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지 노리스에 건국훈장…“日잔학성 보고는 고립주의 버렸다”

입력 2016.05.10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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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주창했던 고(故) 조지 윌리엄 노리스(1861∼1944) 전 연방 상원의원이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안호영 주미 대사는 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D.C. 대사관저에서 한국 정부를 대신해 노리스 전 의원의 외증손자인 데이비드 노리스 래스 박사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이날 외증조부를 대신해 훈장을 수여받은 래스 박사는 "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했던 6명의 상원의원 중 한 명일 정도로 고립주의자였다"며 "그러나 1937년말 일제의 중국 열차 폭탄테러로 아기가 불에 타 울고있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본 할아버지는 입장을 바꿨다"고 밝히고 "할아버지는 일제에 대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이고 야만적이며 비겁하다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노리스 전 상원의원은 3·1 독립운동 직후인 1919년 7월1일 미국 상원에서 일제의 한국침략을 중단하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일제의 식민통치 실상을 기록한 증거물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한국의 독립 열망과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미국 의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시키는데 이바지했다.

노리스 전 의원은 당시 상원에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출한 국제연맹규약의 비준을 거부하면서 "국제연맹을 받아들인다면 일본의 한국·중국 침략을 묵인하는 것이며 일본의 한국 지배를 자동 승인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한국의 독립운동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국제적 운동으로서 (현상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연맹을 따를 경우 미국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한인들을 처벌해야 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919년 워싱턴D.C.에서 100명 이상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친우회(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를 결성한데 이어 1921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개최된 워싱턴 회의에서 이승만·서재필 박사가 이끈 한국 대표단의 독립청원서를 미국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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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0 04:46:08
    국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주창했던 고(故) 조지 윌리엄 노리스(1861∼1944) 전 연방 상원의원이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안호영 주미 대사는 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D.C. 대사관저에서 한국 정부를 대신해 노리스 전 의원의 외증손자인 데이비드 노리스 래스 박사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이날 외증조부를 대신해 훈장을 수여받은 래스 박사는 "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했던 6명의 상원의원 중 한 명일 정도로 고립주의자였다"며 "그러나 1937년말 일제의 중국 열차 폭탄테러로 아기가 불에 타 울고있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본 할아버지는 입장을 바꿨다"고 밝히고 "할아버지는 일제에 대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이고 야만적이며 비겁하다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노리스 전 상원의원은 3·1 독립운동 직후인 1919년 7월1일 미국 상원에서 일제의 한국침략을 중단하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일제의 식민통치 실상을 기록한 증거물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한국의 독립 열망과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미국 의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시키는데 이바지했다.

노리스 전 의원은 당시 상원에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출한 국제연맹규약의 비준을 거부하면서 "국제연맹을 받아들인다면 일본의 한국·중국 침략을 묵인하는 것이며 일본의 한국 지배를 자동 승인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한국의 독립운동은 전 세계에서 일어난 국제적 운동으로서 (현상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연맹을 따를 경우 미국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한인들을 처벌해야 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919년 워싱턴D.C.에서 100명 이상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친우회(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를 결성한데 이어 1921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개최된 워싱턴 회의에서 이승만·서재필 박사가 이끈 한국 대표단의 독립청원서를 미국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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