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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중동에 부는 여권 신장 바람
입력 2016.05.08 (07:17)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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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프만 연안에 위치한 쿠웨이트.

우리나라 경상북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이지만 원유 매장량은 전 세계 5위권 안에 들 만큼 풍부한 지하자원을 자랑합니다.

북쪽으로 이라크, 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으로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막에 있는 작은 부족국가였지만 석유에서 얻은 막대한 수익을 이용해 급속히 근대화를 이뤘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만큼 전 국민의 90% 가까이가 이슬람을 믿습니다.

이슬람에서는 교리에 따라 금기시되는 것들을 '하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성이 머리카락이나 맨살을 드러내는 것도 하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여성은 얼굴과 몸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인 히잡이나 니캅, 아바야 등을 착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쿠웨이트 거리에서 이런 전통 의상을 과감하게 벗어버린 여성들이 쉽게 눈에 띕니다.

히잡을 쓰지 않고, 화려한 화장을 하거나, 선글라스를 쓰기도 하고, 민소매나 다리가 훤히 보이는 치마를 입기도 합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고 자유롭게 거리를 걷습니다.

쇼핑몰에는 서구식 기성복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합니다.

금발의 서양 모델이 등장하는 대형 광고판이 쇼핑몰 한가운데 걸려 쿠웨이트의 변화를 실감케 합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옷으로 각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

보호자 역할을 하는 남성 없이 여성들끼리만 외출해 쇼핑몰에서 커피를 마시는가 하면, 여성들끼리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합니다.

여성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 것도 더는 금기시되지 않습니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아흐마드 칼라프 씨는 남성들도 이런 변화를 존중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아흐마드 칼라프(엔지니어) : "남편들이 이해심이 많아졌고 오히려 부인들을 모든 측면에서 도와줍니다. 보기 좋습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이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성들의 교육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쿠웨이트 전체 인구의 69%가 26살 이하의 청소년들로, 젊은 층들의 인식이 바뀐 데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올해 서른 살의 파라 씨는 최근 쿠웨이트 도심에 법률 사무소를 차렸습니다.

학업 기간이 길어 평균 결혼 연령인 20대 초중반을 훌쩍 넘겼지만 일할 때 가장 즐겁습니다.

히잡 대신 바지 정장 차림에 짧은 커트 머리를 즐겨 합니다.

<인터뷰> 파라 알 무살람(변호사) : "부모님은 제가 예술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저는 예술을 공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르단에 가서 법을 공부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여성 변호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합니다.

<인터뷰> 파라 알 무살람(변호사) : "몇몇 경찰들은 매우 종교적이고 보수적이어서 저를 바라보지도,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여자가 왜 이 분야(법조계)에 있지?'라고 말합니다."

과거 남성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병원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국립 병원에서 의사로 일해 온 포토 알페달라 씨는 변화를 몸소 겪은 산증인입니다.

<인터뷰> 포토 알페달라(의사) : "예전에는 남성들과 주로 일했지만, 지금은 병원에 가면 여성 의사가 남성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회 텔레비전 방송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나즈마 씨는 쿠웨이트에서 유명인사입니다.

6개월 전 자유연애를 통해 결혼했는데 남편보다 수입이 더 많습니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여성의 얼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거나 촬영하는 것이 금기시되지만 나즈마 씨는 당당히 카메라 앞에 섰고 편견을 이겨냈습니다.

<인터뷰> 나즈마 알 샤말리(앵커) : "카메라에 제 얼굴을 노출시킨 것은 제 선택입니다. 대부분의 정책이 여성이 아닌 남성을 위한 것입니다."

정치계에서도 여성들이 유리 천장을 허물었습니다.

2009년 쿠웨이트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2013년 연임에 성공한 서파 알하심 씨는 현재 유일한 여성 의원입니다.

쿠웨이트에서는 지난 2005년 여성의 참정권이 처음으로 허용됐고 여성 국회의원 4명이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서파 알하심(최초 2선 여성 국회의원) : "생각과 사고방식에는 성별이 없습니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똑같습니다."

알하심 의원은 꿈을 이루기 위해 쿠웨이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 대학 등 3개 대학에서 학문적 소양을 닦았습니다.

여성 최고경영자로 전문성도 쌓은 뒤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도 했지만 이혼 후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며 담담하게 경험담을 털어놓습니다.

<인터뷰> 서파 알하심(최초 2선 여성 국회의원) : "때로는 이혼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여권 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중동 국가에서 이혼은 더는 금기시되지 않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쿠웨이트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과거 20%대에 머물던 이혼율은 최근 50%를 넘어섰습니다.

결혼한 2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셈입니다.

3년 전 이혼을 선택한 살와 씨는 이혼이 더는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살와(이혼 여성) : "과거와 달리 이혼 후 여성들은 남편 없이 더 잘 지냅니다. 편하고 원하는 대로 여행을 가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부도 이혼 여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습니다.

<인터뷰> 살와(이혼 여성) : "이혼한 여성이 직업이 없다면 정부로부터 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에 따라 아파트도 지급됩니다."

그렇다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혼율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혼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도 차별적입니다.

<인터뷰> 서파 알하심(최초 2선 여성 국회의원) : "정부는 이혼 여성에게 사막 한가운데 제한된 구역에 있는 아파트만을 제공합니다. 해안가에 멋진 아파트가 많은데 왜 이혼한 여성들은 그런 곳에 살 수 없나요?"

<인터뷰> 나즈마 알 샤말리(앵커) : "만약 이혼한 여성이 (정부로부터) 아파트를 받으려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중동 국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기까지 아직 먼 길을 더 가야 합니다.

많은 중동국가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중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막을 수는 없어 보입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동 사회를 변화시킬 강력한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쿠웨이트에서 천효정입니다.
  • [현장] 중동에 부는 여권 신장 바람
    • 입력 2016-05-08 07:17:09
    국제
 걸프만 연안에 위치한 쿠웨이트.

우리나라 경상북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이지만 원유 매장량은 전 세계 5위권 안에 들 만큼 풍부한 지하자원을 자랑합니다.

북쪽으로 이라크, 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으로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막에 있는 작은 부족국가였지만 석유에서 얻은 막대한 수익을 이용해 급속히 근대화를 이뤘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만큼 전 국민의 90% 가까이가 이슬람을 믿습니다.

이슬람에서는 교리에 따라 금기시되는 것들을 '하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성이 머리카락이나 맨살을 드러내는 것도 하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여성은 얼굴과 몸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인 히잡이나 니캅, 아바야 등을 착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쿠웨이트 거리에서 이런 전통 의상을 과감하게 벗어버린 여성들이 쉽게 눈에 띕니다.

히잡을 쓰지 않고, 화려한 화장을 하거나, 선글라스를 쓰기도 하고, 민소매나 다리가 훤히 보이는 치마를 입기도 합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고 자유롭게 거리를 걷습니다.

쇼핑몰에는 서구식 기성복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합니다.

금발의 서양 모델이 등장하는 대형 광고판이 쇼핑몰 한가운데 걸려 쿠웨이트의 변화를 실감케 합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옷으로 각자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

보호자 역할을 하는 남성 없이 여성들끼리만 외출해 쇼핑몰에서 커피를 마시는가 하면, 여성들끼리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합니다.

여성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 것도 더는 금기시되지 않습니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아흐마드 칼라프 씨는 남성들도 이런 변화를 존중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아흐마드 칼라프(엔지니어) : "남편들이 이해심이 많아졌고 오히려 부인들을 모든 측면에서 도와줍니다. 보기 좋습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이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성들의 교육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쿠웨이트 전체 인구의 69%가 26살 이하의 청소년들로, 젊은 층들의 인식이 바뀐 데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올해 서른 살의 파라 씨는 최근 쿠웨이트 도심에 법률 사무소를 차렸습니다.

학업 기간이 길어 평균 결혼 연령인 20대 초중반을 훌쩍 넘겼지만 일할 때 가장 즐겁습니다.

히잡 대신 바지 정장 차림에 짧은 커트 머리를 즐겨 합니다.

<인터뷰> 파라 알 무살람(변호사) : "부모님은 제가 예술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저는 예술을 공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르단에 가서 법을 공부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여성 변호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합니다.

<인터뷰> 파라 알 무살람(변호사) : "몇몇 경찰들은 매우 종교적이고 보수적이어서 저를 바라보지도,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여자가 왜 이 분야(법조계)에 있지?'라고 말합니다."

과거 남성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병원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국립 병원에서 의사로 일해 온 포토 알페달라 씨는 변화를 몸소 겪은 산증인입니다.

<인터뷰> 포토 알페달라(의사) : "예전에는 남성들과 주로 일했지만, 지금은 병원에 가면 여성 의사가 남성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회 텔레비전 방송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나즈마 씨는 쿠웨이트에서 유명인사입니다.

6개월 전 자유연애를 통해 결혼했는데 남편보다 수입이 더 많습니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여성의 얼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거나 촬영하는 것이 금기시되지만 나즈마 씨는 당당히 카메라 앞에 섰고 편견을 이겨냈습니다.

<인터뷰> 나즈마 알 샤말리(앵커) : "카메라에 제 얼굴을 노출시킨 것은 제 선택입니다. 대부분의 정책이 여성이 아닌 남성을 위한 것입니다."

정치계에서도 여성들이 유리 천장을 허물었습니다.

2009년 쿠웨이트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2013년 연임에 성공한 서파 알하심 씨는 현재 유일한 여성 의원입니다.

쿠웨이트에서는 지난 2005년 여성의 참정권이 처음으로 허용됐고 여성 국회의원 4명이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서파 알하심(최초 2선 여성 국회의원) : "생각과 사고방식에는 성별이 없습니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똑같습니다."

알하심 의원은 꿈을 이루기 위해 쿠웨이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 대학 등 3개 대학에서 학문적 소양을 닦았습니다.

여성 최고경영자로 전문성도 쌓은 뒤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도 했지만 이혼 후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며 담담하게 경험담을 털어놓습니다.

<인터뷰> 서파 알하심(최초 2선 여성 국회의원) : "때로는 이혼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여권 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중동 국가에서 이혼은 더는 금기시되지 않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쿠웨이트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과거 20%대에 머물던 이혼율은 최근 50%를 넘어섰습니다.

결혼한 2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셈입니다.

3년 전 이혼을 선택한 살와 씨는 이혼이 더는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살와(이혼 여성) : "과거와 달리 이혼 후 여성들은 남편 없이 더 잘 지냅니다. 편하고 원하는 대로 여행을 가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부도 이혼 여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습니다.

<인터뷰> 살와(이혼 여성) : "이혼한 여성이 직업이 없다면 정부로부터 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법에 따라 아파트도 지급됩니다."

그렇다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혼율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이혼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도 차별적입니다.

<인터뷰> 서파 알하심(최초 2선 여성 국회의원) : "정부는 이혼 여성에게 사막 한가운데 제한된 구역에 있는 아파트만을 제공합니다. 해안가에 멋진 아파트가 많은데 왜 이혼한 여성들은 그런 곳에 살 수 없나요?"

<인터뷰> 나즈마 알 샤말리(앵커) : "만약 이혼한 여성이 (정부로부터) 아파트를 받으려면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중동 국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기까지 아직 먼 길을 더 가야 합니다.

많은 중동국가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중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막을 수는 없어 보입니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동 사회를 변화시킬 강력한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쿠웨이트에서 천효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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