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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총 남분은 타원형…주변서 큰항아리 9점 출토
입력 2016.10.05 (09:21) 수정 2016.10.05 (10:33) 문화
신라 고분인 경주 서봉총(瑞鳳塚) 남쪽 고분의 규모와 형태, 축조 기법이 87년 만에 재개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4월부터 서봉총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남분이 장축 길이 25m·단축 길이 20m(단축 길이는 추정)의 타원형이며, 북분보다 늦게 조성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일제는 192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서봉총을 발굴했으나,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시신을 묻는 장소)에서 유물을 확보하는 데만 혈안이 돼 상세한 발굴 보고서를 남기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북분보다 다소 작은 원형으로 짐작됐던 서봉총 남분이 북분의 절반 크기인 타원형 무덤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봉총 북분은 장축 길이 44m, 단축 길이 40m 정도로 추정된다. 또 남분을 축조할 때 북분의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은 돌)과 제사 토기를 파괴했다는 점으로 미뤄 북분이 남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와 함께 남분과 북분을 잇는 축의 방향이 밝혀졌는데, 이를 통해 신라인들이 서봉총, 서봉황대, 금관총 등의 고분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발굴 유물 중에는 남분 주변에서 9점, 북분 주변에서 3점이 출토된 큰항아리가 주목된다. 이는 신라 능묘 주위에서 나온 큰항아리 중 가장 많은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큰항아리 조각들은 무덤을 다 만든 뒤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사용한 물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봉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구성된 표주박형 무덤으로 일제강점기 조사는 학술 목적이 아니라 철도 기관차 차고를 건설하기 위해 봉분의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1926년 북분을 대상으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는 금관, 은제 합(盒) 등 금속품과 칠기, 토기 등이 나왔다.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경주를 방문해 봉황 모양의 금관을 수습했는데, 이는 무덤 명칭의 유래가 됐다.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 따 서봉총으로 명명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남은 발굴조사 기간에 남분의 매장주체부를 계속 조사해 무덤의 구조를 확인할 계획이라며 내년에는 서봉총 북분을 조사한 뒤 서봉총 유구에 관한 발굴 보고서를 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서봉총 남분은 타원형…주변서 큰항아리 9점 출토
    • 입력 2016-10-05 09:21:46
    • 수정2016-10-05 10:33:31
    문화
신라 고분인 경주 서봉총(瑞鳳塚) 남쪽 고분의 규모와 형태, 축조 기법이 87년 만에 재개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4월부터 서봉총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남분이 장축 길이 25m·단축 길이 20m(단축 길이는 추정)의 타원형이며, 북분보다 늦게 조성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일제는 192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서봉총을 발굴했으나,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시신을 묻는 장소)에서 유물을 확보하는 데만 혈안이 돼 상세한 발굴 보고서를 남기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북분보다 다소 작은 원형으로 짐작됐던 서봉총 남분이 북분의 절반 크기인 타원형 무덤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봉총 북분은 장축 길이 44m, 단축 길이 40m 정도로 추정된다. 또 남분을 축조할 때 북분의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은 돌)과 제사 토기를 파괴했다는 점으로 미뤄 북분이 남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와 함께 남분과 북분을 잇는 축의 방향이 밝혀졌는데, 이를 통해 신라인들이 서봉총, 서봉황대, 금관총 등의 고분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발굴 유물 중에는 남분 주변에서 9점, 북분 주변에서 3점이 출토된 큰항아리가 주목된다. 이는 신라 능묘 주위에서 나온 큰항아리 중 가장 많은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큰항아리 조각들은 무덤을 다 만든 뒤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사용한 물품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봉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구성된 표주박형 무덤으로 일제강점기 조사는 학술 목적이 아니라 철도 기관차 차고를 건설하기 위해 봉분의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1926년 북분을 대상으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는 금관, 은제 합(盒) 등 금속품과 칠기, 토기 등이 나왔다.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경주를 방문해 봉황 모양의 금관을 수습했는데, 이는 무덤 명칭의 유래가 됐다.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 따 서봉총으로 명명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남은 발굴조사 기간에 남분의 매장주체부를 계속 조사해 무덤의 구조를 확인할 계획이라며 내년에는 서봉총 북분을 조사한 뒤 서봉총 유구에 관한 발굴 보고서를 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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