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지영이’를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력 2016.04.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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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인 줄 알았는데"....'괴물'이 된 아빠

지영(가명)이는 6살때부터 10년 넘게 친아빠의 성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지영이는 그냥 놀이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빠와 엄마는 아이들 앞에서 버젓이 부부관계를 하고 아빠는 아이들이 있는데도 케이블 TV로 야한 동영상을 자주 봤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지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는 등 그야말로 놀이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중학교에 가서 성교육을 받고서야 아빠가 자기를 성폭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영이의 엄마는 뭐 했냐구요? 딸이 성학대 당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지적 장애인 2급인 엄마는 남편의 폭행이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방조자였던 셈입니다. 처음에 취재진에게 딸의 성학대 사실을 몰랐다고 했던 엄마는 두번째 인터뷰에서는 성학대를 알았고 당시에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2009년부터 지역사회는 알았지만...

지영이 아빠는 2014년 시작된 경찰 수사로 12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입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웃주민들은 지영이 성 학대 사실을 5년 전인 2009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남의 집안 문제, 그것도 민감한 친족 성폭행이다 보니 괜히 나섰다가 보복만 당한다고 생각하며 쉬쉬했습니다. 이 때 경찰 신고가 이뤄지고 사건이 드러났다면 지영이를 훨씬 더 일찍 성 학대 늪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영이가 직접 성 학대 사실을 털어놓은 건 2011년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성 학대 사실을 얘기했지만 학교와 성폭력 피해 상담소, 지자체 등 지역사회는 아빠를 처벌하는 문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엄마가 지적 장애인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처벌하게 되면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 지영이를 집에서 분리하는 문제만 신경 썼다는게 지역 사회 기관들의 얘기였습니다. 아빠 처벌을 미루는 사이 지영이의 성 학대는 계속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지영이는 2012년 청소년쉼터에 가서도 여러 차례 성 학대 사실을 얘기했지만 쉼터 측도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이 아닌데도 아빠에게 딸을 성 학대했는지 직접 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지영이의 신고를 아빠가 알게 되고 아빠가 가족 해체를 언급하며 지영이를 협박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영이는 아빠가 처벌받으면 괜찮게 살 것 같아 신고를 했다고 했지만 지역사회의 도움은 지영이의 기대와는 너무 달랐던 겁니다.

2013년에도 지영이는 아빠의 성 학대 사실을 학교에 또 알렸고 학교측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영이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진술을 회피했다고 합니다. 지영이에게 왜 진술을 피했는지 물어보니, 성 학대 사실을 얘기할 때마다 아빠가 알게 되고 그렇지만 처벌은 받지 않는 아빠와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 쉼터돌이... 성 추행 가해자로

지영이가 성 학대 사실을 털어놓은 뒤 집에서 분리 조치되지만 이 과정에서도 지역 사회의 도움은 미흡했습니다. 처음에 간 곳은 엉뚱하게 노인 요양원이었고 그 이후에도 치료시설이 아닌 청소년 쉼터 등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영이가 거쳐간 시설만 17곳.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른바 '쉼터돌이'가 되면서 지영이의 트라우마는 더 악화됐습니다.

친족 성폭행 피해자들만 있는 성폭행 피해자 전문 쉼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의 거처 역할을 할 뿐 제대로 된 치료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지영이는 또래 여학생을 성추행하는가 하면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지영이를 전문 치료와 연계시켜 주기는 커녕 쉼터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지영이에게 퇴소 조치를 취했습니다.

친족 성학대, 그것도 친아빠로부터 당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성범죄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그만큼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했지만 지영이에게는 그런 치료 기회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지영이가 빨리 아빠의 성 학대 늪에서 구해지고 또 제대로 된 치료 시설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일찍 받았으면 성 추행하는 지영이는 없었을 것이라 게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 지영이 트라우마 치료는 잘 될까?

지영이는 지난 3월 14일 경북대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습니다. 친족 아동 성폭력 치료 전문가인 정운선 경북대병원 아동청소년 정신과 교수는 지영이가 아주 오랫동안 성학대 뿐 아니라 신체 학대, 방임, 정서 학대까지 중복 학대를 아주 심각하게 당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최소한 3~5년은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고 하다고 합니다.

부모의 애정 결핍으로 인해 강한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지영이에게는 가족 같은 사람이 무엇보다 절실하고 이런 사람이 치료 과정에 필수적이라는 게 정 교수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영이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어 치료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지적 장애인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남동생도 지적 장애인이라 관련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입원 치료에 거부감을 보였던 지영이가 병원 치료에 비교적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특성상 지영이가 어느 순간 분노 표출 등 감정 조절 장애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정 교수는 이 때부터 지영이에 대한 치료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영이의 꿈은 미용사가 돼 돈을 벌어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사는 겁니다. 지영이가 부디 이 치료 과정을 잘 이겨내고 그 꿈을 이룰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연관 기사]☞ [시사기획 창] 성 학대의 늪,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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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지영이’를 잡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입력 2016-04-21 09:02:26
    취재후·사건후
■ "놀이인 줄 알았는데"....'괴물'이 된 아빠

지영(가명)이는 6살때부터 10년 넘게 친아빠의 성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지영이는 그냥 놀이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아빠와 엄마는 아이들 앞에서 버젓이 부부관계를 하고 아빠는 아이들이 있는데도 케이블 TV로 야한 동영상을 자주 봤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지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하는 등 그야말로 놀이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중학교에 가서 성교육을 받고서야 아빠가 자기를 성폭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영이의 엄마는 뭐 했냐구요? 딸이 성학대 당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지적 장애인 2급인 엄마는 남편의 폭행이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방조자였던 셈입니다. 처음에 취재진에게 딸의 성학대 사실을 몰랐다고 했던 엄마는 두번째 인터뷰에서는 성학대를 알았고 당시에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2009년부터 지역사회는 알았지만...

지영이 아빠는 2014년 시작된 경찰 수사로 12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입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웃주민들은 지영이 성 학대 사실을 5년 전인 2009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남의 집안 문제, 그것도 민감한 친족 성폭행이다 보니 괜히 나섰다가 보복만 당한다고 생각하며 쉬쉬했습니다. 이 때 경찰 신고가 이뤄지고 사건이 드러났다면 지영이를 훨씬 더 일찍 성 학대 늪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영이가 직접 성 학대 사실을 털어놓은 건 2011년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성 학대 사실을 얘기했지만 학교와 성폭력 피해 상담소, 지자체 등 지역사회는 아빠를 처벌하는 문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엄마가 지적 장애인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처벌하게 되면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 지영이를 집에서 분리하는 문제만 신경 썼다는게 지역 사회 기관들의 얘기였습니다. 아빠 처벌을 미루는 사이 지영이의 성 학대는 계속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지영이는 2012년 청소년쉼터에 가서도 여러 차례 성 학대 사실을 얘기했지만 쉼터 측도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습니다. 수사기관이 아닌데도 아빠에게 딸을 성 학대했는지 직접 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지영이의 신고를 아빠가 알게 되고 아빠가 가족 해체를 언급하며 지영이를 협박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영이는 아빠가 처벌받으면 괜찮게 살 것 같아 신고를 했다고 했지만 지역사회의 도움은 지영이의 기대와는 너무 달랐던 겁니다.

2013년에도 지영이는 아빠의 성 학대 사실을 학교에 또 알렸고 학교측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영이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진술을 회피했다고 합니다. 지영이에게 왜 진술을 피했는지 물어보니, 성 학대 사실을 얘기할 때마다 아빠가 알게 되고 그렇지만 처벌은 받지 않는 아빠와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 쉼터돌이... 성 추행 가해자로

지영이가 성 학대 사실을 털어놓은 뒤 집에서 분리 조치되지만 이 과정에서도 지역 사회의 도움은 미흡했습니다. 처음에 간 곳은 엉뚱하게 노인 요양원이었고 그 이후에도 치료시설이 아닌 청소년 쉼터 등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영이가 거쳐간 시설만 17곳.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른바 '쉼터돌이'가 되면서 지영이의 트라우마는 더 악화됐습니다.

친족 성폭행 피해자들만 있는 성폭행 피해자 전문 쉼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의 거처 역할을 할 뿐 제대로 된 치료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지영이는 또래 여학생을 성추행하는가 하면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지영이를 전문 치료와 연계시켜 주기는 커녕 쉼터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지영이에게 퇴소 조치를 취했습니다.

친족 성학대, 그것도 친아빠로부터 당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성범죄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그만큼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했지만 지영이에게는 그런 치료 기회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지영이가 빨리 아빠의 성 학대 늪에서 구해지고 또 제대로 된 치료 시설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일찍 받았으면 성 추행하는 지영이는 없었을 것이라 게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 지영이 트라우마 치료는 잘 될까?

지영이는 지난 3월 14일 경북대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습니다. 친족 아동 성폭력 치료 전문가인 정운선 경북대병원 아동청소년 정신과 교수는 지영이가 아주 오랫동안 성학대 뿐 아니라 신체 학대, 방임, 정서 학대까지 중복 학대를 아주 심각하게 당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최소한 3~5년은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고 하다고 합니다.

부모의 애정 결핍으로 인해 강한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지영이에게는 가족 같은 사람이 무엇보다 절실하고 이런 사람이 치료 과정에 필수적이라는 게 정 교수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지영이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어 치료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지적 장애인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남동생도 지적 장애인이라 관련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입원 치료에 거부감을 보였던 지영이가 병원 치료에 비교적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특성상 지영이가 어느 순간 분노 표출 등 감정 조절 장애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정 교수는 이 때부터 지영이에 대한 치료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영이의 꿈은 미용사가 돼 돈을 벌어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사는 겁니다. 지영이가 부디 이 치료 과정을 잘 이겨내고 그 꿈을 이룰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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