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이렇게 써도 됩니까?…허술한 생활체육 공금 관리

입력 2016.06.24 (20:09) 수정 2016.06.2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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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 야구인의 등록 단체인 전국 야구연합회.사회인 야구인의 등록 단체인 전국 야구연합회.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어 최근 사회인 야구 열기도 어느 때보다 뜨겁다. 선수가 아닌 순수 동호인들이 함께 모여 야구를 즐기는데, 최근에는 각종 크고 작은 대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고 있다. 이 야구 동호인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대회 개최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맹 단체가 바로 전국 야구연합회다.

그런데 전국야구연합회(이하 연합회)가 임직원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음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연합회의 한 내부 고발자가 KBS에 제보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지난 2010년부터 5년간 횡령 및 유용한 금액이 무려 4억 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회는 통합체육회의 전신인 국민생활체육회의 산하 단체. 국고 보조금을 받는 정식 가맹단체이다. 연합회의 비리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횡령-유용한 돈이 '나랏돈'이라는 점에서다. 연합회는 지난 5년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약 18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왔는데, 이 가운데 4억여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법도 다양하고 교묘했다. 예를 들어 야구 동호인 대회를 개최하면 심판 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심판 수당을 준다고 서류상으로 꾸며놓고 이를 자신들의 호주머니로 가로채는 방식이다.

지난 2012년 야구클럽리그제(총 23경기)에 심판 수당이 13명에게 지급된 것으로 기록됐는데, 알고 보니 이 가운데 실제 수령한 심판은 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7명은 대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심판이었고 이들이 서류상으로 받아간 돈은 300만원에 달했다.

심판들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허위로 서류를 만든 뒤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유용했다.심판들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허위로 서류를 만든 뒤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유용했다.


심판 수당 뿐 아니라 용품업체와의 가짜 계약으로 돈을 빼돌린 의혹도 받고 있다. 대회에 사용되는 경기 용품들을 허위로 구입하고 구입 물품의 수량과 단가 부풀리기를 통해 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연합회가 지난 5년간 횡령-유용한 나랏돈이 무려 4억원이 넘는다는 의혹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난 5년간의 액수일 뿐,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비리 액수는 더 커진다는 얘기여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연합회 측도 이런 식의 보조금 유용 의혹에 대해 일부 시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합회의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횡령은 아닙니다. 저희가 유용을 한 거죠. 직원들 기름값이나 이런거... 결코 사익을 위해 쓰지는 않았습니다. 쓸 수 있는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몇 년동안 연합회 회장님이 사재 출연을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예산 더 받을 수 있도록 2명이 일하는 걸 3명으로 일한다고 하고...교통비도 챙기고 그랬습니다. 저희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게 아니고 임원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컨데 열악한 연합회 사무국 재정상 어느 정도의 공금 유용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들이 횡령-유용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액수가 수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그 대상이 국고 보조금이다.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연합회 운영 비리를 악용해 이권 다툼, 파벌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심각한 부작용이다. 전임 집행부의 비리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 내부 관계자가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비위 사실을 외부에 알려 자신들의 이득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야구연합회 뿐 아니라 각종 스포츠 단체들이 이런 식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일은 이제 체육계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야구연합회 비리 사실을 KBS에 알린 제보자 역시 파벌,계파 싸움의 중심에 있었다.야구연합회 비리 사실을 KBS에 알린 제보자 역시 파벌,계파 싸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과연 이 사안이 야구연합회에만 한정된 일일까. 야구연합회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생활체육 단체들이 이런 유혹 속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활체육의 한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와 달리 생활체육 단체는 그동안 제대로 된 감시 시스템이 없었다. 외부 감사 제도가 명목상으로 있긴 했지만 사실상 유명 무실했고 사무국과 이사들이 한 통속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결국 생활체육 단체의 허술한 관리 감독 시스템의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 동안 정부는 생활체육 육성이라는 명목 하에 가맹 단체들에게 상당한 보조금을 지원해 왔다. 지자체와 연계한 각종 대회 유치를 유도하고 지원금을 넉넉하게 보내주는 방식으로 저변을 넓히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만 강조하다 보니 내부적인 모순과 문제점들이 쌓여간 것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왔다.



더욱이 엘리트와 생활 체육이 통합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들을 확실히 털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야구연합회와 대한야구협회의 통합은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한야구협회는 집행부 입시 비리 문제 등으로 관리단체에 지정돼 있고, 야구연합회 역시 내부 비리와 파벌싸움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대한체육회의 책임이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야구 연합회의 각종 횡령 의혹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부패 방지국이 조사에 나섰다. 권익위는 의혹 제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이 사안을 문체부와 수사 기관에 송부해 놓은 상태다. 대한체육회 조영호 사무총장은 "그 동안 생활체육 단체가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다 보니 투명하지 못한 운영을 해왔다. 체육회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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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4 20:09:50
    • 수정2016-06-26 12:23:34
    취재K
사회인 야구인의 등록 단체인 전국 야구연합회.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어 최근 사회인 야구 열기도 어느 때보다 뜨겁다. 선수가 아닌 순수 동호인들이 함께 모여 야구를 즐기는데, 최근에는 각종 크고 작은 대회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고 있다. 이 야구 동호인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대회 개최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맹 단체가 바로 전국 야구연합회다.

그런데 전국야구연합회(이하 연합회)가 임직원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음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연합회의 한 내부 고발자가 KBS에 제보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지난 2010년부터 5년간 횡령 및 유용한 금액이 무려 4억 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회는 통합체육회의 전신인 국민생활체육회의 산하 단체. 국고 보조금을 받는 정식 가맹단체이다. 연합회의 비리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횡령-유용한 돈이 '나랏돈'이라는 점에서다. 연합회는 지난 5년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약 18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왔는데, 이 가운데 4억여원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법도 다양하고 교묘했다. 예를 들어 야구 동호인 대회를 개최하면 심판 비용이 발생한다. 그런데 심판 수당을 준다고 서류상으로 꾸며놓고 이를 자신들의 호주머니로 가로채는 방식이다.

지난 2012년 야구클럽리그제(총 23경기)에 심판 수당이 13명에게 지급된 것으로 기록됐는데, 알고 보니 이 가운데 실제 수령한 심판은 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7명은 대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심판이었고 이들이 서류상으로 받아간 돈은 300만원에 달했다.

심판들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허위로 서류를 만든 뒤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유용했다.

심판 수당 뿐 아니라 용품업체와의 가짜 계약으로 돈을 빼돌린 의혹도 받고 있다. 대회에 사용되는 경기 용품들을 허위로 구입하고 구입 물품의 수량과 단가 부풀리기를 통해 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연합회가 지난 5년간 횡령-유용한 나랏돈이 무려 4억원이 넘는다는 의혹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난 5년간의 액수일 뿐,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비리 액수는 더 커진다는 얘기여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연합회 측도 이런 식의 보조금 유용 의혹에 대해 일부 시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합회의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횡령은 아닙니다. 저희가 유용을 한 거죠. 직원들 기름값이나 이런거... 결코 사익을 위해 쓰지는 않았습니다. 쓸 수 있는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몇 년동안 연합회 회장님이 사재 출연을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예산 더 받을 수 있도록 2명이 일하는 걸 3명으로 일한다고 하고...교통비도 챙기고 그랬습니다. 저희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게 아니고 임원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컨데 열악한 연합회 사무국 재정상 어느 정도의 공금 유용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들이 횡령-유용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액수가 수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그 대상이 국고 보조금이다.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연합회 운영 비리를 악용해 이권 다툼, 파벌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심각한 부작용이다. 전임 집행부의 비리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는 내부 관계자가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비위 사실을 외부에 알려 자신들의 이득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야구연합회 뿐 아니라 각종 스포츠 단체들이 이런 식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일은 이제 체육계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야구연합회 비리 사실을 KBS에 알린 제보자 역시 파벌,계파 싸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과연 이 사안이 야구연합회에만 한정된 일일까. 야구연합회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생활체육 단체들이 이런 유혹 속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활체육의 한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와 달리 생활체육 단체는 그동안 제대로 된 감시 시스템이 없었다. 외부 감사 제도가 명목상으로 있긴 했지만 사실상 유명 무실했고 사무국과 이사들이 한 통속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결국 생활체육 단체의 허술한 관리 감독 시스템의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 동안 정부는 생활체육 육성이라는 명목 하에 가맹 단체들에게 상당한 보조금을 지원해 왔다. 지자체와 연계한 각종 대회 유치를 유도하고 지원금을 넉넉하게 보내주는 방식으로 저변을 넓히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만 강조하다 보니 내부적인 모순과 문제점들이 쌓여간 것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왔다.



더욱이 엘리트와 생활 체육이 통합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들을 확실히 털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야구연합회와 대한야구협회의 통합은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한야구협회는 집행부 입시 비리 문제 등으로 관리단체에 지정돼 있고, 야구연합회 역시 내부 비리와 파벌싸움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대한체육회의 책임이 무거워지는 대목이다.

야구 연합회의 각종 횡령 의혹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 부패 방지국이 조사에 나섰다. 권익위는 의혹 제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이 사안을 문체부와 수사 기관에 송부해 놓은 상태다. 대한체육회 조영호 사무총장은 "그 동안 생활체육 단체가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다 보니 투명하지 못한 운영을 해왔다. 체육회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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