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교민학생이 겪은 ‘반이민’…“너보다는 내가 앉아야”

입력 2016.06.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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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부모를 따라 영국에 이민한 최 모 군. 이제 런던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는 최 군은 지난 월요일 사는 곳 인근의 NHS(국가보건서비스) 병원에서 운영하는 응급실을 찾게 된다. 갑작스럽게 몰려온 극심한 편두통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린 지 3시간째, 최 군은 한 영국인 여성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양보해줬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이 너무도 뜻밖이었다.



'너보다는 내가 더 자격이 있지'. 최 군이 들은 이 말은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반이민 정서가 배경이다.

"이민자들이 영국민의 일자리와 국가보건서비스(NHS) 등 복지 혜택을 빼앗고 있다", "영국이 먼저다(Britain first)". 우파 정치인들이 연일 외쳐댔던 이런 논리가 영국 사회에 번지면서 이제 많은 사람이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대기실 밖에서 머리를 식혔지만, 편두통이 더욱 심해진 최 군은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가 그야말로 냉소적인, 심지어 위협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위대한 영국의 부활'이란 잡지 제목 역시 유럽연합 탈퇴 진영 지도자들이 영국인의 민족주의 성향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낸 슬로건이다. '외국인은 모두 다 내보내고 우리끼리 다시 잘 살자!'라는 뜻이 아닌가?

브렉시트 결정 이후 강렬해진 이런 민족주의와 반이민 정서는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혐오증, 제노포비아(Xenophobia)로까지 번지고 있다.

[연관 기사]☞ 선동정치가 부추긴 외국인혐오…“원했던 영국이 아니다”

병원 내 적대적인 분위기에 불안해진 최 군에게 역설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쏘아보던 대기 환자들은 모두 피부색이 하얀 영국인이었지만 이들을 치료해줄 의사나 간호사들은 대부분(10명 중 8명) 자신과 같은 외국 이민자였던 것이다.(피부색 등으로 추정)

2002년 영국에 정착한 후 '위대하고, 관대한 나라'에 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최 군은 이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달라진 이런 환경 속에서 희망을 잃게 됐다고 심경을 전한다.



최 군이 이런 일을 겪기 하루 전, 런던 시내 폴란드 문화센터에는 "폴란드 기생충은 꺼져라"는 낙서가 발견돼 폴란드 이주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이 문화센터에는 뜻하지 않던 손님이 찾아왔다. 이웃에 사는 영국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들고 온 꽃다발과 카드에는 누군가가 저지른 일탈 행동을 대신 사과하고 '인종 혐오'에 함께 맞서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정말로 미안해", "상황이 나아져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게", "마음 풀기를 바랄게", "언제나 너와 함께 할게"….

페이스북에 올라온 최 군의 글에도 영국인 친구와 지인들이 올린 이런 내용의 댓글이 줄을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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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 교민학생이 겪은 ‘반이민’…“너보다는 내가 앉아야”
    • 입력 2016-06-30 16:10:17
    취재K
10여 년 전 부모를 따라 영국에 이민한 최 모 군. 이제 런던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는 최 군은 지난 월요일 사는 곳 인근의 NHS(국가보건서비스) 병원에서 운영하는 응급실을 찾게 된다. 갑작스럽게 몰려온 극심한 편두통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린 지 3시간째, 최 군은 한 영국인 여성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리를 양보해줬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이 너무도 뜻밖이었다.



'너보다는 내가 더 자격이 있지'. 최 군이 들은 이 말은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반이민 정서가 배경이다.

"이민자들이 영국민의 일자리와 국가보건서비스(NHS) 등 복지 혜택을 빼앗고 있다", "영국이 먼저다(Britain first)". 우파 정치인들이 연일 외쳐댔던 이런 논리가 영국 사회에 번지면서 이제 많은 사람이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대기실 밖에서 머리를 식혔지만, 편두통이 더욱 심해진 최 군은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가 그야말로 냉소적인, 심지어 위협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위대한 영국의 부활'이란 잡지 제목 역시 유럽연합 탈퇴 진영 지도자들이 영국인의 민족주의 성향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낸 슬로건이다. '외국인은 모두 다 내보내고 우리끼리 다시 잘 살자!'라는 뜻이 아닌가?

브렉시트 결정 이후 강렬해진 이런 민족주의와 반이민 정서는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혐오증, 제노포비아(Xenophobia)로까지 번지고 있다.

[연관 기사]☞ 선동정치가 부추긴 외국인혐오…“원했던 영국이 아니다”

병원 내 적대적인 분위기에 불안해진 최 군에게 역설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쏘아보던 대기 환자들은 모두 피부색이 하얀 영국인이었지만 이들을 치료해줄 의사나 간호사들은 대부분(10명 중 8명) 자신과 같은 외국 이민자였던 것이다.(피부색 등으로 추정)

2002년 영국에 정착한 후 '위대하고, 관대한 나라'에 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최 군은 이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달라진 이런 환경 속에서 희망을 잃게 됐다고 심경을 전한다.



최 군이 이런 일을 겪기 하루 전, 런던 시내 폴란드 문화센터에는 "폴란드 기생충은 꺼져라"는 낙서가 발견돼 폴란드 이주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이 문화센터에는 뜻하지 않던 손님이 찾아왔다. 이웃에 사는 영국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들고 온 꽃다발과 카드에는 누군가가 저지른 일탈 행동을 대신 사과하고 '인종 혐오'에 함께 맞서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정말로 미안해", "상황이 나아져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게", "마음 풀기를 바랄게", "언제나 너와 함께 할게"….

페이스북에 올라온 최 군의 글에도 영국인 친구와 지인들이 올린 이런 내용의 댓글이 줄을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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