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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 국군 전사자 66년 만에 귀향
입력 2016.04.21 (21:38) 수정 2016.04.21 (22:29)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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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때 흥남철수 작전으로 피란민 10만여 명이 탈출에 성공했죠?

이게 가능했던 건 유엔군이 개마고원 일대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막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병사 유해가 66년 만에 가족 품에 안겼습니다.

홍혜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50년 12월,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중공군을 피해 피란민 10만여 명이 기적적으로 탈출했습니다.

흥남철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개마고원 부근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며 버티던 유엔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군 2천 5백여 명이 중공군 매복에 걸려 한꺼번에 전사하는 등 많은 미군 병사들이 이 전투에서 숨졌습니다.

<인터뷰> 참전미군 : "많은 (아군)낙하산들이 중공군 영역에 떨어졌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들을 잊지 못합니다."

스무살의 나이로 미 7사단 카투사병으로 입대했던 고 임병근 일병도 이 때 숨졌습니다.

지난 2000년 미군이 북한 장진호에서 유해를 발굴하며 찾아낸 12구의 아시아계 시신 가운데 한 구가 임 일병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습니다.

북한 장진호에서 바다 건너 미국으로, 또 서울을 지나 고향 부산에 돌아오기까지 66년이 걸렸습니다.

<인터뷰> 임현식(故 임병근 일병 조카) : "북한에서 찾은 유골이 미국까지 갔다가 이렇게 찾아주니 더 반가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직도 휴전선 비무장지대에는 4만여 구의 국군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KBS 뉴스 홍혜림입니다.
  • ‘장진호 전투’ 국군 전사자 66년 만에 귀향
    • 입력 2016-04-21 21:39:16
    • 수정2016-04-21 22:29:44
    뉴스 9
<앵커 멘트>

6.25 전쟁 때 흥남철수 작전으로 피란민 10만여 명이 탈출에 성공했죠?

이게 가능했던 건 유엔군이 개마고원 일대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막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 병사 유해가 66년 만에 가족 품에 안겼습니다.

홍혜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50년 12월,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중공군을 피해 피란민 10만여 명이 기적적으로 탈출했습니다.

흥남철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개마고원 부근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며 버티던 유엔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군 2천 5백여 명이 중공군 매복에 걸려 한꺼번에 전사하는 등 많은 미군 병사들이 이 전투에서 숨졌습니다.

<인터뷰> 참전미군 : "많은 (아군)낙하산들이 중공군 영역에 떨어졌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들을 잊지 못합니다."

스무살의 나이로 미 7사단 카투사병으로 입대했던 고 임병근 일병도 이 때 숨졌습니다.

지난 2000년 미군이 북한 장진호에서 유해를 발굴하며 찾아낸 12구의 아시아계 시신 가운데 한 구가 임 일병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습니다.

북한 장진호에서 바다 건너 미국으로, 또 서울을 지나 고향 부산에 돌아오기까지 66년이 걸렸습니다.

<인터뷰> 임현식(故 임병근 일병 조카) : "북한에서 찾은 유골이 미국까지 갔다가 이렇게 찾아주니 더 반가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직도 휴전선 비무장지대에는 4만여 구의 국군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KBS 뉴스 홍혜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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