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조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홀로 된 사연은?

입력 2016.04.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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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시화호에 보기 드문 새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130cm가 넘는 큰 덩치에 온몸에 황갈색과 흰색 깃이 섞여 있습니다. 다른 무리도 없이 홀로 와서 습지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았습니다. 바로 시베리아 흰두루미의 유조, 어린 새였습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2급 동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새입니다.

시베리아흰두루미 유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동물이다.시베리아흰두루미 유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동물이다.






시화호 주변에는 습지가 많습니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긴 발로 얕은 물 위를 듬성듬성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습니다. 작은 물고기와 게, 수생곤충 등을 잘도 찾아 먹습니다. 긴 다리는 얕은 물을 걷기에 좋고 긴 부리는 갯벌 속 구멍에 숨은 먹이를 찾는 데 적합합니다.

집요하게 구멍을 파헤쳐 결국 먹이를 잡아냅니다. 식물 뿌리도 캐 먹습니다. 수생식물들은 겨울철에 영양분을 땅속 덩이줄기에 보관하는데 그런 덩이줄기가 시베리아흰두루미가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시베리아흰두루미가 거미를 잡아먹고 있다. 시베리아흰두루미가 거미를 잡아먹고 있다.




때로는 물가가 아닌 갈대밭 땅 위를 걸어 다닙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갈대밭 사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입질합니다. 거미줄에 앉아있는 거미를 먹는 겁니다. 생태계가 되살아난 시화호 습지는 이렇듯 온통 먹거리가 널려 있습니다. 시베리아흰두루미는 한 달가량 머물다가 4월 중순 떠났습니다. 홀로 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어린 새, 어떤 사연일까요?





시베리아 흰두루미 유조는 왜 혼자 왔을까?

두루미류는 여름철 번식지에서는 가족끼리 따로 있지만 겨울에는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두루미나 재두루미, 흑두루미 모두 철원이나 일본 이즈미, 순천만 등지에 모여서 월동합니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도 겨울에는 전체 개체군의 대부분이 중국 포양호나 양쯔강 일대에서 지냅니다.

여름에 시베리아에서 번식한 뒤 겨울에는 중국 남쪽으로 이동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린 새 한 마리가 봄에 시화호에 왔을까요? 어미도 없는 어린 새는 생존 가능성도 희박한데 어디서 겨울을 보냈을까요?

2004년 흑산도에서 촬영한 시베리아흰두루미 성조. 어린 새와 달리 온몸이 흰색 깃털로 덮여 있다. 첫째 날개 깃이 검은색이지만 흰 깃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사진=박종길]2004년 흑산도에서 촬영한 시베리아흰두루미 성조. 어린 새와 달리 온몸이 흰색 깃털로 덮여 있다. 첫째 날개 깃이 검은색이지만 흰 깃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사진=박종길]


유조의 첫째 날개 깃도 검은색이다. 날개를 펼 때만 검은 깃이 드러난다.유조의 첫째 날개 깃도 검은색이다. 날개를 펼 때만 검은 깃이 드러난다.


3월은 두루미류가 월동을 마치고 번식지인 시베리아나 중국 북부 습지로 이동하는 시기입니다. 시화호에 나타난 시베리아흰두루미도 남쪽 어디선가 겨울을 지내고 북쪽으로 가던 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 국내 남쪽 월동지 어디서도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1,000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월동했던 순천만이나 천수만에도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없었습니다.



부모 잃은 뒤 다른 두루미류 따라 이동한 듯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 일본 이즈미가 유력합니다. 일본 이즈미는 1만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월동하는 곳입니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도 해마다 몇 마리씩 월동합니다. 결국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했던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재두루미나 흑두루미 등 다른 두루미류와 함께 북상하다가 무리에서 떨어서 시화호에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시화호에서 영양을 보충하고 체력을 회복한 뒤 다시 북쪽 번식지로 올라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루미류는 가족 단위로 지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린 새가 홀로 다니는 것은 일찌감치 부모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번식지에서나 월동지로 이동 중에 부모를 천적이나 사고 등으로 잃어버리자 다른 두루미류에 섞여서 일본 이즈미로 이동했다가 역시 다른 무리와 함께 북상 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원의 추정입니다. 어미가 없더라도 혼자서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면 생존 가능성도 크다고 합니다.



두루미류의 온정... 고아된 새끼 돌봐주는 특성

2011년 철원에서 발견된 시베리아흰두루미 유조. 두루미 가족과 함께 월동했다. (사진 윤순영)2011년 철원에서 발견된 시베리아흰두루미 유조. 두루미 가족과 함께 월동했다. (사진 윤순영)


지난 2011년에도 철원에서 시베리아 흰두루미 어린 새 한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이때는 두루미 무리와 함께 섞여 지냈습니다. 두루미 가족 속에서 다른 유조와 어울려 다니는 행태가 마치 어른 두루미 부부에 입양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두루미류는 어미 잃은 새끼를 받아들여 자기 가족처럼 돌봐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당시 월동을 무사히 마친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이듬해에도 철원에서 월동했고, 그 다음 해에는 부부로 쌍을 이뤄 찾아왔습니다.

2011년 철원에서 처음 목격된 시베리아 흰두루미 유조가 2013년에는 짝을 이뤄 철원을 다시 찾아왔다. [사진=윤순영]2011년 철원에서 처음 목격된 시베리아 흰두루미 유조가 2013년에는 짝을 이뤄 철원을 다시 찾아왔다. [사진=윤순영]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전 세계에 3,500 마리 가량만 남은 국제적 멸종 위기종입니다. 주요 서식지에서의 댐 건설과 각종 개발행위 때문에 점점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철원, 파주, 천수만, 순천만, 흑산도 등지에서 드물게 한두 마리씩 목격됐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올해 시화호에서 유조 한 마리가 한 달가량 머물다 간 경우는 극히 이례적입니다. 철원에 왔던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쌍을 이뤄 다시 왔던 것처럼 시화호 습지에도 무사히 다시 찾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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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귀조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홀로 된 사연은?
    • 입력 2016-04-24 12:00:36
    취재K
지난 3월, 시화호에 보기 드문 새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130cm가 넘는 큰 덩치에 온몸에 황갈색과 흰색 깃이 섞여 있습니다. 다른 무리도 없이 홀로 와서 습지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았습니다. 바로 시베리아 흰두루미의 유조, 어린 새였습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2급 동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새입니다.

시베리아흰두루미 유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동물이다.





시화호 주변에는 습지가 많습니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긴 발로 얕은 물 위를 듬성듬성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습니다. 작은 물고기와 게, 수생곤충 등을 잘도 찾아 먹습니다. 긴 다리는 얕은 물을 걷기에 좋고 긴 부리는 갯벌 속 구멍에 숨은 먹이를 찾는 데 적합합니다.

집요하게 구멍을 파헤쳐 결국 먹이를 잡아냅니다. 식물 뿌리도 캐 먹습니다. 수생식물들은 겨울철에 영양분을 땅속 덩이줄기에 보관하는데 그런 덩이줄기가 시베리아흰두루미가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시베리아흰두루미가 거미를 잡아먹고 있다.



때로는 물가가 아닌 갈대밭 땅 위를 걸어 다닙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갈대밭 사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입질합니다. 거미줄에 앉아있는 거미를 먹는 겁니다. 생태계가 되살아난 시화호 습지는 이렇듯 온통 먹거리가 널려 있습니다. 시베리아흰두루미는 한 달가량 머물다가 4월 중순 떠났습니다. 홀로 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어린 새, 어떤 사연일까요?





시베리아 흰두루미 유조는 왜 혼자 왔을까?

두루미류는 여름철 번식지에서는 가족끼리 따로 있지만 겨울에는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두루미나 재두루미, 흑두루미 모두 철원이나 일본 이즈미, 순천만 등지에 모여서 월동합니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도 겨울에는 전체 개체군의 대부분이 중국 포양호나 양쯔강 일대에서 지냅니다.

여름에 시베리아에서 번식한 뒤 겨울에는 중국 남쪽으로 이동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린 새 한 마리가 봄에 시화호에 왔을까요? 어미도 없는 어린 새는 생존 가능성도 희박한데 어디서 겨울을 보냈을까요?

2004년 흑산도에서 촬영한 시베리아흰두루미 성조. 어린 새와 달리 온몸이 흰색 깃털로 덮여 있다. 첫째 날개 깃이 검은색이지만 흰 깃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사진=박종길]

유조의 첫째 날개 깃도 검은색이다. 날개를 펼 때만 검은 깃이 드러난다.

3월은 두루미류가 월동을 마치고 번식지인 시베리아나 중국 북부 습지로 이동하는 시기입니다. 시화호에 나타난 시베리아흰두루미도 남쪽 어디선가 겨울을 지내고 북쪽으로 가던 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 국내 남쪽 월동지 어디서도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1,000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월동했던 순천만이나 천수만에도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없었습니다.



부모 잃은 뒤 다른 두루미류 따라 이동한 듯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 일본 이즈미가 유력합니다. 일본 이즈미는 1만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월동하는 곳입니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도 해마다 몇 마리씩 월동합니다. 결국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했던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재두루미나 흑두루미 등 다른 두루미류와 함께 북상하다가 무리에서 떨어서 시화호에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시화호에서 영양을 보충하고 체력을 회복한 뒤 다시 북쪽 번식지로 올라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루미류는 가족 단위로 지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린 새가 홀로 다니는 것은 일찌감치 부모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번식지에서나 월동지로 이동 중에 부모를 천적이나 사고 등으로 잃어버리자 다른 두루미류에 섞여서 일본 이즈미로 이동했다가 역시 다른 무리와 함께 북상 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원의 추정입니다. 어미가 없더라도 혼자서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면 생존 가능성도 크다고 합니다.



두루미류의 온정... 고아된 새끼 돌봐주는 특성

2011년 철원에서 발견된 시베리아흰두루미 유조. 두루미 가족과 함께 월동했다. (사진 윤순영)

지난 2011년에도 철원에서 시베리아 흰두루미 어린 새 한 마리가 발견됐습니다. 이때는 두루미 무리와 함께 섞여 지냈습니다. 두루미 가족 속에서 다른 유조와 어울려 다니는 행태가 마치 어른 두루미 부부에 입양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두루미류는 어미 잃은 새끼를 받아들여 자기 가족처럼 돌봐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당시 월동을 무사히 마친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이듬해에도 철원에서 월동했고, 그 다음 해에는 부부로 쌍을 이뤄 찾아왔습니다.

2011년 철원에서 처음 목격된 시베리아 흰두루미 유조가 2013년에는 짝을 이뤄 철원을 다시 찾아왔다. [사진=윤순영]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전 세계에 3,500 마리 가량만 남은 국제적 멸종 위기종입니다. 주요 서식지에서의 댐 건설과 각종 개발행위 때문에 점점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철원, 파주, 천수만, 순천만, 흑산도 등지에서 드물게 한두 마리씩 목격됐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올해 시화호에서 유조 한 마리가 한 달가량 머물다 간 경우는 극히 이례적입니다. 철원에 왔던 시베리아 흰두루미가 쌍을 이뤄 다시 왔던 것처럼 시화호 습지에도 무사히 다시 찾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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