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 아래 숨는 일도 생각보다 어려워요’…기자의 지진체험기

입력 2016.09.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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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야~.”

“꺄~ 아악~.”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생각할 겨를 없이, 방석으로 머리를 가리고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몸도 들어오셔야 돼요~.”

그랬다.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내 머리는 탁자 아래 있어도 몸은 탁자 밖에 있었던 것이다.

"등 보여요. 실제 지진이었으면 그러다 사망해요."

27일 오전 서울 보라매안전체험관 실내지진체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실제 지진도 아니었고, 지진체험인지라 흔들릴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생처음 겪어보는 '지진'은 나를 당황케 했다.

실내지진체험을 마치고 나오자, 밖에서 내가 체험하는 모습을 CCTV로 지켜보고 있던 한 중학생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등 보여요. 그러다 사망해요. 선생님.”

내가 탁자 아래에 머리만 숨기고, 몸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진이 났을 때 제대로 몸을 숨기지 못하면 떨어지거나 쓰러지는 물체에 부딪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잘 숨겨야 한다.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도 웃기는 어려웠다. 체험에서도 이럴진대, 이 같은 대비도 없이 진짜 지진을 겪었다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이거야말로 기자가 경험한 재난체험이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이유 아닐까?



지진·태풍·화재·교통사고 '체험식 대응요령 훈련'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보라매공원(보라매안전체험관)과 어린이대공원(광나루안전체험관) 두 곳에 재난체험을 할 수 있는 안전체험관을 운영한다. 광나루안전체험관은 어린이 체험에 특화돼 있고, 보라매안전체험관은 상대적으로 성인을 위한 재난체험에 특화돼 있다.

재난체험의 경우 한 회에 100분 정도 소요돼 하루 4회(수요일은 5회)씩 진행되는데, 보라매안전체험관 재난체험의 1회 체험인원은 70명이다.

재난체험은 지진과 태풍, 화재, 교통사고 등 크게 4가지 재난상황에 대비한 ‘체험식 훈련’으로 이뤄져 있다. 우선 4D 영상관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상황을 재현한 영상을 관람한 후, 4개의 과정의 체험을 하게 된다. 4개 재난체험 모두 우선 영상물과 교관 설명을 통해 대응요령, 대피요령 등을 배운 후, 직접 체험하면서 다시 한 번 대응요령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이 중 지진체험은 실내지진체험(규모 7.0), 붕괴탈출체험, 실외지진체험(규모 5.0)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실제 상황을 가정해 진행된다.

화재체험에서는 직접 소화기를 작동해보고, 고층건물에서 비상시 탈출할 때 필요한 완강기 사용법을 배운다. 또 노래방에서 불이 났을 때를 가정해 탈출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미리 체험을 해봐서 정말 다행이예요"

기자가 직접 재난체험에 참가한 27일 오전 10시 재난체험에는 서울 강현중학교 1학년 3반, 4반 학생 52명과 선생님 2명, 일반인(성인) 8명 등 총 63명이 재난체험을 진행했다.

체험식 훈련인 만큼 함께 체험을 해 본 사람들 대부분의 만족도도 높았다. 강현중학교 1학년 3반 이예슬 학생은 “지진체험 등 모든 체험이 너무 재밌었다”면서도 지진 났을 때 대피 요령을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몸 숨기고, 머리 가리고, 벽 짚고 가야 한다”고 비교적 정확하게 답했다.

강현중학교 1학년 3반 학생 26명을 인솔한 신미숙(54) 선생님은 “실제 해보니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대비할 수 있는 체험”이라면서 “학생들한테 꼭 필요한 것 같다”고 체험에 만족해했다.

공무원시험 필기시험에 합격해 면접대비 차원에서 재난체험에 참가한 김혜미(26)씨는 지진체험에 대해 “바닥이 흔들리고, 몸을 피해야 할 일이 생기니까 정신이 없었다”며 “실제라면 너무 무서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소엔 자연재해에 무관심했고, 만만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미리 체험을 해봐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재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됐다”고 재난체험을 평가했다.

"무슨 일 생기면 늘어났다가 시간 지나면 다시 줄어요"

이달 발생한 경주 지진으로 지진체험 등 재난체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보라매안전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도 재난체험 운영 횟수를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보라매안전체험관 김성민 교관은 “이렇게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체험신청이 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줄어든다”며 “재난이라는 게 평상시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분기별 안전체험관 이용자 수 추이를 보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급증했다가 다시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2014년 5월부터 재난체험 수요가 늘어 매일 야간에 1회씩 더 재난체험을 늘렸지만 그해 말 수요가 줄어 2015년부터는 야간체험을 주 1회로 줄이기도 했다.

아울러 김성민 교관은 “고층이라면 우선 자기 몸을 보호하고, 진동이 멈춘 후에 지상으로 탈출해야 하고. 저층이라면 바로 실외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처한 상황을 구분해 몸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진 대응 행동요령을 전했다.

한편 지난 2010년 개장한 보라매 안전체험관의 누적 이용자는 91만9,179명(2016년 8월 기준)에 달한다. 평일에는 학생 등의 단체체험이 많고, 주말에 가족단위 체험이 많다.


보라매안전체험관이 성인에 특화된 만큼 성인 체험자가 가장 많았고, 어린이, 청소년 체험자가 뒤를 이었다.

다만 성인의 경우에도 회사에서 가라고 해서 온 사람 등 의무적으로 온 경우가 많아 자발적으로 재난체험에 참석하는 비율은 보통 10% 정도라는 것이 안전체험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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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자 아래 숨는 일도 생각보다 어려워요’…기자의 지진체험기
    • 입력 2016-09-28 14:26:58
    취재K

“지진이야~.”

“꺄~ 아악~.”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생각할 겨를 없이, 방석으로 머리를 가리고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몸도 들어오셔야 돼요~.”

그랬다. 탁자 밑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지만, 내 머리는 탁자 아래 있어도 몸은 탁자 밖에 있었던 것이다.

"등 보여요. 실제 지진이었으면 그러다 사망해요."

27일 오전 서울 보라매안전체험관 실내지진체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실제 지진도 아니었고, 지진체험인지라 흔들릴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생처음 겪어보는 '지진'은 나를 당황케 했다.

실내지진체험을 마치고 나오자, 밖에서 내가 체험하는 모습을 CCTV로 지켜보고 있던 한 중학생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등 보여요. 그러다 사망해요. 선생님.”

내가 탁자 아래에 머리만 숨기고, 몸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진이 났을 때 제대로 몸을 숨기지 못하면 떨어지거나 쓰러지는 물체에 부딪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잘 숨겨야 한다.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도 웃기는 어려웠다. 체험에서도 이럴진대, 이 같은 대비도 없이 진짜 지진을 겪었다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이거야말로 기자가 경험한 재난체험이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이유 아닐까?



지진·태풍·화재·교통사고 '체험식 대응요령 훈련'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보라매공원(보라매안전체험관)과 어린이대공원(광나루안전체험관) 두 곳에 재난체험을 할 수 있는 안전체험관을 운영한다. 광나루안전체험관은 어린이 체험에 특화돼 있고, 보라매안전체험관은 상대적으로 성인을 위한 재난체험에 특화돼 있다.

재난체험의 경우 한 회에 100분 정도 소요돼 하루 4회(수요일은 5회)씩 진행되는데, 보라매안전체험관 재난체험의 1회 체험인원은 70명이다.

재난체험은 지진과 태풍, 화재, 교통사고 등 크게 4가지 재난상황에 대비한 ‘체험식 훈련’으로 이뤄져 있다. 우선 4D 영상관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상황을 재현한 영상을 관람한 후, 4개의 과정의 체험을 하게 된다. 4개 재난체험 모두 우선 영상물과 교관 설명을 통해 대응요령, 대피요령 등을 배운 후, 직접 체험하면서 다시 한 번 대응요령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이 중 지진체험은 실내지진체험(규모 7.0), 붕괴탈출체험, 실외지진체험(규모 5.0)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실제 상황을 가정해 진행된다.

화재체험에서는 직접 소화기를 작동해보고, 고층건물에서 비상시 탈출할 때 필요한 완강기 사용법을 배운다. 또 노래방에서 불이 났을 때를 가정해 탈출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미리 체험을 해봐서 정말 다행이예요"

기자가 직접 재난체험에 참가한 27일 오전 10시 재난체험에는 서울 강현중학교 1학년 3반, 4반 학생 52명과 선생님 2명, 일반인(성인) 8명 등 총 63명이 재난체험을 진행했다.

체험식 훈련인 만큼 함께 체험을 해 본 사람들 대부분의 만족도도 높았다. 강현중학교 1학년 3반 이예슬 학생은 “지진체험 등 모든 체험이 너무 재밌었다”면서도 지진 났을 때 대피 요령을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몸 숨기고, 머리 가리고, 벽 짚고 가야 한다”고 비교적 정확하게 답했다.

강현중학교 1학년 3반 학생 26명을 인솔한 신미숙(54) 선생님은 “실제 해보니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대비할 수 있는 체험”이라면서 “학생들한테 꼭 필요한 것 같다”고 체험에 만족해했다.

공무원시험 필기시험에 합격해 면접대비 차원에서 재난체험에 참가한 김혜미(26)씨는 지진체험에 대해 “바닥이 흔들리고, 몸을 피해야 할 일이 생기니까 정신이 없었다”며 “실제라면 너무 무서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소엔 자연재해에 무관심했고, 만만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미리 체험을 해봐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재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됐다”고 재난체험을 평가했다.

"무슨 일 생기면 늘어났다가 시간 지나면 다시 줄어요"

이달 발생한 경주 지진으로 지진체험 등 재난체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보라매안전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도 재난체험 운영 횟수를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보라매안전체험관 김성민 교관은 “이렇게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체험신청이 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줄어든다”며 “재난이라는 게 평상시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분기별 안전체험관 이용자 수 추이를 보면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급증했다가 다시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2014년 5월부터 재난체험 수요가 늘어 매일 야간에 1회씩 더 재난체험을 늘렸지만 그해 말 수요가 줄어 2015년부터는 야간체험을 주 1회로 줄이기도 했다.

아울러 김성민 교관은 “고층이라면 우선 자기 몸을 보호하고, 진동이 멈춘 후에 지상으로 탈출해야 하고. 저층이라면 바로 실외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처한 상황을 구분해 몸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진 대응 행동요령을 전했다.

한편 지난 2010년 개장한 보라매 안전체험관의 누적 이용자는 91만9,179명(2016년 8월 기준)에 달한다. 평일에는 학생 등의 단체체험이 많고, 주말에 가족단위 체험이 많다.


보라매안전체험관이 성인에 특화된 만큼 성인 체험자가 가장 많았고, 어린이, 청소년 체험자가 뒤를 이었다.

다만 성인의 경우에도 회사에서 가라고 해서 온 사람 등 의무적으로 온 경우가 많아 자발적으로 재난체험에 참석하는 비율은 보통 10% 정도라는 것이 안전체험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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