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생긴 일…“통역 좀 제대로 합시다”

입력 2016.06.1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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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외교부 영빈관에서 한-러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습니다. 우리 외교장관이 모스크바에 와서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진 것은 2011년 8월 이후 5년 만의 일입니다. 회담이 끝난 후 양국 장관이 나란히 앉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북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하나가 돼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고, 한-러 양국간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이 큰 줄기였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된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기자회견 내용입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과제에 대한 한-러 양국의 충실한 이행 의지를 확인했으며, 러시아와 한국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보유 국가라고 선언한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앞부분의 내용을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We reaffirmed the commitment of both countries to the goal of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

그런데, 러시아측 통역이 번역한 것을 보니 좀 엉뚱하네요.

러시아측 통역사의 번역:
"북한이 앞으로 무조건 비핵화를 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공동으로 이런 지향을 확인했고, 또한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 지위를 표명했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같이 했습니다."



러시아측 통역사는 민감하고 복잡한 북한 핵문제를 다루면서 실제 발언에는 있지도 않은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넣는 등 정확하지 않게 말을 옮겼고, 뒷문장은 주어, 서술어 관계도 맞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지 않게 통역을 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공동기자회견이 끝난 뒤 한국 외교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고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외교부의 보도자료는 러시아 장관이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고 명기해 놓고 있었습니다.

"특히, 라브로프 장관은 북한은 무조건 비핵화해야 하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결코 인정할 수 없으며..."

한국 외교부가 낸 ‘윤병세 외교 장관, 모스크바에서 한-러 외교 장관 회담 개최’ 보도자료한국 외교부가 낸 ‘윤병세 외교 장관, 모스크바에서 한-러 외교 장관 회담 개최’ 보도자료


러시아측 통역의 잘못된 통역(번역)을 문장만 조금 매끄럽게 가다듬어 사실상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외교부측에 물어보니, 공동 기자회견이 끝나고 최대한 빨리 '보도자료'를 배포하려다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일단 러시아측 통역을 가감없이 수용하게 됐고, 별도로 라브로프 장관의 멘트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국제 외교무대에서 말 한마디 통역·번역을 잘못하면, 엄청난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아실텐데요.

"통역 좀 제대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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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스크바에서 생긴 일…“통역 좀 제대로 합시다”
    • 입력 2016-06-17 21:39:09
    취재K
6월 13일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외교부 영빈관에서 한-러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습니다. 우리 외교장관이 모스크바에 와서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진 것은 2011년 8월 이후 5년 만의 일입니다. 회담이 끝난 후 양국 장관이 나란히 앉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북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하나가 돼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고, 한-러 양국간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이 큰 줄기였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된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기자회견 내용입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과제에 대한 한-러 양국의 충실한 이행 의지를 확인했으며, 러시아와 한국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보유 국가라고 선언한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앞부분의 내용을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이렇습니다.

"We reaffirmed the commitment of both countries to the goal of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

그런데, 러시아측 통역이 번역한 것을 보니 좀 엉뚱하네요.

러시아측 통역사의 번역:
"북한이 앞으로 무조건 비핵화를 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공동으로 이런 지향을 확인했고, 또한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 지위를 표명했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같이 했습니다."



러시아측 통역사는 민감하고 복잡한 북한 핵문제를 다루면서 실제 발언에는 있지도 않은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넣는 등 정확하지 않게 말을 옮겼고, 뒷문장은 주어, 서술어 관계도 맞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지 않게 통역을 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공동기자회견이 끝난 뒤 한국 외교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고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외교부의 보도자료는 러시아 장관이 아래와 같이 얘기했다고 명기해 놓고 있었습니다.

"특히, 라브로프 장관은 북한은 무조건 비핵화해야 하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결코 인정할 수 없으며..."

한국 외교부가 낸 ‘윤병세 외교 장관, 모스크바에서 한-러 외교 장관 회담 개최’ 보도자료

러시아측 통역의 잘못된 통역(번역)을 문장만 조금 매끄럽게 가다듬어 사실상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외교부측에 물어보니, 공동 기자회견이 끝나고 최대한 빨리 '보도자료'를 배포하려다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일단 러시아측 통역을 가감없이 수용하게 됐고, 별도로 라브로프 장관의 멘트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국제 외교무대에서 말 한마디 통역·번역을 잘못하면, 엄청난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아실텐데요.

"통역 좀 제대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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