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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브렉시트’ 그 후
선동정치가 부추긴 외국인혐오…“원했던 영국이 아니다”
입력 2016.06.28 (19:19) 수정 2016.06.29 (09:18) 취재K
"터키인 천2백만 명이 영국으로 올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찬반 진영의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던 지난달 영국의 한 우파 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이런 내용을 실었다.

탈퇴진영 무차별 '이민 공포' 조성

터키의 한 여론조사를 확대 해석해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대거 몰려올 것이라는 분석을 전한 것이다. 한 달 후 이 신문은 여론조사 질문을 잘못 해석해 오류가 생겼다며 터무니없는 보도를 바로잡는 정정보도를 내게 된다.

왼편 사진은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5월 22일 자. 오른편 사진은 6월 20일 자 정정기사왼편 사진은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5월 22일 자. 오른편 사진은 6월 20일 자 정정기사


실제로 유럽연합이사회가 2019년까지 유럽연합의 확장은 없을 것임을 공언할 만큼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가능성은 낮은 상황, 언젠가 가입이 이뤄지더라도 영국으로의 대량 이민은 절대 없을 것임을 캐머런 총리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던 때다.

그러나 브렉시트 찬성 진영과 우파 언론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지 않으면 터키 이민자들이 대량으로 몰려와 범죄가 늘고, 심지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자행할 수도 있다며 공포감을 키워나갔다.

나치 선전물 닮은 반이민 포스터

투표일 일주일 여전, 이런 무차별적인 공세의 결정판이 나오게 된다. 영국 독립당의 나이젤 파라지 당수가 내놓은 이 선거 포스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난민 행렬... 백인은 없고, 모두 남성이다. 사진 한복판에는 한계점(breaking point)이란 단어가 붉은 글씨로 크게 적혀 있고, 유럽연합에서 벗어나 국경 통제권을 되찾자는 탈퇴진영의 선전 문구가 하단에 실려 있다.

크로아티아 난민행렬 사진으로 만든 이 포스터로 브렉시트 찬성 진영은 선거전 막판 핵심 쟁점을 '경제'보다는 '이민'으로 좁혀가는 데 성공한다.

런던 도심을 돌고 있는 탈퇴진영의 홍보차량. 이번 국민투표에서 가장 큰 홍보광고물이었던 이 대형포스터 차량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민을 쟁점화시켰다.런던 도심을 돌고 있는 탈퇴진영의 홍보차량. 이번 국민투표에서 가장 큰 홍보광고물이었던 이 대형포스터 차량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민을 쟁점화시켰다.


이들이 활용한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나치다. 공포감이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를 고발한 BBC의 다큐멘터리 장면과 흡사하다는 비판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졌다.

파라지의 포스터가 나온 이후 소셜미디어에서는 나치 당시 죽음의 행렬을 모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파라지의 포스터가 나온 이후 소셜미디어에서는 나치 당시 죽음의 행렬을 모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뿐, 커질 대로 커진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은 결국 브렉시트로 이어졌고, 탈퇴진영은 승리를 거머쥔다. 승리한 탈퇴진영 지도자들이 선거 이후 슬그머니 말을 바꿨지만 투표는, 선거는 이미 끝난 후이다.

"외국인은 꺼져라"…. 고개드는 '제노포비아'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이나 이민족에 대한 집단적인 혐오와 배척, 증오를 말한다. 이방인이라는 의미의 '제노'(Xeno)와 혐오를 의미하는 '포비아'(Phobia)가 합성된 말이라고 한다.

이 제노포비아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바로 나치즘이다. 탈퇴진영이 활용한 포스터가 나치의 선동정치와 닮았다는 비판은 그래서 더욱 우려스럽게 들린다.

공교롭게도 난민들을 보호하면서 유럽연합 잔류 지지를 호소하던 하원의원 조 콕스가 총에 맞아 숨진 사건도 포스터가 나온 며칠 후에 발생했다.

"영국이 우선(Britain first)"을 외치며 그녀를 공격한 50대 영국인 남성은 법정에서 이름을 묻자 "배신자에게 죽음을, 영국에는 자유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물론 영국의 극우 정당인 Britain First는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성명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런 제노포비아 현상은 유럽연합 탈퇴 진영이 승리한 이후 영국 내 곳곳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극우단체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이민 중단, 본국 송환" 구호를 외쳐대고 있다.

"폴란드 해충은 꺼지라"고 적힌 카드가 학교 인근에서 발견되고, 대형 슈퍼마켓에서 "외국인은 48시간 내에 꺼져라."라고 외치는 난동사건이 발생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는 "영국을 하얗게 만들자", "언제 돌아갈 거냐" 등 온갖 조롱과 욕설에 시달린 피해 사례가 속속 오르고 있다.



오래전부터 정착한 무슬림과 최근 늘어난 동유럽 이민자는 물론 영국 태생의 백인을 빼고는 모두 "집으로 가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어떤 면에선 이런 인종주의자들이 행태가 지난 1980년대 극우 국민전선이 거리의 이민자들을 공격하던 암울했던 시기를 연상시킨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바로 가기] 뉴욕타임스 '브렉시트가 외국인혐오를 허가해줬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우리가 원하던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아니다."

물론 캐머런 총리와, 존슨 전 런던 시장 등 탈퇴 진영도 인종주의적 범죄에 관용은 없다며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탈퇴진영이 부추긴, 그래서 국민투표 후 고개를 들기 시작한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를 막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런던에 거주하는 이민자 출신 언론인은 브렉시트 결정이 인종주의자들의 검은 행동에 '허가권(license)'을 준 셈이라고 지적한다. 52%의 유권자가 극우의 주장에 동조해준 만큼 이들의 검은 속내가 행동으로 이어지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선거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제노포비아 정서에 기댄 이들 정당의 선거운동 방식이 달라지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가운데 파운드화는 폭락하고, 경제는 추락하고, 외국 기업들은 대량 감원을 시작했다.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고, 다시 투표하자는 주장을 놓고 국민들은 다시 분열하고 있다.

과거 의회민주주의를 탄생시키고,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나라.
아프리카 난민 문제, 기후변화 협약 등 지구촌의 공통 과제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 제기하고 이끌어온 세계 5위의 경제 대국.

그런 자부심에 가득 찼던 이전의 영국, 영국민의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 보인다.

"우리가 보기를 원했던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이 아니다."

탈퇴진영 지도자들이 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모습을 비난하며 선거 기간에 잔류진영으로 돌아선 보수당 여성 상원의원은 지금 심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 선동정치가 부추긴 외국인혐오…“원했던 영국이 아니다”
    • 입력 2016-06-28 19:19:13
    • 수정2016-06-29 09:18:04
    취재K
"터키인 천2백만 명이 영국으로 올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찬반 진영의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던 지난달 영국의 한 우파 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이런 내용을 실었다.

탈퇴진영 무차별 '이민 공포' 조성

터키의 한 여론조사를 확대 해석해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대거 몰려올 것이라는 분석을 전한 것이다. 한 달 후 이 신문은 여론조사 질문을 잘못 해석해 오류가 생겼다며 터무니없는 보도를 바로잡는 정정보도를 내게 된다.

왼편 사진은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5월 22일 자. 오른편 사진은 6월 20일 자 정정기사왼편 사진은 선데이 익스프레스의 5월 22일 자. 오른편 사진은 6월 20일 자 정정기사


실제로 유럽연합이사회가 2019년까지 유럽연합의 확장은 없을 것임을 공언할 만큼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가능성은 낮은 상황, 언젠가 가입이 이뤄지더라도 영국으로의 대량 이민은 절대 없을 것임을 캐머런 총리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던 때다.

그러나 브렉시트 찬성 진영과 우파 언론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지 않으면 터키 이민자들이 대량으로 몰려와 범죄가 늘고, 심지어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자행할 수도 있다며 공포감을 키워나갔다.

나치 선전물 닮은 반이민 포스터

투표일 일주일 여전, 이런 무차별적인 공세의 결정판이 나오게 된다. 영국 독립당의 나이젤 파라지 당수가 내놓은 이 선거 포스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난민 행렬... 백인은 없고, 모두 남성이다. 사진 한복판에는 한계점(breaking point)이란 단어가 붉은 글씨로 크게 적혀 있고, 유럽연합에서 벗어나 국경 통제권을 되찾자는 탈퇴진영의 선전 문구가 하단에 실려 있다.

크로아티아 난민행렬 사진으로 만든 이 포스터로 브렉시트 찬성 진영은 선거전 막판 핵심 쟁점을 '경제'보다는 '이민'으로 좁혀가는 데 성공한다.

런던 도심을 돌고 있는 탈퇴진영의 홍보차량. 이번 국민투표에서 가장 큰 홍보광고물이었던 이 대형포스터 차량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민을 쟁점화시켰다.런던 도심을 돌고 있는 탈퇴진영의 홍보차량. 이번 국민투표에서 가장 큰 홍보광고물이었던 이 대형포스터 차량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민을 쟁점화시켰다.


이들이 활용한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나치다. 공포감이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를 고발한 BBC의 다큐멘터리 장면과 흡사하다는 비판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졌다.

파라지의 포스터가 나온 이후 소셜미디어에서는 나치 당시 죽음의 행렬을 모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파라지의 포스터가 나온 이후 소셜미디어에서는 나치 당시 죽음의 행렬을 모방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뿐, 커질 대로 커진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은 결국 브렉시트로 이어졌고, 탈퇴진영은 승리를 거머쥔다. 승리한 탈퇴진영 지도자들이 선거 이후 슬그머니 말을 바꿨지만 투표는, 선거는 이미 끝난 후이다.

"외국인은 꺼져라"…. 고개드는 '제노포비아'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이나 이민족에 대한 집단적인 혐오와 배척, 증오를 말한다. 이방인이라는 의미의 '제노'(Xeno)와 혐오를 의미하는 '포비아'(Phobia)가 합성된 말이라고 한다.

이 제노포비아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바로 나치즘이다. 탈퇴진영이 활용한 포스터가 나치의 선동정치와 닮았다는 비판은 그래서 더욱 우려스럽게 들린다.

공교롭게도 난민들을 보호하면서 유럽연합 잔류 지지를 호소하던 하원의원 조 콕스가 총에 맞아 숨진 사건도 포스터가 나온 며칠 후에 발생했다.

"영국이 우선(Britain first)"을 외치며 그녀를 공격한 50대 영국인 남성은 법정에서 이름을 묻자 "배신자에게 죽음을, 영국에는 자유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물론 영국의 극우 정당인 Britain First는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성명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런 제노포비아 현상은 유럽연합 탈퇴 진영이 승리한 이후 영국 내 곳곳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극우단체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이민 중단, 본국 송환" 구호를 외쳐대고 있다.

"폴란드 해충은 꺼지라"고 적힌 카드가 학교 인근에서 발견되고, 대형 슈퍼마켓에서 "외국인은 48시간 내에 꺼져라."라고 외치는 난동사건이 발생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는 "영국을 하얗게 만들자", "언제 돌아갈 거냐" 등 온갖 조롱과 욕설에 시달린 피해 사례가 속속 오르고 있다.



오래전부터 정착한 무슬림과 최근 늘어난 동유럽 이민자는 물론 영국 태생의 백인을 빼고는 모두 "집으로 가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어떤 면에선 이런 인종주의자들이 행태가 지난 1980년대 극우 국민전선이 거리의 이민자들을 공격하던 암울했던 시기를 연상시킨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바로 가기] 뉴욕타임스 '브렉시트가 외국인혐오를 허가해줬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우리가 원하던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아니다."

물론 캐머런 총리와, 존슨 전 런던 시장 등 탈퇴 진영도 인종주의적 범죄에 관용은 없다며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탈퇴진영이 부추긴, 그래서 국민투표 후 고개를 들기 시작한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를 막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런던에 거주하는 이민자 출신 언론인은 브렉시트 결정이 인종주의자들의 검은 행동에 '허가권(license)'을 준 셈이라고 지적한다. 52%의 유권자가 극우의 주장에 동조해준 만큼 이들의 검은 속내가 행동으로 이어지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선거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제노포비아 정서에 기댄 이들 정당의 선거운동 방식이 달라지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가운데 파운드화는 폭락하고, 경제는 추락하고, 외국 기업들은 대량 감원을 시작했다.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고, 다시 투표하자는 주장을 놓고 국민들은 다시 분열하고 있다.

과거 의회민주주의를 탄생시키고,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나라.
아프리카 난민 문제, 기후변화 협약 등 지구촌의 공통 과제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 제기하고 이끌어온 세계 5위의 경제 대국.

그런 자부심에 가득 찼던 이전의 영국, 영국민의 모습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 보인다.

"우리가 보기를 원했던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이 아니다."

탈퇴진영 지도자들이 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모습을 비난하며 선거 기간에 잔류진영으로 돌아선 보수당 여성 상원의원은 지금 심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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