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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올림픽의 가슴아픈 이면…반복되는 난민 흑역사
입력 2016.08.19 (09:08) 수정 2016.08.19 (09:58) 취재K
올림픽 취재진이 일하는 국제방송센터로 출근하려면 폐자재가 쌓인 공터를 지나야 합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오토드로무(Autodromo)'라는 50년 된 빈민가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올림픽공원 진입로와 대형 주차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토드로무는 통째로 철거됐습니다. 마지막 철거일이 개막식 직전인 지난 2일이었습니다. 한때 600가구 넘게 살았지만 이젠 20여명 정도만 살고 있습니다. 마을이 사라진 땅에는 방송센터와 주차장, 최고급 호텔이 들어섰습니다.(올림픽 기간 내내 이 호텔 2인실은 최저 100만 원부터입니다.) 출입증 없는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도록 철책이 둘러쳐졌습니다.

루이즈 시우바(53)씨의 집은 잔해 몇 점만 남기고 사라졌다.루이즈 시우바(53)씨의 집은 잔해 몇 점만 남기고 사라졌다.

삶의 흔적이 지워진 마을

철책 바깥으로 밀려난 루이스 시우바(53)씨는 1994년 7월 오토드로무에 들어왔습니다. 20년 넘게 살던 집은 올해 1월 헐렸습니다. 아내는 거칠게 항의하다 경찰과 충돌해 이마와 눈두덩이가 찢어졌습니다. 불도저가 떠나자 주민들은 허리를 굽히고 잔해를 주웠습니다. 리우 시에서 주는 이주 비용으로는 변변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시우바 씨와 임시 거처에서 함께 사는 딸 나탈리아(29)는 기자들에게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는 "올림픽을 하면 생활이 나아질 거라고 했는데, 더 힘들고 가난해지고 불안해졌다. 모두가 억울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빈민촌을 없애려는 압력이 있었지만, 올림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나탈리아의 안내로 잔해를 둘러봤습니다. 집터만 남긴 채 벽은 모두 허물어졌고, 낡은 변기가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은 단 한 채, 유리창이 모두 깨져있고 잡초로 둘러싸여 흉물이 됐습니다. 집집이 꽂혔던 브라질 국기는 남루하게 해져 바람에 나부꼈습니다. "나에게는 법도, 교회도 있지만 정작 집에서 살 권리는 없다." 평범한 청소부였던 주민 마리아 다 페냐(51)는 집을 뺏긴 뒤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지난 주말 오토드로무 공터는 음악으로 들썩거렸습니다. 주민들은 '철거 없는 리우'라는 표어가 적힌 옷을 맞춰 입고, 임시 거처를 공개했습니다. 확성기 구호 대신 삼바 음악을 틀고, 아는 이웃을 초대해 삶터를 보여주며 아직도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삶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는 마을을 되살려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을 출구는 방송센터 진입로와 맞닿아 있습니다.

올림픽 호재는 누가 누리나

리우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2009년 이후 빈민촌 100곳 이상이 철거됐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주민이 7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리우 시는 저소득층 생활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올해 초까지 오토드로무를 떠난 사람들은 시 외곽 공동주택으로 집단 이주했습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도 비좁고, 부엌과 화장실에는 타일이 붙어있지 않은 채로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집이라도 없으면, 더 열악한 파벨라로 옮겨 가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라진 땅은 새롭게 개발되며 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선수촌은 올림픽 폐막 뒤 한 채에 125만 달러짜리 고급 리조트로 분양됩니다. 역시 빈민촌 일부를 허물고 지은 취재진 숙소는 한 채에 70만 달러에 팔릴 거라고 합니다. 천문학적 개발 이득, 올림픽 호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축제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

이런 역사는 반복돼왔습니다. 2008년 베이징 시는 주경기장 부근 판자촌 주민만 5천 명을 비롯해 100만 명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저소득층 거주지역은 담장을 둘러쳐 숨겼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에서 흑인 2만 명이 도시에서 내몰렸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역시 이런 면에선 악명 높은 대회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목동, 상계동 달동네 주민들이 TV에 비치지 않는 경기도로, 외곽으로 사라졌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당시 올림픽 공사로 서울에서 72만 명이 집을 떠났다고 썼습니다.


리우 시는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홍보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경기장에 즐거운 행락객들로 가득한 올림픽공원 일대는 풍요로운 선진국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축제는 끝나갑니다. 잔치는 단 17일, 그동안 쌓아온 갈등을 풀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기 어렵습니다. 성화가 타오르는 도시마다 이런 '올림픽 난민'이 생겨난다면, 평화와 화합이라는 대회 정신을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 화려한 올림픽의 가슴아픈 이면…반복되는 난민 흑역사
    • 입력 2016-08-19 09:08:15
    • 수정2016-08-19 09:58:07
    취재K
올림픽 취재진이 일하는 국제방송센터로 출근하려면 폐자재가 쌓인 공터를 지나야 합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오토드로무(Autodromo)'라는 50년 된 빈민가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올림픽공원 진입로와 대형 주차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토드로무는 통째로 철거됐습니다. 마지막 철거일이 개막식 직전인 지난 2일이었습니다. 한때 600가구 넘게 살았지만 이젠 20여명 정도만 살고 있습니다. 마을이 사라진 땅에는 방송센터와 주차장, 최고급 호텔이 들어섰습니다.(올림픽 기간 내내 이 호텔 2인실은 최저 100만 원부터입니다.) 출입증 없는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도록 철책이 둘러쳐졌습니다.

루이즈 시우바(53)씨의 집은 잔해 몇 점만 남기고 사라졌다.루이즈 시우바(53)씨의 집은 잔해 몇 점만 남기고 사라졌다.

삶의 흔적이 지워진 마을

철책 바깥으로 밀려난 루이스 시우바(53)씨는 1994년 7월 오토드로무에 들어왔습니다. 20년 넘게 살던 집은 올해 1월 헐렸습니다. 아내는 거칠게 항의하다 경찰과 충돌해 이마와 눈두덩이가 찢어졌습니다. 불도저가 떠나자 주민들은 허리를 굽히고 잔해를 주웠습니다. 리우 시에서 주는 이주 비용으로는 변변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시우바 씨와 임시 거처에서 함께 사는 딸 나탈리아(29)는 기자들에게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는 "올림픽을 하면 생활이 나아질 거라고 했는데, 더 힘들고 가난해지고 불안해졌다. 모두가 억울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빈민촌을 없애려는 압력이 있었지만, 올림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나탈리아의 안내로 잔해를 둘러봤습니다. 집터만 남긴 채 벽은 모두 허물어졌고, 낡은 변기가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은 단 한 채, 유리창이 모두 깨져있고 잡초로 둘러싸여 흉물이 됐습니다. 집집이 꽂혔던 브라질 국기는 남루하게 해져 바람에 나부꼈습니다. "나에게는 법도, 교회도 있지만 정작 집에서 살 권리는 없다." 평범한 청소부였던 주민 마리아 다 페냐(51)는 집을 뺏긴 뒤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지난 주말 오토드로무 공터는 음악으로 들썩거렸습니다. 주민들은 '철거 없는 리우'라는 표어가 적힌 옷을 맞춰 입고, 임시 거처를 공개했습니다. 확성기 구호 대신 삼바 음악을 틀고, 아는 이웃을 초대해 삶터를 보여주며 아직도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삶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는 마을을 되살려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을 출구는 방송센터 진입로와 맞닿아 있습니다.

올림픽 호재는 누가 누리나

리우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2009년 이후 빈민촌 100곳 이상이 철거됐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주민이 7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리우 시는 저소득층 생활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올해 초까지 오토드로무를 떠난 사람들은 시 외곽 공동주택으로 집단 이주했습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도 비좁고, 부엌과 화장실에는 타일이 붙어있지 않은 채로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집이라도 없으면, 더 열악한 파벨라로 옮겨 가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라진 땅은 새롭게 개발되며 값이 크게 올랐습니다. 선수촌은 올림픽 폐막 뒤 한 채에 125만 달러짜리 고급 리조트로 분양됩니다. 역시 빈민촌 일부를 허물고 지은 취재진 숙소는 한 채에 70만 달러에 팔릴 거라고 합니다. 천문학적 개발 이득, 올림픽 호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축제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

이런 역사는 반복돼왔습니다. 2008년 베이징 시는 주경기장 부근 판자촌 주민만 5천 명을 비롯해 100만 명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저소득층 거주지역은 담장을 둘러쳐 숨겼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에서 흑인 2만 명이 도시에서 내몰렸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역시 이런 면에선 악명 높은 대회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목동, 상계동 달동네 주민들이 TV에 비치지 않는 경기도로, 외곽으로 사라졌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당시 올림픽 공사로 서울에서 72만 명이 집을 떠났다고 썼습니다.


리우 시는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홍보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경기장에 즐거운 행락객들로 가득한 올림픽공원 일대는 풍요로운 선진국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축제는 끝나갑니다. 잔치는 단 17일, 그동안 쌓아온 갈등을 풀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기 어렵습니다. 성화가 타오르는 도시마다 이런 '올림픽 난민'이 생겨난다면, 평화와 화합이라는 대회 정신을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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