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숨만큼 해라”…해녀의 삶 담은 다큐 ‘물숨’

입력 2016.09.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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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호이'…흡사 휘파람 소리와 같은 거친 숨소리가 푸른 바다 위에 울려 퍼진다.

물질하다 고개를 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다.

해녀들은 숨을 내쉬기가 바쁘게 곧바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한번 바다로 가면 하루 평균 여덟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작업을 한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이들이 바닷속에서 머물 방법은 오직 숨을 멈추는 일이다.

영화 '물숨'은 숨을 멈춰야 사는 해녀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제주도의 작은 섬 우도에서 글보다 물질을 먼저 배운 해녀들을 7년 가까이 취재한 기록이다.

해녀의 발원지로 알려진 우도에는 약 340명의 해녀가 산다.

해녀 사회의 모습은 뭍 사회와 다르지 않았다.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이 존재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그러나 이들 계급은 누가 강제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숨에 따라 정해진다.

즉, 물속에서 얼마나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느냐에 따라 계급과 일터가 바뀐다.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상군은 수심 15∼20m의 깊은 바다에서 일하며 전복과 계관초 같은 해산물을 거둬들인다. 위험은 크지만 그만큼 돈을 많이 번다.

반면 숨이 짧은 해녀가 속한 하군은 3m 깊이의 얕고 탁한 바다에서 온종일 씨름해야 한다.

해녀들의 숨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중군, 하군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군이 될 수 없다.

해녀들도 자신들의 숨의 길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숨에 이르기 전에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저기 저 밑에 있는 전복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앞서면 마지막 숨을 넘어서게 된다.

이 순간 먹게 되는 것이 바로 '물숨'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은 20일 열린 시사회에서 "노장 해녀들은 젊은 해녀들에게 '절대 욕심내지 말고 너의 숨만큼 하라'고 말한다"면서 "나의 숨의 길이, 한계를 알고 살아가면 바다는 너른 어머니의 품이 되지만 욕심을 잘라내지 못하면 어제든 표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라고 말했다.

이 다큐에는 한평생 바다와 함께 한 해녀들의 다양한 사연이 녹아있다.

남보다 숨이 길어 '해녀왕'으로 꼽히는 상군 김연희(58세)씨는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100㎏ 이상의 소라를 안고 나와 '바다의 포크레인'이라 불린다.

중군인 김정자(85세) 할머니의 딸은 18살 때 바다로 들어간 뒤 영영 나오지 못했다. 딸을 바다에 묻었지만, 물질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오늘도 바다로 뛰어든다. 이들 해녀에게 바다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금고이자, 집이자, 고향이다.

그러나 '물숨'은 해녀들이 딸을 잃어도, 어머니를 잃어도, 자신의 목숨을 잃어도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있다고 말한다.

"멀리서 숨비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저절로 철렁철렁해지고 다시 태어나도 해녀가 되고 싶을 정도로" 바다가 좋기 때문이다.

해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작가를 지낸 고 감독은 "열심히 일하다가 마흔 살에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던 중 고향 제주도를 찾았다가 매일 같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수 있는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고향 사람임에도 해녀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면서 "2년간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보리빵을 사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배달한 끝에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 3월 유네스코에 제주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등재 여부는 오는 11∼12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된다.

고 감독은 "제주도를 포함해 4천400여 명인 해녀 가운데 120명이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면서 "해녀들을 우리 마음속에 먼저 올리고 이분들을 어떻게 계승 보존할 것인가 해답을 찾는 것이 과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원고를 맡았고, 소치 올림픽 폐막식 음악을 맡았던 양방언 음악 감독이 음악을 담당했다. 해녀들의 모습을 항공촬영과 수중촬영을 통해 다양한 각도와 구도에서 담았고, 우도의 아름다운 4계절 풍광도 볼 수 있다.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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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숨만큼 해라”…해녀의 삶 담은 다큐 ‘물숨’
    • 입력 2016-09-20 17:53:56
    연합뉴스
'호이호이'…흡사 휘파람 소리와 같은 거친 숨소리가 푸른 바다 위에 울려 퍼진다.

물질하다 고개를 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다.

해녀들은 숨을 내쉬기가 바쁘게 곧바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한번 바다로 가면 하루 평균 여덟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작업을 한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이들이 바닷속에서 머물 방법은 오직 숨을 멈추는 일이다.

영화 '물숨'은 숨을 멈춰야 사는 해녀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제주도의 작은 섬 우도에서 글보다 물질을 먼저 배운 해녀들을 7년 가까이 취재한 기록이다.

해녀의 발원지로 알려진 우도에는 약 340명의 해녀가 산다.

해녀 사회의 모습은 뭍 사회와 다르지 않았다. 상군(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이 존재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그러나 이들 계급은 누가 강제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숨에 따라 정해진다.

즉, 물속에서 얼마나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느냐에 따라 계급과 일터가 바뀐다.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상군은 수심 15∼20m의 깊은 바다에서 일하며 전복과 계관초 같은 해산물을 거둬들인다. 위험은 크지만 그만큼 돈을 많이 번다.

반면 숨이 짧은 해녀가 속한 하군은 3m 깊이의 얕고 탁한 바다에서 온종일 씨름해야 한다.

해녀들의 숨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중군, 하군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군이 될 수 없다.

해녀들도 자신들의 숨의 길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숨에 이르기 전에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저기 저 밑에 있는 전복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앞서면 마지막 숨을 넘어서게 된다.

이 순간 먹게 되는 것이 바로 '물숨'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은 20일 열린 시사회에서 "노장 해녀들은 젊은 해녀들에게 '절대 욕심내지 말고 너의 숨만큼 하라'고 말한다"면서 "나의 숨의 길이, 한계를 알고 살아가면 바다는 너른 어머니의 품이 되지만 욕심을 잘라내지 못하면 어제든 표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라고 말했다.

이 다큐에는 한평생 바다와 함께 한 해녀들의 다양한 사연이 녹아있다.

남보다 숨이 길어 '해녀왕'으로 꼽히는 상군 김연희(58세)씨는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100㎏ 이상의 소라를 안고 나와 '바다의 포크레인'이라 불린다.

중군인 김정자(85세) 할머니의 딸은 18살 때 바다로 들어간 뒤 영영 나오지 못했다. 딸을 바다에 묻었지만, 물질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오늘도 바다로 뛰어든다. 이들 해녀에게 바다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금고이자, 집이자, 고향이다.

그러나 '물숨'은 해녀들이 딸을 잃어도, 어머니를 잃어도, 자신의 목숨을 잃어도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있다고 말한다.

"멀리서 숨비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저절로 철렁철렁해지고 다시 태어나도 해녀가 되고 싶을 정도로" 바다가 좋기 때문이다.

해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작가를 지낸 고 감독은 "열심히 일하다가 마흔 살에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던 중 고향 제주도를 찾았다가 매일 같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 수 있는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고향 사람임에도 해녀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면서 "2년간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보리빵을 사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배달한 끝에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 3월 유네스코에 제주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등재 여부는 오는 11∼12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된다.

고 감독은 "제주도를 포함해 4천400여 명인 해녀 가운데 120명이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면서 "해녀들을 우리 마음속에 먼저 올리고 이분들을 어떻게 계승 보존할 것인가 해답을 찾는 것이 과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원고를 맡았고, 소치 올림픽 폐막식 음악을 맡았던 양방언 음악 감독이 음악을 담당했다. 해녀들의 모습을 항공촬영과 수중촬영을 통해 다양한 각도와 구도에서 담았고, 우도의 아름다운 4계절 풍광도 볼 수 있다.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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