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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주년 빅뱅…K팝의 세계화 이룬 ‘최강’ 한류 브랜드
입력 2016.08.19 (17:08) 연합뉴스
그룹 빅뱅은 2006년 8월 1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YG패밀리 10주년 콘서트'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무대에서 YG의 '뉴 페이스'로 등장한 이들은 K팝을 상징하는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서며 19일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태양은 이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10년간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는 글과 함께 멤버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빅뱅이 10년간 해외 시장을 누비며 세운 기록과 가요계에 미친 영향을 짚어봤다.

◇ K팝 르네상스 주도…유튜브 채널 28억 뷰

빅뱅은 지난 10년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남미, 중동 등 해외 곳곳으로 뻗어 나간 K팝 르네상스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2001년과 2005년 일본에 진출해 아시아 스타가 된 보아와 동방신기에 이어 미국 시장을 노크한 비의 바통을 이어받아 K팝의 영역을 세계로 확장하는데 앞장섰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각종 온라인 수치는 이들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2009년 8월 문을 연 빅뱅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600만명에 육박하며 누적 조회수는 28억뷰에 달한다. 구독자 '톱 10' 국가는 미국이 1위이며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와 함께 브라질이 9위에 올라있다.

아이돌 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유튜브에서 1억 조회수를 돌파한 뮤직비디오도 4편이나 보유했다.

2012년 발표한 '판타스틱 베이비' 뮤직비디오가 2억4천 뷰를 돌파했으며 '뱅뱅뱅'과 '굿보이', '루저' 등이 1억 조회수를 넘어섰다.

2010년 8월 만들어진 빅뱅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좋아요'를 많이 누른 '톱 10' 국가에는 베트남이 1위, 미국이 8위, 멕시코가 10위로 집계됐다.

글로벌 스타로 주목받은 분기점은 2011년 한국 가수 최초로 MTV '유럽 뮤직 어워드'(EMA)에서 '월드와이드액트' 부문을 수상했을 때다. 그해 이들은 아시아 가수 최초로 이탈리아 MTV 'TRL 어워드'에서 '베스트 팬'을 수상하기도 했다.

태양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EMA에서 수상한 게 터닝 포인트였다"며 "그때 이후로 나온 앨범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2012년 빅뱅은 첫 월드투어로 세계에서 80여 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해에도 두 번째 월드투어로 150여 만명을 동원했는데 그중 북미투어는 한국 가수 최다 관객수인 8만7천명을, 중국 투어는 한국 가수 최다인 25만명을 기록했다.

또 2013년 해외 가수 최초로 일본 6대 돔 투어를 진행했으며 올해까지 4년 연속 일본 돔 투어를 매진시켰다.

전 세계를 누빈 빅뱅은 지난달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유명인사 100인'에 들었다.

포브스는 "빅뱅이 지난 한 해 세전 4천400만 달러(한화 510억원)의 수익을 거뒀다"며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남성그룹 마룬5의 연간 수입인 3천350만 달러를 뛰어넘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 기존 아이돌 개념 파괴…자립형·장르 다변화

빅뱅이 국내 아이돌 시장에 미친 영향도 크다.

이들은 YG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가 기존 아이들의 개념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로 데뷔시킨 팀이다.

예쁜 외모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작사, 작곡, 노래, 랩, 춤, 패션 스타일링까지 다재다능한, 자립형 아이돌을 선보이겠다는 차별화 전략이었다.

이들의 재능을 보여주고자 지상파 방송이 아닌,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데뷔 과정을 공개하는 리얼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활동 전부터 팬 기반도 마련했다.

이후 가요계에는 작사, 작곡 등 프로듀싱 능력을 내세운 그룹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서바이벌이나 리얼 다큐멘터리를 통해 데뷔 프로모션을 하는 방식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특히 댄스 음악 일변도의 아이돌 음악에서 벗어나 힙합을 내세우며 장르의 다변화에 기여했다는 점도 평가받을 대목이다. 힙합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도 대중적인 코드를 가미해 팬덤을 넘어선 호응을 얻었다.

물론 빅뱅도 멤버들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를 극복한 팀은 신화에 이어 원년 멤버를 유지하며 공백기 없이 활동한 장수 그룹으로 모범 사례가 됐다.

탑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군복무를 해야하지만 각자 솔로로도 입지가 탄탄한 만큼 공백이 크게 느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드래곤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언제든 갈 생각"이라며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빅뱅 다섯 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섯 명이 계속 함께 할 사람들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 데뷔 10주년 빅뱅…K팝의 세계화 이룬 ‘최강’ 한류 브랜드
    • 입력 2016-08-19 17:08:50
    연합뉴스
그룹 빅뱅은 2006년 8월 19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YG패밀리 10주년 콘서트'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무대에서 YG의 '뉴 페이스'로 등장한 이들은 K팝을 상징하는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서며 19일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태양은 이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10년간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라는 글과 함께 멤버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빅뱅이 10년간 해외 시장을 누비며 세운 기록과 가요계에 미친 영향을 짚어봤다.

◇ K팝 르네상스 주도…유튜브 채널 28억 뷰

빅뱅은 지난 10년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남미, 중동 등 해외 곳곳으로 뻗어 나간 K팝 르네상스의 대표 브랜드가 됐다.

2001년과 2005년 일본에 진출해 아시아 스타가 된 보아와 동방신기에 이어 미국 시장을 노크한 비의 바통을 이어받아 K팝의 영역을 세계로 확장하는데 앞장섰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각종 온라인 수치는 이들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2009년 8월 문을 연 빅뱅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600만명에 육박하며 누적 조회수는 28억뷰에 달한다. 구독자 '톱 10' 국가는 미국이 1위이며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와 함께 브라질이 9위에 올라있다.

아이돌 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유튜브에서 1억 조회수를 돌파한 뮤직비디오도 4편이나 보유했다.

2012년 발표한 '판타스틱 베이비' 뮤직비디오가 2억4천 뷰를 돌파했으며 '뱅뱅뱅'과 '굿보이', '루저' 등이 1억 조회수를 넘어섰다.

2010년 8월 만들어진 빅뱅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좋아요'를 많이 누른 '톱 10' 국가에는 베트남이 1위, 미국이 8위, 멕시코가 10위로 집계됐다.

글로벌 스타로 주목받은 분기점은 2011년 한국 가수 최초로 MTV '유럽 뮤직 어워드'(EMA)에서 '월드와이드액트' 부문을 수상했을 때다. 그해 이들은 아시아 가수 최초로 이탈리아 MTV 'TRL 어워드'에서 '베스트 팬'을 수상하기도 했다.

태양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EMA에서 수상한 게 터닝 포인트였다"며 "그때 이후로 나온 앨범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2012년 빅뱅은 첫 월드투어로 세계에서 80여 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해에도 두 번째 월드투어로 150여 만명을 동원했는데 그중 북미투어는 한국 가수 최다 관객수인 8만7천명을, 중국 투어는 한국 가수 최다인 25만명을 기록했다.

또 2013년 해외 가수 최초로 일본 6대 돔 투어를 진행했으며 올해까지 4년 연속 일본 돔 투어를 매진시켰다.

전 세계를 누빈 빅뱅은 지난달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유명인사 100인'에 들었다.

포브스는 "빅뱅이 지난 한 해 세전 4천400만 달러(한화 510억원)의 수익을 거뒀다"며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남성그룹 마룬5의 연간 수입인 3천350만 달러를 뛰어넘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 기존 아이돌 개념 파괴…자립형·장르 다변화

빅뱅이 국내 아이돌 시장에 미친 영향도 크다.

이들은 YG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가 기존 아이들의 개념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로 데뷔시킨 팀이다.

예쁜 외모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작사, 작곡, 노래, 랩, 춤, 패션 스타일링까지 다재다능한, 자립형 아이돌을 선보이겠다는 차별화 전략이었다.

이들의 재능을 보여주고자 지상파 방송이 아닌,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데뷔 과정을 공개하는 리얼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활동 전부터 팬 기반도 마련했다.

이후 가요계에는 작사, 작곡 등 프로듀싱 능력을 내세운 그룹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서바이벌이나 리얼 다큐멘터리를 통해 데뷔 프로모션을 하는 방식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특히 댄스 음악 일변도의 아이돌 음악에서 벗어나 힙합을 내세우며 장르의 다변화에 기여했다는 점도 평가받을 대목이다. 힙합을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도 대중적인 코드를 가미해 팬덤을 넘어선 호응을 얻었다.

물론 빅뱅도 멤버들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를 극복한 팀은 신화에 이어 원년 멤버를 유지하며 공백기 없이 활동한 장수 그룹으로 모범 사례가 됐다.

탑을 시작으로 멤버들이 군복무를 해야하지만 각자 솔로로도 입지가 탄탄한 만큼 공백이 크게 느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드래곤은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언제든 갈 생각"이라며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빅뱅 다섯 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섯 명이 계속 함께 할 사람들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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