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수희 씨의 행복한 귀농일기

입력 2016.04.02 (08:19) 수정 2016.04.02 (09:3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요즘 귀농을 통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분들 많으신데요.

탈북민 가운데서도 농촌에서 희망을 키우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엿한 농사꾼으로 행복한 정착의 꿈을 일궈가는 한 탈북 여성의 이야기로 홍은지 리포터가 안내합니다.

<리포트>

어느새 완연한 봄.

섬진강 강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사람들을 반깁니다.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전남 광양의 조용한 농촌 마을.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한 여성이 고추를 가꾸느라 분주한 모습한데요.

<녹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고추 모종에 버팀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끈 묶어주는 것이요. 넘어가지 말라고."

고추 모종을 묶는 솜씨가 제법 익숙해 보이는 탈북 귀농인 김수희 씨입니다.

<녹취> 김수희(가명/탈북 영농인) : "7시에 나와서 해 넘어가면 (집에) 들어가요. (하루 종일?) 그렇죠. 농사꾼은 원래 그래요."

2008년 탈북한 수희 씨는 2년 뒤 지인의 소개로 회사원인 남편을 만나 남남북녀 커플이 됐는데요.

결혼 뒤 한동안 주부로만 지내다, 4년 전 취미로 시작했던 농사일이 어느새 직업이 됐습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처음에는 제가 먹고 싶었던 ‘영채’라는 채소부터 시작해서, 씨를 구해다 심고 주변에다 나눠주고 그 반응이 좋아서 또 심게 되고 하다 보니까…"

처음엔 아내의 농사일을 만류했던 남편도, 이젠 쉬는 날이면 두 팔 걷어붙이고 아내를 돕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습니다.

<인터뷰> 정정채(김수희 씨 남편) : "이북에서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저는 농사일을 하지 말아라 했어요. 그런데 열심히 이것저것 하려는 것 보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싶고 또 그런 걸 보면 많이 대견스럽죠."

바쁜 농사철엔 동네 사람들과 품앗이로 일을 나눕니다.

처음엔 북한 사람이라며 낯설어만 하던 어르신들과도 이제는 스스럼없는 이웃이 됐는데요.

<인터뷰> 이동식(지곡리 주민/54세) : "적극적이고 배우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스스럼없이 누구한테나 다가가서 대화를 해서 (농사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더라고요."

올해 서른여덟 살인 수희 씨는 가뜩이나 노령화가 심한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으로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인자(지곡리 주민/61세) : "일 잘하고 야무지고 똑똑해요. 딸 같고 많이 챙겨주고 싶어요."

<인터뷰> 송만종(지곡리 주민/55세) : "지금 (농촌에) 거의 나이 든 사람이 많은데 젊은 사람이 들어오니까 좋죠. 농사짓기도, 서로 이야기하기도 좋고."

김수희 씨는 비닐하우스에서 채두 등 여러 작물을 키워, 일 년 내 수확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안정적인 수입까지 얻고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처음부터 농사일이 쉬웠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제가 가슴 아픈 것이 수확량이 나오고 안 나오고 떠나서 (작물에) 병이 왔다던가 해충이 왔을 때는 진짜 속상해요. 그때만큼 속상할 때가 없는 것 같아요."

농사일을 몰라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힘이 돼주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인터뷰> 한만종(농촌진흥청 기술위원) : "옆면 따라서 점점이 하얗게 나타나는 것 있잖아요. 이것이 다 병충해에 의한 증상이란 말이죠. 현재 심하진 않지만, 지금 발생 초기이기 때문에 지금 이때 약을 쳐가지고 방재 처리해야 해요."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찾아 꼼꼼히 살펴준 덕분에 북한에 살 때 생소했던 비닐하우스 농사도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됐는데요.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토질 검사도 해주고 병충해 약 같은 것, 나는 생각도 못 했던 그런 부분들을 많이 가르쳐 주세요."

<인터뷰> 전경성(농촌진흥청 고객지원담당관) : "탈북 귀농하신 분들은 농사 방법이 다르고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농업기술 전문가들이 1대 1 멘토가 되어서 직접 상담해드리고 농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에 와서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오후, 바쁘게 돌아가는 수희 씨의 비닐하우스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녹취> "언니, 왔어요? 반가워, 오래간만이네. (잘 지냈어?) 잘 지냈죠."

역시 광양에 사는 탈북민 김지현 씨인데요.

낯선 땅에서 같은 탈북민 출신으로 왕래를 하다 어느새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녹취> "(이거 고추 모종이야?) 네. 고추 모종이에요. 씨를 내가 직접 부어서 기르는 거거든. (잘 컸다.)"

<인터뷰> 김지현(가명/탈북민) : "너무 발전된 남한으로 오니까 지금 현실에 그래도 접근하자면 (농업이) 그래도 맞는 것 같고. 내 손으로 (농사를) 지어서 땅 냄새 흙냄새를 맡으면 좋을 것 같고."

수희 씨에겐 지현 씨 말고도 이렇게 농사 자문을 구하는 탈북민들이 종종 있다는데요.

이럴 때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누가 와도 내가 농사일에 대해 아는 만큼 얘기도 해줄 수 있고 농사일을 권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농사일을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김수희 씨처럼 농사일을 통해 자립과 행복을 찾으려는 탈북민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낯선 우리사회가 두려울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에게 농촌이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따스하고 너른 품이 되고 있는 겁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수희 씨, 농사꾼에서 주부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녹취> "잘 먹겠습니다.(네, 많이 드세요.)"

6살 딸, 그리고 남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는데요.

그런데 저녁마다 수희 씨가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을 통해 영농정보를 찾고 공부하는 건데요.

영농 공부를 멈추지 않은 수희 씨에겐 보다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고 유통에까지 뛰어들고 싶은 더 큰 꿈이 있습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우리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직거래 판매도 하고, 가공도 하고 싶거든요. 장아찌 형식으로 판매도 하고요. 그래서 올해부터 교육도 받고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민의 편견을 이겨내고 농촌에서 제2의 삶을 일궈나가고 있는 김수희 씨.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농사는 나한테 대한민국에 와서 살아가는데 어찌 보면 새 삶이잖아요. 새 삶을 살아가는데 진짜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농사를 지으면서 이 사회나 한국의 모든 것을 많이 알게 되고요."

수희 씨에게는 희망을 마을 주민들에겐 활력을 가져다 준 행복한 귀농일기는 그래서 오늘도 계속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통일로 미래로] 탈북민 수희 씨의 행복한 귀농일기
    • 입력 2016-04-02 09:17:47
    • 수정2016-04-02 09:34:34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요즘 귀농을 통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분들 많으신데요.

탈북민 가운데서도 농촌에서 희망을 키우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엿한 농사꾼으로 행복한 정착의 꿈을 일궈가는 한 탈북 여성의 이야기로 홍은지 리포터가 안내합니다.

<리포트>

어느새 완연한 봄.

섬진강 강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사람들을 반깁니다.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전남 광양의 조용한 농촌 마을.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한 여성이 고추를 가꾸느라 분주한 모습한데요.

<녹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고추 모종에 버팀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끈 묶어주는 것이요. 넘어가지 말라고."

고추 모종을 묶는 솜씨가 제법 익숙해 보이는 탈북 귀농인 김수희 씨입니다.

<녹취> 김수희(가명/탈북 영농인) : "7시에 나와서 해 넘어가면 (집에) 들어가요. (하루 종일?) 그렇죠. 농사꾼은 원래 그래요."

2008년 탈북한 수희 씨는 2년 뒤 지인의 소개로 회사원인 남편을 만나 남남북녀 커플이 됐는데요.

결혼 뒤 한동안 주부로만 지내다, 4년 전 취미로 시작했던 농사일이 어느새 직업이 됐습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처음에는 제가 먹고 싶었던 ‘영채’라는 채소부터 시작해서, 씨를 구해다 심고 주변에다 나눠주고 그 반응이 좋아서 또 심게 되고 하다 보니까…"

처음엔 아내의 농사일을 만류했던 남편도, 이젠 쉬는 날이면 두 팔 걷어붙이고 아내를 돕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습니다.

<인터뷰> 정정채(김수희 씨 남편) : "이북에서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저는 농사일을 하지 말아라 했어요. 그런데 열심히 이것저것 하려는 것 보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싶고 또 그런 걸 보면 많이 대견스럽죠."

바쁜 농사철엔 동네 사람들과 품앗이로 일을 나눕니다.

처음엔 북한 사람이라며 낯설어만 하던 어르신들과도 이제는 스스럼없는 이웃이 됐는데요.

<인터뷰> 이동식(지곡리 주민/54세) : "적극적이고 배우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스스럼없이 누구한테나 다가가서 대화를 해서 (농사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더라고요."

올해 서른여덟 살인 수희 씨는 가뜩이나 노령화가 심한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으로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인자(지곡리 주민/61세) : "일 잘하고 야무지고 똑똑해요. 딸 같고 많이 챙겨주고 싶어요."

<인터뷰> 송만종(지곡리 주민/55세) : "지금 (농촌에) 거의 나이 든 사람이 많은데 젊은 사람이 들어오니까 좋죠. 농사짓기도, 서로 이야기하기도 좋고."

김수희 씨는 비닐하우스에서 채두 등 여러 작물을 키워, 일 년 내 수확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안정적인 수입까지 얻고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처음부터 농사일이 쉬웠던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제가 가슴 아픈 것이 수확량이 나오고 안 나오고 떠나서 (작물에) 병이 왔다던가 해충이 왔을 때는 진짜 속상해요. 그때만큼 속상할 때가 없는 것 같아요."

농사일을 몰라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힘이 돼주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인터뷰> 한만종(농촌진흥청 기술위원) : "옆면 따라서 점점이 하얗게 나타나는 것 있잖아요. 이것이 다 병충해에 의한 증상이란 말이죠. 현재 심하진 않지만, 지금 발생 초기이기 때문에 지금 이때 약을 쳐가지고 방재 처리해야 해요."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찾아 꼼꼼히 살펴준 덕분에 북한에 살 때 생소했던 비닐하우스 농사도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됐는데요.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토질 검사도 해주고 병충해 약 같은 것, 나는 생각도 못 했던 그런 부분들을 많이 가르쳐 주세요."

<인터뷰> 전경성(농촌진흥청 고객지원담당관) : "탈북 귀농하신 분들은 농사 방법이 다르고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농업기술 전문가들이 1대 1 멘토가 되어서 직접 상담해드리고 농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에 와서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오후, 바쁘게 돌아가는 수희 씨의 비닐하우스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녹취> "언니, 왔어요? 반가워, 오래간만이네. (잘 지냈어?) 잘 지냈죠."

역시 광양에 사는 탈북민 김지현 씨인데요.

낯선 땅에서 같은 탈북민 출신으로 왕래를 하다 어느새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녹취> "(이거 고추 모종이야?) 네. 고추 모종이에요. 씨를 내가 직접 부어서 기르는 거거든. (잘 컸다.)"

<인터뷰> 김지현(가명/탈북민) : "너무 발전된 남한으로 오니까 지금 현실에 그래도 접근하자면 (농업이) 그래도 맞는 것 같고. 내 손으로 (농사를) 지어서 땅 냄새 흙냄새를 맡으면 좋을 것 같고."

수희 씨에겐 지현 씨 말고도 이렇게 농사 자문을 구하는 탈북민들이 종종 있다는데요.

이럴 때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누가 와도 내가 농사일에 대해 아는 만큼 얘기도 해줄 수 있고 농사일을 권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농사일을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김수희 씨처럼 농사일을 통해 자립과 행복을 찾으려는 탈북민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낯선 우리사회가 두려울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에게 농촌이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따스하고 너른 품이 되고 있는 겁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수희 씨, 농사꾼에서 주부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녹취> "잘 먹겠습니다.(네, 많이 드세요.)"

6살 딸, 그리고 남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는데요.

그런데 저녁마다 수희 씨가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을 통해 영농정보를 찾고 공부하는 건데요.

영농 공부를 멈추지 않은 수희 씨에겐 보다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고 유통에까지 뛰어들고 싶은 더 큰 꿈이 있습니다.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우리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직거래 판매도 하고, 가공도 하고 싶거든요. 장아찌 형식으로 판매도 하고요. 그래서 올해부터 교육도 받고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민의 편견을 이겨내고 농촌에서 제2의 삶을 일궈나가고 있는 김수희 씨.

<인터뷰> 김수희(탈북 영농인) : "농사는 나한테 대한민국에 와서 살아가는데 어찌 보면 새 삶이잖아요. 새 삶을 살아가는데 진짜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농사를 지으면서 이 사회나 한국의 모든 것을 많이 알게 되고요."

수희 씨에게는 희망을 마을 주민들에겐 활력을 가져다 준 행복한 귀농일기는 그래서 오늘도 계속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