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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승객 목숨 담보로 한 버스회사의 위험한 ‘갑질’
입력 2016.05.13 (08:56) 수정 2016.05.13 (08:57) 취재후·사건후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발을 헛디디고, 진짜 죽을 뻔했어요.”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의 말이 아닙니다. 제보할 것이 있다며 KBS 보도국을 찾아온 한 버스 기사의 호소였습니다. 10년 넘게 대전과 인천공항을 왕복하는 고속버스를 몰았던 김 모 씨.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하고 KBS를 찾아왔다는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하루 최대 892km, 16일간 휴일 없이 10,704km 운행

김 씨는 먼저 자신의 운행일지를 내밀었습니다. 출발지와 도착지, 운행 시간 등 매일 운행이 끝나고 꼬박꼬박 적어두었던 기록들. 김 씨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을 들여다보자 '죽을 뻔했다'는 그의 호소가 이해됐습니다.



김 씨는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11일까지 16일 동안 인천공항과 대전 왕복 440km 구간을 하루는 한 번 그 다음 날은 두 번씩, 이렇게 번갈아가며 매일 운행했습니다. 하루 평균 운행 거리가 670km, 16일 동안 10,000km가 넘는 운행을 했고, 대기시간을 포함한 총 근무시간은 9시간에서 최고 18시간이나 됐습니다.

김 씨는 동료 버스 기사 중에서 운전 실력이 뛰어나 '연비왕'을 차지할 정도로 회사에 이바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인천공항에서 운행시간을 맞추기 위해 제 시각에 도착하지 않은 일부 승객을 태우지 않고 출발한 뒤 이 같은 악몽 같은 근무지시가 일종의 징계로 내려졌습니다.

■ 버스회사, “김 씨가 스스로 원해서 한 근무였다”

버스 회사에 어찌 된 사정인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의 답변은 이 살인적인 근무를 김 씨가 자청했다는 거였습니다. 김 씨가 4월 11일 이후 개인적인 일로 휴가를 내야 해 근무 일수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 원했다는 겁니다.

김 씨에게 회사의 답변이 사실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김 씨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운행 10일째 도저히 이렇게 운행할 수가 없어서 휴무계획서까지 제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은 그때 다른 버스 기사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인력 부족을 이유로 휴가 요청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보통 고속버스 기사들은 일주일 정도 연속해서 운행한 뒤 최소 이틀에서 나흘 정도 쉰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김 씨는 회사의 일방적인 운행 지시에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장장 16일 동안 매번 승객 20여 명을 태운 채 위험천만한 운행을 계속 한 겁니다.



■ 졸리고 용변 급해도 휴게소 못 가

김 씨의 소개로 만난 같은 회사의 한 버스 기사는 또 다른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고속도로 운행 도중 아무리 졸음이 와도 휴게소에 마음대로 들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버스회사가 운행 노선에 있는 많은 휴게소 가운데 제휴를 맺은 지정된 휴게소 단 1곳에만 가도록 지시한 겁니다.

승객들을 특정 휴게소에 내려 이용하게 하는 대신 버스회사는 휴게소로부터 에어컨과 TV 등 각종 물품을 지원받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이야기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또 회사는 지정된 휴게소에 들렀는지를 운행이 끝난 버스 CCTV로 일일이 확인한다고 합니다.

다른 휴게소에 들른 기사는 사유서를 쓰고 휴일에 출근해 온종일 주차요원 일을 시켰습니다. 버스 기사와 승객들의 안전, 고객 편의보다는 상술이 먼저였던 겁니다.



■ 승객은 무슨 죄?

김 씨를 고용한 '갑질 버스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버스는 4백20여 대입니다. 평균적으로 승객 20명만 태우고 운행한다고 해도 하루 만 6천여 명가량의 승객이 이 버스회사를 이용하는 셈입니다. 최장 16일 동안, 하루 평균 670km를 운행시키는 회사. 가고 싶은 휴게소에도 들리지 못하는 회사에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맡겨 온 셈입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가 지난 10일 KBS뉴스9에서 방송됐습니다. 보도 뒤 바로 다음 날, 김 씨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무리한 운행을 강요했던 회사 배차담당자가 잘못을 시인했다는 겁니다.

보도 이후, 버스회사는 기사들의 근무일지를 모두 확인하는 등 자체 감사를 벌였습니다. 대전고용노동청은 곧 회사를 상대로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승무원을 겁박하고 항공기를 되돌리게 한 항공회사 임원, 자가용 기사를 머슴처럼 부린 지방의 한 중견기업 회장. 우린 그동안 수많은 갑질 행패를 지켜봐 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이런 병폐가 사라지는 날은 언제 쯤올까요?

[연관 기사] ☞ 승객 목숨 담보로…버스 회사의 ‘위험한 갑질’ (2016.05.09)
  • [취재후] 승객 목숨 담보로 한 버스회사의 위험한 ‘갑질’
    • 입력 2016-05-13 08:56:26
    • 수정2016-05-13 08:57:09
    취재후·사건후
“사람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발을 헛디디고, 진짜 죽을 뻔했어요.”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의 말이 아닙니다. 제보할 것이 있다며 KBS 보도국을 찾아온 한 버스 기사의 호소였습니다. 10년 넘게 대전과 인천공항을 왕복하는 고속버스를 몰았던 김 모 씨.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하고 KBS를 찾아왔다는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하루 최대 892km, 16일간 휴일 없이 10,704km 운행

김 씨는 먼저 자신의 운행일지를 내밀었습니다. 출발지와 도착지, 운행 시간 등 매일 운행이 끝나고 꼬박꼬박 적어두었던 기록들. 김 씨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을 들여다보자 '죽을 뻔했다'는 그의 호소가 이해됐습니다.



김 씨는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11일까지 16일 동안 인천공항과 대전 왕복 440km 구간을 하루는 한 번 그 다음 날은 두 번씩, 이렇게 번갈아가며 매일 운행했습니다. 하루 평균 운행 거리가 670km, 16일 동안 10,000km가 넘는 운행을 했고, 대기시간을 포함한 총 근무시간은 9시간에서 최고 18시간이나 됐습니다.

김 씨는 동료 버스 기사 중에서 운전 실력이 뛰어나 '연비왕'을 차지할 정도로 회사에 이바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인천공항에서 운행시간을 맞추기 위해 제 시각에 도착하지 않은 일부 승객을 태우지 않고 출발한 뒤 이 같은 악몽 같은 근무지시가 일종의 징계로 내려졌습니다.

■ 버스회사, “김 씨가 스스로 원해서 한 근무였다”

버스 회사에 어찌 된 사정인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의 답변은 이 살인적인 근무를 김 씨가 자청했다는 거였습니다. 김 씨가 4월 11일 이후 개인적인 일로 휴가를 내야 해 근무 일수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 원했다는 겁니다.

김 씨에게 회사의 답변이 사실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김 씨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운행 10일째 도저히 이렇게 운행할 수가 없어서 휴무계획서까지 제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측은 그때 다른 버스 기사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인력 부족을 이유로 휴가 요청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보통 고속버스 기사들은 일주일 정도 연속해서 운행한 뒤 최소 이틀에서 나흘 정도 쉰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김 씨는 회사의 일방적인 운행 지시에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장장 16일 동안 매번 승객 20여 명을 태운 채 위험천만한 운행을 계속 한 겁니다.



■ 졸리고 용변 급해도 휴게소 못 가

김 씨의 소개로 만난 같은 회사의 한 버스 기사는 또 다른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고속도로 운행 도중 아무리 졸음이 와도 휴게소에 마음대로 들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버스회사가 운행 노선에 있는 많은 휴게소 가운데 제휴를 맺은 지정된 휴게소 단 1곳에만 가도록 지시한 겁니다.

승객들을 특정 휴게소에 내려 이용하게 하는 대신 버스회사는 휴게소로부터 에어컨과 TV 등 각종 물품을 지원받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이야기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또 회사는 지정된 휴게소에 들렀는지를 운행이 끝난 버스 CCTV로 일일이 확인한다고 합니다.

다른 휴게소에 들른 기사는 사유서를 쓰고 휴일에 출근해 온종일 주차요원 일을 시켰습니다. 버스 기사와 승객들의 안전, 고객 편의보다는 상술이 먼저였던 겁니다.



■ 승객은 무슨 죄?

김 씨를 고용한 '갑질 버스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버스는 4백20여 대입니다. 평균적으로 승객 20명만 태우고 운행한다고 해도 하루 만 6천여 명가량의 승객이 이 버스회사를 이용하는 셈입니다. 최장 16일 동안, 하루 평균 670km를 운행시키는 회사. 가고 싶은 휴게소에도 들리지 못하는 회사에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맡겨 온 셈입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도가 지난 10일 KBS뉴스9에서 방송됐습니다. 보도 뒤 바로 다음 날, 김 씨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무리한 운행을 강요했던 회사 배차담당자가 잘못을 시인했다는 겁니다.

보도 이후, 버스회사는 기사들의 근무일지를 모두 확인하는 등 자체 감사를 벌였습니다. 대전고용노동청은 곧 회사를 상대로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승무원을 겁박하고 항공기를 되돌리게 한 항공회사 임원, 자가용 기사를 머슴처럼 부린 지방의 한 중견기업 회장. 우린 그동안 수많은 갑질 행패를 지켜봐 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이런 병폐가 사라지는 날은 언제 쯤올까요?

[연관 기사] ☞ 승객 목숨 담보로…버스 회사의 ‘위험한 갑질’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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