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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전쟁의 시작과 끝, 진주만을 가다! ①아리조나함의 검은 눈물
입력 2016.04.02 (10:02) 수정 2016.04.03 (15:59) 취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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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kg 폭탄이 떨어졌죠. 40대의 일본 폭격기가 동쪽에서 군함을 공격했어요. 뱃머리가 날아가고 순식간에 불덩이로 변했어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하와이의 진주만 기습 때 가라앉은 전함, 아리조나함 생존 수병의 증언입니다. 도널드 G.스트래트는 아리조나함의 1중대 수병이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8시 쯤, 나른한 휴일을 즐기고 있던 스트래트 수병의 눈 앞에 일본군의 폭격기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습니다.

침몰하는 아리조나함침몰하는 아리조나함
 

뒤이어 아리조나함 우현 갑판 앞쪽에 800kg 폭탄이 강타했습니다. 2번 주포탑을 관통한 폭탄이 탄약고에 내리 꽂히면서 화장터 장작더미처럼 연쇄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해병대 나팔수였던 또 다른 생존자 리처드 피스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7발의 어뢰와 폭탄을 얻어맞은 아리조나함은 거대한 불덩이가 됐습니다. 뱃머리가 솟아올랐다가 내려올 땐 불덩이로 변해있었죠. 순간 같은 배에 타고 있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결국 그 폭발로 목숨을 잃어 아직도 배 안에 잠들어 있죠."

아리조나함 전체 승조원은 1400명, 이 가운데 1177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900명은 배 안에 갇혀 결국 나오지 못한 채 수장됐습니다. 이것이 9분 만에 두 동강이 나 최후를 맞게 된 3만톤급의 수퍼 전함, USS 아리조나함의 최후입니다.

미 정부는 당초 선체를 해체해 인양하려고 했지만, 여론을 수렴해 침몰한 배 위에 기념관을 세우기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전국적으로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이 펼쳐졌고 1962년 침몰한 배 위에 기념관이 건립됐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해상 기념관이자, 국립묘지인 셈입니다.

아리조나함 기념관(The USS Arizona Memorial)은 해상에 건립됐기 때문에 기념관과 육지를 오가는 통선을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10분 정도 이동을 하자, 우아한 곡선 모양의 흰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념관 아래 아리조나함이 수심 12미터,진흙 7미터에 파묻힌 채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침몰한 아리조나함의 연료탱크에는 아직도 기름이 조금씩 새어나옵니다. 누출량은 하루 1리터 정도, '검은 눈물'(black tears)로 불리는데, 미국 내 환경보호단체들도 이 기름에 대해선 오염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생존자들은 해마다 현장을 방문해 '검은 눈물'에 자신들의 눈물을 더합니다. 기념관 바닥을 보면 동료 선원(shipmate)이었던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아리조나함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은 생존자들도 대부분 이 곳에 묻히길 원한다고 합니다.

기념관 측은 생존자가 사망한 뒤 가족이 동의하면, 화장한 재를 넣은 봉인된 함을 잠수사들이 뱃머리 부분에 안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리조나함 희생자 명단아리조나함 희생자 명단
  

아리조나함 기념관 관람은 무료입니다. 기념관 측은 아리조나함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전쟁의 비극을 상기하고, 더 이상 이같은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무료 개방 취지를 밝혔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발 밑으로 녹슨 배의 선체와 3번 포탑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리조나함에 잠들어 있는 900명의 전사자들이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희생을 잊지 말아주세요"

[르포]전쟁의 시작과 끝, 진주만을 가다! ②전쟁의 끝 미주리함이 이어집니다.
  • [르포] 전쟁의 시작과 끝, 진주만을 가다! ①아리조나함의 검은 눈물
    • 입력 2016-04-02 10:02:41
    • 수정2016-04-03 15:59:53
    취재K
"350kg 폭탄이 떨어졌죠. 40대의 일본 폭격기가 동쪽에서 군함을 공격했어요. 뱃머리가 날아가고 순식간에 불덩이로 변했어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하와이의 진주만 기습 때 가라앉은 전함, 아리조나함 생존 수병의 증언입니다. 도널드 G.스트래트는 아리조나함의 1중대 수병이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8시 쯤, 나른한 휴일을 즐기고 있던 스트래트 수병의 눈 앞에 일본군의 폭격기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습니다.

침몰하는 아리조나함침몰하는 아리조나함
 

뒤이어 아리조나함 우현 갑판 앞쪽에 800kg 폭탄이 강타했습니다. 2번 주포탑을 관통한 폭탄이 탄약고에 내리 꽂히면서 화장터 장작더미처럼 연쇄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해병대 나팔수였던 또 다른 생존자 리처드 피스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7발의 어뢰와 폭탄을 얻어맞은 아리조나함은 거대한 불덩이가 됐습니다. 뱃머리가 솟아올랐다가 내려올 땐 불덩이로 변해있었죠. 순간 같은 배에 타고 있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결국 그 폭발로 목숨을 잃어 아직도 배 안에 잠들어 있죠."

아리조나함 전체 승조원은 1400명, 이 가운데 1177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900명은 배 안에 갇혀 결국 나오지 못한 채 수장됐습니다. 이것이 9분 만에 두 동강이 나 최후를 맞게 된 3만톤급의 수퍼 전함, USS 아리조나함의 최후입니다.

미 정부는 당초 선체를 해체해 인양하려고 했지만, 여론을 수렴해 침몰한 배 위에 기념관을 세우기로 방침을 바꿨습니다. 전국적으로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이 펼쳐졌고 1962년 침몰한 배 위에 기념관이 건립됐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해상 기념관이자, 국립묘지인 셈입니다.

아리조나함 기념관(The USS Arizona Memorial)은 해상에 건립됐기 때문에 기념관과 육지를 오가는 통선을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10분 정도 이동을 하자, 우아한 곡선 모양의 흰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념관 아래 아리조나함이 수심 12미터,진흙 7미터에 파묻힌 채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침몰한 아리조나함의 연료탱크에는 아직도 기름이 조금씩 새어나옵니다. 누출량은 하루 1리터 정도, '검은 눈물'(black tears)로 불리는데, 미국 내 환경보호단체들도 이 기름에 대해선 오염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생존자들은 해마다 현장을 방문해 '검은 눈물'에 자신들의 눈물을 더합니다. 기념관 바닥을 보면 동료 선원(shipmate)이었던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아리조나함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은 생존자들도 대부분 이 곳에 묻히길 원한다고 합니다.

기념관 측은 생존자가 사망한 뒤 가족이 동의하면, 화장한 재를 넣은 봉인된 함을 잠수사들이 뱃머리 부분에 안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리조나함 희생자 명단아리조나함 희생자 명단
  

아리조나함 기념관 관람은 무료입니다. 기념관 측은 아리조나함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전쟁의 비극을 상기하고, 더 이상 이같은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무료 개방 취지를 밝혔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서니 발 밑으로 녹슨 배의 선체와 3번 포탑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리조나함에 잠들어 있는 900명의 전사자들이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희생을 잊지 말아주세요"

[르포]전쟁의 시작과 끝, 진주만을 가다! ②전쟁의 끝 미주리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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