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무슨 일이?…‘지의류’의 경고

입력 2016.10.01 (14:00) 수정 2016.10.02 (09:1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라산 중턱에 있는 나무입니다. 뭔가 특이한 게 보이나요? 나무껍질이 여기저기 희끗희끗한 분칠이라도 한 듯 알록달록합니다. 뭘까요? 흔히들 나무껍질의 일부나 이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엄연한 생명체, 지의류입니다.

닭살지의류닭살지의류

지의류는 균류(곰팡이)와 조류의 공생체입니다. 균류가 집을 만들고 그 속에 엽록소를 가진 조류를 살게 합니다. 균류는 공간을 제공하고 조류는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제공하는 겁니다. 지의류에서 균류와 조류를 분리해 따로 배양하면 각각 독자적으로 증식합니다. 서로 다른 두 종이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독특한 공존의 생명체인 거죠.

문자지의류문자지의류

혹지의류혹지의류

당초무늬지의류당초무늬지의류

가까이 들여다보면 색깔이나 모양이 각각 다릅니다. 붙여진 이름도 다릅니다. 닭살처럼 표면이 우둘투둘하다고 해서 닭살지의류, 글자 같은 문양이 있어서 문자지의류, 동그란 접시 모양 형태가 나와 있어서 접시지의류 등 한라산 숲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지의류만 200종을 넘습니다.

지의류에 덮인 해안 바위. 제주 세화리지의류에 덮인 해안 바위. 제주 세화리

지의류는 대기 오염에 민감합니다. 청정한 환경에서 자라지요. 결국, 지의류가 다양하고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대기 환경이라는 걸 나타냅니다. 제주처럼 공기가 깨끗한 곳에는 다양한 지의류가 널리 분포합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바닷가 바위에도 지의류가 많습니다. 검은색 암석 위에 희끗희끗, 혹은 옅은 연한 녹색으로 덮인 곳, 모두 지의류가 붙어 있습니다.

지의류 전문가들이 바위에 붙은 지의류를 조사하고 있다.지의류 전문가들이 바위에 붙은 지의류를 조사하고 있다.

바위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다양한 지의류가 보입니다. 특히 위 사진의 바위는 탱자나무지의류가 대규모 군락을 이룬 곳입니다.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로 탱자나무지의류가 서식하는 곳입니다. 이런 대규모 군락지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탱자나무지의류탱자나무지의류

탱자나무지의류는 겉모습이 탱자 가시가 돋은 것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특히 오염에 민감해서 청정한 곳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곳의 탱자나무지의류 군락이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01년 조사 때는 탱자나무 지의류가 바위 대부분을 덮었지만, 지금은 곳곳에 검은색 바위가 드러나고 다른 지의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게 문광희 국립생물자원관 박사의 말입니다. 10cm까지 길게 늘어졌던 탱자나무지의류가 지금은 5cm로 줄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병들어 죽어가는 지의류도 보입니다.

병이 들어 갈색으로 죽어가는 탱자나무지의류병이 들어 갈색으로 죽어가는 탱자나무지의류


지의류로 덮인 나무. 한라산 어리목지의류로 덮인 나무. 한라산 어리목

지의류의 위축 현상은 나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리목 탐방로 입구 나무에도 많은 지의류가 살고 있습니다. 이 나무에서만 적어도 20가지 종류의 다른 지의류가 있습니다. 이런 지의류들은 나무의 껍질 붙어서 수분 증발을 막고 벌레의 공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마디로 지의류가 많은 나무일수록 건강한 나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나무에 부착한 탱자나무지의류나무에 부착한 탱자나무지의류

나무에서도 탱자나무지의류가 발견됩니다. 역시 주변 공기가 청정하다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분포 형태가 15년 전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나무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찾아야 작은 개체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다른 지의류도 곳곳에서 보입니다. 아래 지의류는 당초무늬지의류입니다. 비교적 어린 개체로 한참 자라야 할 때인데도 가운데 부분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의류가 죽어가는 제주, 대체 지난 15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병들어 죽어가는 당초무늬지의류병들어 죽어가는 당초무늬지의류


지의류는 대기와 습도, 바람, 햇빛, 안개 등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제주 해안과 한라산에서 지의류가 동시에 위축되고 있다는 것은 대기 환경에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거겠죠.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최근 제주에서 급증한 각종 개발사업과 멀리 중국에서 불어오는 대기의 변화가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문광희 생물자원관 연구관의 말입니다.


바위를 덮은 지의류. 제주 어리목.바위를 덮은 지의류. 제주 어리목.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도 지의류는 생존의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수많은 생명의 연결 고리 속에서 지의류의 실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들 생존의 환경 역시 열악해진다는 건 분명합니다. 서서히 사라지는 지의류, 개발과 성장에만 매몰된 우리에게 던지는 자연의 경고일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제주에 무슨 일이?…‘지의류’의 경고
    • 입력 2016-10-01 14:00:15
    • 수정2016-10-02 09:14:54
    취재K
한라산 중턱에 있는 나무입니다. 뭔가 특이한 게 보이나요? 나무껍질이 여기저기 희끗희끗한 분칠이라도 한 듯 알록달록합니다. 뭘까요? 흔히들 나무껍질의 일부나 이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엄연한 생명체, 지의류입니다.

닭살지의류
지의류는 균류(곰팡이)와 조류의 공생체입니다. 균류가 집을 만들고 그 속에 엽록소를 가진 조류를 살게 합니다. 균류는 공간을 제공하고 조류는 광합성으로 영양분을 제공하는 겁니다. 지의류에서 균류와 조류를 분리해 따로 배양하면 각각 독자적으로 증식합니다. 서로 다른 두 종이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독특한 공존의 생명체인 거죠.

문자지의류
혹지의류
당초무늬지의류
가까이 들여다보면 색깔이나 모양이 각각 다릅니다. 붙여진 이름도 다릅니다. 닭살처럼 표면이 우둘투둘하다고 해서 닭살지의류, 글자 같은 문양이 있어서 문자지의류, 동그란 접시 모양 형태가 나와 있어서 접시지의류 등 한라산 숲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지의류만 200종을 넘습니다.

지의류에 덮인 해안 바위. 제주 세화리
지의류는 대기 오염에 민감합니다. 청정한 환경에서 자라지요. 결국, 지의류가 다양하고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대기 환경이라는 걸 나타냅니다. 제주처럼 공기가 깨끗한 곳에는 다양한 지의류가 널리 분포합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바닷가 바위에도 지의류가 많습니다. 검은색 암석 위에 희끗희끗, 혹은 옅은 연한 녹색으로 덮인 곳, 모두 지의류가 붙어 있습니다.

지의류 전문가들이 바위에 붙은 지의류를 조사하고 있다.
바위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다양한 지의류가 보입니다. 특히 위 사진의 바위는 탱자나무지의류가 대규모 군락을 이룬 곳입니다.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로 탱자나무지의류가 서식하는 곳입니다. 이런 대규모 군락지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탱자나무지의류
탱자나무지의류는 겉모습이 탱자 가시가 돋은 것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특히 오염에 민감해서 청정한 곳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곳의 탱자나무지의류 군락이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01년 조사 때는 탱자나무 지의류가 바위 대부분을 덮었지만, 지금은 곳곳에 검은색 바위가 드러나고 다른 지의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게 문광희 국립생물자원관 박사의 말입니다. 10cm까지 길게 늘어졌던 탱자나무지의류가 지금은 5cm로 줄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병들어 죽어가는 지의류도 보입니다.

병이 들어 갈색으로 죽어가는 탱자나무지의류

지의류로 덮인 나무. 한라산 어리목
지의류의 위축 현상은 나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리목 탐방로 입구 나무에도 많은 지의류가 살고 있습니다. 이 나무에서만 적어도 20가지 종류의 다른 지의류가 있습니다. 이런 지의류들은 나무의 껍질 붙어서 수분 증발을 막고 벌레의 공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마디로 지의류가 많은 나무일수록 건강한 나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나무에 부착한 탱자나무지의류
나무에서도 탱자나무지의류가 발견됩니다. 역시 주변 공기가 청정하다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분포 형태가 15년 전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나무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찾아야 작은 개체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다른 지의류도 곳곳에서 보입니다. 아래 지의류는 당초무늬지의류입니다. 비교적 어린 개체로 한참 자라야 할 때인데도 가운데 부분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의류가 죽어가는 제주, 대체 지난 15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병들어 죽어가는 당초무늬지의류

지의류는 대기와 습도, 바람, 햇빛, 안개 등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제주 해안과 한라산에서 지의류가 동시에 위축되고 있다는 것은 대기 환경에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거겠죠.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최근 제주에서 급증한 각종 개발사업과 멀리 중국에서 불어오는 대기의 변화가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문광희 생물자원관 연구관의 말입니다.


바위를 덮은 지의류. 제주 어리목.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도 지의류는 생존의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수많은 생명의 연결 고리 속에서 지의류의 실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들 생존의 환경 역시 열악해진다는 건 분명합니다. 서서히 사라지는 지의류, 개발과 성장에만 매몰된 우리에게 던지는 자연의 경고일 수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