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마술사 ‘샤갈 청색’의 비밀

입력 2016.09.06 (15: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마르크 샤갈이 남긴 말이다. 특유의 밝고 아름다운 화풍 덕분에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샤갈은 특히 청색 표현의 대가이기도 하다. 예술이 곧 사랑이라고 믿었던 샤갈의 단골 소재는 연인과 부부, 결혼이었는데, 캔버스를 채우는 푸른색은 희망을 상징하듯 맑고 영롱하기만 하다. 최근 과학자들이 샤갈의 청색이 수채화처럼 청명한 이유를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샤갈의 1979년작 ‘신랑 신부’샤갈의 1979년작 ‘신랑 신부’

샤갈이 1979년에 그린 '신랑 신부'라는 작품을 보면 막 결혼식을 올린 부부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잘 표현돼있다. 붉은 색으로 보이는 도시 위로 날아오른 부부는 손으로 서로에게 기대고 있고 눈빛은 다정하기만 하다. 결혼을 축하하듯 아름다운 꽃과 정물이 놓여있는데, 부부를 감싼 색채는 새벽처럼 형형한 푸른 빛이다.

샤갈은 청색 주변 윤곽선과 색면에 미묘하게 검은색을 혼합해 청색이 실제보다 밝아보이게 했다.샤갈은 청색 주변 윤곽선과 색면에 미묘하게 검은색을 혼합해 청색이 실제보다 밝아보이게 했다.

샤갈의 다른 작품들도 유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맑은 청색이 표현돼있다. 샤갈이 맘에 드는 색채를 구현하기 위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료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해지지만 샤갈의 청색의 비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과학자들이 샤갈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 청색을 둘러싼 윤곽선과 색면에 더 어두운 청색과 검은색이 미묘하게 혼합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똑같은 청색이어도 어두운 배경에 둘러싸이면 더 밝게 보이는 '측면 억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샤갈 청색의 비밀은 '측면 억제'

'측면 억제'는 나란히 연결돼 있는 눈의 시각 신경세포들이 빛의 자극에 따라 주변의 다른 신경세포들에게 영향을 주는 현상이다. 더 강한 자극을 받은 신경세포는 주변의 다른 신경세포들이 받은 신호를 억제해 실제보다 더 어둡게 보이게 하는데,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자주 본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샤갈의 1914년작 ‘푸른 연인들’샤갈의 1914년작 ‘푸른 연인들’

같은 청색이라도 주변색이 흰색인 경우와 회색, 검은색인 경우 우리 눈은 서로 다르게 인식한다. 검은 바탕에 놓인 청색이 가장 맑고 또 밝게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색과 검은색이 나란히 놓이면 청색은 검은색의 영향으로 실제보다 밝게 보이고 검은색은 실제보다 더 어두워보이게 된다. 왜 이런 착시 현상이 일어나게 됐을까?

지상현 한성대 교수는 ‘측면 억제’ 현상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지상현 한성대 교수는 ‘측면 억제’ 현상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측면 억제'로 두 색의 대비(contrast)가 커지게 되면 경계면의 윤곽이나 모서리가 훨씬 뚜렷해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지상현 한성대 예술대 교수는 말한다. 멀리서도 사물의 윤곽을 더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고 어둠 속에서도 적을 구분해 인식할 수 있다. 이처럼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우리 눈은 실제 밝기와 달리 '측면 억제'에 의해 변형된 밝기로 색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주제로 돌아가 샤갈의 청색이 수채화처럼 맑은 이유는 바로 우리 눈의 착시가 빚어낸 환상적인 마술인 셈이다. 내 눈에서 벌어지는 오래된 '진화의 산물'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으로 가보자. 샤갈의 유화와 판화 등 42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샤갈-달리-뷔페' 특별전은 9월 25일까지 열린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색채의 마술사 ‘샤갈 청색’의 비밀
    • 입력 2016-09-06 15:02:19
    취재K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마르크 샤갈이 남긴 말이다. 특유의 밝고 아름다운 화풍 덕분에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샤갈은 특히 청색 표현의 대가이기도 하다. 예술이 곧 사랑이라고 믿었던 샤갈의 단골 소재는 연인과 부부, 결혼이었는데, 캔버스를 채우는 푸른색은 희망을 상징하듯 맑고 영롱하기만 하다. 최근 과학자들이 샤갈의 청색이 수채화처럼 청명한 이유를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샤갈의 1979년작 ‘신랑 신부’
샤갈이 1979년에 그린 '신랑 신부'라는 작품을 보면 막 결혼식을 올린 부부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잘 표현돼있다. 붉은 색으로 보이는 도시 위로 날아오른 부부는 손으로 서로에게 기대고 있고 눈빛은 다정하기만 하다. 결혼을 축하하듯 아름다운 꽃과 정물이 놓여있는데, 부부를 감싼 색채는 새벽처럼 형형한 푸른 빛이다.

샤갈은 청색 주변 윤곽선과 색면에 미묘하게 검은색을 혼합해 청색이 실제보다 밝아보이게 했다.
샤갈의 다른 작품들도 유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맑은 청색이 표현돼있다. 샤갈이 맘에 드는 색채를 구현하기 위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료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해지지만 샤갈의 청색의 비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과학자들이 샤갈의 그림을 분석한 결과 청색을 둘러싼 윤곽선과 색면에 더 어두운 청색과 검은색이 미묘하게 혼합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똑같은 청색이어도 어두운 배경에 둘러싸이면 더 밝게 보이는 '측면 억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샤갈 청색의 비밀은 '측면 억제'

'측면 억제'는 나란히 연결돼 있는 눈의 시각 신경세포들이 빛의 자극에 따라 주변의 다른 신경세포들에게 영향을 주는 현상이다. 더 강한 자극을 받은 신경세포는 주변의 다른 신경세포들이 받은 신호를 억제해 실제보다 더 어둡게 보이게 하는데,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자주 본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샤갈의 1914년작 ‘푸른 연인들’
같은 청색이라도 주변색이 흰색인 경우와 회색, 검은색인 경우 우리 눈은 서로 다르게 인식한다. 검은 바탕에 놓인 청색이 가장 맑고 또 밝게 보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색과 검은색이 나란히 놓이면 청색은 검은색의 영향으로 실제보다 밝게 보이고 검은색은 실제보다 더 어두워보이게 된다. 왜 이런 착시 현상이 일어나게 됐을까?

지상현 한성대 교수는 ‘측면 억제’ 현상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측면 억제'로 두 색의 대비(contrast)가 커지게 되면 경계면의 윤곽이나 모서리가 훨씬 뚜렷해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지상현 한성대 예술대 교수는 말한다. 멀리서도 사물의 윤곽을 더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고 어둠 속에서도 적을 구분해 인식할 수 있다. 이처럼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우리 눈은 실제 밝기와 달리 '측면 억제'에 의해 변형된 밝기로 색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주제로 돌아가 샤갈의 청색이 수채화처럼 맑은 이유는 바로 우리 눈의 착시가 빚어낸 환상적인 마술인 셈이다. 내 눈에서 벌어지는 오래된 '진화의 산물'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으로 가보자. 샤갈의 유화와 판화 등 42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샤갈-달리-뷔페' 특별전은 9월 25일까지 열린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