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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만의 노동당 대회 ‘김정은 체제’ 향방은?
입력 2016.05.08 (08:10) 수정 2016.05.08 (10:14) 일요진단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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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연휴 잘 보내고 계신 지요?

북한의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가 금요일인 6일 시작돼서 오늘로 사흘째 계속 중입니다.

첫날 김정은 제1비서의 개회사가 있었고요.

둘째 날은 김정은의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 이어서 토론이 있었다고 하죠.

셋째 날인 오늘은 당규약 개정논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선노동당 대회 1980년 그때는 김일성 주석 시절이었죠.

그 이후 36년 만에 열린 건데요.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없었어요.

언제까지 며칠간 무엇이 논의되는지 북한 관영매체 보도를 들여다볼 수밖에요.

이번 주 일요진단 한 시간 생방송입니다.

북한학 전공 교수 두 분 모셨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두 분 어서 오십시오.

일요일 아침과 또 연휴에 이렇게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조선노동당 대회 이번이 일곱번째라는 거죠.

조선노동당 대회가 도대체 어떤 건지부터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북한은 우리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직접 선거에서 뽑지 않는 형태죠.

그래서 총선과 대선이 사실상 없습니다마는 총선과 대선을 합한 행사가 하나 있는데 이게 바로 조선노동당 당대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북한은 이 당대회를 통해서 일종의 지도자를 선출, 추대하는 그런 형식의 행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저희가 대관식이라는 언론에서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왕관을 지도자 머리 위에 씌우는 정치행사인데 이를 통해서 김정은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이어가는 실질적인 지도자라는 그런 것을 추대하는 정치 이벤트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총선과 대선을 합친 행사다.

이 말이 와닿네요.

고 교수님, 그런데 북한의 당대회 이렇게 큰 행사 같으면 시작할 때 며칠간 이렇게이렇게 한다 이런 게 예고가 되고 알려져야 되는 거아닌가 싶은데 며칠까지 하는지 지금 알려진 바가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7차 당대회를 개최 공고를 할 때도 5월 초에 한다고 공고를 한 후에 얼마 전에 5월 6일부터 7차 당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된다고 하는 구체적인 일정을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6차 당대회 기준으로 보면 한 4일 정도 당대회를 개최해 왔었습니다.

그러니까 당대회라고 하면 북한은 당위의 국가체제입니다.

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력을 독점하고 지도적 역할을 행사하기 때문에 당의 행사가 매우 중요한 그런 정치행사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첫날은 개회사를 하고 총화보고 그러니까 지난 36년 동안에 당이 해 왔던 혁명과 건설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총결산하는 평가가 있고.

그다음에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그동안에 관련된 총화가 있고 당규약 개정과 함께 김정은을 최고 직책으로 추대하는 절차가 있고.

그밖에 인사와 조직개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절차를 모두 마무리지으려면 적어도 3, 4일 걸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 교수님 말씀에 대해서 한 가지만 추가를 드리면 이번 행사를 우리 언론에서 깜깜이 행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3일에서 4일 정도 진행하는 걸로 돼 있는데.

80년 6차 노동당 당대회 때 김일성이 지난 10년간.

5차 당대회가 70년에 열렸으니까 10년 동안에 고 교수님 말씀한 총화사업 평가를 5시간에 걸쳐서 장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36년 만에 열리니까 금요일날 시작을 해서 하루 가지고 안 되고 어제 토요일 날 하루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총화 날짜만 이틀을 잡아먹어서 당초에 이게 3박 4일 일정대로 끝내겠느냐.

그야말로 외신을 불러놓고 하는 깜깜이 행사라 일정에 관해서는 정말 저희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사흘째니까 본래 이전의 대회로 하면 내일이 나흘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것 갖고 되겠느냐 이런 관측도 나오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걸 여쭤보고 싶어요.

보면 북한의 이런 큰 당대회 이런 걸 왜 주말에 하는지.

그리고 북한 핵실험이라든가 미사일 발사 이런 것도 명절 때 한다든가 이런 게 왜 그러는지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는 금요일 날 시작하서 아마 월요일 아니면 화요일에 시작되는데 북한의 어떤 의도는 주말에 해야지만 대표자들이 일의 손실, 자기 직장에서 일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마디로 노력동원의 형식이고요.

보통 핵실험, 미사일 발사는 주로 미국 시간을 겨냥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를 봐달라.

그래서 워싱턴에 아침에 보도가 되면 우리는 오후가 되는.

그래서 미국 겨냥한 그런 타이밍 전략인 것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번 당대회가 지난 80년에 이어서 36년 만에 열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때는 김일성 시절이었고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한 번도 없었어요.

36년 만에.

그동안 당대회가 없었던 까닭 그리고 36년 만에 이 시점에서 여는 까닭 고 교수님은 어떻게 분석하세요?-당규약에 의하면 5년마다 한 번씩 당대회를 열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당 국가체제를 운영하는 나라에서는 중국 같으면 예외 없이 5년마다 한 번씩 당대회를 열죠.

그런데 북한의 경우는 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약대로 운영이 안 되는데요.

그건 수령체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령의 직할체제이기 때문에 당대회의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국정을 운영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 인민생활을 한 단계 높인 다음에 7차 당대회를 해야 된다.

그것이 교시였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시대 80년대 이후 중반부터 사회주의권의 개혁개방과 붕괴가 있었고 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또 그 이후에 고난의 행군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민생활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가 없었죠.

그래서 당대회를 열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밖에도 김정은 시대에 오기 시대에 김정일 시대는 선군정치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국방위원회라고 하는 당기구가 아닌 국가기구의 국방위원회 수반으로서 통치를 상당기간 했습니다.

그러다 당의 역할 자체가 별로 중요치 않았던 것이죠.

그러면서 그동안 36년 동안 하지 않았는데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지난 4년간의 정비기간을 거쳐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선포하기 위해서 7차 당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6년 만에 여는 대회이니만큼 아주 성대하게 치를 거다 이렇게 보통 예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성대한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가 관영매체 보도를 통해서만 봅니다마는.

그리고 외빈들도 초청이 거의 없는 것 같고.

과거 당대회와 비교해서 어떻게 평가를 하세요?

-80년 당대회하고 한 세 가지 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80년 6차 당대회를 열 때는 북한이 정말 잘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희 한국은 당시에 광주사태가 있어서 어려웠죠.

김일성 부자는 김정일을 다음 후계자로 세우는 6차 행사를 아주 성대하게 행사를 했습니다.

국제제재도 없었고 국제사회에서 지위도 괜찮았다고 봤죠.

두 번째는 아무래도 북핵문제가 80년에는 없었고 지금 2016년에는 북핵문제가 가장 큰 당면제재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최악이고 그 당시는 나름대로 차선에 있었다라는 거고요.

그래서 중국과의 관계가 굉장히 좋았던 시절이죠.

이번에는 중국은 전혀 참석을 하지 않을 정도죠.

그런 차원에서 그 당시하고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행사고요.

그러다 보니까 외빈이 당시에는 188개국에 200여 명의 외빈이 왔지만 이번에 외신기자들을 갖다가 한 100여 명 이상 초청했지만 4.25문화회관 장소에서 200m 바깥에서 비가 오는데 취재를 하게 함으로써 한마디로 외신기자들이 분통을 터뜨렸고.

또 정치행사를 취재하러 왔는데 오히려 공장을 견학시킴으로써 국제제재에 끄떡없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을 선전의 방향을 조금 잘못 둠으로써 정말 초라한, 나름대로 힘은 들였겠지만 바깥에서 보기에는 초라한 행사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고 교수님, 지금 남 교수님도 말씀을 하셨는데요.

외국 기자들을 초청을 해 놓고 실제 당대회를 취재 못하게 하고 이러는 건 왜 그런다고 보세요?

-당대회는 북한의 내부의 정치행사는 분명하고요.

그리고 당의 중요한 의사를 토의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초청할 때도 당대회 안의 취재를 허용하는 걸 전제로 해서 초청한 건 아닌 것 같고요.

다만 당대회를 계기로 해서 그래도 서방 기자들을 초청한 것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김정은식 글라스노스트.

그러니까 공개정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같으면 당대회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당대회가 끝난 다음에 그 내용이 보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었는데요.

지금은 그래도 하루 정도 그날 있었던 건 그날 저녁 정도에 편집해서 보도하는 정도로 어느 정도는 보도해 주고 있고 다만 외신기자들은 기대를 크게 했을 겁니다.

서구식 관형으로 보면 당대회 적어도 개막식 정도는 보여주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갔을 텐데 회의장 자체도 접근이 안 됐으니까 매우 불만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아마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해서 김정은 시대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그런 수단으로써 외신기자들을 대거 초청한 것 같습니다.

그건 지난번 광명성3호기 쏠 때도 외신기자들을 초청했지만 실제로 발사장면은 취재를 못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과 유사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대회에서 무슨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북한 관영매체 보도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죠.

첫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개회사부터 볼까요.

뉴스를 통해서 보셨겠지만 조금 더 길게 다시 한 번 들어보시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대회 주석단에 나오셨습니다.

-주체혁명 위업의 종국적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진군 대회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개회를 선언합니다.

오직 수령님들께서 제시하신 주체혁명노선을 높이 받들어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 고수하고 전진시키기 위한 힘찬 투쟁을 벌이겠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수십년 동안 우리 인민이 단 한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없도록 정세를 항시적으로 긴장시키고 온갖 봉쇄와 압력, 제재로 경제발전과 생존의 길마저 깡그리 가로막았습니다.

첫 수소탄 시험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 발사의 대성공을 이룩하여 전역에서도 빛나는 위훈을 창조하고 전례없는 노력적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나는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 세계 자주화 위업을 위한 투쟁에 고귀한 생을 바친 항일혁명투사들과 애국열사들, 잊지 못할 우리 당의 혁명전우들과 통일애국인사들을 추모하여 묵상할 것을 제의합니다.

이번 당대회는 영광스러운 김일성, 김정일주의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는 역사적인 계기로 됩니다.

-고 교수님 김정은의 개회사가 15분 동안 4516자라고 언론에 그렇게 보도가 돼 있대요.

개회사 내용 중에 가장 특기할 만한 부분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지난 시기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시련의 시기였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국주의 연합세력과 단독으로 투쟁했던 시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냉전시대는 양 진영간의 북한과 관련된 진영이 있어서 그 제국주의 세력과 진영간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권이 붕괴됨으로 해서 북한만 고립무언 상태에서 제국주의 세력들과 단독으로 싸웠다 그것을 아마 강조하면서 그래도 견뎌냈다, 잘 견뎌냈다 이런 주장이 있고 그다음에 연초에 있었던 수소탄 실험.

4차 핵실험과 광명성 4호 인공위성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요.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그것이 매우 중요한 업적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인민생활 향상 공략은 제대로 실현이 못 됐고 그 이유는 자기들대로 반대하는 세력들과 단독으로 싸우는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가운데 경제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는 점을 통해서 변명을 하면서 결국은 핵고도화.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갖춘 것.

그러니까 병진노선의 성과로 군사강국이 됐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 교수님은 어떤 부분을 가장 특기할 부분으로 꼽을까요?-일단 잊을 수 없는 혁명동지라는 표현을 써서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창업공신들을 갖다가 정말 길게 장황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왜 사망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다 얘기를 할까.

그건 본인의 전통성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본인이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지도자가 아니고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일종의 백두혈통의 지도자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를 잘 모셔야 된다라는 그런 측면에서 쭉 얘기를 했는데 그동안 숙청당했던 인물들은 없어진 것 같아요.

장성택이라든가 리영길이라든가 굉장히 창업공신의 유력인사들이 빠진 거 보면 북한에서 역적과 충신을 이번 기회에 아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저도 그 사망한 인물들 이름을 쭉 거명한 게 눈에 들어오던데 먼저 처음에는 숙청된 걸로 알려졌는데 이번에는 거명이 된 분이 있는지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마땅히 거명됐어야 할 인물인데 이번에 빠졌다든지 하는 그런 인물은 없었나요?-마땅히 거명됐어야 되는데 빠진 인물은 외교를 담당했던 강석주인데요.

강석주는 와병 중이어서 아마 행사에 참여를 못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런 인물들이 안 나왔다라는 인물은 없고요.

다만 핵개발의 공신들 이게 UN안보리 개인 제재대상인데 리만건이라든가 박도춘이라든가 핵기술자들이 전부 거론됨으로써 저기 앉아 있는 인물들이 UN의 제재대상의 핵심인물들이다.

그다음에 또 하나 특이한 인물은 역시 김영남이 건재하구나.

내일모레 구십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세대개편으로 물러나야 될 언론 1위 지목인물이 있는데 좌에 김영남, 우에 황병서가 딱 건재함으로써 김정은 시대에 청년중시 정책으로 새 인물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전망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 교수님, 개회사 말미에 노동당 대회 참가 인원 수 몇 명이던가요.

그걸 밝혔어요, 김정은이.

그런데 이걸 보면 노동당 전체 당원 수를 알 수 있다 이런 기사가 있는데 어떤 의미를 갖는 건가요?-3467명이 참석한 걸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원 1000명당 1명이 당대표자로 선발이 됐는데요.

6차 당대회 기준으로는 3220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추산하기를 노동당원이 약 300만 정도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추산으로 볼 때 340만명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런 정도로 추산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당대회라는 것은 당의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에 시군에서 대표자를 뽑아서 도단위에서 선발을 해서 최종적으로 당대회 참가하게 되겠는데요.

그래서 3400여 명의 대표자들이 전체적인 논의를 하고 당대회를 자주 열 수 없으니까 당 중앙위원회를 선발하는 거죠.

당 중앙위원회 위원을 과거 6차 당대회 기준으로 보면 145명입니다.

그것이 규약상으로는 6개월에 한 번씩 전원회의를 열도록 돼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동안에 당의 주요행사라든가 일정과 관련되는 정책 결정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하고요.

그것도 인원이 많으니까 상설적인 당 행정기구로서 비서국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서국의 최고책임자가 당의 최고위직을 차지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김정은은 제1비서라고 얘기하고 있고요.

그리고 정치적인 의사결정은 정치국이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국원들이 핵심적인 권력자라고 할 수 있겠고요.

또 그중에서도 정치국 상임위원회라는 것에서 상임위원을 3명에서 5명 정도로 이렇게 두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될 부분은 지금 나온 명단들은 현재 권력구조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고 미래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은 마지막 인사개편 때 그때 지금 말씀드린 그런 기구에 어떤 인물들이 발탁되느냐.

거기에 따라서 전반적인 세대교체 여부라든가 당 위계와 관련돼서 노장층 배합의 정도라든가 또 청년중시 정책을 펴고 있는 김정은 시대에 청년들이 얼마나 부상하는가.

실질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엘리트들이 누구인가 이런 것을 최종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타난 것은 현재까지 김정은 체제 4년 동안 통치해 왔던 김정일 시대의 인물들과 결합된 그런 권력 엘리트라고 한다면 최종적으로 발표될 인물들을 지켜보면 명실상부하게 김정은 시대를 끌고갈 통치 엘리트 핵심 면면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40만에 조금만 보충을 드리면 지금 340만명의 당원인데 북한 전체 인구가 2500만입니다.

그러면 얼추 계산하면 15% 정도의 당원비율인데 이게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굉장히 높은 비율입니다.

과거에 중국은 거의 10% 이내였죠.

그래서 당원대회가 별따기인데 북한은 역시 체제를 결속하는 과정에서 당원을 늘리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역시 당 중심의 국가로 체제를 유지한다라는 걸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겠습니다.

-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새로운 체제의 주역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마지막 날 지켜보고 그동안은 그동안의 사업 이런 것 그게 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가 첫날, 둘째 날에 걸쳐서 있었다는 거죠.

어떤 내용이었는지 조선중앙텔레비전의 보도를 최성민 기자가 정리했는데요.

보실까요.

-당대회 개막 이틀째.

지난 36년간의 당 사업을 평가하는 사업총화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첫날에 이어 또다시 양복차림으로 등장한 김정은은 당을 강화, 발전시킬 것을 주문했습니다.

-김정은은 우리 당을 영원한 김일성, 김정일 동지의 당, 백전백승의 불패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주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토론자들은 노동당이 곧 김정은의 당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 김정은 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켜 나가는 데 적극 이바지하겠다는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사회주의 강성국가 전설을 위한 김정은의 지침에 대한 박봉주 내각총리의 지지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의 전략적 노선과 투쟁 파업을 뚜렷이 밝혀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역사적인 보고를 전폭적으로 지지 찬동합니다.

-또 김정은의 탁월한 영도로 북한의 핵기술이 최상의 경지에 올라 핵강국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핵기술이 최상의 경지에 올라섰으며 자주적인 핵탄국의 존엄은 기세천출 위인을 영도자로 높이 모신 선군 조선.

조선민족만이 누릴 수 있는 최대 행운, 최대의 특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정군 각 분야를 대표하는 토론자들은 김정은의 과업을 찬양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당과 인민의 최고 영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부디 안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당대회 사흘째인 오늘은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할 통치구조와 핵병진 노선에 대한 당규약 개정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총화보고가 길어지면서 대회 기간이 당초 예상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남 교수님,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올해 신년사에서 이번 7차 당대회에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보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했는데 그런 설계도 같은 게 보입니까, 어떻습니까?-일단은 1월 1일날 신년사에서 휘황한이라는.

그래서 저희가 상당히 기대를 솔직히 했습니다.

휘황하다라는 것은 북한을 먹고 살게 만들기 위해서 경제개혁을 획기적으로 하지 않겠냐.

심지어 휘황이란 단어가 중국의 개혁, 개방까지 점쳐볼 수가 있었는데 사실은 우리가 거기에 속았죠.

속았다는 표현은 뭐하지만 왜냐하면 1월 6일에 전격적인 4차 핵실험을 감행을 했는데 이게 12월 15일날 결재를 했기 때문에 1월 1일에 휘황한 설계도라는 것은 결국 핵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느냐.

그리고 2월 7일날 6차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함으로써 북한이 핵보유 강대국으로서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그런 원칙을 선언하는 그런 신년사였는데 저희가 그런 것을 캐치하지 못한 것은 북한의 전략 전술에 약간은 말렸다고 볼 수 있고요.

당규약 개정의 가장 큰 포인트는 핵보유 강국을 아마 당에 선언하는.

그리고 김정은에 충성, 영웅칭호 이런 미사여구를 당규약 개정에서 가장 핵심으로 집어넣지 않나 예상이 됩니다.

-고 교수님은 김정은의 사업총화보고 중에 가장 눈에 띈 대목을 뽑으신다면 어떤 걸 뽑으시겠어요?

-사업총화보고라는 것은 지난 36년 동안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해 왔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다 특히 북한은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수령체제라 선대 수령의 업적을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주로 그 기조의 내용은 개선과 발전 차원에서 얘기를 한 것이고 대체로 사상 군사강국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많은 강조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제 강국 건설은 이제 핵억제력을 갖췄으니까 앞으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을 좀더 강화해서 경제문제.

특히 민생 향상과 경제발전과 관련되는 청사진을 펼쳐 보이겠다는 미래형이고요.

총화의 대부분의 내용은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 잘 견뎌냈다.

그런 정도의 내용과 함께 핵억제력을 갖추는 데 주력하면서 군사강국이 됐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충분한 억제력을 가지고 경제건설에 매진하자 그런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도된 김정은의 발언내용 중에 말이죠.

핵억제력을 갖췄다는 것과 관련해서 이런 워딩이 있어요.

김정은의 워딩인데요.

핵전파 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하겠다.

자주권 침해받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핵전파라는 말은 우리가 쓰는 핵확산 방지.

미국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죠.

이게 NPT를 북한은 이미 탈퇴를 했어요.

이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요?

-북한이 93년도에 NPT 탈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요구했다가 2003년에 다시 탈퇴를 해서 핵실험.

-핵방지조약이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핵실험을 네 차례 했고 그러면서도 이번에 한 내용은 억제력으로만 사용하겠다.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한은 자기들이 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핵확산방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 핵이 테러 지원국가라든가 또 테러단체에게로 확산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다른 목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억제력으로만 사용한다는 그런 정도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더 이상 확산하지 않겠다는 것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주요내용인 것 같습니다.

-기존에 나왔던 입장인 거죠.

그런데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하겠다 이건 어떤 정도의 진정성이랄까요.

구체성이 있다고 보세요?-세 가지 메시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죠.

첫째는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데 대한 워싱턴에 보내는 메시지죠.

이제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상대하라는 거죠.

전세계 안보리상임이사국과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비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분류가 되는데 그걸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거죠.

북한이 미국을 의도해서 가장 겁을 내는 것은 이게 이전반출입니다.

남포항을 통해서 북한의 핵이 화물선을 통해서 중동으로 간다면 이건 완전히 비핵화를 위반하는 가장 결정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아마 그건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도 그 점을 굉장히 우려하고 있죠.

남포항을 떠나는 순간 그건 피격당할 수 있다라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국제정치적으로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

그러면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느냐.

결국은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 정상화를 겨냥하고 있는 거죠.

그것이 결국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가 물밑에 깔려 있고 앞으로 이번 7차 당대회가 끝나면 중국을 통해서 아니면 독자적으로 워싱턴에 대한 평화협정 제의를 지속적으로 아마 할 것입니다.

최근에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이 평화협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내할 수 있겠느냐, 인정하는 범위가 어느 정도냐라고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미국도 핵실험 후에 북한이 평화협정을 제의할 거라는 데 대해서 상당히 검토하고 있지 않나라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의 발언 중에 우리 자주권 존중하는 나라들과 관계 정상화하겠다 이런 발언도 약간 그런 한미가 담긴 걸로 봐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얘기한 것 중에 평화로운 대외 환경조성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자기들은 3차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병진노선에 명시를 했고 그러니까 적대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해서 평화로운 대외 환경을 조성을 한 다음에 인민생활 향상쪽으로 나가겠다고 하는 그런 움직임을 보였는데 결국은 핵을 가진 북한과 손을 잡아주지 않았죠.

미국도 선핵 폐기론을 내세우면서 북한의 대화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요.

또 우리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내민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돼 있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래서 결국은 북한은 핵을 보유하는 쪽으로 가게 된 것 같은데요.

그 핵정책과 관련해서는 부연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김일성 시대는 6.

25전쟁 때 미국의 핵위협을 받은 이후에 꾸준히 핵을 개발을 해 왔는데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을 내세워놓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정도에 미국이 대북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면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정일 시대에 오면서는 후계체제 구축에 있어서 그것이 핵이 물리적인 담보가 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에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진했던 것 같습니다.

핵을 보유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협상카드로 사용하겠다.

그래서 3자회담, 6자회담 또 제네바 합의,9.19공동성명 이런 형태로 여러 차례 핵과 관련된 협의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김정은 시대 와서는 확실히 3대 세습을 굳히고 유일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핵이 만능의 보고입니다라고 하면서 핵보유쪽으로 확실히 간 것 같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하는 것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 비핵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하지 않겠다는 얘기죠.

그런 의미로 봐야 될 것 같고요.

또 다른 전체는 평화협정을 맺으면 그때 가서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는 그런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당장에 비핵화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경제분야에 있어서 이번 당대회를 통해서 지금 맹아아가 싹트고 있는 장마당 경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암묵적인 허용이 양성화될 건가 이런 부분도 관심이지 않습니까?이 부분은 지금까지 나온 게 경제 관련 정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전망을 하시는지요?-이미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2012년도 6.28 방침이라고 해서 농업생산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농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분조 단위를 15명에서 20명 정도 규모에서 3명에서 5명 분묘니까.

가족농 정도로 가능한 거 아니냐 그런 평가가 있고요.

어쨌든 할당된 목표를 채우면 그 이상 추가로 생산된 부분에 대해서는 생산자가 가져가는 인센티브 제도가 있었고요.

그리고 2014년도에 5.

30조치라고 해서 공업부분에서도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형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원치 않았지만 고난의 행군시대에 시작된 장마당이 확산되면서 시장화 또 달러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 부분은 해석이 두 가지로 엇갈리고 있는데요.

장마당이 확산되고 시장화가 진전되는 것이 저항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북한 체제의 위험요인으로 작동하면서 북한 내부변화의 동인으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고요.

또 다른 한 평가는 중앙에서 공급해 줄 수 없는 부분을 시장을 통해서 해결해 주기 때문에 인민들의 불만을 완화시켜주는 측면도 있고 또 다른 측면은 장마당 매대라는 것을 국가가 허용하면서 거기에 대한 세금을 거둬들입니다.

그러니까 국가 재정부분을 장마당을 통해서 확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통치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장마당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두 가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데 어쨌든 장마당의 확산이라는 것은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 변화에 하나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 교수님, 이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어제 저녁 10시에 나온 보도 중에 주목할 만한 경제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개년 국가경제계획을 얘기를 했습니다.

이거 굉장히 주목할 만한 부분인데요.

일단 북한이 장기경제발전계획을 얘기한 게 87년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면 그동안에 왜 장기발전계획을 얘기하지 않았느냐.

한마디로 능력이 안 돼서 그랬습니다.

이 장기발전계획을 얘기한다라는 것은 플랜과 설계에 따라서 자금 여력이 가능하다라는 얘기인데 그동안 20년 동안 이걸 못했는데 어제 김정은이 처음으로 이걸 얘기를 했다는 이유는 북한이 경제발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사실은 국가경제발전계획을 얘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시장화하고는 조금 배치되는 문제입니다.

북한은 국가가 책임이 없어질 때 시장을 방치하는데 북한 당국에서 5개년 계획을 얘기했다는 것은 국가 주도로 경제계획을 끌고가고 이것이 결국은 시장화에 역행하는 추세가 있기 때문에 이게 우리로서는 양면이 있다.

북한 경제가 조금 자신이 붙은 느낌.

그래서 어느 정도 정상화되는 측면도 있지만 이게 역설적으로 인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시장화에는 반대되는 측면이 있어서 앞으로 북한 경제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관해서 조금 주목을 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정책은 시간관계상 그 정도로 하고요.

통일방안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조국통일의 3대 헌장을 틀어쥐고 통일의 앞길을 걸어가야 한다.

매번 당대회 때마다 통일 관한 제시가 있었는데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이미 선대 수령들이 내놓은 것을 종합한 것입니다.

74년도 7.

4공동성명이 남북간에 통일 원칙에 관한 합의가 있었습니다.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그 당시에 김일성 수상과 박정희 대통령 사이의 대리인들이 서명해서 만든 남북간의 최초의 통일과 관련된 합의 문서죠.

그리고 80년 6차 당대회 때 고려민주연합공화국 창립방안이라고 하는 통일방안을 김일성 주석이 총화보고에서 내놨습니다.

그것과 함께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이라는 것을 93년도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에 이제는 민족끼리 대단결해서 통일을 실현하자.

힘 있는 사람 힘으로 또 지식 있는 사람 지식으로 돈 있는 사람 돈으로 통일에 기여하면서 이제 대단결해서 통일을 하자.

그런 주장을 했는데요.

전문을 아직 공개를 해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할 수가 없어서 그런데요.

6.15와 10.4부분에 대한 언급은 아직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보도된 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기본적으로 자기들의 선대 수령들이 내놓았던 통일과 관련되는 세 가지 중요 문서를 묶어서 이건 김정일 시대에 이미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고 명명했던 부분인데요.

그것을 재확인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추가를 드리면 왜 선대 때 되풀이하느냐.

본인의 브랜드로 해서 대남통일정책을 하나 제안할 수는 없었느냐.

한마디로 그럴 여유가 지금 없다라는 거죠.

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이 선제적으로 무슨 대남통일 방안을 얘기하거나 또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메시지를 제기하기는 김정은으로서는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은 원칙적인 3대 선언을 통해서 남북관계는 이 상태에서 갈 수밖에 없다라는 그런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이번 당대회에서 대남 대화 이런 것 관련해서 최고위급 회담, 정상회담 같은 것을 제안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관측들도 오락가락 하고 그랬는데요.

보니까 지금 북남이 여러 분야에서 대화와 협상을 적극 발전시켜야 이런 정도의 언급이 나와 있어요.

김정은이.

이 부분은 어떤 정도로 해석을 하시는 건가요.

-작년 12월 10일날 남북 차관급 회담을 끝으로 남북관계는 일단 중단이 돼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폐쇄까지 감행하면서 안보리 결의를 주도하고 있고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 일부를 내줄 수 없다라는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그런 선결조건을 얘기하지 않고 남측에 대한 획기적인 대화를 제의하기는 어려웠고.

결국은 원칙선상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냐.

그래서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 남북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물꼬를 틀기는 아마 쉽지 않지 않겠나.

북한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까지 지금 폐쇄된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남측에게 어떤 당근을 제시하는 제안을 하기에는 현재로써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고 교수님은 어떻게...

-원칙론이죠.

그러니까 당대회라는 행사의 성격상 정상회담이라든가 세부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회의체는 아닙니다.

나중에 그건 당의 기본방침이 정해진 다음에 정부 성명이나 또 관련 기관에서 제안을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원칙론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자는 것은 이미 고려민주연방창립방안에도 이런 내용이 나와 있는 그런 내용이죠.

그러니까 그런 의미로 보면 자기들은 대화와 협상을 할, 언제라도 문을 열여놓고 있다.

그러니까 남측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오면 우리는 언제라도 대화와 협상을 하겠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당대회 이후에 북한이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이냐.

이야기가 그런쪽으로 진전이 됐는데 7차 당대회 즈음해서 북한이 다섯 번째 핵실험을 하지 않겠느냐.

이런 관측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안 한단 말이에요.

이것은 앞으로 그러면 언제쯤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예상이 되는 건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사실 5차 핵실험을 하고 당대회를 하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 득이 되느냐.

득실분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준비는 상당히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핵실험 준비는 했을 것입니다마는 핵실험 없는 당대회가 북한의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우선 중국의 강력한 경고가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었지 않느냐.

시진핑 주석이 26개국 아시아 외교장관 앞에서 강력한 경고와 함께 4차 6자회담에서 나온 9.19공동성명의 불가학적인 비핵화 얘기를 했습니다.

상당히 대안까지 제시를 했기 때문에 김정은 입장에서 앞으로 북중관계 입장에서 시진핑의 경고를 정면으로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요.

이미 4차 핵실험을 통해서 북한의 기술적인 측면은 완성단계에 가고 있다.

소형화, 다중화, 수소폭탄까지 거론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핵실험을 할 필요가 기술적으로는 없다.

세번째 마지막 이유는 당대회는 국내 정치 행사인데 외신지자 100여 명 불러놓고 핵실험한다면 이거 초점이 완전히 핵으로 가기 때문에 선전, 선동의 치명적인 타격이 됐기 때문에 세 가지 이유에서 유보를 했는데 그러면 향후 7차 당 대회 어디로 갈 것이냐 저는 당분간은 조금 관망 태세로 가지 않겠냐.

일단 중국과의 외교를 통해서 평화협정 6자회담 재개를 강력하게 물밑으로 요구를 하면서 하반기에 정세를 봐가면서 이 문제는 정무적으로 처리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핵실험과 관련해서는 일부 정보 해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부나 관계기관에서 늘 당대회 전에 핵실험을 한다고 주장한 근거가 3월 15일 김정은이 얘기했다고 하는 핵탄두 폭파실험과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빠른 시간 내에 하라고 하는 그런 지시사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둘러싸고 핵탄두 폭파시험을 하라고 했으니까 수령제 국가에서 수령의 지시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으니까 할 거다 이런 전제 아래에서 계속 연일 중계하듯이 오늘내일 이렇게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요.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4월 23일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을 발사하면서 대성공했다고 하면서 네 가지 실험을 했다는 그중의 하나가 핵 기포장치실험도 성공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결국은 핵탄두 폭파시험을 성공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정은이 지시했다는 그 부분은 이미 충족된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북한이 핵의 완성에서 5차 핵실험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한다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1월달에 핵실험을 한 결과를 분석하고 핵무기 고도화라든가 상용무기화의 과정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추가 실험 설계가 필요할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모라토리움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미 합동군사연합 중단이라든가 평화협정과 관련된 협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건 카드화해 놓은 상황에서 지금 한다는 것은 카드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겠고요.

그래서 당대회 이후에는 평화협정 공세라든가 아마 평화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 제재를 푸는 노력을 해 보고 더 이상 안 될 때 핵의 완성을 위해서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대회 이후에도 추가 핵실험 가능성은 그리 크다지 않다고 두 분은 보고 계시고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고요.

-다만 거기에 추가를 시킬 것은 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비핵적인 도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외 관계의 긴장조성이 북한 통치에 매우 필요하다.

일단 80년대 6차 노동당대회가 끝나고 나서 83년에 버마 아웅산 테러가 있었고요.

87년에 칼기 폭파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통일 과업을 위해서는 대남 긴장노선과 도발이 통치에 도움이 된다라는 판단을 하고 이것은 7차 당대회 이후에도 유사하게 전개되지 않겠냐.

그래서 저희로서는 서해5도라든가 각종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서 북한의 도발에 대처하는 측면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지금 고 교수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북미 평화협정을 위한 대화공세라든가 아니면 제재 해제 이런 것을 위한 대화공세 이런 게 예상된다는 건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까?-지난번에 리수용 외무상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이 한 예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때 가서 미국측에 제안했던 것이 핵실험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을 요구했고요.

그것은 임박한 북한에 대한 핵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는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방어형에서 공격형이 포함된 훈련으로 확대됐고 또 참수작전이라고 해서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훈련과 함께 내륙 진격훈련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 북한은 대응훈련을 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니까 그걸 중단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미국이 거기에 응하지 않았죠.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일 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요.

그래서 지금 중국이 왕이 이니셔티브라고 해서 외교장관이 제안한 내용 중의 하나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목표가 너무 큰 목표이고 최종목표거든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당장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은 어렵다고 보고요.

그러나 과정으로서 시장은 돼야 된다.

그러니까 북한의 핵이 고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적어도 핵동결 정도라도 취하면서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종전선언.

우선 전쟁을 끝내는 그런 선언들을 하면서 연차적으로 순서를 잡아서 협상을 진행해 나가는 방식으로 우리가 우선 급선무가 제재와 압력 속에서도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된다는 게 문제가 있는 것이거든요.

지금도 제재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ICBM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관련되는 실험들을 계속해 왔고 SL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관련해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고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계속 방치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재를 통해서 북한이 손을 들고 나오면 다행인데 그러지 않고 견뎌내면서 핵능력만 고도화됐을 때 우리는 난감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당대회 이후부터 북한도 조금 대화국면으로는의 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는데요.

이 국면을 외부세계가 제재와 압박 위주로 나가느냐.

손들고 나올 때까지.

아니면 어느 계기에 북한의 핵을 우선 통셜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협상으로 나가느냐 그런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남 교수님.

-북한이 평화협정을 제의하는 약간 경로를 살펴보면 지난 12월 30날 북한 외무성에서 미국 외구성쪽으로 이메일을 보냈다라는 거죠.

핵실험을 안 하겠다.

그래서 평화협정을 논의해 보자.

이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알려지게 됐는데.

-언론 보도.

-미 국무부가 확인은 안 해 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사무적으로 전달을 하고 있다.

과거에 북미대화가 활발할 때 뉴욕의 35번가 커피숍에서 양측 대표가 만나서 구체적인 얘기를 했는데 이메일 정도로 이것을 제안한다면 북한 입장에서 의도가 무엇일까.

물론 그 당시에는 핵실험을 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에 일종의 트릭이었다라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을 이번에 5차 핵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구체화시키는 대면접촉을 시도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평양도 있지만 지금 워싱턴이 트럼프하고 힐러리의 대선국면이기 때문에 미 국무부가 과연 이것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지.

사실은 트럼프의 공약으로 볼 때는 북핵문제 해결이 굉장히 복잡해질 양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평화협정 공세가 크게 국제사회에 먹혀들기는 아마 어렵지 않겠는가.

결국은 11월 대선이 마치고 내년 미국 새로운 정부에서 이 문제가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가 될 것으로 전망이 됩니다.

-아까 남 교수님께서 최근에 방한한 미국 인사가 평화협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내할 수 있느냐 이런 의사를 타진했다 보도로 알려진 건데 그것은 또 어떻게 보세요?

-일주일 전에 뉴욕타임스의 사설에서 아주 의미 있게 나왔습니다.

북한 핵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평화협정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재만으로 핵문제를 푸는데 상당히 한계가 있을 수 있다라는 뉴욕타임스 굉장히 보수적인데 그런 칼럼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임스 클래퍼 미국 정보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이 평화협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내할 수 있겠냐.

그 얘기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어떤 조건이면 논의하겠느냐.

우리로써는 물론 비핵화 없이는 평화협정 논의를 할 수 없다는 답변이 오갔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얘기는 미국이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양한 제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국도 이거에 대해서 보다 진지하고 심층적인 논의를 준비를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시간이 다 돼서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 되는데 이번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말한 대화협상 제시 적극 발전시켜야 한다는 걸 남북관계 국면전환으로까지 기대할 수 있는 건지 또 국제사회에 북한 문제 논의에 있어서 우리 정부의 역할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 간단히 1분씩 말씀 듣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남 교수님부터.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상당히 어려운 대북국면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면서 지금 북한 제재에 앞장서 있기 때문에 현재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어떤 대북정책의 변화를 아마 추진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미국도 역시 대선 국면이고 그래서 결국은 박근혜 정부 남은 1년 반 임기 동안 현 남북관계 정세가 계속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새로운 정보들이 한미 양국에서 탄생했을 때 보다 북핵문제를 생산적으로 해결하는 논의구조를 만들어야 되고 지금부터 그런 문제에 관해서 심도 있는 검토를 해야 된다라는 것이 이번 제임스 클래퍼 미 정보국장의 평화협정 제의에서 저희가 배워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교수님.

-사실상 현 정수는 끝장 게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썼고 북한이 굴복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데요.

미국의 정치일정이라든가 이런 관계를 고려해 보면 사실 1, 2년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북핵 해결의 주도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결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모델을 따라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런 가운데 시간을 끌게 되면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식 모델 양탄일성이라고 해서 수소탄과 원자탄을 가지고 인공위성까지 가지면서 경제발전 하겠다는 그런 논리로 지금 나가고 있는데요.

그래서 매우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의 정치 일정이라든가 집권 후반기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볼 때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이럴 때일수록 북한의 핵의 고도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시작돼야 된다고 봅니다.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 오늘 어버이날이죠.

북한에는 어버이날이 없다면서요.

두부, 오이, 생강나물 반찬에 부부와 아들, 딸 손주가 모이면 촌 늙은이의 제일 가는 즐거움 아니겠는가 이런 추사 선생의 대련 시구가 있던가요.

예순다섯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의 20.8%, 다섯 분 중에 한 분 이상 138만명이 혼자 살 수 계신다는 지난해 말 통계 기사가 있네요.

일요진단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 36년 만의 노동당 대회 ‘김정은 체제’ 향방은?
    • 입력 2016-05-08 08:20:19
    • 수정2016-05-08 10:14:49
    일요진단 라이브
-안녕하십니까?

연휴 잘 보내고 계신 지요?

북한의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가 금요일인 6일 시작돼서 오늘로 사흘째 계속 중입니다.

첫날 김정은 제1비서의 개회사가 있었고요.

둘째 날은 김정은의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 이어서 토론이 있었다고 하죠.

셋째 날인 오늘은 당규약 개정논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선노동당 대회 1980년 그때는 김일성 주석 시절이었죠.

그 이후 36년 만에 열린 건데요.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없었어요.

언제까지 며칠간 무엇이 논의되는지 북한 관영매체 보도를 들여다볼 수밖에요.

이번 주 일요진단 한 시간 생방송입니다.

북한학 전공 교수 두 분 모셨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두 분 어서 오십시오.

일요일 아침과 또 연휴에 이렇게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조선노동당 대회 이번이 일곱번째라는 거죠.

조선노동당 대회가 도대체 어떤 건지부터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북한은 우리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직접 선거에서 뽑지 않는 형태죠.

그래서 총선과 대선이 사실상 없습니다마는 총선과 대선을 합한 행사가 하나 있는데 이게 바로 조선노동당 당대회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북한은 이 당대회를 통해서 일종의 지도자를 선출, 추대하는 그런 형식의 행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저희가 대관식이라는 언론에서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왕관을 지도자 머리 위에 씌우는 정치행사인데 이를 통해서 김정은이 북한의 3대 세습을 이어가는 실질적인 지도자라는 그런 것을 추대하는 정치 이벤트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총선과 대선을 합친 행사다.

이 말이 와닿네요.

고 교수님, 그런데 북한의 당대회 이렇게 큰 행사 같으면 시작할 때 며칠간 이렇게이렇게 한다 이런 게 예고가 되고 알려져야 되는 거아닌가 싶은데 며칠까지 하는지 지금 알려진 바가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7차 당대회를 개최 공고를 할 때도 5월 초에 한다고 공고를 한 후에 얼마 전에 5월 6일부터 7차 당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된다고 하는 구체적인 일정을 명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6차 당대회 기준으로 보면 한 4일 정도 당대회를 개최해 왔었습니다.

그러니까 당대회라고 하면 북한은 당위의 국가체제입니다.

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력을 독점하고 지도적 역할을 행사하기 때문에 당의 행사가 매우 중요한 그런 정치행사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첫날은 개회사를 하고 총화보고 그러니까 지난 36년 동안에 당이 해 왔던 혁명과 건설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총결산하는 평가가 있고.

그다음에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그동안에 관련된 총화가 있고 당규약 개정과 함께 김정은을 최고 직책으로 추대하는 절차가 있고.

그밖에 인사와 조직개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절차를 모두 마무리지으려면 적어도 3, 4일 걸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 교수님 말씀에 대해서 한 가지만 추가를 드리면 이번 행사를 우리 언론에서 깜깜이 행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3일에서 4일 정도 진행하는 걸로 돼 있는데.

80년 6차 노동당 당대회 때 김일성이 지난 10년간.

5차 당대회가 70년에 열렸으니까 10년 동안에 고 교수님 말씀한 총화사업 평가를 5시간에 걸쳐서 장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36년 만에 열리니까 금요일날 시작을 해서 하루 가지고 안 되고 어제 토요일 날 하루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총화 날짜만 이틀을 잡아먹어서 당초에 이게 3박 4일 일정대로 끝내겠느냐.

그야말로 외신을 불러놓고 하는 깜깜이 행사라 일정에 관해서는 정말 저희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사흘째니까 본래 이전의 대회로 하면 내일이 나흘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것 갖고 되겠느냐 이런 관측도 나오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걸 여쭤보고 싶어요.

보면 북한의 이런 큰 당대회 이런 걸 왜 주말에 하는지.

그리고 북한 핵실험이라든가 미사일 발사 이런 것도 명절 때 한다든가 이런 게 왜 그러는지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는 금요일 날 시작하서 아마 월요일 아니면 화요일에 시작되는데 북한의 어떤 의도는 주말에 해야지만 대표자들이 일의 손실, 자기 직장에서 일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마디로 노력동원의 형식이고요.

보통 핵실험, 미사일 발사는 주로 미국 시간을 겨냥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우리를 봐달라.

그래서 워싱턴에 아침에 보도가 되면 우리는 오후가 되는.

그래서 미국 겨냥한 그런 타이밍 전략인 것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번 당대회가 지난 80년에 이어서 36년 만에 열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때는 김일성 시절이었고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한 번도 없었어요.

36년 만에.

그동안 당대회가 없었던 까닭 그리고 36년 만에 이 시점에서 여는 까닭 고 교수님은 어떻게 분석하세요?-당규약에 의하면 5년마다 한 번씩 당대회를 열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당 국가체제를 운영하는 나라에서는 중국 같으면 예외 없이 5년마다 한 번씩 당대회를 열죠.

그런데 북한의 경우는 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약대로 운영이 안 되는데요.

그건 수령체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령의 직할체제이기 때문에 당대회의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국정을 운영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을 때 인민생활을 한 단계 높인 다음에 7차 당대회를 해야 된다.

그것이 교시였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시대 80년대 이후 중반부터 사회주의권의 개혁개방과 붕괴가 있었고 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또 그 이후에 고난의 행군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민생활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가 없었죠.

그래서 당대회를 열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밖에도 김정은 시대에 오기 시대에 김정일 시대는 선군정치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국방위원회라고 하는 당기구가 아닌 국가기구의 국방위원회 수반으로서 통치를 상당기간 했습니다.

그러다 당의 역할 자체가 별로 중요치 않았던 것이죠.

그러면서 그동안 36년 동안 하지 않았는데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지난 4년간의 정비기간을 거쳐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선포하기 위해서 7차 당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6년 만에 여는 대회이니만큼 아주 성대하게 치를 거다 이렇게 보통 예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성대한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가 관영매체 보도를 통해서만 봅니다마는.

그리고 외빈들도 초청이 거의 없는 것 같고.

과거 당대회와 비교해서 어떻게 평가를 하세요?

-80년 당대회하고 한 세 가지 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80년 6차 당대회를 열 때는 북한이 정말 잘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희 한국은 당시에 광주사태가 있어서 어려웠죠.

김일성 부자는 김정일을 다음 후계자로 세우는 6차 행사를 아주 성대하게 행사를 했습니다.

국제제재도 없었고 국제사회에서 지위도 괜찮았다고 봤죠.

두 번째는 아무래도 북핵문제가 80년에는 없었고 지금 2016년에는 북핵문제가 가장 큰 당면제재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최악이고 그 당시는 나름대로 차선에 있었다라는 거고요.

그래서 중국과의 관계가 굉장히 좋았던 시절이죠.

이번에는 중국은 전혀 참석을 하지 않을 정도죠.

그런 차원에서 그 당시하고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행사고요.

그러다 보니까 외빈이 당시에는 188개국에 200여 명의 외빈이 왔지만 이번에 외신기자들을 갖다가 한 100여 명 이상 초청했지만 4.25문화회관 장소에서 200m 바깥에서 비가 오는데 취재를 하게 함으로써 한마디로 외신기자들이 분통을 터뜨렸고.

또 정치행사를 취재하러 왔는데 오히려 공장을 견학시킴으로써 국제제재에 끄떡없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을 선전의 방향을 조금 잘못 둠으로써 정말 초라한, 나름대로 힘은 들였겠지만 바깥에서 보기에는 초라한 행사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고 교수님, 지금 남 교수님도 말씀을 하셨는데요.

외국 기자들을 초청을 해 놓고 실제 당대회를 취재 못하게 하고 이러는 건 왜 그런다고 보세요?

-당대회는 북한의 내부의 정치행사는 분명하고요.

그리고 당의 중요한 의사를 토의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초청할 때도 당대회 안의 취재를 허용하는 걸 전제로 해서 초청한 건 아닌 것 같고요.

다만 당대회를 계기로 해서 그래도 서방 기자들을 초청한 것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김정은식 글라스노스트.

그러니까 공개정치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같으면 당대회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당대회가 끝난 다음에 그 내용이 보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었는데요.

지금은 그래도 하루 정도 그날 있었던 건 그날 저녁 정도에 편집해서 보도하는 정도로 어느 정도는 보도해 주고 있고 다만 외신기자들은 기대를 크게 했을 겁니다.

서구식 관형으로 보면 당대회 적어도 개막식 정도는 보여주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갔을 텐데 회의장 자체도 접근이 안 됐으니까 매우 불만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아마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해서 김정은 시대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그런 수단으로써 외신기자들을 대거 초청한 것 같습니다.

그건 지난번 광명성3호기 쏠 때도 외신기자들을 초청했지만 실제로 발사장면은 취재를 못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과 유사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대회에서 무슨무슨 논의가 있었는지 북한 관영매체 보도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죠.

첫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개회사부터 볼까요.

뉴스를 통해서 보셨겠지만 조금 더 길게 다시 한 번 들어보시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대회 주석단에 나오셨습니다.

-주체혁명 위업의 종국적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진군 대회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 개회를 선언합니다.

오직 수령님들께서 제시하신 주체혁명노선을 높이 받들어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 고수하고 전진시키기 위한 힘찬 투쟁을 벌이겠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수십년 동안 우리 인민이 단 한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없도록 정세를 항시적으로 긴장시키고 온갖 봉쇄와 압력, 제재로 경제발전과 생존의 길마저 깡그리 가로막았습니다.

첫 수소탄 시험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 발사의 대성공을 이룩하여 전역에서도 빛나는 위훈을 창조하고 전례없는 노력적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나는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 세계 자주화 위업을 위한 투쟁에 고귀한 생을 바친 항일혁명투사들과 애국열사들, 잊지 못할 우리 당의 혁명전우들과 통일애국인사들을 추모하여 묵상할 것을 제의합니다.

이번 당대회는 영광스러운 김일성, 김정일주의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는 역사적인 계기로 됩니다.

-고 교수님 김정은의 개회사가 15분 동안 4516자라고 언론에 그렇게 보도가 돼 있대요.

개회사 내용 중에 가장 특기할 만한 부분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지난 시기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시련의 시기였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국주의 연합세력과 단독으로 투쟁했던 시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냉전시대는 양 진영간의 북한과 관련된 진영이 있어서 그 제국주의 세력과 진영간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권이 붕괴됨으로 해서 북한만 고립무언 상태에서 제국주의 세력들과 단독으로 싸웠다 그것을 아마 강조하면서 그래도 견뎌냈다, 잘 견뎌냈다 이런 주장이 있고 그다음에 연초에 있었던 수소탄 실험.

4차 핵실험과 광명성 4호 인공위성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요.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그것이 매우 중요한 업적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인민생활 향상 공략은 제대로 실현이 못 됐고 그 이유는 자기들대로 반대하는 세력들과 단독으로 싸우는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가운데 경제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는 점을 통해서 변명을 하면서 결국은 핵고도화.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갖춘 것.

그러니까 병진노선의 성과로 군사강국이 됐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 교수님은 어떤 부분을 가장 특기할 부분으로 꼽을까요?-일단 잊을 수 없는 혁명동지라는 표현을 써서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창업공신들을 갖다가 정말 길게 장황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왜 사망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다 얘기를 할까.

그건 본인의 전통성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본인이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지도자가 아니고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일종의 백두혈통의 지도자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를 잘 모셔야 된다라는 그런 측면에서 쭉 얘기를 했는데 그동안 숙청당했던 인물들은 없어진 것 같아요.

장성택이라든가 리영길이라든가 굉장히 창업공신의 유력인사들이 빠진 거 보면 북한에서 역적과 충신을 이번 기회에 아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저도 그 사망한 인물들 이름을 쭉 거명한 게 눈에 들어오던데 먼저 처음에는 숙청된 걸로 알려졌는데 이번에는 거명이 된 분이 있는지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마땅히 거명됐어야 할 인물인데 이번에 빠졌다든지 하는 그런 인물은 없었나요?-마땅히 거명됐어야 되는데 빠진 인물은 외교를 담당했던 강석주인데요.

강석주는 와병 중이어서 아마 행사에 참여를 못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런 인물들이 안 나왔다라는 인물은 없고요.

다만 핵개발의 공신들 이게 UN안보리 개인 제재대상인데 리만건이라든가 박도춘이라든가 핵기술자들이 전부 거론됨으로써 저기 앉아 있는 인물들이 UN의 제재대상의 핵심인물들이다.

그다음에 또 하나 특이한 인물은 역시 김영남이 건재하구나.

내일모레 구십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세대개편으로 물러나야 될 언론 1위 지목인물이 있는데 좌에 김영남, 우에 황병서가 딱 건재함으로써 김정은 시대에 청년중시 정책으로 새 인물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전망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 교수님, 개회사 말미에 노동당 대회 참가 인원 수 몇 명이던가요.

그걸 밝혔어요, 김정은이.

그런데 이걸 보면 노동당 전체 당원 수를 알 수 있다 이런 기사가 있는데 어떤 의미를 갖는 건가요?-3467명이 참석한 걸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원 1000명당 1명이 당대표자로 선발이 됐는데요.

6차 당대회 기준으로는 3220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추산하기를 노동당원이 약 300만 정도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추산으로 볼 때 340만명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런 정도로 추산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당대회라는 것은 당의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에 시군에서 대표자를 뽑아서 도단위에서 선발을 해서 최종적으로 당대회 참가하게 되겠는데요.

그래서 3400여 명의 대표자들이 전체적인 논의를 하고 당대회를 자주 열 수 없으니까 당 중앙위원회를 선발하는 거죠.

당 중앙위원회 위원을 과거 6차 당대회 기준으로 보면 145명입니다.

그것이 규약상으로는 6개월에 한 번씩 전원회의를 열도록 돼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동안에 당의 주요행사라든가 일정과 관련되는 정책 결정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하고요.

그것도 인원이 많으니까 상설적인 당 행정기구로서 비서국이라는 것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서국의 최고책임자가 당의 최고위직을 차지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김정은은 제1비서라고 얘기하고 있고요.

그리고 정치적인 의사결정은 정치국이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국원들이 핵심적인 권력자라고 할 수 있겠고요.

또 그중에서도 정치국 상임위원회라는 것에서 상임위원을 3명에서 5명 정도로 이렇게 두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될 부분은 지금 나온 명단들은 현재 권력구조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고 미래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은 마지막 인사개편 때 그때 지금 말씀드린 그런 기구에 어떤 인물들이 발탁되느냐.

거기에 따라서 전반적인 세대교체 여부라든가 당 위계와 관련돼서 노장층 배합의 정도라든가 또 청년중시 정책을 펴고 있는 김정은 시대에 청년들이 얼마나 부상하는가.

실질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엘리트들이 누구인가 이런 것을 최종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타난 것은 현재까지 김정은 체제 4년 동안 통치해 왔던 김정일 시대의 인물들과 결합된 그런 권력 엘리트라고 한다면 최종적으로 발표될 인물들을 지켜보면 명실상부하게 김정은 시대를 끌고갈 통치 엘리트 핵심 면면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40만에 조금만 보충을 드리면 지금 340만명의 당원인데 북한 전체 인구가 2500만입니다.

그러면 얼추 계산하면 15% 정도의 당원비율인데 이게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굉장히 높은 비율입니다.

과거에 중국은 거의 10% 이내였죠.

그래서 당원대회가 별따기인데 북한은 역시 체제를 결속하는 과정에서 당원을 늘리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역시 당 중심의 국가로 체제를 유지한다라는 걸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겠습니다.

-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새로운 체제의 주역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마지막 날 지켜보고 그동안은 그동안의 사업 이런 것 그게 노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가 첫날, 둘째 날에 걸쳐서 있었다는 거죠.

어떤 내용이었는지 조선중앙텔레비전의 보도를 최성민 기자가 정리했는데요.

보실까요.

-당대회 개막 이틀째.

지난 36년간의 당 사업을 평가하는 사업총화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첫날에 이어 또다시 양복차림으로 등장한 김정은은 당을 강화, 발전시킬 것을 주문했습니다.

-김정은은 우리 당을 영원한 김일성, 김정일 동지의 당, 백전백승의 불패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주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토론자들은 노동당이 곧 김정은의 당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 김정은 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켜 나가는 데 적극 이바지하겠다는 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사회주의 강성국가 전설을 위한 김정은의 지침에 대한 박봉주 내각총리의 지지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의 전략적 노선과 투쟁 파업을 뚜렷이 밝혀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역사적인 보고를 전폭적으로 지지 찬동합니다.

-또 김정은의 탁월한 영도로 북한의 핵기술이 최상의 경지에 올라 핵강국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핵기술이 최상의 경지에 올라섰으며 자주적인 핵탄국의 존엄은 기세천출 위인을 영도자로 높이 모신 선군 조선.

조선민족만이 누릴 수 있는 최대 행운, 최대의 특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정군 각 분야를 대표하는 토론자들은 김정은의 과업을 찬양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당과 인민의 최고 영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부디 안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당대회 사흘째인 오늘은 김정은 체제를 뒷받침할 통치구조와 핵병진 노선에 대한 당규약 개정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총화보고가 길어지면서 대회 기간이 당초 예상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남 교수님,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올해 신년사에서 이번 7차 당대회에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보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했는데 그런 설계도 같은 게 보입니까, 어떻습니까?-일단은 1월 1일날 신년사에서 휘황한이라는.

그래서 저희가 상당히 기대를 솔직히 했습니다.

휘황하다라는 것은 북한을 먹고 살게 만들기 위해서 경제개혁을 획기적으로 하지 않겠냐.

심지어 휘황이란 단어가 중국의 개혁, 개방까지 점쳐볼 수가 있었는데 사실은 우리가 거기에 속았죠.

속았다는 표현은 뭐하지만 왜냐하면 1월 6일에 전격적인 4차 핵실험을 감행을 했는데 이게 12월 15일날 결재를 했기 때문에 1월 1일에 휘황한 설계도라는 것은 결국 핵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느냐.

그리고 2월 7일날 6차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함으로써 북한이 핵보유 강대국으로서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그런 원칙을 선언하는 그런 신년사였는데 저희가 그런 것을 캐치하지 못한 것은 북한의 전략 전술에 약간은 말렸다고 볼 수 있고요.

당규약 개정의 가장 큰 포인트는 핵보유 강국을 아마 당에 선언하는.

그리고 김정은에 충성, 영웅칭호 이런 미사여구를 당규약 개정에서 가장 핵심으로 집어넣지 않나 예상이 됩니다.

-고 교수님은 김정은의 사업총화보고 중에 가장 눈에 띈 대목을 뽑으신다면 어떤 걸 뽑으시겠어요?

-사업총화보고라는 것은 지난 36년 동안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해 왔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다 특히 북한은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수령체제라 선대 수령의 업적을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주로 그 기조의 내용은 개선과 발전 차원에서 얘기를 한 것이고 대체로 사상 군사강국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많은 강조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제 강국 건설은 이제 핵억제력을 갖췄으니까 앞으로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을 좀더 강화해서 경제문제.

특히 민생 향상과 경제발전과 관련되는 청사진을 펼쳐 보이겠다는 미래형이고요.

총화의 대부분의 내용은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 잘 견뎌냈다.

그런 정도의 내용과 함께 핵억제력을 갖추는 데 주력하면서 군사강국이 됐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충분한 억제력을 가지고 경제건설에 매진하자 그런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도된 김정은의 발언내용 중에 말이죠.

핵억제력을 갖췄다는 것과 관련해서 이런 워딩이 있어요.

김정은의 워딩인데요.

핵전파 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하겠다.

자주권 침해받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핵전파라는 말은 우리가 쓰는 핵확산 방지.

미국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죠.

이게 NPT를 북한은 이미 탈퇴를 했어요.

이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요?

-북한이 93년도에 NPT 탈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요구했다가 2003년에 다시 탈퇴를 해서 핵실험.

-핵방지조약이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핵실험을 네 차례 했고 그러면서도 이번에 한 내용은 억제력으로만 사용하겠다.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한은 자기들이 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핵확산방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 핵이 테러 지원국가라든가 또 테러단체에게로 확산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다른 목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억제력으로만 사용한다는 그런 정도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더 이상 확산하지 않겠다는 것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주요내용인 것 같습니다.

-기존에 나왔던 입장인 거죠.

그런데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하겠다 이건 어떤 정도의 진정성이랄까요.

구체성이 있다고 보세요?-세 가지 메시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죠.

첫째는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데 대한 워싱턴에 보내는 메시지죠.

이제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상대하라는 거죠.

전세계 안보리상임이사국과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비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분류가 되는데 그걸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거죠.

북한이 미국을 의도해서 가장 겁을 내는 것은 이게 이전반출입니다.

남포항을 통해서 북한의 핵이 화물선을 통해서 중동으로 간다면 이건 완전히 비핵화를 위반하는 가장 결정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아마 그건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도 그 점을 굉장히 우려하고 있죠.

남포항을 떠나는 순간 그건 피격당할 수 있다라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국제정치적으로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

그러면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느냐.

결국은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 정상화를 겨냥하고 있는 거죠.

그것이 결국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가 물밑에 깔려 있고 앞으로 이번 7차 당대회가 끝나면 중국을 통해서 아니면 독자적으로 워싱턴에 대한 평화협정 제의를 지속적으로 아마 할 것입니다.

최근에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이 평화협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내할 수 있겠느냐, 인정하는 범위가 어느 정도냐라고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미국도 핵실험 후에 북한이 평화협정을 제의할 거라는 데 대해서 상당히 검토하고 있지 않나라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의 발언 중에 우리 자주권 존중하는 나라들과 관계 정상화하겠다 이런 발언도 약간 그런 한미가 담긴 걸로 봐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얘기한 것 중에 평화로운 대외 환경조성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자기들은 3차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병진노선에 명시를 했고 그러니까 적대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해서 평화로운 대외 환경을 조성을 한 다음에 인민생활 향상쪽으로 나가겠다고 하는 그런 움직임을 보였는데 결국은 핵을 가진 북한과 손을 잡아주지 않았죠.

미국도 선핵 폐기론을 내세우면서 북한의 대화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요.

또 우리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내민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돼 있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래서 결국은 북한은 핵을 보유하는 쪽으로 가게 된 것 같은데요.

그 핵정책과 관련해서는 부연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김일성 시대는 6.

25전쟁 때 미국의 핵위협을 받은 이후에 꾸준히 핵을 개발을 해 왔는데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을 내세워놓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정도에 미국이 대북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면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정일 시대에 오면서는 후계체제 구축에 있어서 그것이 핵이 물리적인 담보가 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에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진했던 것 같습니다.

핵을 보유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협상카드로 사용하겠다.

그래서 3자회담, 6자회담 또 제네바 합의,9.19공동성명 이런 형태로 여러 차례 핵과 관련된 협의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김정은 시대 와서는 확실히 3대 세습을 굳히고 유일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핵이 만능의 보고입니다라고 하면서 핵보유쪽으로 확실히 간 것 같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하는 것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 비핵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하지 않겠다는 얘기죠.

그런 의미로 봐야 될 것 같고요.

또 다른 전체는 평화협정을 맺으면 그때 가서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는 그런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당장에 비핵화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경제분야에 있어서 이번 당대회를 통해서 지금 맹아아가 싹트고 있는 장마당 경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암묵적인 허용이 양성화될 건가 이런 부분도 관심이지 않습니까?이 부분은 지금까지 나온 게 경제 관련 정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전망을 하시는지요?-이미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2012년도 6.28 방침이라고 해서 농업생산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농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분조 단위를 15명에서 20명 정도 규모에서 3명에서 5명 분묘니까.

가족농 정도로 가능한 거 아니냐 그런 평가가 있고요.

어쨌든 할당된 목표를 채우면 그 이상 추가로 생산된 부분에 대해서는 생산자가 가져가는 인센티브 제도가 있었고요.

그리고 2014년도에 5.

30조치라고 해서 공업부분에서도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형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원치 않았지만 고난의 행군시대에 시작된 장마당이 확산되면서 시장화 또 달러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 부분은 해석이 두 가지로 엇갈리고 있는데요.

장마당이 확산되고 시장화가 진전되는 것이 저항세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북한 체제의 위험요인으로 작동하면서 북한 내부변화의 동인으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고요.

또 다른 한 평가는 중앙에서 공급해 줄 수 없는 부분을 시장을 통해서 해결해 주기 때문에 인민들의 불만을 완화시켜주는 측면도 있고 또 다른 측면은 장마당 매대라는 것을 국가가 허용하면서 거기에 대한 세금을 거둬들입니다.

그러니까 국가 재정부분을 장마당을 통해서 확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통치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장마당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두 가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데 어쨌든 장마당의 확산이라는 것은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 변화에 하나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 교수님, 이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어제 저녁 10시에 나온 보도 중에 주목할 만한 경제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개년 국가경제계획을 얘기를 했습니다.

이거 굉장히 주목할 만한 부분인데요.

일단 북한이 장기경제발전계획을 얘기한 게 87년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면 그동안에 왜 장기발전계획을 얘기하지 않았느냐.

한마디로 능력이 안 돼서 그랬습니다.

이 장기발전계획을 얘기한다라는 것은 플랜과 설계에 따라서 자금 여력이 가능하다라는 얘기인데 그동안 20년 동안 이걸 못했는데 어제 김정은이 처음으로 이걸 얘기를 했다는 이유는 북한이 경제발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사실은 국가경제발전계획을 얘기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시장화하고는 조금 배치되는 문제입니다.

북한은 국가가 책임이 없어질 때 시장을 방치하는데 북한 당국에서 5개년 계획을 얘기했다는 것은 국가 주도로 경제계획을 끌고가고 이것이 결국은 시장화에 역행하는 추세가 있기 때문에 이게 우리로서는 양면이 있다.

북한 경제가 조금 자신이 붙은 느낌.

그래서 어느 정도 정상화되는 측면도 있지만 이게 역설적으로 인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시장화에는 반대되는 측면이 있어서 앞으로 북한 경제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관해서 조금 주목을 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정책은 시간관계상 그 정도로 하고요.

통일방안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조국통일의 3대 헌장을 틀어쥐고 통일의 앞길을 걸어가야 한다.

매번 당대회 때마다 통일 관한 제시가 있었는데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이미 선대 수령들이 내놓은 것을 종합한 것입니다.

74년도 7.

4공동성명이 남북간에 통일 원칙에 관한 합의가 있었습니다.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그 당시에 김일성 수상과 박정희 대통령 사이의 대리인들이 서명해서 만든 남북간의 최초의 통일과 관련된 합의 문서죠.

그리고 80년 6차 당대회 때 고려민주연합공화국 창립방안이라고 하는 통일방안을 김일성 주석이 총화보고에서 내놨습니다.

그것과 함께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이라는 것을 93년도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에 이제는 민족끼리 대단결해서 통일을 실현하자.

힘 있는 사람 힘으로 또 지식 있는 사람 지식으로 돈 있는 사람 돈으로 통일에 기여하면서 이제 대단결해서 통일을 하자.

그런 주장을 했는데요.

전문을 아직 공개를 해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할 수가 없어서 그런데요.

6.15와 10.4부분에 대한 언급은 아직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보도된 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기본적으로 자기들의 선대 수령들이 내놓았던 통일과 관련되는 세 가지 중요 문서를 묶어서 이건 김정일 시대에 이미 조국통일 3대 헌장이라고 명명했던 부분인데요.

그것을 재확인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추가를 드리면 왜 선대 때 되풀이하느냐.

본인의 브랜드로 해서 대남통일정책을 하나 제안할 수는 없었느냐.

한마디로 그럴 여유가 지금 없다라는 거죠.

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이 선제적으로 무슨 대남통일 방안을 얘기하거나 또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메시지를 제기하기는 김정은으로서는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은 원칙적인 3대 선언을 통해서 남북관계는 이 상태에서 갈 수밖에 없다라는 그런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이번 당대회에서 대남 대화 이런 것 관련해서 최고위급 회담, 정상회담 같은 것을 제안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관측들도 오락가락 하고 그랬는데요.

보니까 지금 북남이 여러 분야에서 대화와 협상을 적극 발전시켜야 이런 정도의 언급이 나와 있어요.

김정은이.

이 부분은 어떤 정도로 해석을 하시는 건가요.

-작년 12월 10일날 남북 차관급 회담을 끝으로 남북관계는 일단 중단이 돼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폐쇄까지 감행하면서 안보리 결의를 주도하고 있고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 일부를 내줄 수 없다라는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그런 선결조건을 얘기하지 않고 남측에 대한 획기적인 대화를 제의하기는 어려웠고.

결국은 원칙선상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냐.

그래서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 남북 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물꼬를 틀기는 아마 쉽지 않지 않겠나.

북한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까지 지금 폐쇄된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남측에게 어떤 당근을 제시하는 제안을 하기에는 현재로써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고 교수님은 어떻게...

-원칙론이죠.

그러니까 당대회라는 행사의 성격상 정상회담이라든가 세부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회의체는 아닙니다.

나중에 그건 당의 기본방침이 정해진 다음에 정부 성명이나 또 관련 기관에서 제안을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원칙론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자는 것은 이미 고려민주연방창립방안에도 이런 내용이 나와 있는 그런 내용이죠.

그러니까 그런 의미로 보면 자기들은 대화와 협상을 할, 언제라도 문을 열여놓고 있다.

그러니까 남측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오면 우리는 언제라도 대화와 협상을 하겠다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당대회 이후에 북한이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이냐.

이야기가 그런쪽으로 진전이 됐는데 7차 당대회 즈음해서 북한이 다섯 번째 핵실험을 하지 않겠느냐.

이런 관측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안 한단 말이에요.

이것은 앞으로 그러면 언제쯤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예상이 되는 건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사실 5차 핵실험을 하고 당대회를 하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 득이 되느냐.

득실분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준비는 상당히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핵실험 준비는 했을 것입니다마는 핵실험 없는 당대회가 북한의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우선 중국의 강력한 경고가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었지 않느냐.

시진핑 주석이 26개국 아시아 외교장관 앞에서 강력한 경고와 함께 4차 6자회담에서 나온 9.19공동성명의 불가학적인 비핵화 얘기를 했습니다.

상당히 대안까지 제시를 했기 때문에 김정은 입장에서 앞으로 북중관계 입장에서 시진핑의 경고를 정면으로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요.

이미 4차 핵실험을 통해서 북한의 기술적인 측면은 완성단계에 가고 있다.

소형화, 다중화, 수소폭탄까지 거론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핵실험을 할 필요가 기술적으로는 없다.

세번째 마지막 이유는 당대회는 국내 정치 행사인데 외신지자 100여 명 불러놓고 핵실험한다면 이거 초점이 완전히 핵으로 가기 때문에 선전, 선동의 치명적인 타격이 됐기 때문에 세 가지 이유에서 유보를 했는데 그러면 향후 7차 당 대회 어디로 갈 것이냐 저는 당분간은 조금 관망 태세로 가지 않겠냐.

일단 중국과의 외교를 통해서 평화협정 6자회담 재개를 강력하게 물밑으로 요구를 하면서 하반기에 정세를 봐가면서 이 문제는 정무적으로 처리할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핵실험과 관련해서는 일부 정보 해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부나 관계기관에서 늘 당대회 전에 핵실험을 한다고 주장한 근거가 3월 15일 김정은이 얘기했다고 하는 핵탄두 폭파실험과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빠른 시간 내에 하라고 하는 그런 지시사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둘러싸고 핵탄두 폭파시험을 하라고 했으니까 수령제 국가에서 수령의 지시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으니까 할 거다 이런 전제 아래에서 계속 연일 중계하듯이 오늘내일 이렇게 하면서 지금까지 왔는데요.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4월 23일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SLBM을 발사하면서 대성공했다고 하면서 네 가지 실험을 했다는 그중의 하나가 핵 기포장치실험도 성공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결국은 핵탄두 폭파시험을 성공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정은이 지시했다는 그 부분은 이미 충족된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북한이 핵의 완성에서 5차 핵실험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한다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1월달에 핵실험을 한 결과를 분석하고 핵무기 고도화라든가 상용무기화의 과정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추가 실험 설계가 필요할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모라토리움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미 합동군사연합 중단이라든가 평화협정과 관련된 협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건 카드화해 놓은 상황에서 지금 한다는 것은 카드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겠고요.

그래서 당대회 이후에는 평화협정 공세라든가 아마 평화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 제재를 푸는 노력을 해 보고 더 이상 안 될 때 핵의 완성을 위해서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대회 이후에도 추가 핵실험 가능성은 그리 크다지 않다고 두 분은 보고 계시고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고요.

-다만 거기에 추가를 시킬 것은 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비핵적인 도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외 관계의 긴장조성이 북한 통치에 매우 필요하다.

일단 80년대 6차 노동당대회가 끝나고 나서 83년에 버마 아웅산 테러가 있었고요.

87년에 칼기 폭파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통일 과업을 위해서는 대남 긴장노선과 도발이 통치에 도움이 된다라는 판단을 하고 이것은 7차 당대회 이후에도 유사하게 전개되지 않겠냐.

그래서 저희로서는 서해5도라든가 각종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서 북한의 도발에 대처하는 측면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지금 고 교수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북미 평화협정을 위한 대화공세라든가 아니면 제재 해제 이런 것을 위한 대화공세 이런 게 예상된다는 건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까?-지난번에 리수용 외무상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이 한 예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때 가서 미국측에 제안했던 것이 핵실험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을 요구했고요.

그것은 임박한 북한에 대한 핵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는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방어형에서 공격형이 포함된 훈련으로 확대됐고 또 참수작전이라고 해서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훈련과 함께 내륙 진격훈련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서 북한은 대응훈련을 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니까 그걸 중단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미국이 거기에 응하지 않았죠.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일 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요.

그래서 지금 중국이 왕이 이니셔티브라고 해서 외교장관이 제안한 내용 중의 하나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하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목표가 너무 큰 목표이고 최종목표거든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당장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은 어렵다고 보고요.

그러나 과정으로서 시장은 돼야 된다.

그러니까 북한의 핵이 고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적어도 핵동결 정도라도 취하면서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종전선언.

우선 전쟁을 끝내는 그런 선언들을 하면서 연차적으로 순서를 잡아서 협상을 진행해 나가는 방식으로 우리가 우선 급선무가 제재와 압력 속에서도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된다는 게 문제가 있는 것이거든요.

지금도 제재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ICBM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관련되는 실험들을 계속해 왔고 SL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관련해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고 있거든요.

그걸 보면서 계속 방치하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재를 통해서 북한이 손을 들고 나오면 다행인데 그러지 않고 견뎌내면서 핵능력만 고도화됐을 때 우리는 난감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당대회 이후부터 북한도 조금 대화국면으로는의 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는데요.

이 국면을 외부세계가 제재와 압박 위주로 나가느냐.

손들고 나올 때까지.

아니면 어느 계기에 북한의 핵을 우선 통셜시키는 조치를 취하면서 협상으로 나가느냐 그런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남 교수님.

-북한이 평화협정을 제의하는 약간 경로를 살펴보면 지난 12월 30날 북한 외무성에서 미국 외구성쪽으로 이메일을 보냈다라는 거죠.

핵실험을 안 하겠다.

그래서 평화협정을 논의해 보자.

이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알려지게 됐는데.

-언론 보도.

-미 국무부가 확인은 안 해 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사무적으로 전달을 하고 있다.

과거에 북미대화가 활발할 때 뉴욕의 35번가 커피숍에서 양측 대표가 만나서 구체적인 얘기를 했는데 이메일 정도로 이것을 제안한다면 북한 입장에서 의도가 무엇일까.

물론 그 당시에는 핵실험을 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에 일종의 트릭이었다라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을 이번에 5차 핵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구체화시키는 대면접촉을 시도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평양도 있지만 지금 워싱턴이 트럼프하고 힐러리의 대선국면이기 때문에 미 국무부가 과연 이것에 얼마나 힘을 실어줄지.

사실은 트럼프의 공약으로 볼 때는 북핵문제 해결이 굉장히 복잡해질 양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평화협정 공세가 크게 국제사회에 먹혀들기는 아마 어렵지 않겠는가.

결국은 11월 대선이 마치고 내년 미국 새로운 정부에서 이 문제가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가 될 것으로 전망이 됩니다.

-아까 남 교수님께서 최근에 방한한 미국 인사가 평화협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내할 수 있느냐 이런 의사를 타진했다 보도로 알려진 건데 그것은 또 어떻게 보세요?

-일주일 전에 뉴욕타임스의 사설에서 아주 의미 있게 나왔습니다.

북한 핵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평화협정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제재만으로 핵문제를 푸는데 상당히 한계가 있을 수 있다라는 뉴욕타임스 굉장히 보수적인데 그런 칼럼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임스 클래퍼 미국 정보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이 평화협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내할 수 있겠냐.

그 얘기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어떤 조건이면 논의하겠느냐.

우리로써는 물론 비핵화 없이는 평화협정 논의를 할 수 없다는 답변이 오갔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얘기는 미국이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양한 제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국도 이거에 대해서 보다 진지하고 심층적인 논의를 준비를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시간이 다 돼서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 되는데 이번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말한 대화협상 제시 적극 발전시켜야 한다는 걸 남북관계 국면전환으로까지 기대할 수 있는 건지 또 국제사회에 북한 문제 논의에 있어서 우리 정부의 역할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 간단히 1분씩 말씀 듣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남 교수님부터.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상당히 어려운 대북국면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면서 지금 북한 제재에 앞장서 있기 때문에 현재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어떤 대북정책의 변화를 아마 추진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미국도 역시 대선 국면이고 그래서 결국은 박근혜 정부 남은 1년 반 임기 동안 현 남북관계 정세가 계속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새로운 정보들이 한미 양국에서 탄생했을 때 보다 북핵문제를 생산적으로 해결하는 논의구조를 만들어야 되고 지금부터 그런 문제에 관해서 심도 있는 검토를 해야 된다라는 것이 이번 제임스 클래퍼 미 정보국장의 평화협정 제의에서 저희가 배워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교수님.

-사실상 현 정수는 끝장 게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썼고 북한이 굴복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데요.

미국의 정치일정이라든가 이런 관계를 고려해 보면 사실 1, 2년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북핵 해결의 주도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결국은 인도와 파키스탄 모델을 따라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런 가운데 시간을 끌게 되면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식 모델 양탄일성이라고 해서 수소탄과 원자탄을 가지고 인공위성까지 가지면서 경제발전 하겠다는 그런 논리로 지금 나가고 있는데요.

그래서 매우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의 정치 일정이라든가 집권 후반기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볼 때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저는 이럴 때일수록 북한의 핵의 고도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시작돼야 된다고 봅니다.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 오늘 어버이날이죠.

북한에는 어버이날이 없다면서요.

두부, 오이, 생강나물 반찬에 부부와 아들, 딸 손주가 모이면 촌 늙은이의 제일 가는 즐거움 아니겠는가 이런 추사 선생의 대련 시구가 있던가요.

예순다섯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의 20.8%, 다섯 분 중에 한 분 이상 138만명이 혼자 살 수 계신다는 지난해 말 통계 기사가 있네요.

일요진단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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