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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금메달리스트’ 고 오세종의 10년 전 인터뷰
입력 2016.06.28 (16:07) 취재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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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 잘 때 일어나서 운동하고 더 늦게 자는 게 비결이죠"

누구보다 성실했던 한 청년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운동선수였던 그 청년은 20대 중반에 은퇴했다. 그리고 쇼트트랙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고깃집까지 운영하며 열심히 살았다. 사고가 난 그 밤에도 학생들과의 훈련이 끝난 뒤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로 향하다 불법 유턴하는 차량에 사고를 당했다.

세상을 떠난 34살 청년의 이름은 오세종이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5,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금메달리스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세종은 금메달을 따던 그 날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을 달리지 못했다. 그는 계주 단체전 후보 선수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지만 안타깝게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함께 뛸 수는 없었지만, 오세종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지옥 같았던 훈련을 이겨낸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낸 금메달이었다. "계주에서 금메달 따서 너무 기쁘고요. 단체전이라서 다 같이 딴 것이기 때문에... 모두 다 수고했고요. 힘든 훈련 잘 참아서 좋은 성적 난 것 같아요."



한국 쇼트트랙이 강한 이유를 설명하던 오세종의 당시 인터뷰 모습은 왜 성실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는지 잘 보여준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나라 선수들 잘 때 조금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좀 더 늦게 자는 게 큰 비결이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부모님을 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토리노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한 오세종은 결혼도 미룬 채 돈을 모아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선수 시절만큼이나 성실한 삶을 살았다.

오세종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도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선수가 아니라 대표 선수들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지원 스태프였다. 공식 패스가 없어서 호텔과 시합장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언제 어느 곳이든지 선수들이 부르면 달려가 스케이트 날을 갈아줬다. 심지어 호텔 앞 공원 화장실 밑에서 비를 맞으면서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고 오세종의 성실함을 기억하던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고 있다. 대표팀 선배인 제갈성렬은 "대표팀에서나 지도자로서 정말 열심히 하는 후배였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은 있었지만 화려함은 쇼트트랙 선수 오세종의 몫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년 오세종의 짧은 인생은 금메달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남긴다.

금메달리스트 오세종은 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지만, 성실했던 청년 오세종의 한 마디는 조금 더 오래 기억할 가치가 충분하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 잘 때 일어나서 운동하고 더 늦게 자는 게 비결이죠"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남들보다 열심히, 성실히,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삶의 비결이었던 한 청년의 죽음을 애도한다. 10년 전 토리노 올림픽 때도 방송되지 못했던 고 오세종의 인터뷰를 새삼스레 다시 사람들에게 내어놓는 이유다.
  • ‘잊혀진 금메달리스트’ 고 오세종의 10년 전 인터뷰
    • 입력 2016-06-28 16:07:28
    취재K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 잘 때 일어나서 운동하고 더 늦게 자는 게 비결이죠"

누구보다 성실했던 한 청년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운동선수였던 그 청년은 20대 중반에 은퇴했다. 그리고 쇼트트랙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고깃집까지 운영하며 열심히 살았다. 사고가 난 그 밤에도 학생들과의 훈련이 끝난 뒤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로 향하다 불법 유턴하는 차량에 사고를 당했다.

세상을 떠난 34살 청년의 이름은 오세종이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5,000m 계주 금메달리스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금메달리스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세종은 금메달을 따던 그 날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을 달리지 못했다. 그는 계주 단체전 후보 선수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지만 안타깝게도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함께 뛸 수는 없었지만, 오세종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지옥 같았던 훈련을 이겨낸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낸 금메달이었다. "계주에서 금메달 따서 너무 기쁘고요. 단체전이라서 다 같이 딴 것이기 때문에... 모두 다 수고했고요. 힘든 훈련 잘 참아서 좋은 성적 난 것 같아요."



한국 쇼트트랙이 강한 이유를 설명하던 오세종의 당시 인터뷰 모습은 왜 성실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는지 잘 보여준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나라 선수들 잘 때 조금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좀 더 늦게 자는 게 큰 비결이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부모님을 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토리노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한 오세종은 결혼도 미룬 채 돈을 모아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선수 시절만큼이나 성실한 삶을 살았다.

오세종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도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선수가 아니라 대표 선수들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지원 스태프였다. 공식 패스가 없어서 호텔과 시합장에도 들어갈 수 없었지만 언제 어느 곳이든지 선수들이 부르면 달려가 스케이트 날을 갈아줬다. 심지어 호텔 앞 공원 화장실 밑에서 비를 맞으면서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고 오세종의 성실함을 기억하던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고 있다. 대표팀 선배인 제갈성렬은 "대표팀에서나 지도자로서 정말 열심히 하는 후배였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은 있었지만 화려함은 쇼트트랙 선수 오세종의 몫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년 오세종의 짧은 인생은 금메달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남긴다.

금메달리스트 오세종은 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지만, 성실했던 청년 오세종의 한 마디는 조금 더 오래 기억할 가치가 충분하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 잘 때 일어나서 운동하고 더 늦게 자는 게 비결이죠"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남들보다 열심히, 성실히,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삶의 비결이었던 한 청년의 죽음을 애도한다. 10년 전 토리노 올림픽 때도 방송되지 못했던 고 오세종의 인터뷰를 새삼스레 다시 사람들에게 내어놓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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