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200억 원 들인 ‘리우’ 골프장이 1회용?

입력 2016.03.20 (09:02) 수정 2016.03.2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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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골프장의 '초라한 신고식'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이후 112년 만에 다시 올림픽 종목에 포함된 골프 경기가 열릴 리우 올림픽 골프장이 지난 8일 공개됐다. 리우데자네이루 서쪽 신개발 지역인 바하 다 치주카에 만들어진 골프장은 파 71에 남자는 6,522m, 여자는 5,773m 길이로 설계됐다. 그런데 이 골프장에서 처음 열린 테스트 경기는 112년 만에 다시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라는 의미에 비하면 다소 '초라하게' 진행됐다.

112년 만에 올림픽 골프 경기가 열릴 리우 골프장112년 만에 올림픽 골프 경기가 열릴 리우 골프장

 
테스트 경기에는 브라질 남자 선수 5명과 여자 선수 4명이 참가했다. 세계 순위가 가장 높은 선수는 남자는 588위인 알렉산드레 호샤, 여자는 482위인 미리암 나갈 선수였다. 한국계 남자 선수 호드리고 리와 여자 선수 루시아니 리도 이 골프장에서 첫 경기를 갖는 브라질 선수 9명에 포함돼 있었다. 선수들은 골프장이 영국의 '링크스 코스'를 연상시키고,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계 '루시아니 리' 선수가 1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한국계 '루시아니 리' 선수가 1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테스트 경기 성적은 남자는 호샤 선수와 호드리고 리 선수가 3언더파, 여자는 나갈 선수가 4언더파로 가장 좋았다. 이들의 세계 순위를 감안하면 골프장이 어려운 코스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링크스 코스의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면 난이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호드리고 리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날씨가 좋아서 좋은 성적이 나왔다. 바람이 불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든 코스라고 생각된다"며 바람이 올림픽 골프 경기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바람이 올림픽 골프 경기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바람이 올림픽 골프 경기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리우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사실 지난해에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초청해 화려하게 골프장 테스트 경기를 열 계획이었다. 112년 만에 올림픽에 돌아온 골프의 '화려한 신고식'이 무산된 이유는 뭘까?

■ "우리 골프장에서 올림픽 개최 반대"

리우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처음에는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 없었다. 리우 시내에 위치한 '가베아 골프클럽'에서 올림픽 골프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리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 잡은, 브라질에서 가장 훌륭한 골프장이라고 평가받는 곳이다. 국제 대회를 치르기에는 코스 길이가 조금 짧아 리우 시에서 예산을 들여 골프장 시설 개선 공사도 해주기로 했다.

리우 도심에 있는 '가베아 골프장'리우 도심에 있는 '가베아 골프장'

 
문제는 골프장 회원들이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골프는 '비인기 종목'이다. 2억 명 넘는 인구에 골프를 치는 사람은 2만 5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골프를 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골프는 미국이나 유럽 생활을 경험한 일부 부유층의 운동이 되고 있다.

가베아 골프장은 그중에서도 잘 사는 상류층, 특히 백인 전용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원들이 자신들의 골프장에서 올림픽 경기가 치러지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골프인가?'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시위자'누구를 위한 골프인가?'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시위자

 
결국 리우 시는 올림픽 골프 경기를 위해 골프장을 새로 만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가뜩이나 어려운 브라질 경제 상황 속에서 당초 계획에 없던 6,000만 헤알(약 200억 원)을 투자해 골프장을 짓기 시작했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환경 파괴를 우려한 환경단체들의 시위와 토지 소유주와의 보상 문제가 얽혀, 지난해 완공을 목표로 했던 골프장 공사가 늦게 끝난 것이다. PGA와 LPGA 대회 일정이 겹치면서 올림픽 골프 테스트 경기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브라질 선수들만으로 '초라하게' 테스트 경기를 치른 것이다.

■ 리우 올림픽 골프장은 1회용?

테스트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골프 후진국' 브라질에 세계 수준의 골프장이 생겼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보였다. 그런데 한 선수로부터 "올림픽 이후 이 골프장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새로 개발되는 골프장 주변 땅값이 급등해 리우 시가 골프장 부지 매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 골프장 주변에는 아파트 등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올림픽 골프장 주변에는 아파트 등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브라질 골프협회는 올림픽이 끝나고 골프장을 '퍼블릭'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누가 이 골프장을 이용할 것이냐는 데 있다. 골프 인구가 많지 않은 브라질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우리 골프장에서 올림픽 개최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던 바로 그 골프장 회원들일 가능성이 크다. 리우 시가 올림픽에 비협조적이었던 부자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준 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올림픽이 끝나고 바로 골프장을 폐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리우 시가 땅을 매각해 부족한 재정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해도 200억 원이나 들여서 만든 골프장을 올림픽에 한 번 사용하고 없앤다고 하면,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힘 있는 '부자 골프장' 회원들의 반대 때문에 만든 골프장이 올림픽 이후에도 리우 시의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관기사] ☞ 리우 ‘골프 모의고사’…지카 바이러스 우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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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200억 원 들인 ‘리우’ 골프장이 1회용?
    • 입력 2016-03-20 09:02:47
    • 수정2016-03-20 09:53:01
    취재후·사건후
■리우올림픽 골프장의 '초라한 신고식'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이후 112년 만에 다시 올림픽 종목에 포함된 골프 경기가 열릴 리우 올림픽 골프장이 지난 8일 공개됐다. 리우데자네이루 서쪽 신개발 지역인 바하 다 치주카에 만들어진 골프장은 파 71에 남자는 6,522m, 여자는 5,773m 길이로 설계됐다. 그런데 이 골프장에서 처음 열린 테스트 경기는 112년 만에 다시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라는 의미에 비하면 다소 '초라하게' 진행됐다. 112년 만에 올림픽 골프 경기가 열릴 리우 골프장   테스트 경기에는 브라질 남자 선수 5명과 여자 선수 4명이 참가했다. 세계 순위가 가장 높은 선수는 남자는 588위인 알렉산드레 호샤, 여자는 482위인 미리암 나갈 선수였다. 한국계 남자 선수 호드리고 리와 여자 선수 루시아니 리도 이 골프장에서 첫 경기를 갖는 브라질 선수 9명에 포함돼 있었다. 선수들은 골프장이 영국의 '링크스 코스'를 연상시키고,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계 '루시아니 리' 선수가 1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테스트 경기 성적은 남자는 호샤 선수와 호드리고 리 선수가 3언더파, 여자는 나갈 선수가 4언더파로 가장 좋았다. 이들의 세계 순위를 감안하면 골프장이 어려운 코스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링크스 코스의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면 난이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호드리고 리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날씨가 좋아서 좋은 성적이 나왔다. 바람이 불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든 코스라고 생각된다"며 바람이 올림픽 골프 경기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바람이 올림픽 골프 경기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리우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사실 지난해에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초청해 화려하게 골프장 테스트 경기를 열 계획이었다. 112년 만에 올림픽에 돌아온 골프의 '화려한 신고식'이 무산된 이유는 뭘까? ■ "우리 골프장에서 올림픽 개최 반대" 리우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처음에는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 없었다. 리우 시내에 위치한 '가베아 골프클럽'에서 올림픽 골프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리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 잡은, 브라질에서 가장 훌륭한 골프장이라고 평가받는 곳이다. 국제 대회를 치르기에는 코스 길이가 조금 짧아 리우 시에서 예산을 들여 골프장 시설 개선 공사도 해주기로 했다. 리우 도심에 있는 '가베아 골프장'   문제는 골프장 회원들이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골프는 '비인기 종목'이다. 2억 명 넘는 인구에 골프를 치는 사람은 2만 5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골프를 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골프는 미국이나 유럽 생활을 경험한 일부 부유층의 운동이 되고 있다. 가베아 골프장은 그중에서도 잘 사는 상류층, 특히 백인 전용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원들이 자신들의 골프장에서 올림픽 경기가 치러지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골프인가?'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시위자   결국 리우 시는 올림픽 골프 경기를 위해 골프장을 새로 만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가뜩이나 어려운 브라질 경제 상황 속에서 당초 계획에 없던 6,000만 헤알(약 200억 원)을 투자해 골프장을 짓기 시작했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환경 파괴를 우려한 환경단체들의 시위와 토지 소유주와의 보상 문제가 얽혀, 지난해 완공을 목표로 했던 골프장 공사가 늦게 끝난 것이다. PGA와 LPGA 대회 일정이 겹치면서 올림픽 골프 테스트 경기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브라질 선수들만으로 '초라하게' 테스트 경기를 치른 것이다. ■ 리우 올림픽 골프장은 1회용? 테스트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골프 후진국' 브라질에 세계 수준의 골프장이 생겼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보였다. 그런데 한 선수로부터 "올림픽 이후 이 골프장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새로 개발되는 골프장 주변 땅값이 급등해 리우 시가 골프장 부지 매각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 골프장 주변에는 아파트 등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브라질 골프협회는 올림픽이 끝나고 골프장을 '퍼블릭'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누가 이 골프장을 이용할 것이냐는 데 있다. 골프 인구가 많지 않은 브라질에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우리 골프장에서 올림픽 개최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던 바로 그 골프장 회원들일 가능성이 크다. 리우 시가 올림픽에 비협조적이었던 부자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준 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올림픽이 끝나고 바로 골프장을 폐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리우 시가 땅을 매각해 부족한 재정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해도 200억 원이나 들여서 만든 골프장을 올림픽에 한 번 사용하고 없앤다고 하면,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힘 있는 '부자 골프장' 회원들의 반대 때문에 만든 골프장이 올림픽 이후에도 리우 시의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관기사] ☞ 리우 ‘골프 모의고사’…지카 바이러스 우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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