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문턱 넘기 힘든 日 강제징용 소송
입력 2016.08.16 (06:49)
수정 2016.08.1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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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강점기 일본 현지기업에 강제로 끌려가 무임금 노동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가슴 속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오현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김옥순 할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지난 1945년 2월,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김 할머니가 친구 50명과 함께 강제로 끌려 간 곳은 일본 도야마의 한 군수공장.
해방이 될 때까지 7개월 동안 전쟁물자를 만들었는데,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옥순(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 "주먹밥 하나 먹고 나면 한 8시나 돼서 일했을 거예요. 점심도 한 숟가락, 빵 쪼가리 하나씩 먹고..."
김 할머니는 지난해 4월, 일본 기업을 상대로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김 할머니와 같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지난 2천 년부터 진행 중인 소송은 14건입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한 2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고 2심 재판부는 이듬해 1인당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 상고하면서 재판은 또 대법원으로 갔고 3년 넘게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미경('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변호사) :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린다고 해서 추정(기일 미정)된 사건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낸 피해자 천백여 명 가운데 20여 명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오현태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현지기업에 강제로 끌려가 무임금 노동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가슴 속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오현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김옥순 할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지난 1945년 2월,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김 할머니가 친구 50명과 함께 강제로 끌려 간 곳은 일본 도야마의 한 군수공장.
해방이 될 때까지 7개월 동안 전쟁물자를 만들었는데,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옥순(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 "주먹밥 하나 먹고 나면 한 8시나 돼서 일했을 거예요. 점심도 한 숟가락, 빵 쪼가리 하나씩 먹고..."
김 할머니는 지난해 4월, 일본 기업을 상대로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김 할머니와 같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지난 2천 년부터 진행 중인 소송은 14건입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한 2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고 2심 재판부는 이듬해 1인당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 상고하면서 재판은 또 대법원으로 갔고 3년 넘게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미경('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변호사) :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린다고 해서 추정(기일 미정)된 사건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낸 피해자 천백여 명 가운데 20여 명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오현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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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문턱 넘기 힘든 日 강제징용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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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8-16 06:52:12
- 수정2016-08-16 07:27:59
<앵커 멘트>
일제강점기 일본 현지기업에 강제로 끌려가 무임금 노동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가슴 속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오현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김옥순 할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지난 1945년 2월,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김 할머니가 친구 50명과 함께 강제로 끌려 간 곳은 일본 도야마의 한 군수공장.
해방이 될 때까지 7개월 동안 전쟁물자를 만들었는데,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옥순(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 "주먹밥 하나 먹고 나면 한 8시나 돼서 일했을 거예요. 점심도 한 숟가락, 빵 쪼가리 하나씩 먹고..."
김 할머니는 지난해 4월, 일본 기업을 상대로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김 할머니와 같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지난 2천 년부터 진행 중인 소송은 14건입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한 2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고 2심 재판부는 이듬해 1인당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 상고하면서 재판은 또 대법원으로 갔고 3년 넘게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미경('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변호사) :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린다고 해서 추정(기일 미정)된 사건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낸 피해자 천백여 명 가운데 20여 명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오현태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현지기업에 강제로 끌려가 무임금 노동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가슴 속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오현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김옥순 할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지난 1945년 2월,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김 할머니가 친구 50명과 함께 강제로 끌려 간 곳은 일본 도야마의 한 군수공장.
해방이 될 때까지 7개월 동안 전쟁물자를 만들었는데,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옥순(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 "주먹밥 하나 먹고 나면 한 8시나 돼서 일했을 거예요. 점심도 한 숟가락, 빵 쪼가리 하나씩 먹고..."
김 할머니는 지난해 4월, 일본 기업을 상대로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김 할머니와 같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지난 2천 년부터 진행 중인 소송은 14건입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한 2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고 2심 재판부는 이듬해 1인당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 상고하면서 재판은 또 대법원으로 갔고 3년 넘게 확정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미경('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변호사) :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린다고 해서 추정(기일 미정)된 사건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낸 피해자 천백여 명 가운데 20여 명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오현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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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태 기자 highf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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