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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날들의 기억 – 가와사키 도라지회
입력 2016.08.15 (09:27) 수정 2016.08.15 (09:27) TV특종

15일 오후 7시35분, KBS 1TV ‘KBS스페셜’ 시간에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갔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제일교포 1세 할머니들의 고달프고 기구한 삶을 들어본다.

10대 초반부터 아버지를 따라 탄광노동자로 실제 탄을 캐면서 생활했던 제일교포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과 사진들이 방송사상 최초로 공개된다.

□ 가와사키 조선인 징용마을 ‘사쿠라모토’

가와사키 한인타운 안에는 사쿠라모토라는 마을이 있다. 사쿠라모토는 일본 내 대표적인 재일한인촌 가운데 하나다. 그곳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사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이 모인다. 일명 ‘도라지회’로 불리는 이 모임에서 할머니들은 장구춤과 부채춤, 글 등을 배우면서 친목을 다진다. 대부분 일제 강점기 시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재일한국인 할머니들, 낯선 곳에서 조선인이라는 차별과 가난을 이겨내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들의 삶이 펼쳐진다.

먹물글씨가 적힌 흰 무명저고리를 입은 예닐곱살 여자아이가 시모노세키역에서 울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더부살이를 하다 일본의 친척집을 찾아온 박봉례(가명). 오빠 손에 이끌려 돈벌러 일본으로 건너온 열 두살 여자아이 김남출(가명). 어린 조선의 여자아이들은 지난 70여년을 일본에서 살며 여든의 할머니가 됐다. 1947년 일본정부의 ‘외국인등록령’ 공포로 외국국적으로 일본에 살아야 했던 재일 조선인 59만 명. 그들 가운데 1세대 대부분은 사망했다. 실제 식민지 전쟁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참혹했던 시절, ‘나라 잃은’ ‘처참할 정도로 가난한’ 식민지 조선의 ‘여자 아이’가 일본이란 땅에서 여자로 살아야 했던 삶은 어떠했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그 할머니들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이다.

□ 식민지 전쟁시대를 살아낸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의 노래

올해로 92살이 된 조정순 할머니는 대부분 돌아가시고 몇 분 남지 않은 재일조선인 1세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탄광에서 일을 해야 할 만큼 일본생활은 고됐다. 도라지회에서 매주 화요일 음식담당인 김방자 할머니(85살) 역시 12-13살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탄광 일을 했다. 사쿠라모토에서 제일 유명한 야키니쿠 가게의 원조인 김도례 할머니는 1932년, 5살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생계를 위해 암시장 쌀 판매, 탁주와 소주 제조 및 판매, 파칭코 가게, 스시 가게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대부분의 재일 할머니들 연세가 여든을 넘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자식들 중에는 미래를 위해 귀화를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말릴 수는 없었지만 당신들은 국적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부모가 물려준 것인데…” 일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이상 한국인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한일 양국 그 사이, 과거와 현재 어딘가에 재일 할머니들이 살고 있었다.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일본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피해보상청구소송을 했던 송신도 할머니가 청구가 기각됐다는 보고집회에서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이다. 재일 할머니들 대부분이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았다. 일본사회의 차별과 편견에도, 조국의 무관심에도, 어떤 삶의 어려움에도 나는 녹슬지 않고 맞설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때로는 너무 슬퍼서 때로는 너무 유쾌해서 노래처럼 들린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할머니들의 노래를 이제 우리가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 재일한국인 할머니들, 그들이 말하는 평화의 메시지

일제강점기 시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은 글조차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뒤늦게야 할머니들은 도라지회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우리마당’이라는 일본어 글씨 ‧ 그림모임에서 글을 배우고 있다. 뒤늦게나마 배운 글로 할머니들은 자신의 기억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어렵게 배운 글자로 할머니들은 반 헤이트스피치 시위에 쓰일 피켓에 진심을 담는다.

지난 6월, 가와사키 평화공원에서는 이날 예정되어 있던 헤이트스피치(인종차별발언)에 맞서 반 헤이트스피치 시위가 열렸다. 반 헤이트스피치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올해 79살을 맞은 재일한국인 조양엽 할머니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나왔다.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반 헤이트스피치 활동에 열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재일한국인 1세로서 굴곡진 삶을 살아온 도라지회 할머니들, 전쟁과 가난, 차별을 겪어온 그들의 질기고 강인한 인생이야기를 KBS스페셜에서 만나본다.
  • 빼앗긴 날들의 기억 – 가와사키 도라지회
    • 입력 2016-08-15 09:27:02
    • 수정2016-08-15 09:27:14
    TV특종

15일 오후 7시35분, KBS 1TV ‘KBS스페셜’ 시간에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갔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제일교포 1세 할머니들의 고달프고 기구한 삶을 들어본다.

10대 초반부터 아버지를 따라 탄광노동자로 실제 탄을 캐면서 생활했던 제일교포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과 사진들이 방송사상 최초로 공개된다.

□ 가와사키 조선인 징용마을 ‘사쿠라모토’

가와사키 한인타운 안에는 사쿠라모토라는 마을이 있다. 사쿠라모토는 일본 내 대표적인 재일한인촌 가운데 하나다. 그곳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사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이 모인다. 일명 ‘도라지회’로 불리는 이 모임에서 할머니들은 장구춤과 부채춤, 글 등을 배우면서 친목을 다진다. 대부분 일제 강점기 시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으로 건너오게 된 재일한국인 할머니들, 낯선 곳에서 조선인이라는 차별과 가난을 이겨내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들의 삶이 펼쳐진다.

먹물글씨가 적힌 흰 무명저고리를 입은 예닐곱살 여자아이가 시모노세키역에서 울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더부살이를 하다 일본의 친척집을 찾아온 박봉례(가명). 오빠 손에 이끌려 돈벌러 일본으로 건너온 열 두살 여자아이 김남출(가명). 어린 조선의 여자아이들은 지난 70여년을 일본에서 살며 여든의 할머니가 됐다. 1947년 일본정부의 ‘외국인등록령’ 공포로 외국국적으로 일본에 살아야 했던 재일 조선인 59만 명. 그들 가운데 1세대 대부분은 사망했다. 실제 식민지 전쟁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참혹했던 시절, ‘나라 잃은’ ‘처참할 정도로 가난한’ 식민지 조선의 ‘여자 아이’가 일본이란 땅에서 여자로 살아야 했던 삶은 어떠했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그 할머니들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이다.

□ 식민지 전쟁시대를 살아낸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의 노래

올해로 92살이 된 조정순 할머니는 대부분 돌아가시고 몇 분 남지 않은 재일조선인 1세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탄광에서 일을 해야 할 만큼 일본생활은 고됐다. 도라지회에서 매주 화요일 음식담당인 김방자 할머니(85살) 역시 12-13살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탄광 일을 했다. 사쿠라모토에서 제일 유명한 야키니쿠 가게의 원조인 김도례 할머니는 1932년, 5살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생계를 위해 암시장 쌀 판매, 탁주와 소주 제조 및 판매, 파칭코 가게, 스시 가게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대부분의 재일 할머니들 연세가 여든을 넘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자식들 중에는 미래를 위해 귀화를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말릴 수는 없었지만 당신들은 국적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부모가 물려준 것인데…” 일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이상 한국인임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한일 양국 그 사이, 과거와 현재 어딘가에 재일 할머니들이 살고 있었다.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일본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피해보상청구소송을 했던 송신도 할머니가 청구가 기각됐다는 보고집회에서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이다. 재일 할머니들 대부분이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았다. 일본사회의 차별과 편견에도, 조국의 무관심에도, 어떤 삶의 어려움에도 나는 녹슬지 않고 맞설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때로는 너무 슬퍼서 때로는 너무 유쾌해서 노래처럼 들린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할머니들의 노래를 이제 우리가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 재일한국인 할머니들, 그들이 말하는 평화의 메시지

일제강점기 시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은 글조차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뒤늦게야 할머니들은 도라지회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우리마당’이라는 일본어 글씨 ‧ 그림모임에서 글을 배우고 있다. 뒤늦게나마 배운 글로 할머니들은 자신의 기억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어렵게 배운 글자로 할머니들은 반 헤이트스피치 시위에 쓰일 피켓에 진심을 담는다.

지난 6월, 가와사키 평화공원에서는 이날 예정되어 있던 헤이트스피치(인종차별발언)에 맞서 반 헤이트스피치 시위가 열렸다. 반 헤이트스피치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올해 79살을 맞은 재일한국인 조양엽 할머니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나왔다. 할머니가 이렇게까지 반 헤이트스피치 활동에 열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재일한국인 1세로서 굴곡진 삶을 살아온 도라지회 할머니들, 전쟁과 가난, 차별을 겪어온 그들의 질기고 강인한 인생이야기를 KBS스페셜에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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