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억대 농부’가 3만 명?…실제 소득 따져보니

입력 2016.10.01 (11:12) 수정 2016.10.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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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이상 버는 '부농' 전국에 3만 가구>. 통계청이 이번 주초 발표한 '2015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를 토대로 어느 언론사가 작성한 기사 제목입니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꽤 많은 사람이 이 기사를 봤습니다. 농촌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베이비붐 세대가 늘고 있으니 귀가 솔깃해지는 소식이죠.

그런데, 기사 내용은 제목과 좀 달랐습니다. 1억 원 이상을 버는 게 아니라 연간 농축산물 판매액이 1억 원 이상인 농가 수가 3만 가구라는 얘기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댓글을 통해 '매출액'과 '소득'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종자와 비료 등 재료비며, 농촌지역의 비싼 인건비, 수천만 원에서 억대를 넘나드는 영농장비 구매 할부금 등을 제하면 적자를 본다는 농민들의 하소연도 잇따랐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억대 농가'를 검색해보니 대다수 기사들이 '매출액이 억대'인 농가를 '억대 농가'로 표현해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매출이 아니라 손에 쥐는 소득이 연간 1억 원을 넘는 이른바 '벤츠 타는 농부'는 대체 얼마나 될까요?

난 5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백운마을에서 귀농 부부가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있다.(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난 5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백운마을에서 귀농 부부가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있다.(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이 물음에 답을 제시해주는 공식적인 통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하는 농업 관련 통계를 조합해보면 어느 정도까지 추정은 가능합니다.

농축산물 판매액 1억 원... 실소득은 3천3백만 원

통계청이 5년마다 내놓는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는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하기에 그만큼 신뢰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 조사는 농림어업의 규모와 구조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농가 소득과 관련해서는 매출액 규모만 몇 개 구간으로 나눠 조사했을 뿐 비용은 파악하지 않습니다.

[바로가기] ☞ 2015년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 (통계청)

농가들이 농업소득 100원을 벌 때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는지는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농업의 경우 법인을 제외한 2천6백 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수입과 소득, 경영비용 등을 조사합니다.

[바로가기] ☞ 2015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 (통계청)

지난해 말 실시한 이 조사에서 표본가구의 평균 농업소득률은 33.4%로 파악됐습니다. 농축산물 1만 원어치를 팔면 각종 비용을 제하고 손에 쥐는 소득(세전)이 3천340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농업소득률을 적용해보면 1억 매출을 기록한 농가의 실제 소득은 3천340만 원 정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농업소득만으로 '억대 농부', 2백 명에 1명꼴

따라서, 실제 소득이 억대가 되려면 연간 농축산물 판매액이 3억 원을 넘어야 하는데, 3억 원 이상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통계청이 농가에 매출액을 물을 때 1억, 2억, 5억 원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로는 2~5억 원 구간이 6천4백여 가구, 5억 원 이상이 2천8백여 가구입니다. 이 자료와 평균 농업소득률을 결합하면, 농업소득 6천7백만 원 이상인 가구가 9천3백 가구이고, 이 가운데 2천8백 가구 정도는 1억 7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2~5억 원 구간의 농가 절반이 3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해보면, 전국 농축산업 가구 1백8만 9천 가구 가운데 순수하게 농축산물만 팔아 1억 원 이상 손에 쥐는 농가는 6천 가구 안팎이 됩니다. '억대 소득' 농가는 전체 농가의 0.5%, 그러니까 2백 가구 가운데 한 가구꼴이라는 겁니다.

농가 평균소득 3천7백만 원... 농업외소득·연금 등 다 합쳐

최상위권이 이렇다면, 농가들의 평균적 소득수준은 어떨까요? 2015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농가의 연평균 소득은 3천721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착시가 있습니다.

평균 2.4명인 가구원 가운데 누군가가 다른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소득, 민박이나 작은 식당 등을 겸해서 얻는 소득, 도시에서 일하는 자녀 등이 보내주는 용돈, 그리고 기초연금 같은 공적 보조금까지 모두 포함된 겁니다. 순수한 농업소득은 1천126만 원 정도입니다.


물론, 노부부가 '자급자족형'으로 밭농사 짓고 사는 가구들을 통계에서 빼면 사정이 좀 나아집니다. 경영주가 40대 이하인 농가는 평균 소득이 5천2백만 원 선이고, 50대인 농가는 6천1백만 원 가까이 됩니다. 여기에, 매출 1억 원 이상인 농가 가운데 축산농가의 비중이 40% 가까이 되는 점을 고려하면, 가구주가 40~50대인 축산농가들의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45%가 겸업농가

신문과 방송에서는 농사로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소개되고, 인터넷에서는 '어떤 특용작물을 재배하면 억대 소득이 어렵지 않다'는 광고들이 흘러다닙니다. 하지만, 통계로 잡힌 현실은 농사일로 고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3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귀농귀촌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지난 3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귀농귀촌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설령 한 해 억대 소득을 올렸더라도 그다음 해에는 태풍 같은 재해를 겪거나 사룟값 급등, 농작물값 급락 같은 돌발요인을 만나 고생만 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농업소득이 평균적으로 낮은 데다 안정성까지 떨어지다보니 다른 소득원을 함께 챙기는 '겸업 농가' 비율이 전체 농가의 45%에 이릅니다.

만약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겠다며 귀농을 꿈꾼다면 생각보다 더 철저하게 시장 조사와 기술적 준비를 하고, 될 수 있으면 시행착오를 이겨낼 수 있는 젊은 나이에 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권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낭만적 귀농'이 불과 2~3년 뒤에 '막막한 현실'로 바뀌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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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억대 농부’가 3만 명?…실제 소득 따져보니
    • 입력 2016-10-01 11:12:09
    • 수정2016-10-01 22:28:24
    취재후·사건후
<1억 이상 버는 '부농' 전국에 3만 가구>. 통계청이 이번 주초 발표한 '2015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를 토대로 어느 언론사가 작성한 기사 제목입니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꽤 많은 사람이 이 기사를 봤습니다. 농촌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는 베이비붐 세대가 늘고 있으니 귀가 솔깃해지는 소식이죠.

그런데, 기사 내용은 제목과 좀 달랐습니다. 1억 원 이상을 버는 게 아니라 연간 농축산물 판매액이 1억 원 이상인 농가 수가 3만 가구라는 얘기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댓글을 통해 '매출액'과 '소득'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종자와 비료 등 재료비며, 농촌지역의 비싼 인건비, 수천만 원에서 억대를 넘나드는 영농장비 구매 할부금 등을 제하면 적자를 본다는 농민들의 하소연도 잇따랐습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억대 농가'를 검색해보니 대다수 기사들이 '매출액이 억대'인 농가를 '억대 농가'로 표현해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매출이 아니라 손에 쥐는 소득이 연간 1억 원을 넘는 이른바 '벤츠 타는 농부'는 대체 얼마나 될까요?

난 5월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백운마을에서 귀농 부부가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있다.(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이 물음에 답을 제시해주는 공식적인 통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하는 농업 관련 통계를 조합해보면 어느 정도까지 추정은 가능합니다.

농축산물 판매액 1억 원... 실소득은 3천3백만 원

통계청이 5년마다 내놓는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는 모든 농가를 대상으로 하기에 그만큼 신뢰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 조사는 농림어업의 규모와 구조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농가 소득과 관련해서는 매출액 규모만 몇 개 구간으로 나눠 조사했을 뿐 비용은 파악하지 않습니다.

[바로가기] ☞ 2015년 농림어업 총조사 결과 (통계청)

농가들이 농업소득 100원을 벌 때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는지는 통계청이 매년 실시하는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농업의 경우 법인을 제외한 2천6백 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수입과 소득, 경영비용 등을 조사합니다.

[바로가기] ☞ 2015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 (통계청)

지난해 말 실시한 이 조사에서 표본가구의 평균 농업소득률은 33.4%로 파악됐습니다. 농축산물 1만 원어치를 팔면 각종 비용을 제하고 손에 쥐는 소득(세전)이 3천340원이라는 뜻입니다. 이 농업소득률을 적용해보면 1억 매출을 기록한 농가의 실제 소득은 3천340만 원 정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농업소득만으로 '억대 농부', 2백 명에 1명꼴

따라서, 실제 소득이 억대가 되려면 연간 농축산물 판매액이 3억 원을 넘어야 하는데, 3억 원 이상이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통계청이 농가에 매출액을 물을 때 1억, 2억, 5억 원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로는 2~5억 원 구간이 6천4백여 가구, 5억 원 이상이 2천8백여 가구입니다. 이 자료와 평균 농업소득률을 결합하면, 농업소득 6천7백만 원 이상인 가구가 9천3백 가구이고, 이 가운데 2천8백 가구 정도는 1억 7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2~5억 원 구간의 농가 절반이 3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해보면, 전국 농축산업 가구 1백8만 9천 가구 가운데 순수하게 농축산물만 팔아 1억 원 이상 손에 쥐는 농가는 6천 가구 안팎이 됩니다. '억대 소득' 농가는 전체 농가의 0.5%, 그러니까 2백 가구 가운데 한 가구꼴이라는 겁니다.

농가 평균소득 3천7백만 원... 농업외소득·연금 등 다 합쳐

최상위권이 이렇다면, 농가들의 평균적 소득수준은 어떨까요? 2015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농가의 연평균 소득은 3천721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착시가 있습니다.

평균 2.4명인 가구원 가운데 누군가가 다른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소득, 민박이나 작은 식당 등을 겸해서 얻는 소득, 도시에서 일하는 자녀 등이 보내주는 용돈, 그리고 기초연금 같은 공적 보조금까지 모두 포함된 겁니다. 순수한 농업소득은 1천126만 원 정도입니다.


물론, 노부부가 '자급자족형'으로 밭농사 짓고 사는 가구들을 통계에서 빼면 사정이 좀 나아집니다. 경영주가 40대 이하인 농가는 평균 소득이 5천2백만 원 선이고, 50대인 농가는 6천1백만 원 가까이 됩니다. 여기에, 매출 1억 원 이상인 농가 가운데 축산농가의 비중이 40% 가까이 되는 점을 고려하면, 가구주가 40~50대인 축산농가들의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 45%가 겸업농가

신문과 방송에서는 농사로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소개되고, 인터넷에서는 '어떤 특용작물을 재배하면 억대 소득이 어렵지 않다'는 광고들이 흘러다닙니다. 하지만, 통계로 잡힌 현실은 농사일로 고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3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귀농귀촌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설령 한 해 억대 소득을 올렸더라도 그다음 해에는 태풍 같은 재해를 겪거나 사룟값 급등, 농작물값 급락 같은 돌발요인을 만나 고생만 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농업소득이 평균적으로 낮은 데다 안정성까지 떨어지다보니 다른 소득원을 함께 챙기는 '겸업 농가' 비율이 전체 농가의 45%에 이릅니다.

만약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겠다며 귀농을 꿈꾼다면 생각보다 더 철저하게 시장 조사와 기술적 준비를 하고, 될 수 있으면 시행착오를 이겨낼 수 있는 젊은 나이에 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권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낭만적 귀농'이 불과 2~3년 뒤에 '막막한 현실'로 바뀌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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