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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지역의 북한 처녀들, 그녀들이 줄지어 출근하는 속사정은?
입력 2016.08.19 (09:48) 수정 2016.08.19 (09:52) 취재K
새벽 6시, 동이 튼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각이라 훈춘경제협력구 대로변엔 오가는 차량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직 검은색 단체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만 줄지어 대로변을 걷고 있을 뿐이다. 4, 50명 남짓 될까. 모두 앳돼 보이는 여성들이다. 무리의 앞과 뒤에는 이들을 감시하는 듯한 남성 몇 명이 눈에 띈다.


이곳은 중국 지린성(길림성)의 훈춘시. 한반도의 최북단 쪽 북한과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중국이 경제협력구를 만들어 개발을 꾀하고 있는 곳인데, 러시아와는 목재 가공 협력이 활발하고 북한과는 섬유·봉제 협력이 활발하다.

대규모 공단이 조성된 지역인만큼, 이 여성들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마치 남들 눈을 피하듯 이른 새벽을 택해 줄지어 이동하는 곳은 어딜까. 한참을 따라가 보니 중국 유수의 의류기업인 '야거얼'사의 하청 공장으로 들어간다. 이미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와 도착해있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어림잡아 3백 명은 넘어 보인다. 모여서 체조를 하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귀를 기울이니 중국어가 아니라 북한 억양의 우리말이다.


"어디서 왔어요?"

순진해 보이는 한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

말없이 웃기만 하는 여성. 옆에 있는 다른 여성이 옆구리를 살짝 찌르면서 귓속말로 말을 건넨다.

"모른다고 해, 모른다고 해".

외부인의 접근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디서 왔어요?"

재차 묻자, 마지못해 한마디를 하는 이 여성.

"청진..."

일단 말 문이 트이자, 이런저런 질문에 짧게나마 답을 해준다. 고향을 떠나 이국땅 중국으로 온 지 3개월이 됐단다. 봉제일을 하는 기능공. 월급이 얼마인지는 아직 안 받아봐서 모른다고 했다. 매일 이렇게 새벽에 집단으로 걸어 출근하고, 출퇴근 길이 유일하게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럽다. 지도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북한 여공들을 건물 안으로 몰아넣는다. 한 무리의 여성들은 주차돼 있던 대형 버스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업무시간이 된 건지, 아니면 우리같이 낯선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는 조처가 내려진 건지, 알 길은 없다.

갑자기 버스에 오르는 북한 여공들갑자기 버스에 오르는 북한 여공들

이날 새벽 마주친 이런 북한의 여공들이 훈춘경제협력구 지역에만 최소 1,500명이 있다는 게 현지 소식통의 말이다. 특히 최근 들어 유입이 늘었다는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이 내려진 지 정확히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그간 북한의 알짜 현금 수입원이었다. 임금 등으로 연간 1,300억 원의 돈이 북한으로 들어가고, 실제 근로자의 손에 10% 남짓 쥐어질 뿐 대부분 돈은 북한 당국이 가져갔다. 그런 현금줄이 끊어진 지 6개월이 됐으니, 북한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게다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지난 3월의 UN 안보리 대북 제재가 내려지면서, 중국도 예전과 같이 곁을 내주지 않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상황이 요즘 갑자기 바뀌고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동안 거리를 두던 중국이 다시 북한에 손을 내밀고 있다. 때를 맞춰 기다렸다는 듯 중국 훈춘 경제협력구에는 북한 숙련공 유입을 전제로 한 신규 공장 증설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 최대의 섬유·봉제 업체인 '야거얼'은 이곳에 여의도 6분의 1 크기에 해당하는 큰 부지를 선점하고 대규모 공장을 10월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숙련 봉제공 인력이 2만 명이나 신규로 필요한 규모인데, 최소 5,000명에서 최대 1만 명까지 북한에서 인력을 조달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봉제 숙련공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닌 만큼, 개성공단의 인력이 대거 유입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와 대북 소식통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야거얼'에 이어 다른 중국 기업들의 입주 문의가 이어지면서 북한 인력의 몸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월 500달러 선까지 뛰었다고 한다.

개성공단 인력의 활용 방법을 고심하던 북한으로선 호재를 만남 셈이다. 아예 북한이 대중국 인력 수출을 노골화할 조짐도 보인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으로선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해외 체류 인력의 잇따른 탈출이 바로 걸림돌이다. 식당 종업원의 대규모 집단 탈출이 벌어지더니, 급기야 최고 엘리트 외교관인 태영호 공사까지 북한 이탈에 동참했다. 북한 밖으로 나간 인력에 대한 통제력을 급격히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해외 체류 인력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은 가족을 볼모로 잡는 것이었다. 부모가 해외로 나갈 때는 자녀 중 일부는 반드시 북한에 남겨두고 와야 한다. 한 가정에서 형제자매 중 한 명 정도만 해외로 돈을 벌러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방법은 한계를 만난 것이다.

북한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력을 해외로 안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내보낼 수도 없다. 이른 새벽 열을 맞춰 걷던 앳된 북한 여공들의 출근길이 더욱 삼엄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 접경지역의 북한 처녀들, 그녀들이 줄지어 출근하는 속사정은?
    • 입력 2016-08-19 09:48:02
    • 수정2016-08-19 09:52:47
    취재K
새벽 6시, 동이 튼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각이라 훈춘경제협력구 대로변엔 오가는 차량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직 검은색 단체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만 줄지어 대로변을 걷고 있을 뿐이다. 4, 50명 남짓 될까. 모두 앳돼 보이는 여성들이다. 무리의 앞과 뒤에는 이들을 감시하는 듯한 남성 몇 명이 눈에 띈다.


이곳은 중국 지린성(길림성)의 훈춘시. 한반도의 최북단 쪽 북한과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중국이 경제협력구를 만들어 개발을 꾀하고 있는 곳인데, 러시아와는 목재 가공 협력이 활발하고 북한과는 섬유·봉제 협력이 활발하다.

대규모 공단이 조성된 지역인만큼, 이 여성들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마치 남들 눈을 피하듯 이른 새벽을 택해 줄지어 이동하는 곳은 어딜까. 한참을 따라가 보니 중국 유수의 의류기업인 '야거얼'사의 하청 공장으로 들어간다. 이미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와 도착해있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어림잡아 3백 명은 넘어 보인다. 모여서 체조를 하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귀를 기울이니 중국어가 아니라 북한 억양의 우리말이다.


"어디서 왔어요?"

순진해 보이는 한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

말없이 웃기만 하는 여성. 옆에 있는 다른 여성이 옆구리를 살짝 찌르면서 귓속말로 말을 건넨다.

"모른다고 해, 모른다고 해".

외부인의 접근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디서 왔어요?"

재차 묻자, 마지못해 한마디를 하는 이 여성.

"청진..."

일단 말 문이 트이자, 이런저런 질문에 짧게나마 답을 해준다. 고향을 떠나 이국땅 중국으로 온 지 3개월이 됐단다. 봉제일을 하는 기능공. 월급이 얼마인지는 아직 안 받아봐서 모른다고 했다. 매일 이렇게 새벽에 집단으로 걸어 출근하고, 출퇴근 길이 유일하게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럽다. 지도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북한 여공들을 건물 안으로 몰아넣는다. 한 무리의 여성들은 주차돼 있던 대형 버스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업무시간이 된 건지, 아니면 우리같이 낯선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는 조처가 내려진 건지, 알 길은 없다.

갑자기 버스에 오르는 북한 여공들갑자기 버스에 오르는 북한 여공들

이날 새벽 마주친 이런 북한의 여공들이 훈춘경제협력구 지역에만 최소 1,500명이 있다는 게 현지 소식통의 말이다. 특히 최근 들어 유입이 늘었다는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이 내려진 지 정확히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그간 북한의 알짜 현금 수입원이었다. 임금 등으로 연간 1,300억 원의 돈이 북한으로 들어가고, 실제 근로자의 손에 10% 남짓 쥐어질 뿐 대부분 돈은 북한 당국이 가져갔다. 그런 현금줄이 끊어진 지 6개월이 됐으니, 북한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게다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지난 3월의 UN 안보리 대북 제재가 내려지면서, 중국도 예전과 같이 곁을 내주지 않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상황이 요즘 갑자기 바뀌고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동안 거리를 두던 중국이 다시 북한에 손을 내밀고 있다. 때를 맞춰 기다렸다는 듯 중국 훈춘 경제협력구에는 북한 숙련공 유입을 전제로 한 신규 공장 증설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 최대의 섬유·봉제 업체인 '야거얼'은 이곳에 여의도 6분의 1 크기에 해당하는 큰 부지를 선점하고 대규모 공장을 10월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숙련 봉제공 인력이 2만 명이나 신규로 필요한 규모인데, 최소 5,000명에서 최대 1만 명까지 북한에서 인력을 조달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봉제 숙련공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닌 만큼, 개성공단의 인력이 대거 유입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와 대북 소식통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야거얼'에 이어 다른 중국 기업들의 입주 문의가 이어지면서 북한 인력의 몸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월 500달러 선까지 뛰었다고 한다.

개성공단 인력의 활용 방법을 고심하던 북한으로선 호재를 만남 셈이다. 아예 북한이 대중국 인력 수출을 노골화할 조짐도 보인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으로선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해외 체류 인력의 잇따른 탈출이 바로 걸림돌이다. 식당 종업원의 대규모 집단 탈출이 벌어지더니, 급기야 최고 엘리트 외교관인 태영호 공사까지 북한 이탈에 동참했다. 북한 밖으로 나간 인력에 대한 통제력을 급격히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해외 체류 인력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은 가족을 볼모로 잡는 것이었다. 부모가 해외로 나갈 때는 자녀 중 일부는 반드시 북한에 남겨두고 와야 한다. 한 가정에서 형제자매 중 한 명 정도만 해외로 돈을 벌러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방법은 한계를 만난 것이다.

북한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력을 해외로 안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내보낼 수도 없다. 이른 새벽 열을 맞춰 걷던 앳된 북한 여공들의 출근길이 더욱 삼엄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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