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찾은 5.18 외신기자 “민주주의 일궜다”
입력 2016.05.17 (06:18)
수정 2016.05.1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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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80년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건 당시 아시아 특파원이었던 외신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일(18일) 5.18 기념식을 앞두고 36년 만에 광주를 찾았습니다.
김해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80년 5월, 국내 언론이 신군부의 대변인을 자처할 때, 광주의 참상을 알린 건 외신이었습니다.
<녹취> 짐 롤리 기자(ABC 뉴스 클로징) : "광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군부 독재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기록될 겁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당시 외신 기자들이 다시 광주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변한 옛 전남 도청에서의 기억은 36년이 지나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노만 소프(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 "광주에 오는 전화선이 모두 끊겼어요. 우리는 (기사 송출을 위해) 전남 장성 같은 외곽 지역으로 몰래 나가야만 했지요."
신군부의 검열로 당시 지녔던 물품은 잃어버렸지만,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광주시민들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브래들리 마틴(당시 더 볼티모어 선 기자) : "(도청에서) 마지막 남은 이들은 그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맞섰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전,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독일 언론인 고 힌츠페터 씨는 소망대로 광주에 잠들었습니다.
고 힌츠페터 씨 추모정원 개장식에는 80년 당시 동료 외신기자와 구스마오 전 동티모르 대통령, 100여 명의 광주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80년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건 당시 아시아 특파원이었던 외신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일(18일) 5.18 기념식을 앞두고 36년 만에 광주를 찾았습니다.
김해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80년 5월, 국내 언론이 신군부의 대변인을 자처할 때, 광주의 참상을 알린 건 외신이었습니다.
<녹취> 짐 롤리 기자(ABC 뉴스 클로징) : "광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군부 독재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기록될 겁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당시 외신 기자들이 다시 광주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변한 옛 전남 도청에서의 기억은 36년이 지나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노만 소프(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 "광주에 오는 전화선이 모두 끊겼어요. 우리는 (기사 송출을 위해) 전남 장성 같은 외곽 지역으로 몰래 나가야만 했지요."
신군부의 검열로 당시 지녔던 물품은 잃어버렸지만,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광주시민들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브래들리 마틴(당시 더 볼티모어 선 기자) : "(도청에서) 마지막 남은 이들은 그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맞섰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전,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독일 언론인 고 힌츠페터 씨는 소망대로 광주에 잠들었습니다.
고 힌츠페터 씨 추모정원 개장식에는 80년 당시 동료 외신기자와 구스마오 전 동티모르 대통령, 100여 명의 광주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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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6-05-17 08: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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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건 당시 아시아 특파원이었던 외신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일(18일) 5.18 기념식을 앞두고 36년 만에 광주를 찾았습니다.
김해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80년 5월, 국내 언론이 신군부의 대변인을 자처할 때, 광주의 참상을 알린 건 외신이었습니다.
<녹취> 짐 롤리 기자(ABC 뉴스 클로징) : "광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군부 독재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기록될 겁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당시 외신 기자들이 다시 광주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변한 옛 전남 도청에서의 기억은 36년이 지나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노만 소프(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 "광주에 오는 전화선이 모두 끊겼어요. 우리는 (기사 송출을 위해) 전남 장성 같은 외곽 지역으로 몰래 나가야만 했지요."
신군부의 검열로 당시 지녔던 물품은 잃어버렸지만,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광주시민들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브래들리 마틴(당시 더 볼티모어 선 기자) : "(도청에서) 마지막 남은 이들은 그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맞섰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전,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독일 언론인 고 힌츠페터 씨는 소망대로 광주에 잠들었습니다.
고 힌츠페터 씨 추모정원 개장식에는 80년 당시 동료 외신기자와 구스마오 전 동티모르 대통령, 100여 명의 광주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80년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건 당시 아시아 특파원이었던 외신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일(18일) 5.18 기념식을 앞두고 36년 만에 광주를 찾았습니다.
김해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80년 5월, 국내 언론이 신군부의 대변인을 자처할 때, 광주의 참상을 알린 건 외신이었습니다.
<녹취> 짐 롤리 기자(ABC 뉴스 클로징) : "광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군부 독재에 맞선 투쟁의 상징으로 기록될 겁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당시 외신 기자들이 다시 광주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변한 옛 전남 도청에서의 기억은 36년이 지나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노만 소프(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 "광주에 오는 전화선이 모두 끊겼어요. 우리는 (기사 송출을 위해) 전남 장성 같은 외곽 지역으로 몰래 나가야만 했지요."
신군부의 검열로 당시 지녔던 물품은 잃어버렸지만,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광주시민들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브래들리 마틴(당시 더 볼티모어 선 기자) : "(도청에서) 마지막 남은 이들은 그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맞섰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전,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독일 언론인 고 힌츠페터 씨는 소망대로 광주에 잠들었습니다.
고 힌츠페터 씨 추모정원 개장식에는 80년 당시 동료 외신기자와 구스마오 전 동티모르 대통령, 100여 명의 광주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KBS 뉴스 김해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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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정 기자 beingh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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