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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독립투사 묘역 돌보는 사람들
입력 2016.08.15 (06:56) 수정 2016.08.15 (07:49) 뉴스광장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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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시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일경의 감시를 피해 외진 곳에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찾기도 어려운데다 돌보는 사람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방치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렇게 잊혀진 독립투사의 묘지를 찾고 추모하는 사람들을 정연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깊숙한 진흙뻘을 건너고,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오른 한라산.

2.5km가량을 오르자 숨겨진 묘소 두 개가 나타납니다.

1919년, 제주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했던 항일독립투사 백응선과 그의 부친이 잠든 곳입니다.

옥살이와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1920년 25살에 요절한 투사의 묘지는 일제 감시를 피해 한라산 깊숙한 곳에 숨겨졌습니다.

이후 집안이 풍비박산나면서 후손마저 끊겨 광복 후에도 60년 넘게 방치됐습니다.

지난 2009년, 독립운동의 역사를 추적해 묘역을 찾아낸 고영철 씨는 매년 이웃과 함께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냅니다.

<인터뷰> 고영철 : "독립운동 했던 분들에 대한 조금이나마 보답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마음이죠. 더 거창하게 말 할게 있나요..."

제주지역 독립운동가는 160여명, 이 가운데 32명은 후손이 끊기면서 묘역조차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한대섭(광복회 제주지부장) : "해방이 되자마자 4.3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나라의 대책이 이뤄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후손이 없게 됐습니다. 후손이 없게 됐습니다."

일제시대 광복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희생정신이 잃어버린 무덤과 함께 잊혀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 방치된 독립투사 묘역 돌보는 사람들
    • 입력 2016-08-15 07:11:10
    • 수정2016-08-15 07:49:07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일제시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일경의 감시를 피해 외진 곳에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찾기도 어려운데다 돌보는 사람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방치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렇게 잊혀진 독립투사의 묘지를 찾고 추모하는 사람들을 정연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깊숙한 진흙뻘을 건너고,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오른 한라산.

2.5km가량을 오르자 숨겨진 묘소 두 개가 나타납니다.

1919년, 제주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했던 항일독립투사 백응선과 그의 부친이 잠든 곳입니다.

옥살이와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1920년 25살에 요절한 투사의 묘지는 일제 감시를 피해 한라산 깊숙한 곳에 숨겨졌습니다.

이후 집안이 풍비박산나면서 후손마저 끊겨 광복 후에도 60년 넘게 방치됐습니다.

지난 2009년, 독립운동의 역사를 추적해 묘역을 찾아낸 고영철 씨는 매년 이웃과 함께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냅니다.

<인터뷰> 고영철 : "독립운동 했던 분들에 대한 조금이나마 보답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마음이죠. 더 거창하게 말 할게 있나요..."

제주지역 독립운동가는 160여명, 이 가운데 32명은 후손이 끊기면서 묘역조차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한대섭(광복회 제주지부장) : "해방이 되자마자 4.3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나라의 대책이 이뤄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후손이 없게 됐습니다. 후손이 없게 됐습니다."

일제시대 광복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희생정신이 잃어버린 무덤과 함께 잊혀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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