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첼시 리 사태,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만

입력 2016.07.01 (09:02) 수정 2016.07.01 (09:2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피해자 코스프레 :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자가 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해당 사안의 피해자 또는 기타 다른 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자신이 오히려 희생자인 척 가장하여 동정심을 유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우수선수 특별 귀화 추천을 받았지만, 법무부 심사과정에서 한국계라는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난 여자농구의 첼시 리. 첼시 리 사건은 한국 스포츠에서 없었던,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미국의 ESPN과 영국의 BBC까지 보도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했다.

WKBL과 대한체육회는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주장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희대의 사기극을 막을 수 있었던 두 기관의 직무유기가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



WKBL, 첼시 리 '서류 위조 정말 몰랐나?'

사실 첼시 리는 신한은행에서 영입하려던 선수였다. 그 과정을 담당했던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는 "서류의 미비점을 발견해 첼시 리를 국내에 데려올 수 없었는데 어떻게 첼시 리가 혼혈선수로 국내에서 뛸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아버지의 미국 Social Number(미국 사회보장번호,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몇 번이고 이런 내용을 WKBL에 얘기했지만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WKBL은 미국 주 정부에 첼시 리 관련 서류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변호사 공증까지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때는 정상적이었던 서류가 검찰 조사를 하니 위조 서류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떤 검증 시스템이길래 이런 부분도 걸러내지 못하는지 이것도 비판대상이다.

혹시나 했던 첼시 리의 서류 위조가 사실로 드러난 뒤 WKBL의 대처는 또 어떠한가? 법무부가 첼시 리의 서류 위조 사실을 발표한 시점은 6월 15일이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그 어떤 징계도 내려지고 있지 않다. 여자프로농구의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는데 현재 신선우 총재와 각 구단 단장들은 WNBA 기술을 보러 간다는 이유로 미국에 체류 중이다.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구조다.

대한체육회 "우리는 추천서만 써줬을 뿐.."(?)

앞서 말한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는 첼시 리가 '우수인재 선수로 귀화 추천'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대한체육회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4월 4일 FBI에 방문해 수사를 의뢰한 방문증을 이메일을 통해 첨부했고, 이런 의혹이 있다는 부분을 전화통화를 통해 대한체육회 공정체육부 담당자에게 밝혔다.

그런데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와 대한체육회 담당자가 이메일을 주고받은 하루 뒤(4월 6일) 첼시 리는 대한체육회 공정위원회를 통해 '우수인재 귀화선수'로 추천된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공정위원회 개최 준비로 시간이 없었고, 자신의 신분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제보자가 한 말 때문에 추천을 미룰 수는 없었다. 농구협회가 첼시 리를 올림픽 예선에 뛸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서둘러달라고 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의 설명은 다르다.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밝혔고(이 부분은 대한체육회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분명히 전화통화에서는 담당자가 심사위원들에게 첼시 리 의혹 관련 부분을 통보하겠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첼시 리의 경우, 혼혈 선수 추천이 아니라 우수 인재 추천이기 때문에 한국계임을 입증하는 서류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한체육회 공정위원회에 열람 된 서류 중에는 문제의 위조서류가 포함돼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 체육의 최고 기관이 그런 검증 시스템 하나 없이 단순히 기계적인 추천만 했다는 것도 선뜻 이해할 수 없다. "제보자의 신원이 확실치 않아서 위원회 상정을 미룰 수 없었다" 태극마크가 걸린 중차대한 사항을 그런 이유로 쉽게 넘길 수 있는 것일까?



첼시 리 사태의 피해자는 여자농구 넓게 봐서 한국 스포츠의 팬이다. WKBL과 대한체육회는 피해자가 아니라, 스포츠 팬들을 실망시킨 주범이다.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는 결국 자신이 법무부에 제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WKBL을 포함한 농구계에서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WKBL은 오는 7월 5일 이사회를 통해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첼시 리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첼시 리 사태,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만
    • 입력 2016-07-01 09:02:20
    • 수정2016-07-01 09:26:43
    취재후·사건후


피해자 코스프레 :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자가 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해당 사안의 피해자 또는 기타 다른 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자신이 오히려 희생자인 척 가장하여 동정심을 유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우수선수 특별 귀화 추천을 받았지만, 법무부 심사과정에서 한국계라는 서류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난 여자농구의 첼시 리. 첼시 리 사건은 한국 스포츠에서 없었던,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미국의 ESPN과 영국의 BBC까지 보도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했다.

WKBL과 대한체육회는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주장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희대의 사기극을 막을 수 있었던 두 기관의 직무유기가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



WKBL, 첼시 리 '서류 위조 정말 몰랐나?'

사실 첼시 리는 신한은행에서 영입하려던 선수였다. 그 과정을 담당했던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는 "서류의 미비점을 발견해 첼시 리를 국내에 데려올 수 없었는데 어떻게 첼시 리가 혼혈선수로 국내에서 뛸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아버지의 미국 Social Number(미국 사회보장번호,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 몇 번이고 이런 내용을 WKBL에 얘기했지만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WKBL은 미국 주 정부에 첼시 리 관련 서류를 몇 번이고 확인하고, 변호사 공증까지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때는 정상적이었던 서류가 검찰 조사를 하니 위조 서류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떤 검증 시스템이길래 이런 부분도 걸러내지 못하는지 이것도 비판대상이다.

혹시나 했던 첼시 리의 서류 위조가 사실로 드러난 뒤 WKBL의 대처는 또 어떠한가? 법무부가 첼시 리의 서류 위조 사실을 발표한 시점은 6월 15일이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그 어떤 징계도 내려지고 있지 않다. 여자프로농구의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는데 현재 신선우 총재와 각 구단 단장들은 WNBA 기술을 보러 간다는 이유로 미국에 체류 중이다.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구조다.

대한체육회 "우리는 추천서만 써줬을 뿐.."(?)

앞서 말한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는 첼시 리가 '우수인재 선수로 귀화 추천'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대한체육회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4월 4일 FBI에 방문해 수사를 의뢰한 방문증을 이메일을 통해 첨부했고, 이런 의혹이 있다는 부분을 전화통화를 통해 대한체육회 공정체육부 담당자에게 밝혔다.

그런데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와 대한체육회 담당자가 이메일을 주고받은 하루 뒤(4월 6일) 첼시 리는 대한체육회 공정위원회를 통해 '우수인재 귀화선수'로 추천된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공정위원회 개최 준비로 시간이 없었고, 자신의 신분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제보자가 한 말 때문에 추천을 미룰 수는 없었다. 농구협회가 첼시 리를 올림픽 예선에 뛸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서둘러달라고 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의 설명은 다르다.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밝혔고(이 부분은 대한체육회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분명히 전화통화에서는 담당자가 심사위원들에게 첼시 리 의혹 관련 부분을 통보하겠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첼시 리의 경우, 혼혈 선수 추천이 아니라 우수 인재 추천이기 때문에 한국계임을 입증하는 서류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한체육회 공정위원회에 열람 된 서류 중에는 문제의 위조서류가 포함돼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 체육의 최고 기관이 그런 검증 시스템 하나 없이 단순히 기계적인 추천만 했다는 것도 선뜻 이해할 수 없다. "제보자의 신원이 확실치 않아서 위원회 상정을 미룰 수 없었다" 태극마크가 걸린 중차대한 사항을 그런 이유로 쉽게 넘길 수 있는 것일까?



첼시 리 사태의 피해자는 여자농구 넓게 봐서 한국 스포츠의 팬이다. WKBL과 대한체육회는 피해자가 아니라, 스포츠 팬들을 실망시킨 주범이다. 첼시 리의 전 에이전트는 결국 자신이 법무부에 제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WKBL을 포함한 농구계에서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WKBL은 오는 7월 5일 이사회를 통해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첼시 리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