년에 본격적인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영국과 미국 등 '영향 예보' 부분 실시

영국은 이미 위험 가능성 도표를 바탕으로 영향 예보를 시행하고 있다. 비와 바람 눈,안개, 결빙 등 5가지 기상 현상에 대한 특보에 영향 예보를 적용해, 기상 재해의 강도와 발생 가능성을 고려해 4단계로 특보를 발령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영향 예보를 실시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올해 초 미동부 폭설 때에도 영향 예보가 시범 운영돼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기상 기구는 지난해 영향 예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취약성와 노출 정도에 따른 함수를 바탕으로 영향을 정량화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영향 예보

영향 예보가 재난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걸림돌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다.

우선 섣부른 '영향 예보'에 따른 책임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항공 운송 업계, 관광 업계, 기상에 예민한 농수산 분야, 야외 작업장이나 공연장에서는 예보가 잘못됐을 때 막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지자체나 재난 대응 부서 등과의 협력 문제 등도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상 예보 인력과 장비 도입 등에 따르는 예산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인공지능과 인간 두뇌의 협업으로 문제 해결?

전세계 모든 지역의 장기간에 걸친 방대한 기상 자료를 담은 클라우드 서비스와 이른바 ‘나비 효과’까지 계산해 낼 수 있는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면 영향 예보의 정확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경험과 '감'으로 무장된 기상 전문가들이 제대로 분석해내고 예측해 낸다면 영향 예보의 현실화 시기도 앞당겨 질 것이다.



예보 정확도가 90% 선으로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기상 예보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기상 예보에 대한 신뢰도 확보와 함께 다소 불편하더라도 재난 예방에 대한 국민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진다면 영향 예보의 성공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을 것이다.

기상청으로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사업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준비 과정이 '헛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미생'을 거쳐 '완생'이 될 것인지는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분석,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 여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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