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 고아원’을 아시나요?
입력 2016.06.27 (07:38)
수정 2016.06.2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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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앙카라 고아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6.25 전쟁 당시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가 생겼는데요.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터키 군인들이 자신들의 수도 이름을 따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세운 곳입니다.
이 '고아원'이 있던 곳을 우한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녹취> "앙카라 앙카라 귀젤 앙카라~"
74살인 오수복 할아버지는 이 터키 노래를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피난길에 가족을 잃은 자신을 먹이고 재워준 터키 군인들이 가르쳐준 노래입니다.
<녹취> 오수복 (74세/6.25 전쟁고아) : "(피난 중에 폭격으로) 다리 끊어져가지고 기차가 못갔지. 거기서 다 뿔뿔이 헤어져서. 터키 군인들이 어리고 울고 그러니까 부대에서 자기들 먹는 것 주고..."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유엔군으로 참전한 터키 군인들은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자국 수도 이름을 딴 '앙카라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터키 잔류군이 철수한 1966년까지 14년 동안 전쟁 고아 64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노래도 가르쳐 주고 학교도 보내줬지. 의복도 일본에서 수입해 주고 그랬어."
잊히는 듯했던 '앙카라 고아원'은 10년 전 수원시가 고아원이 있던 곳에 기념비를 세우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터키군의 활동을 기린 '앙카라 학교 공원'도 만들어졌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터키 군인들은 3천2백여 명.
오 할아버지는 터키 군인들을 '칸카르데쉬', 피를 나눈 형제라 여깁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터키 군인들) 생각 많이 하고 있지.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해줬으니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실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만든 건 '앙카라 학교(고아원)' 덕분이지."
KBS 뉴스 우한솔입니다.
'앙카라 고아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6.25 전쟁 당시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가 생겼는데요.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터키 군인들이 자신들의 수도 이름을 따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세운 곳입니다.
이 '고아원'이 있던 곳을 우한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녹취> "앙카라 앙카라 귀젤 앙카라~"
74살인 오수복 할아버지는 이 터키 노래를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피난길에 가족을 잃은 자신을 먹이고 재워준 터키 군인들이 가르쳐준 노래입니다.
<녹취> 오수복 (74세/6.25 전쟁고아) : "(피난 중에 폭격으로) 다리 끊어져가지고 기차가 못갔지. 거기서 다 뿔뿔이 헤어져서. 터키 군인들이 어리고 울고 그러니까 부대에서 자기들 먹는 것 주고..."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유엔군으로 참전한 터키 군인들은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자국 수도 이름을 딴 '앙카라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터키 잔류군이 철수한 1966년까지 14년 동안 전쟁 고아 64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노래도 가르쳐 주고 학교도 보내줬지. 의복도 일본에서 수입해 주고 그랬어."
잊히는 듯했던 '앙카라 고아원'은 10년 전 수원시가 고아원이 있던 곳에 기념비를 세우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터키군의 활동을 기린 '앙카라 학교 공원'도 만들어졌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터키 군인들은 3천2백여 명.
오 할아버지는 터키 군인들을 '칸카르데쉬', 피를 나눈 형제라 여깁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터키 군인들) 생각 많이 하고 있지.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해줬으니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실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만든 건 '앙카라 학교(고아원)' 덕분이지."
KBS 뉴스 우한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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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카라 고아원’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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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6-27 08:09:31
- 수정2016-06-27 08: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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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고아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6.25 전쟁 당시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가 생겼는데요.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터키 군인들이 자신들의 수도 이름을 따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세운 곳입니다.
이 '고아원'이 있던 곳을 우한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녹취> "앙카라 앙카라 귀젤 앙카라~"
74살인 오수복 할아버지는 이 터키 노래를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피난길에 가족을 잃은 자신을 먹이고 재워준 터키 군인들이 가르쳐준 노래입니다.
<녹취> 오수복 (74세/6.25 전쟁고아) : "(피난 중에 폭격으로) 다리 끊어져가지고 기차가 못갔지. 거기서 다 뿔뿔이 헤어져서. 터키 군인들이 어리고 울고 그러니까 부대에서 자기들 먹는 것 주고..."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유엔군으로 참전한 터키 군인들은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자국 수도 이름을 딴 '앙카라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터키 잔류군이 철수한 1966년까지 14년 동안 전쟁 고아 64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노래도 가르쳐 주고 학교도 보내줬지. 의복도 일본에서 수입해 주고 그랬어."
잊히는 듯했던 '앙카라 고아원'은 10년 전 수원시가 고아원이 있던 곳에 기념비를 세우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터키군의 활동을 기린 '앙카라 학교 공원'도 만들어졌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터키 군인들은 3천2백여 명.
오 할아버지는 터키 군인들을 '칸카르데쉬', 피를 나눈 형제라 여깁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터키 군인들) 생각 많이 하고 있지.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해줬으니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실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만든 건 '앙카라 학교(고아원)' 덕분이지."
KBS 뉴스 우한솔입니다.
'앙카라 고아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6.25 전쟁 당시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가 생겼는데요.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터키 군인들이 자신들의 수도 이름을 따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세운 곳입니다.
이 '고아원'이 있던 곳을 우한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녹취> "앙카라 앙카라 귀젤 앙카라~"
74살인 오수복 할아버지는 이 터키 노래를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피난길에 가족을 잃은 자신을 먹이고 재워준 터키 군인들이 가르쳐준 노래입니다.
<녹취> 오수복 (74세/6.25 전쟁고아) : "(피난 중에 폭격으로) 다리 끊어져가지고 기차가 못갔지. 거기서 다 뿔뿔이 헤어져서. 터키 군인들이 어리고 울고 그러니까 부대에서 자기들 먹는 것 주고..."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유엔군으로 참전한 터키 군인들은 한국 전쟁고아들을 위해 자국 수도 이름을 딴 '앙카라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터키 잔류군이 철수한 1966년까지 14년 동안 전쟁 고아 64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노래도 가르쳐 주고 학교도 보내줬지. 의복도 일본에서 수입해 주고 그랬어."
잊히는 듯했던 '앙카라 고아원'은 10년 전 수원시가 고아원이 있던 곳에 기념비를 세우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터키군의 활동을 기린 '앙카라 학교 공원'도 만들어졌습니다.
한국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터키 군인들은 3천2백여 명.
오 할아버지는 터키 군인들을 '칸카르데쉬', 피를 나눈 형제라 여깁니다.
<녹취> 오수복(74세/6.25 전쟁고아) : "(터키 군인들) 생각 많이 하고 있지.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해줬으니까.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실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있게끔 만든 건 '앙카라 학교(고아원)' 덕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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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솔 기자 pi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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