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포트] 박 대통령-김무성 애증의 10년사
입력 2016.03.25 (21:11)
수정 2016.03.2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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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해 4월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나기에 앞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수습해 달라는 취지로 김무성 대표와 독대 할때 모습입니다.
<녹취> 김무성(새누리당 대표) : "장기간 출국을 앞두고 여러 현안에 대해서 당대표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김무성 대표 취임 이후 두 사람 사이가 가장 좋았던 때로 꼽힙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옥새 투쟁에 대해 청와대는 싸늘한 침묵을 지켰고, 대통령은 정치권이 본인들만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간접 비판했습니다.
두 사람의 10여 년 간의 애증 관계를 이승철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5년 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인연을 맺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김 대표는 친박 좌장으로 친이계에 맞서 2007년 대선 경선을 이끌었고, 대선 뒤 친이계의 공천학살에 탈락했지만, 박 대통령에게 돌아오겠다고 다짐 할 정도로 핵심 측근이었습니다.
<녹취> 김무성(대표/지난 2008년) : "(친이계의 전횡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기에 반드시 선거에 이기고 돌아와서..."
하지만 2010년 세종시 문제로 갈라서면서 박 대통령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녹취> 김무성(대표/지난 2010년) : "내발로 (친박계에서) 나갈 생각은 없고, 쫓아낸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탈박' 이라는 말이 나왔고, 2012년 김 대표는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지난 대선 당시 김 대표가 백의 종군하고,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회복되는 듯 했습니다.
<녹취> 박근혜(대통령/지난 2012년) : "(김무성 전 의원이) 선대위에서 중책을 맡게 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4년 친박계 지원을 받은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김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비박'계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후 '상하이 개헌 발언'과 사과,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 공무원 연금 개혁 등을 거치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는 냉·온탕을 오갔고, 이번 옥새 투쟁까지 빚어지면서 관계 회복은 더이상 어렵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해 4월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나기에 앞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수습해 달라는 취지로 김무성 대표와 독대 할때 모습입니다.
<녹취> 김무성(새누리당 대표) : "장기간 출국을 앞두고 여러 현안에 대해서 당대표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김무성 대표 취임 이후 두 사람 사이가 가장 좋았던 때로 꼽힙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옥새 투쟁에 대해 청와대는 싸늘한 침묵을 지켰고, 대통령은 정치권이 본인들만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간접 비판했습니다.
두 사람의 10여 년 간의 애증 관계를 이승철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5년 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인연을 맺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김 대표는 친박 좌장으로 친이계에 맞서 2007년 대선 경선을 이끌었고, 대선 뒤 친이계의 공천학살에 탈락했지만, 박 대통령에게 돌아오겠다고 다짐 할 정도로 핵심 측근이었습니다.
<녹취> 김무성(대표/지난 2008년) : "(친이계의 전횡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기에 반드시 선거에 이기고 돌아와서..."
하지만 2010년 세종시 문제로 갈라서면서 박 대통령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녹취> 김무성(대표/지난 2010년) : "내발로 (친박계에서) 나갈 생각은 없고, 쫓아낸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탈박' 이라는 말이 나왔고, 2012년 김 대표는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지난 대선 당시 김 대표가 백의 종군하고,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회복되는 듯 했습니다.
<녹취> 박근혜(대통령/지난 2012년) : "(김무성 전 의원이) 선대위에서 중책을 맡게 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4년 친박계 지원을 받은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김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비박'계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후 '상하이 개헌 발언'과 사과,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 공무원 연금 개혁 등을 거치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는 냉·온탕을 오갔고, 이번 옥새 투쟁까지 빚어지면서 관계 회복은 더이상 어렵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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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리포트] 박 대통령-김무성 애증의 1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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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3-25 21:12:52
- 수정2016-03-25 22:14:45
<앵커 멘트>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해 4월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나기에 앞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수습해 달라는 취지로 김무성 대표와 독대 할때 모습입니다.
<녹취> 김무성(새누리당 대표) : "장기간 출국을 앞두고 여러 현안에 대해서 당대표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김무성 대표 취임 이후 두 사람 사이가 가장 좋았던 때로 꼽힙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옥새 투쟁에 대해 청와대는 싸늘한 침묵을 지켰고, 대통령은 정치권이 본인들만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간접 비판했습니다.
두 사람의 10여 년 간의 애증 관계를 이승철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2005년 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인연을 맺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김 대표는 친박 좌장으로 친이계에 맞서 2007년 대선 경선을 이끌었고, 대선 뒤 친이계의 공천학살에 탈락했지만, 박 대통령에게 돌아오겠다고 다짐 할 정도로 핵심 측근이었습니다.
<녹취> 김무성(대표/지난 2008년) : "(친이계의 전횡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기에 반드시 선거에 이기고 돌아와서..."
하지만 2010년 세종시 문제로 갈라서면서 박 대통령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녹취> 김무성(대표/지난 2010년) : "내발로 (친박계에서) 나갈 생각은 없고, 쫓아낸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탈박' 이라는 말이 나왔고, 2012년 김 대표는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지난 대선 당시 김 대표가 백의 종군하고,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회복되는 듯 했습니다.
<녹취> 박근혜(대통령/지난 2012년) : "(김무성 전 의원이) 선대위에서 중책을 맡게 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4년 친박계 지원을 받은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김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비박'계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후 '상하이 개헌 발언'과 사과,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 공무원 연금 개혁 등을 거치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는 냉·온탕을 오갔고, 이번 옥새 투쟁까지 빚어지면서 관계 회복은 더이상 어렵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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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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