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에 민감한 일본, 재단과 소녀상 맞교환?

입력 2016.04.08 (19:47) 수정 2016.04.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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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본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이 위안부 소녀상 이전과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이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소녀상 이전에 관한 논란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일본 언론과 집권당 등이 이런 주장을 하기는 했지만일본 정부 고위 관리가 직접적으로 이런 주장을 편 것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처음이다.

하기우다 부장관은 지난 6일 밤 BS후지 '프라임뉴스'에 출연해 "위안부 재단에 대한 10억엔 출연과 소녀상 이전 문제 가운데 무엇이 먼저냐"는 질문에 "(한·일간 합의문에) 분명히 쓰여있다"며 "양국간 관계에서 말하자면 '패키지'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


하기우다 부장관은 또 "어느 것이 먼저고 나중일지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최종적'인 만큼 전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재단이 설립돼) 설립기념식을 하는 날에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거기사 집회를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소녀상 이전 기회, 놓치지 않으려는 일본

하기우다 부장관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최종적 해결'을 약속한 만큼 지금이 위안부 소녀상 철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보고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년 간 일본 정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소녀상 이전의 가능성이 일본 내에서 본격 거론된 계기가 한일 위안부 합의이기 때문이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 측 표명사항으로 "(소녀상에 관한)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한 협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해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우리 측 표명사항으로 “(소녀상 문제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지난해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우리 측 표명사항으로 “(소녀상 문제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아베 총리와 기시다 외무상 등이 연이어 "소녀상 이전 문제가 적절히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공세를 강화해 갔다. 일본 자민당은 소녀상 조기 철거 촉구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의 직접 언급은 피해왔지만, 소녀상 철거와 위안부 재단 설립 연계 방안에 대한 강한 부정도 하지 않아왔다. 일본 언론들은 이미 지난 1월, "소녀상 이전과 (재단 설립을 위한) 10억엔 출연 연계는 아베 총리의 뜻"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은 왜 소녀상에 민감할까?

일본은 2011년 12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립된 이래 줄곧 철거를 요구해왔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일본 총리는 소녀상이 설치된 직후인 2011년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개인 홈페이지에 내용을 밝힌 바 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더니, (이 전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회고했다. 이 때의 위안부 협상이 향후 한일관계 악화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 [바로가기] 노다 전 일본 총리 홈페이지 중 관련 칼럼

2011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노다 당시 일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2011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노다 당시 일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일본이 소녀상에 유독 민감한 이유는 소녀상이 갖고 있는 강렬한 '상징성' 때문이다. 소녀상은 그간 국내 20여 곳은 물론 미국에까지 설치되면서 몇몇 피해국만 알고 있던 위안부 문제,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동력이 돼 왔다. 해외에 알려지게 된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피해국만의 역사가 아닌 '20세기 보편적 여성인권의 문제'가 되었다.

일본으로서는 국제적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던 셈이다. 더구나 일본은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며 평화적 이미지 구축에 한창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외 30개가 넘는 소녀상 중에서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은 유독 일본에게는 눈엣가시다. 일본 국내나 해외 인사들이 대사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볼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천2백 회 넘게 열린 '수요집회'도 소녀상을 둘러싸고 이뤄진다. 대사관 앞 소녀상이 위안부 운동의 구심점이 돼온 셈이다.

지난 6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실시된 1225회 수요집회 (사진 : 연합뉴스) 지난 6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실시된 1225회 수요집회 (사진 : 연합뉴스)


때문에 일본은 그간 국제협약을 들어 소녀상 철거와 이전을 우리 정부에 요구해 왔다. 1961년 체결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22조'가 "접수국은 공관 지역을 보호하며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특별한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한 만큼, 소녀상은 외교 특권에 대한 간접 침해라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동안에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의 입장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지만,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면서 일본은 소녀상 이전의 가능성을 내다보게 됐다.

정부 "재단설립과 소녀상은 별개", 하지만....

재단 설립 비용 10억엔 대신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듯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 우리 정부는 반박하고 나섰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7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재단 설립 문제와 소녀상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조 대변인은 지난달에는 "(이전 문제에 관해) 관련 단체의 입장을 경청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녀상 이전 문제가 답보에 머물 경우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으로 이 발언이 해석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소녀상 문제 해결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위안부 합의의 애매함이 여전히 불씨를 낳고 있는 셈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달 22일 국장급 협의에서 재단 설립 문제에 대한 본격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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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08 19:47:38
    • 수정2016-04-08 20:22:26
    취재K
아베 일본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이 위안부 소녀상 이전과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이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소녀상 이전에 관한 논란이 다시 점화되고 있다. 일본 언론과 집권당 등이 이런 주장을 하기는 했지만일본 정부 고위 관리가 직접적으로 이런 주장을 편 것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처음이다. 하기우다 부장관은 지난 6일 밤 BS후지 '프라임뉴스'에 출연해 "위안부 재단에 대한 10억엔 출연과 소녀상 이전 문제 가운데 무엇이 먼저냐"는 질문에 "(한·일간 합의문에) 분명히 쓰여있다"며 "양국간 관계에서 말하자면 '패키지'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 하기우다 부장관은 또 "어느 것이 먼저고 나중일지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최종적'인 만큼 전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재단이 설립돼) 설립기념식을 하는 날에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거기사 집회를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소녀상 이전 기회, 놓치지 않으려는 일본 하기우다 부장관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최종적 해결'을 약속한 만큼 지금이 위안부 소녀상 철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보고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년 간 일본 정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소녀상 이전의 가능성이 일본 내에서 본격 거론된 계기가 한일 위안부 합의이기 때문이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 측 표명사항으로 "(소녀상에 관한)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한 협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해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우리 측 표명사항으로 “(소녀상 문제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아베 총리와 기시다 외무상 등이 연이어 "소녀상 이전 문제가 적절히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공세를 강화해 갔다. 일본 자민당은 소녀상 조기 철거 촉구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의 직접 언급은 피해왔지만, 소녀상 철거와 위안부 재단 설립 연계 방안에 대한 강한 부정도 하지 않아왔다. 일본 언론들은 이미 지난 1월, "소녀상 이전과 (재단 설립을 위한) 10억엔 출연 연계는 아베 총리의 뜻"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은 왜 소녀상에 민감할까? 일본은 2011년 12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립된 이래 줄곧 철거를 요구해왔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일본 총리는 소녀상이 설치된 직후인 2011년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개인 홈페이지에 내용을 밝힌 바 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더니, (이 전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회고했다. 이 때의 위안부 협상이 향후 한일관계 악화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 [바로가기] 노다 전 일본 총리 홈페이지 중 관련 칼럼 2011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노다 당시 일본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일본이 소녀상에 유독 민감한 이유는 소녀상이 갖고 있는 강렬한 '상징성' 때문이다. 소녀상은 그간 국내 20여 곳은 물론 미국에까지 설치되면서 몇몇 피해국만 알고 있던 위안부 문제,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동력이 돼 왔다. 해외에 알려지게 된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피해국만의 역사가 아닌 '20세기 보편적 여성인권의 문제'가 되었다. 일본으로서는 국제적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던 셈이다. 더구나 일본은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며 평화적 이미지 구축에 한창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외 30개가 넘는 소녀상 중에서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은 유독 일본에게는 눈엣가시다. 일본 국내나 해외 인사들이 대사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볼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천2백 회 넘게 열린 '수요집회'도 소녀상을 둘러싸고 이뤄진다. 대사관 앞 소녀상이 위안부 운동의 구심점이 돼온 셈이다. 지난 6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실시된 1225회 수요집회 (사진 : 연합뉴스) 때문에 일본은 그간 국제협약을 들어 소녀상 철거와 이전을 우리 정부에 요구해 왔다. 1961년 체결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22조'가 "접수국은 공관 지역을 보호하며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특별한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한 만큼, 소녀상은 외교 특권에 대한 간접 침해라는 게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동안에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의 입장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지만,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면서 일본은 소녀상 이전의 가능성을 내다보게 됐다. 정부 "재단설립과 소녀상은 별개", 하지만.... 재단 설립 비용 10억엔 대신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듯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 우리 정부는 반박하고 나섰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7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재단 설립 문제와 소녀상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조 대변인은 지난달에는 "(이전 문제에 관해) 관련 단체의 입장을 경청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소녀상 이전 문제가 답보에 머물 경우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으로 이 발언이 해석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소녀상 문제 해결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위안부 합의의 애매함이 여전히 불씨를 낳고 있는 셈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달 22일 국장급 협의에서 재단 설립 문제에 대한 본격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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