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어와 개미떼는 경주 지진의 전조?…과학으로 풀어보니

입력 2016.09.13 (15:01) 수정 2016.09.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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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5일 경남 거제도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대형 물고기가 발견됐다. 길이 1.7m로 성인 남성 키의 이 물고기는 심해어인 투라치였다. ‘대왕갈치’ 또는 ‘산갈치’라 불리는 희귀 어종으로 우리나라 해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며칠 뒤 투라치가 또 목격됐다. 8월 3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1.2m 길이의 투라치가 발견됐다.

다시 나흘 뒤에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에서 1.7m 길이의 투라치가 수영구역 내에서 발견돼 수상구조요원이 건져냈다.

부산 수영구 민락어촌체험관광연합회 정상용(54) 조합장이 3일 오전 11시께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발견한 몸길이 1.2m의 투라치. 사진 제공=민락어촌체험관광연합회 부산 수영구 민락어촌체험관광연합회 정상용(54) 조합장이 3일 오전 11시께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발견한 몸길이 1.2m의 투라치. 사진 제공=민락어촌체험관광연합회

8일에는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마을 앞 수심 5m의 연안에서도 길이 1.4m 크기의 ‘투라치’가 물 위로 떠올라 헤엄쳐 다니는 것을 주민 김청곤(42)씨가 발견해 뜰 채로 건져 올렸다.

김씨는 "투라치가 기력을 잃은 채 헤엄쳐 다니다 물 위로 떠오른 것으로 보인다”며 “거제 연안에서 잡히는 큰 갈치의 경우 길이가 70~80㎝ 정도 되는데, 이처럼 큰 갈치(투라치)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거제 앞바다에서 잡힌 ‘투라치’를 주민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청곤씨 제공지난달 8일 거제 앞바다에서 잡힌 ‘투라치’를 주민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청곤씨 제공

이른바 '지진어'로 불리는 투라치가 연이어 영남 해안 지역에서 출몰하자 주민들은 지진의 징조가 아니냐며 불안에 떨었다. 지진 징후를 포착한 투라치가 연안 쪽으로 몰려와 잇따라 발견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었다.

국립중앙과학관의 어류 정보코너에도 투라치에 대해 '먼바다의 중층을 유영하며, 가끔 연안에도 출현하나, 매우 희소한 종'이라고 적고 있다. 투라치의 출현이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심해어 뿐 아니라 당시 발견된 개미떼의 이동 모습도 시민 불안을 가중시켰다.


지난 7월 23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띠 모양을 이루며 이동하는 개미떼의 모습을 한 네티즌이 포착해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이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수십만 마리의 개미 떼 이동은 자연 재해를 암시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글들을 다수 올렸다.

이런 불안감들이 더욱 확산하게 된 배경에는 7월 5일 발생한 울산 동구 앞바다에서의 진도 5.0의 지진과 7월말 부산 경남 지역에서의 가스 파동이 있다. 지난 7월말 가스 냄새가 난다는 의심 신고가 200여 건에 달했지만, 당국은 뾰족하게 원인을 찾지 못했다.

가스 냄새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자 그 무렵 나온 심해어와 개미떼의 발견과 맞물려 자연 재해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은 크게 확산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런 괴담은 12일 경주에서 진도 5.8의 강진이 실제로 발생하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지진 이후 인터넷에는 지난달 발견된 심해어 등이 경주 지진의 징조였다는 글들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조만간 더 큰 대형 지진이 올 것이라는 가설도 공공연히 얘기 되고 있다. 12일 경주 지진이 전진(규모 5.1)에 이어 본진(규모 5.8)이 더 큰 규모로 발생하자 인터넷 상에서는 '3차 지진이 온다' '일주일 이내에 더 큰 지진이 온다"는 등의 괴담이 꼬리를 물고 유포되고 있다.

12일 저녁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으로 경남 김해대로 한 주상복합건물 내 대형 식당 천장 일부가 폭탄을 맞은 듯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12일 저녁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으로 경남 김해대로 한 주상복합건물 내 대형 식당 천장 일부가 폭탄을 맞은 듯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자연현상을 이번 지진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개미의 집단 이동의 경우 "대개 먹이를 얻기 위해서 거나 새로운 여왕개미가 분가했을 때 혹은 다른 종과 싸울 때 집단 이동이 목격되기 때문에 이번 지진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김병진 원광대 교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해어 발견에 대해서도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투라치는 국내의 경우 울산해역 위 동해안에서 주로 서식하거나, 찬물과 따뜻한 물이 교차하는 곳에 먹이가 많기 때문에 교차 해역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올 들어 울산 아래 연안에서 가끔 발견되고 있는 것은 바닷물이 갑자기 차가워지는 냉수대를 따라 움직이다 연안 등으로 드물게 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가스 냄새에 대해서도 김광회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화산 지대의 경우 화산 폭발전 가스 성분 변화라든지, 미소지진(느끼지 못하는 작은 지진)의 횟수가 많아진다든지 하는 변화가 있다"면서 "반면 영남 지역은 화산 지역도 아니고 가스 냄새를 지진과 연관 짓는 것도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도 이 같은 '지진 괴담'이 끊이지 않는 밑바탕에는 우리가 그동안 지진 같은 자연 재해에 너무 둔감했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시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가운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괴담 수준의 얘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확한 정보 전달과 지진 대비 요령 등을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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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해어와 개미떼는 경주 지진의 전조?…과학으로 풀어보니
    • 입력 2016-09-13 15:01:58
    • 수정2016-09-13 16:33:52
    취재K
지난 7월 25일 경남 거제도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대형 물고기가 발견됐다. 길이 1.7m로 성인 남성 키의 이 물고기는 심해어인 투라치였다. ‘대왕갈치’ 또는 ‘산갈치’라 불리는 희귀 어종으로 우리나라 해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며칠 뒤 투라치가 또 목격됐다. 8월 3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1.2m 길이의 투라치가 발견됐다.

다시 나흘 뒤에 경북 영덕군 장사해수욕장에서 1.7m 길이의 투라치가 수영구역 내에서 발견돼 수상구조요원이 건져냈다.

부산 수영구 민락어촌체험관광연합회 정상용(54) 조합장이 3일 오전 11시께 광안리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발견한 몸길이 1.2m의 투라치. 사진 제공=민락어촌체험관광연합회
8일에는 경남 거제시 둔덕면 어구마을 앞 수심 5m의 연안에서도 길이 1.4m 크기의 ‘투라치’가 물 위로 떠올라 헤엄쳐 다니는 것을 주민 김청곤(42)씨가 발견해 뜰 채로 건져 올렸다.

김씨는 "투라치가 기력을 잃은 채 헤엄쳐 다니다 물 위로 떠오른 것으로 보인다”며 “거제 연안에서 잡히는 큰 갈치의 경우 길이가 70~80㎝ 정도 되는데, 이처럼 큰 갈치(투라치)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거제 앞바다에서 잡힌 ‘투라치’를 주민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청곤씨 제공
이른바 '지진어'로 불리는 투라치가 연이어 영남 해안 지역에서 출몰하자 주민들은 지진의 징조가 아니냐며 불안에 떨었다. 지진 징후를 포착한 투라치가 연안 쪽으로 몰려와 잇따라 발견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었다.

국립중앙과학관의 어류 정보코너에도 투라치에 대해 '먼바다의 중층을 유영하며, 가끔 연안에도 출현하나, 매우 희소한 종'이라고 적고 있다. 투라치의 출현이 이례적이라는 얘기다.

심해어 뿐 아니라 당시 발견된 개미떼의 이동 모습도 시민 불안을 가중시켰다.


지난 7월 23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띠 모양을 이루며 이동하는 개미떼의 모습을 한 네티즌이 포착해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이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수십만 마리의 개미 떼 이동은 자연 재해를 암시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글들을 다수 올렸다.

이런 불안감들이 더욱 확산하게 된 배경에는 7월 5일 발생한 울산 동구 앞바다에서의 진도 5.0의 지진과 7월말 부산 경남 지역에서의 가스 파동이 있다. 지난 7월말 가스 냄새가 난다는 의심 신고가 200여 건에 달했지만, 당국은 뾰족하게 원인을 찾지 못했다.

가스 냄새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자 그 무렵 나온 심해어와 개미떼의 발견과 맞물려 자연 재해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은 크게 확산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런 괴담은 12일 경주에서 진도 5.8의 강진이 실제로 발생하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지진 이후 인터넷에는 지난달 발견된 심해어 등이 경주 지진의 징조였다는 글들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조만간 더 큰 대형 지진이 올 것이라는 가설도 공공연히 얘기 되고 있다. 12일 경주 지진이 전진(규모 5.1)에 이어 본진(규모 5.8)이 더 큰 규모로 발생하자 인터넷 상에서는 '3차 지진이 온다' '일주일 이내에 더 큰 지진이 온다"는 등의 괴담이 꼬리를 물고 유포되고 있다.

12일 저녁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으로 경남 김해대로 한 주상복합건물 내 대형 식당 천장 일부가 폭탄을 맞은 듯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자연현상을 이번 지진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개미의 집단 이동의 경우 "대개 먹이를 얻기 위해서 거나 새로운 여왕개미가 분가했을 때 혹은 다른 종과 싸울 때 집단 이동이 목격되기 때문에 이번 지진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김병진 원광대 교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해어 발견에 대해서도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투라치는 국내의 경우 울산해역 위 동해안에서 주로 서식하거나, 찬물과 따뜻한 물이 교차하는 곳에 먹이가 많기 때문에 교차 해역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올 들어 울산 아래 연안에서 가끔 발견되고 있는 것은 바닷물이 갑자기 차가워지는 냉수대를 따라 움직이다 연안 등으로 드물게 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가스 냄새에 대해서도 김광회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화산 지대의 경우 화산 폭발전 가스 성분 변화라든지, 미소지진(느끼지 못하는 작은 지진)의 횟수가 많아진다든지 하는 변화가 있다"면서 "반면 영남 지역은 화산 지역도 아니고 가스 냄새를 지진과 연관 짓는 것도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도 이 같은 '지진 괴담'이 끊이지 않는 밑바탕에는 우리가 그동안 지진 같은 자연 재해에 너무 둔감했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시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가운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괴담 수준의 얘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확한 정보 전달과 지진 대비 요령 등을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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