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사우디 방문…홀대와 환대 사이

입력 2016.04.2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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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면서 '홀대'를 받았다. 비행기 문을 열고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든 뒤 트랩을 뛰어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오바마 대통령을 맞이하러 공항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리야드 주지사인 파이살 빈 반다르 왕자가 아델 알 주바이르 외교장관과 리야드 경찰서장 등과 미국 대통령을 맞이했다.

주요국 정상이 방문할 때 살만 국왕이나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알사우드 왕세자가 직접 공항에서 영접하는 전례를 감안하면 엄청난 '홀대'를 받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선 3차례 사우디 방문 때마다 살만 국왕의 공항 영접을 받았다.

더구나 이날 오전 같은 공항에 도착한 바레인과 쿠웨이트 등 GCC(걸프협력회의) 참가국 정상들은 살만 국왕이 직접 영접했다.

공항 의전도 단출했다. 의장대도 없었고 양국 국가는 연주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파이살 왕자 등과 가벼운 악수만 했다. 주요국 정상이 오면 도착 장면을 생중계하던 국영 사우디 TV는 오바마 대통령의 도착 장면을 내보내지 않았다.

미국 CNN방송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8년 사우디 방문 때 공항에서 국왕에게 키스 세례를 받았다"며 "백악관은 부인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우디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AP는 걸프리서치센터 안보전문가인 무스타파 알라니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바마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사우디가 오바마를 홀대한 이유는?

그렇다면 왜 사우디는 오바마 대통령을 환영하지 않았을까?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자신들과 경쟁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핵협상을 하고 관계 개선에 나선 데 대해 불만이 많다. 지난 1월 사우디가 시아파 종교 지도자를 처형한 것을 계기로 이란과 국교까지 단절한 마당에 미국이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건 사우디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또 테러의 주범인 이슬람 국가 IS에 대한 견해차이도 두 나라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같은 수니파인 '이슬람 국가(IS)' 격퇴에 적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안보에선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여기에 9·11 테러와 관련한 비밀 문건 공개 움직임도 사우디로선 불편하다. 최근 미 의회가 9·11 테러범과 사우디 왕가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연계 의혹을 법정에서 다룰 수 있게 이들에 대한 면책특권을 해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살만 국왕과 2시간 반가량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회담 후 "양국 간의 역사적인 우정과 뿌리 깊은 전략적 동반관계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네 번째 만난 양국정상의 대화는 매우 어색하고 의례적인 말들뿐이었다.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저희 왕국을 찾아주신 데 대해 저와 사우디 국민들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국왕께 인사를 드리고 호의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튿날 걸프협력회의에 참석한 중동의 정상들과 회담했다.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수니파 국가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 정상에게 그들과 경쟁 관계인 시아파 이란과의 협력문제를 이해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미 대통령의 방문 전날에 애쉬 카터 국방부 장관을 보내 걸프국들의 안보를 위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훈련과 육해공군에 걸친 협력을 강조해 걸프국들의 반감을 다독여야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도 홀대?

오바마 대통령은 24시간 남짓 리야드에 머문 뒤 다음 목적지인 런던을 향해 떠났다. 미국 대통령의 환송도 환영 못지않게 단출했다. 관계자 몇 명이 공항에 나왔을 뿐이다.



백악관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외국 정상의 미국 방문 시 오바마 대통령이 공항에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사우디의 오바마 푸대접 논란을 일축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출국하는 외국의 정상에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을 어떻게 환송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사우디를 향해 떠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출발 장면을 보자.

백악관의 웨스트윙 문을 열고 나온 오바마 대통령은 혼자서 백악관 잔디 위를 걷는다. 대통령 전용 헬기를 타기 직전 취재진들에게 손을 흔들고 혼자 떠나는 것처럼 날아오른다. 공항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관계자 한 명의 안내를 받으며 비행기까지 가더니 늘 그렇듯이 혼자서 계단을 뛰어오른다. 그리곤 돌아서서 손을 흔들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비행기는 관계자 4명이 거수경례를 하는 동안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출국에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것일까? 실무적인 방문을 위해 떠나는 길에 대통령이 혼자 나서는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 굳이 '환대'가 아니어도 할 일을 하는 대통령에 대한 '예의'로도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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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 사우디 방문…홀대와 환대 사이
    • 입력 2016-04-22 19:07:56
    취재K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면서 '홀대'를 받았다. 비행기 문을 열고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든 뒤 트랩을 뛰어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오바마 대통령을 맞이하러 공항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리야드 주지사인 파이살 빈 반다르 왕자가 아델 알 주바이르 외교장관과 리야드 경찰서장 등과 미국 대통령을 맞이했다.

주요국 정상이 방문할 때 살만 국왕이나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알사우드 왕세자가 직접 공항에서 영접하는 전례를 감안하면 엄청난 '홀대'를 받은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선 3차례 사우디 방문 때마다 살만 국왕의 공항 영접을 받았다.

더구나 이날 오전 같은 공항에 도착한 바레인과 쿠웨이트 등 GCC(걸프협력회의) 참가국 정상들은 살만 국왕이 직접 영접했다.

공항 의전도 단출했다. 의장대도 없었고 양국 국가는 연주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파이살 왕자 등과 가벼운 악수만 했다. 주요국 정상이 오면 도착 장면을 생중계하던 국영 사우디 TV는 오바마 대통령의 도착 장면을 내보내지 않았다.

미국 CNN방송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8년 사우디 방문 때 공항에서 국왕에게 키스 세례를 받았다"며 "백악관은 부인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사우디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AP는 걸프리서치센터 안보전문가인 무스타파 알라니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바마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사우디가 오바마를 홀대한 이유는?

그렇다면 왜 사우디는 오바마 대통령을 환영하지 않았을까?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자신들과 경쟁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핵협상을 하고 관계 개선에 나선 데 대해 불만이 많다. 지난 1월 사우디가 시아파 종교 지도자를 처형한 것을 계기로 이란과 국교까지 단절한 마당에 미국이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건 사우디 입장에선 일종의 '배신'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또 테러의 주범인 이슬람 국가 IS에 대한 견해차이도 두 나라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가 같은 수니파인 '이슬람 국가(IS)' 격퇴에 적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안보에선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여기에 9·11 테러와 관련한 비밀 문건 공개 움직임도 사우디로선 불편하다. 최근 미 의회가 9·11 테러범과 사우디 왕가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연계 의혹을 법정에서 다룰 수 있게 이들에 대한 면책특권을 해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갈등은 더욱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살만 국왕과 2시간 반가량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회담 후 "양국 간의 역사적인 우정과 뿌리 깊은 전략적 동반관계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네 번째 만난 양국정상의 대화는 매우 어색하고 의례적인 말들뿐이었다.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저희 왕국을 찾아주신 데 대해 저와 사우디 국민들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국왕께 인사를 드리고 호의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튿날 걸프협력회의에 참석한 중동의 정상들과 회담했다.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수니파 국가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 정상에게 그들과 경쟁 관계인 시아파 이란과의 협력문제를 이해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미 대통령의 방문 전날에 애쉬 카터 국방부 장관을 보내 걸프국들의 안보를 위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훈련과 육해공군에 걸친 협력을 강조해 걸프국들의 반감을 다독여야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도 홀대?

오바마 대통령은 24시간 남짓 리야드에 머문 뒤 다음 목적지인 런던을 향해 떠났다. 미국 대통령의 환송도 환영 못지않게 단출했다. 관계자 몇 명이 공항에 나왔을 뿐이다.



백악관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외국 정상의 미국 방문 시 오바마 대통령이 공항에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사우디의 오바마 푸대접 논란을 일축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출국하는 외국의 정상에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을 어떻게 환송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사우디를 향해 떠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출발 장면을 보자.

백악관의 웨스트윙 문을 열고 나온 오바마 대통령은 혼자서 백악관 잔디 위를 걷는다. 대통령 전용 헬기를 타기 직전 취재진들에게 손을 흔들고 혼자 떠나는 것처럼 날아오른다. 공항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관계자 한 명의 안내를 받으며 비행기까지 가더니 늘 그렇듯이 혼자서 계단을 뛰어오른다. 그리곤 돌아서서 손을 흔들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비행기는 관계자 4명이 거수경례를 하는 동안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출국에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것일까? 실무적인 방문을 위해 떠나는 길에 대통령이 혼자 나서는 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 굳이 '환대'가 아니어도 할 일을 하는 대통령에 대한 '예의'로도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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