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혁명에서 정치 혁명으로?…홍콩 선거에 민감해진 중국

입력 2016.09.06 (13:50) 수정 2016.09.0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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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년 전쯤인 2014년 9월 26일 당시 21살이었던 대학생 네이선 로를 비롯한 홍콩의 학생들이 홍콩 정부 청사 철문을 넘어 청사 앞 광장을 점거해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이들은 홍콩 행정장관(행정 수반)의 실질적인 직선제를 요구했다. 중국 전국 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 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강력하게 반발한 것이었다.

학생들의 점거 시위를 계기로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교 학생까지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시위에 동참하는 등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확산했다.

2014년 9월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들이 우선을 쓰고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AP) 2014년 9월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들이 우선을 쓰고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AP)

홍콩 민주화 시위는 한때 1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언론들은 당국의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는 시위대의 행동을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강력 대응과 시위 장기화에 따른 경제 악화를 이유로 시위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민주화 시위의 동력은 점점 약해졌다. 2014년 12월 15일 홍콩 당국이 시위의 중심지를 접수하면서 이른바 우산 혁명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79일 만에 좌절됐다.

홍콩 입법회 의원 사상 최연소 의원이 된 23살의 네이선 로가 활짝 웃고 있다. 네이선 로의 왼쪽 옆은 2014년 17세의 나이로 우산 혁명을 함께 이끈 조슈야 웡 (사진=AP)홍콩 입법회 의원 사상 최연소 의원이 된 23살의 네이선 로가 활짝 웃고 있다. 네이선 로의 왼쪽 옆은 2014년 17세의 나이로 우산 혁명을 함께 이끈 조슈야 웡 (사진=AP)

지난 4일 치러진 입법회(우리나라의 국회의원격 )선거에서 2014년 미완의 우산 혁명 세대들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 3월 우산 혁명 주역들은 현실 정치로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겠다며 데모시스토(香港衆志)라는 당을 결성했다.

이 데모시스토를 이끌고 있는 네이선 로(23·羅冠聰)는 이번 선거에서 6석이 걸린 홍콩 섬 지역구에 출마해 2위로 당선됐다.네이선 로는 1991년 당시 28살로 당선된 제임스 토 민주당 의원의 최연소 기록도 25년 만에 깼다. 네이선 로는 2014년 우산 혁명 당시 중·고교생이 조직한 ‘학민사조’의 조슈아 웡과 함께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다.

네이선 로는 "시민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시민들이 새로운 민주화 운동의 방향과 미래를 향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우산 혁명에 참가한 뒤 데모시스토보다 더 급진적인 ‘청년 신정(靑年新政)’을 결성한 야우와이칭(游蕙禎·25)과 렁충항(梁頌恒·30)도 의석을 확보하는 등 2014년 우산 혁명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총선에서 홍콩의 자주와 독립을 주장하는 우산 혁명 지도자와 시민운동가 등이 8명이 의회에 입성했다.

홍콩의 한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몰려들어 밤늦게까지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AP) 홍콩의 한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몰려들어 밤늦게까지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AP)

우산 혁명 주역들이 예상을 깨고 대거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젊은 층의 투표 열기 등 높은 투표율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지난 2012년 총선 때보다 무려 5%포인트 높아진 58%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 마감 시간인 4일 밤 10시 반을 4시간이나 넘긴 5일 새벽 2시 30분에야 투표가 끝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 사이에서 당국의 부실한 선거 준비로 인해 투표 대거 지연 사태가 빚어졌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에 당선되는 의원의 임기는 10월 1일부터 2020년 9월30일까지로 이들 의원은 앞으로 4년간 홍콩 내 정책은 물론 중국 본토와의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다. 특히 임기를 반년 남겨둔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 이후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유례없는 투표율은 고조된 반중 정서를 보여줬으며 새로운 세대가 부상했다”고 이번 선거를 평가했다.

홍콩의 젊은이들이 네이선 로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AP)홍콩의 젊은이들이 네이선 로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AP)

여전히 의회 다수를 차지한 친중파

이번 선거에서 홍콩의 자주와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직선으로 선출된 35석 가운데 8석을 차지함으로써 기존의 친중파와 범민주의 구도를 깨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홍콩의 '정치 독립' 움직임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연소 당선자인 네이선 로는 "개원을 하면 홍콩의 미래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제안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벌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홍콩 입법회 의원은 친중파가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 입법회 의원 70명 가운데 지역구 직선에서는 친중파가 16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간선제로 뽑는 직능 비례대표 35석은 사실상 중국 입김에 좌지우지된다. 이때문에 35석 중 24석을 친중파가 가져가면서 전체 구도는 친중파 40석대 범민주진영과 독립파 30석이 됐다.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 독립파가 의회에서 목소리를 내게 되겠지만, 정치 구도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긴장하는 중국, '홍콩 독립' 활동 용납 못 해

중국 정부는 이번 선거 결과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중국 국무원은 성명을 통해 "중국은 홍콩 입법회 안이든 밖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홍콩 독립' 행위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국무원은 성명에서 "입법회 의원 선거 무대를 이용해 일부 단체와 후보들이 공공연히 '홍콩 독립'을 선전했다면서 이는 중국의 헌법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위반한 것이며 국가의 주권과 안전을 저해하고 홍콩시민들의 기본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성명은 또 홍콩자치 당국이 이런 행동들을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런 반응은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홍콩의 민심과 이를 허용하지 않을 중국 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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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6 13:50:58
    • 수정2016-09-06 13:55:16
    취재K
지금부터 2년 전쯤인 2014년 9월 26일 당시 21살이었던 대학생 네이선 로를 비롯한 홍콩의 학생들이 홍콩 정부 청사 철문을 넘어 청사 앞 광장을 점거해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이들은 홍콩 행정장관(행정 수반)의 실질적인 직선제를 요구했다. 중국 전국 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친중국계로 구성된 후보 추천 위원회의 과반 지지를 얻은 인사 2~3명으로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강력하게 반발한 것이었다.

학생들의 점거 시위를 계기로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교 학생까지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시위에 동참하는 등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확산했다.

2014년 9월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들이 우선을 쓰고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AP)
홍콩 민주화 시위는 한때 10만 명 이상이 참여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언론들은 당국의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는 시위대의 행동을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강력 대응과 시위 장기화에 따른 경제 악화를 이유로 시위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민주화 시위의 동력은 점점 약해졌다. 2014년 12월 15일 홍콩 당국이 시위의 중심지를 접수하면서 이른바 우산 혁명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79일 만에 좌절됐다.

홍콩 입법회 의원 사상 최연소 의원이 된 23살의 네이선 로가 활짝 웃고 있다. 네이선 로의 왼쪽 옆은 2014년 17세의 나이로 우산 혁명을 함께 이끈 조슈야 웡 (사진=AP)
지난 4일 치러진 입법회(우리나라의 국회의원격 )선거에서 2014년 미완의 우산 혁명 세대들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 3월 우산 혁명 주역들은 현실 정치로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겠다며 데모시스토(香港衆志)라는 당을 결성했다.

이 데모시스토를 이끌고 있는 네이선 로(23·羅冠聰)는 이번 선거에서 6석이 걸린 홍콩 섬 지역구에 출마해 2위로 당선됐다.네이선 로는 1991년 당시 28살로 당선된 제임스 토 민주당 의원의 최연소 기록도 25년 만에 깼다. 네이선 로는 2014년 우산 혁명 당시 중·고교생이 조직한 ‘학민사조’의 조슈아 웡과 함께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다.

네이선 로는 "시민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시민들이 새로운 민주화 운동의 방향과 미래를 향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우산 혁명에 참가한 뒤 데모시스토보다 더 급진적인 ‘청년 신정(靑年新政)’을 결성한 야우와이칭(游蕙禎·25)과 렁충항(梁頌恒·30)도 의석을 확보하는 등 2014년 우산 혁명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총선에서 홍콩의 자주와 독립을 주장하는 우산 혁명 지도자와 시민운동가 등이 8명이 의회에 입성했다.

홍콩의 한 투표소에 유권자들이 몰려들어 밤늦게까지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AP)
우산 혁명 주역들이 예상을 깨고 대거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젊은 층의 투표 열기 등 높은 투표율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지난 2012년 총선 때보다 무려 5%포인트 높아진 58%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 마감 시간인 4일 밤 10시 반을 4시간이나 넘긴 5일 새벽 2시 30분에야 투표가 끝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 사이에서 당국의 부실한 선거 준비로 인해 투표 대거 지연 사태가 빚어졌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에 당선되는 의원의 임기는 10월 1일부터 2020년 9월30일까지로 이들 의원은 앞으로 4년간 홍콩 내 정책은 물론 중국 본토와의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다. 특히 임기를 반년 남겨둔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 이후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유례없는 투표율은 고조된 반중 정서를 보여줬으며 새로운 세대가 부상했다”고 이번 선거를 평가했다.

홍콩의 젊은이들이 네이선 로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환호하고 있다. (사진=AP)
여전히 의회 다수를 차지한 친중파

이번 선거에서 홍콩의 자주와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직선으로 선출된 35석 가운데 8석을 차지함으로써 기존의 친중파와 범민주의 구도를 깨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홍콩의 '정치 독립' 움직임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연소 당선자인 네이선 로는 "개원을 하면 홍콩의 미래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제안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벌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홍콩 입법회 의원은 친중파가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홍콩 입법회 의원 70명 가운데 지역구 직선에서는 친중파가 16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간선제로 뽑는 직능 비례대표 35석은 사실상 중국 입김에 좌지우지된다. 이때문에 35석 중 24석을 친중파가 가져가면서 전체 구도는 친중파 40석대 범민주진영과 독립파 30석이 됐다.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 독립파가 의회에서 목소리를 내게 되겠지만, 정치 구도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긴장하는 중국, '홍콩 독립' 활동 용납 못 해

중국 정부는 이번 선거 결과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중국 국무원은 성명을 통해 "중국은 홍콩 입법회 안이든 밖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홍콩 독립' 행위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국무원은 성명에서 "입법회 의원 선거 무대를 이용해 일부 단체와 후보들이 공공연히 '홍콩 독립'을 선전했다면서 이는 중국의 헌법과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위반한 것이며 국가의 주권과 안전을 저해하고 홍콩시민들의 기본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성명은 또 홍콩자치 당국이 이런 행동들을 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런 반응은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홍콩의 민심과 이를 허용하지 않을 중국 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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