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지진 시대, 대응 시스템은?
입력 2016.09.25 (22:45) 수정 2016.09.26 (00:51) 취재파일K
자동재생
동영상영역 시작
동영상영역 끝
<프롤로그>

대학교 2학년인 권용화 씨는 지난 12일 경주에서 직접 지진을 겪었습니다.

이후 이른바 '생존 가방'을 챙겨놓고 몸에서 떨어뜨려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권용화(경북 경주시) : "정말 건물이 흔들린단 말이에요. 미리 이 가방에다가 챙겨놨어요 물이나 칫솔, 세면도구, 먹을거를 챙겨놨고. 바로 그 상태로 뛰쳐나갈 수 있게 쪽잠을 자는 거죠."

지난 19일 진도 4.5의 여진이 찾아왔을 때 자취방에 혼자 있던 권 씨는 생존 가방을 메고 서둘러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녹취> 권용화(경북 경주시) : "지금은 운동화를 신는데 그때는 슬리퍼를 신고 바로 뛰어 도망쳤거든요."

밖으로 나오자 자취방 옆 건물의 외벽이 떨어지고 주차돼 있던 차량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녹취> 권용화 : "할 수 있는 건 운동장 가서 대피하는 것 밖에 없었죠. '건물 없는데 최대한 없는 데로 피신하자' 한게..."

본능적으로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지만 초등학교 건물 역시 파손된 상태.

권씨를 비롯해 대피한 시민들이 놀란 건 이 초등학교가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건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인터뷰> 권용화 : "(학교건물에) 금이 간다고. 뭐가 흔들렸다 하면서 여기도 큰 건물이니까 피신을 하자고 해서 저쪽 공원으로 옮겼거든요."

<기자 오프닝>

이번 지진은 한국사회의 지진 대비 체계에 큰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재난 상황 알림이 늦어 대피가 늦어지는가 하면 제대로 된 행동 요령이 전파되지 않아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정부와 자치단체 관련 기관이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처했는지, 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올바르게 행동했는지 우리 사회의 지진 대비 태세를 점검해봤습니다.

<리포트>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경주시 황남동 전통 한옥 밀집 지역.

기와장이 부서지고 벽에 균열이 가는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진이 났을 때 대피소가 어딘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주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녹취> 권영운(경북 경주시) : "위험하지요. 그래도 뭐 딴 다 사람들 밖에 나와있었더만..이렇게 밖에 있다가 방에 들어가서 자버렸다고 (위험하니까 건물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것도 못 들었죠. 처음에는 그런 것도 못 듣고 자막 나오는 것도 없고, 뭐가 없었어요"

대피할 곳을 찾아 무작정 차를 끌고 나와 돌아다닌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러다보니 긴급상황 발생 시 구조활동 등을 위해 비워둬야 하는 도로는 대피하는 차들로 꽉 막혀 제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인터뷰> 김성필(경북 경주시) : "차 타고 그냥 나갔죠 그냥. 나갔는데 차가 막혀가지고 한 30분 배회하다가 다시 들어왔죠. 차가 있을 데가 없으니까 주차할 데도 없고 경찰들도 없고 그냥 주차장이란 주차장은 다 꽉 차있고 도로도 막혀있는 상태에서 이 주변을 배회하다가 그냥 들어온거죠 1시 될 때까지 있다가."

어렵게 찾아간 대피소가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주 월성 원전 인근의 한 지진 대피소.

대피소로 지정이 돼 있었지만 정작 지진 발생 당시에는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녹취> 김진선(경주시) : "와보니까 문이 다 잠겨 있고 캄캄하고 들어갈 수 없어서 있다가 돌아왔는데...다른 사람들도 왔다가 돌아가더라고..."

지정된 대피소들이 안전한지도 의문입니다.

경주시에서 마련한 지진 재난 대비 현장 대응 매뉴얼에는 지진 발생 시 이재민 대피 장소로 경주 시내 84곳의 초중고등학교가 지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이재민 대피 장소로 정해진 학교 84곳 가운데 10곳이 이번 지진으로 건물 균열 등의 파손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상황이 어떤지 직접 점검해봤습니다.

이재민 대피소로 지정된 경주시내의 한 초등학교.

학교의 기와 지붕 일부가 무너졌고, 외벽에는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녹취> 학교 관계자 : "연통들이 뚜껑이 다 깨져버려서 덮어놨거든요. (비닐은 뭐에요?) 비가 새지 말라고"

실내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천장을 떠받치는 콘크리트 들보에 깊은 금이 가 있습니다.

<인터뷰> 석혜빈(초등학교 5학년) : "대피한 다음에도 계속 불안했어요. 학교는 저기 보시면 기와가 다 부셔져있어요."

일부 학교들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화장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가 하면, 체육관의 천장을 지탱하던 대형 철근이 잇따라 떨어져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안전해야 할 '대피장소'인 학교가 안전하지 못했던 셈입니다.

<녹취> 학교 관계자 : "(내진설계가 안전에 도움이 됐나요?) 예. 도움은 됐는데 각 교실에 균열이라든지 시멘트가 떨어진다든지 그 다음에 보도가 떨어져가지고 애들이 교실에서 수업하기 상당히 애들 불안해하고 있어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 가운데 내진 설계가 필요한 건물은 3만 천7백여 개.

그러나 실제로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7천5백여 개로 24%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올해 내진 설계로 보강할 계획인 학교 건물은 130여 곳.

보강이 필요한 대상의 0.6%에 불과합니다.

<녹취> 오창환(교수) : "홍수나 태풍, 이런데에 대해서는 학교 건물이 안전하죠.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고. 그렇지만 지진은 다른 케이스라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2005년 이전에 5층 이하의 건물들은 내진설계안돼있잖아요?"

안전한 대피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먼저 시민들은 지진 발생 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경주에 규모 5.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순간!

놀란 시민들은 머리를 감싼 채 너 나할 것 없이 황급히 일단 가게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피요령을 모르다 보니 우왕좌왕 당황해합니다.

비슷한 상황은 또 있습니다.

경주 외곽의 주택가.

지진이 발생하자 놀란 주민들이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주민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에서 진동은 계속 이어집니다.

여진이 계속되던 지난주, 경주시를 다시 찾아 시민들에게 지진 발생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봤습니다.

<녹취> 유진순(경북 경주시) : "의자에 카운터에 앉아서 있는데 뭐가 쾅하더니 몸이 달달달달(떨리고) 유리가 있잖아요, 막 흔들리는거에요. 전부 다 맨발로 뛰쳐나갔잖아요."

어떻게 해야할 지 배운 적도 없었고, 알려준 곳도 없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상무(경북 경주시) :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겠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렇다보니까 좀 당황스럽죠."

<녹취> 유진순(경북 경주시) : "교육받았나? 우리가... 교육받은 게 없고 하니까 그 정도로 무너지고 이럴때는 진짜 무서워서..."

하지만 지진 전문가들은 지진 발생 초기 무턱대고 건물 밖으로 뛰어나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합니다.

경주 지진과 같은 큰 진동 상황에서는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뿐더러 움직이는게 더 위험합니다.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간판이나 유리창, 에어컨 실외기 등이 추락하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건물 안에 있을 때에는 먼저 책상이나 테이블 아래로 피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진동이 완전히 멈춘 후, 침착하게 건물 밖 상황을 확인하고 대피해야 합니다.

<녹취> 홍태경(교수) : "(강한 진동은) 30 ~ 40초 정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안에 있는 경우에는 이 시간 동안 몸을 숨기는 것이 아주 필요합니다."

건물 밖으로 나온 뒤에는 넓은 공터나 공원 같은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땅이 흔들리면 본능적으로 무엇이든 잡거나 기대고 싶어지지만 블록담이나 대문기둥, 자판기 등은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녹취> 공한성(교수/경일대 소방방재학과) : "사람들은 주로 자기 아파트 앞에 있는 놀이터라든가 이런곳에서 평소 즐기던 장소에 놀던 장소에 평소 가까이 와서 쉬던 장소에 주로 거기서 대피를 하고 있었죠. 아파트 바로 앞이라면 창문 유리창 등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파편이 날아와서 오히려 잘못하다보면 건물 안보다 더 위험할 수있습니다."

실제로 1995년 일본 고베지진 당시 사망 원인을 분석해보면 가구와 가전제품 충돌이 46%로 가장 많았고 유리나 금속 파편으로 인한 사망은 25%, 건물 붕괴는 17%로 오히려 가장 적었습니다.

적절한 통제에 따라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하는 것도 주요 대피요령입니다.

그러나 대피를 결정할 수 있도록 신속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정부의 긴급재난문자는 긴급이란 말이 무색했습니다.

지난 12일 최초 지진 때는 지진 발생 후 9분이 지나서야 재난발생문자가 도착했고, 개선을 장담한 후인 19일 여진 때는 오히려 5분이 더 늦은 14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문자 발송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정황도 나타났습니다.

국민안전처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과 운영규정' 태풍, 홍수, 대설 등의 재난에 대해서는 주의보 경보시 문자를 발송하도록 했지만 지진은 기준은 물론 참고 문안도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 조원철(명예교수/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재난 지금 홍수, 태풍 이런게 다 문자 보낼 수있는게 조례(예규)로 규정이 돼 있거든요. 장관이 만든 조례(예규)로 되는데 지진해일은 있어요. 그런데 지진을 일으킨 지진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어요."

기상청에서 시작해 국민안전처와 통신사를 거치는 '3단계' 시스템 역시 '늑장 알림'의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인터뷰> 조원철(명예교수/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국민안전처에서 바로 발송하는게 아니예요. 이거를 이동통신 3사에다가 의뢰해야돼요. 그 절차가 있어요.그건 말이 안 돼요. 그러니까 왜 이동통신 3사의 협조가 그동안 느렸냐면 경비가 들거든. 이거를 국가차원에서 지원보상을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국민안전처가 바로 보낼 수 있어야 되고, 정부 안내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늘자지진 속보를 보내주는 민간 어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 지진 관련 글이 늘어나면 지진이 났다고 판단을 내리는 건데, 지난 19일 여진 당시 국민안전처보다 빨리 지진 알림을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정부 발표보다 인터넷에 도는 말을 더 믿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녹취> 임현식(경북 경주시) : "매뉴얼이 있어야죠.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 지진이 났을 때 소리가 난다, 건물이 붕괴되는 소리가 나면 그때는 즉각 어떻게 해야하고, 나와서는 어떻게 행동해야하고, 그런게 제일 중요하죠."

<녹취> 이상무(경북 경주시) : "말그대로 어깨너머로 듣고 하는 지식으로 하는 것보다는 남의 얘기가 아니니까 그런 것들이 숙지가 돼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왕좌왕하는 경향이 있고하니까..."

현재 재난관리 매뉴얼은 국가재난법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눠져 있습니다.

먼저 중앙정부차원의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이 있고, 이를 정부부처와 유관기관에 맞게 구체화한 '실무 매뉴얼' 마지막으로 현장과 가까운 자치단체들이 사용하는 '현장 매뉴얼'이 있습니다.

취재진은 이번 지진과 관련이 있는 부처와 자치단체들의 대응방안을 재난 전문가와 학자들에게 맡겨 내용을 검토해봤습니다.

국민안전처의 지진 재난 대비 실무매뉴얼에는 지진의 규모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도록 돼 있습니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 상황은 세분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규모 5.0과 7.0의 지진은 방출 에너지 크기가 천 배나 차이가 나지만 대응 방안은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용재(교수/경민대 소방행정과) : "누가 그것을 상황을 접수하고 누가 어떤 명령을 내리고 이러한 전체적인 어떤 대처 프로세스가 아직까지도 좀 엉성하거나 미흡하거나 이런 부분이 좀 있습니다. 그게 또 국가차원에서의 그런 어떤 시스템과 시도 단위에서의 그런 대응 시스템과 그다음에 시군구청에서 요런 것들이 말끔하지 않게 혼동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요."

매뉴얼이 실무적이지 않고 행정 절차에 치중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인터뷰>조원철(명예교수/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전부 행정적인 매뉴얼 밖에 없어요. 그거는 행정당국에서 나중에 복구, 관리절차 할 때 사용하는 거고 '현장에 있는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그 시민들을 어떻게 안전지대로 옮겨줄거냐'하는것은 없어요."

기상청 국가지진화산센터 운영매뉴얼에는 최상급자에게는 보고를 천천히 하라는 내용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장·차관에게는 심야시간이 아닌 아침에 전화 보고를 하라고 돼 있습니다.

<녹취> 이재은(교수/충북대 행정학과) : "지진의 중요성을 기상청 관계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국민들은 심각하게 느끼는데 관측하는 담당 공무원들은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 아닌가. 위기관리의 기본은 신속성이거든요."

예고 없이 찾아온 경주 지진은 우리 대응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오창환(교수) : "지금 대피소뿐만이 아니라 이런 경보에서부터 사후대비까지 이러한 것들이 총체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왜냐면 그러한 재난을 겪어보지 않다보니까 여기에 대한 준비를 사실은 안하게 된 것이죠."

동시에 재해와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이호준(삼성방재연구소 수석연구원) : "5.8의 지진이 왔다. 이제 국민 모두가 인식했습니다. 그에 대한 심각성과 위험성에 대해서 국민들이 알아야되는 것이거든요. 알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만 나라에서 마련할 게 아니고 그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과 홍보 그리고 국민인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겠죠."

지진 안전 지대에서 지진 시대로의 전환.

우리 사회는 전례없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 지진 시대, 대응 시스템은?
    • 입력 2016-09-25 23:11:29
    • 수정2016-09-26 00:51:43
    취재파일K
<프롤로그>

대학교 2학년인 권용화 씨는 지난 12일 경주에서 직접 지진을 겪었습니다.

이후 이른바 '생존 가방'을 챙겨놓고 몸에서 떨어뜨려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권용화(경북 경주시) : "정말 건물이 흔들린단 말이에요. 미리 이 가방에다가 챙겨놨어요 물이나 칫솔, 세면도구, 먹을거를 챙겨놨고. 바로 그 상태로 뛰쳐나갈 수 있게 쪽잠을 자는 거죠."

지난 19일 진도 4.5의 여진이 찾아왔을 때 자취방에 혼자 있던 권 씨는 생존 가방을 메고 서둘러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녹취> 권용화(경북 경주시) : "지금은 운동화를 신는데 그때는 슬리퍼를 신고 바로 뛰어 도망쳤거든요."

밖으로 나오자 자취방 옆 건물의 외벽이 떨어지고 주차돼 있던 차량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녹취> 권용화 : "할 수 있는 건 운동장 가서 대피하는 것 밖에 없었죠. '건물 없는데 최대한 없는 데로 피신하자' 한게..."

본능적으로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지만 초등학교 건물 역시 파손된 상태.

권씨를 비롯해 대피한 시민들이 놀란 건 이 초등학교가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건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인터뷰> 권용화 : "(학교건물에) 금이 간다고. 뭐가 흔들렸다 하면서 여기도 큰 건물이니까 피신을 하자고 해서 저쪽 공원으로 옮겼거든요."

<기자 오프닝>

이번 지진은 한국사회의 지진 대비 체계에 큰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재난 상황 알림이 늦어 대피가 늦어지는가 하면 제대로 된 행동 요령이 전파되지 않아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정부와 자치단체 관련 기관이 매뉴얼에 따라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처했는지, 일반 시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올바르게 행동했는지 우리 사회의 지진 대비 태세를 점검해봤습니다.

<리포트>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경주시 황남동 전통 한옥 밀집 지역.

기와장이 부서지고 벽에 균열이 가는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진이 났을 때 대피소가 어딘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주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녹취> 권영운(경북 경주시) : "위험하지요. 그래도 뭐 딴 다 사람들 밖에 나와있었더만..이렇게 밖에 있다가 방에 들어가서 자버렸다고 (위험하니까 건물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것도 못 들었죠. 처음에는 그런 것도 못 듣고 자막 나오는 것도 없고, 뭐가 없었어요"

대피할 곳을 찾아 무작정 차를 끌고 나와 돌아다닌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러다보니 긴급상황 발생 시 구조활동 등을 위해 비워둬야 하는 도로는 대피하는 차들로 꽉 막혀 제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인터뷰> 김성필(경북 경주시) : "차 타고 그냥 나갔죠 그냥. 나갔는데 차가 막혀가지고 한 30분 배회하다가 다시 들어왔죠. 차가 있을 데가 없으니까 주차할 데도 없고 경찰들도 없고 그냥 주차장이란 주차장은 다 꽉 차있고 도로도 막혀있는 상태에서 이 주변을 배회하다가 그냥 들어온거죠 1시 될 때까지 있다가."

어렵게 찾아간 대피소가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주 월성 원전 인근의 한 지진 대피소.

대피소로 지정이 돼 있었지만 정작 지진 발생 당시에는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녹취> 김진선(경주시) : "와보니까 문이 다 잠겨 있고 캄캄하고 들어갈 수 없어서 있다가 돌아왔는데...다른 사람들도 왔다가 돌아가더라고..."

지정된 대피소들이 안전한지도 의문입니다.

경주시에서 마련한 지진 재난 대비 현장 대응 매뉴얼에는 지진 발생 시 이재민 대피 장소로 경주 시내 84곳의 초중고등학교가 지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이재민 대피 장소로 정해진 학교 84곳 가운데 10곳이 이번 지진으로 건물 균열 등의 파손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상황이 어떤지 직접 점검해봤습니다.

이재민 대피소로 지정된 경주시내의 한 초등학교.

학교의 기와 지붕 일부가 무너졌고, 외벽에는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녹취> 학교 관계자 : "연통들이 뚜껑이 다 깨져버려서 덮어놨거든요. (비닐은 뭐에요?) 비가 새지 말라고"

실내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천장을 떠받치는 콘크리트 들보에 깊은 금이 가 있습니다.

<인터뷰> 석혜빈(초등학교 5학년) : "대피한 다음에도 계속 불안했어요. 학교는 저기 보시면 기와가 다 부셔져있어요."

일부 학교들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화장실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가 하면, 체육관의 천장을 지탱하던 대형 철근이 잇따라 떨어져 큰 인명사고로 이어질 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안전해야 할 '대피장소'인 학교가 안전하지 못했던 셈입니다.

<녹취> 학교 관계자 : "(내진설계가 안전에 도움이 됐나요?) 예. 도움은 됐는데 각 교실에 균열이라든지 시멘트가 떨어진다든지 그 다음에 보도가 떨어져가지고 애들이 교실에서 수업하기 상당히 애들 불안해하고 있어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 가운데 내진 설계가 필요한 건물은 3만 천7백여 개.

그러나 실제로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7천5백여 개로 24%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올해 내진 설계로 보강할 계획인 학교 건물은 130여 곳.

보강이 필요한 대상의 0.6%에 불과합니다.

<녹취> 오창환(교수) : "홍수나 태풍, 이런데에 대해서는 학교 건물이 안전하죠.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고. 그렇지만 지진은 다른 케이스라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2005년 이전에 5층 이하의 건물들은 내진설계안돼있잖아요?"

안전한 대피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먼저 시민들은 지진 발생 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경주에 규모 5.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순간!

놀란 시민들은 머리를 감싼 채 너 나할 것 없이 황급히 일단 가게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피요령을 모르다 보니 우왕좌왕 당황해합니다.

비슷한 상황은 또 있습니다.

경주 외곽의 주택가.

지진이 발생하자 놀란 주민들이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주민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에서 진동은 계속 이어집니다.

여진이 계속되던 지난주, 경주시를 다시 찾아 시민들에게 지진 발생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봤습니다.

<녹취> 유진순(경북 경주시) : "의자에 카운터에 앉아서 있는데 뭐가 쾅하더니 몸이 달달달달(떨리고) 유리가 있잖아요, 막 흔들리는거에요. 전부 다 맨발로 뛰쳐나갔잖아요."

어떻게 해야할 지 배운 적도 없었고, 알려준 곳도 없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녹취> 이상무(경북 경주시) :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겠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렇다보니까 좀 당황스럽죠."

<녹취> 유진순(경북 경주시) : "교육받았나? 우리가... 교육받은 게 없고 하니까 그 정도로 무너지고 이럴때는 진짜 무서워서..."

하지만 지진 전문가들은 지진 발생 초기 무턱대고 건물 밖으로 뛰어나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합니다.

경주 지진과 같은 큰 진동 상황에서는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뿐더러 움직이는게 더 위험합니다.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간판이나 유리창, 에어컨 실외기 등이 추락하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건물 안에 있을 때에는 먼저 책상이나 테이블 아래로 피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진동이 완전히 멈춘 후, 침착하게 건물 밖 상황을 확인하고 대피해야 합니다.

<녹취> 홍태경(교수) : "(강한 진동은) 30 ~ 40초 정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안에 있는 경우에는 이 시간 동안 몸을 숨기는 것이 아주 필요합니다."

건물 밖으로 나온 뒤에는 넓은 공터나 공원 같은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땅이 흔들리면 본능적으로 무엇이든 잡거나 기대고 싶어지지만 블록담이나 대문기둥, 자판기 등은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

<녹취> 공한성(교수/경일대 소방방재학과) : "사람들은 주로 자기 아파트 앞에 있는 놀이터라든가 이런곳에서 평소 즐기던 장소에 놀던 장소에 평소 가까이 와서 쉬던 장소에 주로 거기서 대피를 하고 있었죠. 아파트 바로 앞이라면 창문 유리창 등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파편이 날아와서 오히려 잘못하다보면 건물 안보다 더 위험할 수있습니다."

실제로 1995년 일본 고베지진 당시 사망 원인을 분석해보면 가구와 가전제품 충돌이 46%로 가장 많았고 유리나 금속 파편으로 인한 사망은 25%, 건물 붕괴는 17%로 오히려 가장 적었습니다.

적절한 통제에 따라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하는 것도 주요 대피요령입니다.

그러나 대피를 결정할 수 있도록 신속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정부의 긴급재난문자는 긴급이란 말이 무색했습니다.

지난 12일 최초 지진 때는 지진 발생 후 9분이 지나서야 재난발생문자가 도착했고, 개선을 장담한 후인 19일 여진 때는 오히려 5분이 더 늦은 14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문자 발송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정황도 나타났습니다.

국민안전처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과 운영규정' 태풍, 홍수, 대설 등의 재난에 대해서는 주의보 경보시 문자를 발송하도록 했지만 지진은 기준은 물론 참고 문안도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 조원철(명예교수/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재난 지금 홍수, 태풍 이런게 다 문자 보낼 수있는게 조례(예규)로 규정이 돼 있거든요. 장관이 만든 조례(예규)로 되는데 지진해일은 있어요. 그런데 지진을 일으킨 지진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어요."

기상청에서 시작해 국민안전처와 통신사를 거치는 '3단계' 시스템 역시 '늑장 알림'의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인터뷰> 조원철(명예교수/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국민안전처에서 바로 발송하는게 아니예요. 이거를 이동통신 3사에다가 의뢰해야돼요. 그 절차가 있어요.그건 말이 안 돼요. 그러니까 왜 이동통신 3사의 협조가 그동안 느렸냐면 경비가 들거든. 이거를 국가차원에서 지원보상을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국민안전처가 바로 보낼 수 있어야 되고, 정부 안내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늘자지진 속보를 보내주는 민간 어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 지진 관련 글이 늘어나면 지진이 났다고 판단을 내리는 건데, 지난 19일 여진 당시 국민안전처보다 빨리 지진 알림을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정부 발표보다 인터넷에 도는 말을 더 믿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녹취> 임현식(경북 경주시) : "매뉴얼이 있어야죠.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 지진이 났을 때 소리가 난다, 건물이 붕괴되는 소리가 나면 그때는 즉각 어떻게 해야하고, 나와서는 어떻게 행동해야하고, 그런게 제일 중요하죠."

<녹취> 이상무(경북 경주시) : "말그대로 어깨너머로 듣고 하는 지식으로 하는 것보다는 남의 얘기가 아니니까 그런 것들이 숙지가 돼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왕좌왕하는 경향이 있고하니까..."

현재 재난관리 매뉴얼은 국가재난법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눠져 있습니다.

먼저 중앙정부차원의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이 있고, 이를 정부부처와 유관기관에 맞게 구체화한 '실무 매뉴얼' 마지막으로 현장과 가까운 자치단체들이 사용하는 '현장 매뉴얼'이 있습니다.

취재진은 이번 지진과 관련이 있는 부처와 자치단체들의 대응방안을 재난 전문가와 학자들에게 맡겨 내용을 검토해봤습니다.

국민안전처의 지진 재난 대비 실무매뉴얼에는 지진의 규모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도록 돼 있습니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 상황은 세분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규모 5.0과 7.0의 지진은 방출 에너지 크기가 천 배나 차이가 나지만 대응 방안은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용재(교수/경민대 소방행정과) : "누가 그것을 상황을 접수하고 누가 어떤 명령을 내리고 이러한 전체적인 어떤 대처 프로세스가 아직까지도 좀 엉성하거나 미흡하거나 이런 부분이 좀 있습니다. 그게 또 국가차원에서의 그런 어떤 시스템과 시도 단위에서의 그런 대응 시스템과 그다음에 시군구청에서 요런 것들이 말끔하지 않게 혼동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요."

매뉴얼이 실무적이지 않고 행정 절차에 치중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인터뷰>조원철(명예교수/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전부 행정적인 매뉴얼 밖에 없어요. 그거는 행정당국에서 나중에 복구, 관리절차 할 때 사용하는 거고 '현장에 있는 시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그 시민들을 어떻게 안전지대로 옮겨줄거냐'하는것은 없어요."

기상청 국가지진화산센터 운영매뉴얼에는 최상급자에게는 보고를 천천히 하라는 내용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장·차관에게는 심야시간이 아닌 아침에 전화 보고를 하라고 돼 있습니다.

<녹취> 이재은(교수/충북대 행정학과) : "지진의 중요성을 기상청 관계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국민들은 심각하게 느끼는데 관측하는 담당 공무원들은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 아닌가. 위기관리의 기본은 신속성이거든요."

예고 없이 찾아온 경주 지진은 우리 대응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오창환(교수) : "지금 대피소뿐만이 아니라 이런 경보에서부터 사후대비까지 이러한 것들이 총체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왜냐면 그러한 재난을 겪어보지 않다보니까 여기에 대한 준비를 사실은 안하게 된 것이죠."

동시에 재해와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이호준(삼성방재연구소 수석연구원) : "5.8의 지진이 왔다. 이제 국민 모두가 인식했습니다. 그에 대한 심각성과 위험성에 대해서 국민들이 알아야되는 것이거든요. 알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만 나라에서 마련할 게 아니고 그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과 홍보 그리고 국민인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겠죠."

지진 안전 지대에서 지진 시대로의 전환.

우리 사회는 전례없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취재파일K 전체보기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