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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해상자위대, ‘도고’ 제독의 영광을 꿈꾸나?
입력 2016.10.05 (10:03) 국제
일본 도쿄 중심부 신주쿠 이치가야에 있는 일본 방위성. 우리나라 국방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취재진을 태운 차량은 정문을 통과한 뒤 인솔자를 기다렸다. 5분 뒤 취재 차량은 지하통로를 지나 2백m쯤 가 한 대형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하얀 제복을 입은 해상자위대 장교 2명이 취재진을 안내했다. 건물 동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서 내리자마자 ‘일본해상막료부’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략과 전술을 짜는 브레인들이 모인 곳이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총책임자는 막료장이다. 우리나라의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막료장을 보좌하는 부관들이 취재진을 맞았다. 막료장 집무실 옆에는 한꺼번에 2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접견실이 있었다. 우리는 부관들이 마련한 자신의 명패를 들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정돈되고 10분쯤 지난 뒤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인 다케이 도모히사(武居智久)가 들어왔다. 어제까지 워싱턴에서 열린 2개의 국제회의에 참석했다며 주제는 둘 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해상을 만들기 위한 방안이었다고 짧게 말을 열었다.

다케이 막료장은 무엇보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한·일 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한·일 간의 정보교류는 탄도미사일에 관한 내용으로 제한돼 있지만 해상 함정이나 공군 관련 동향 등도 다뤄야 한다”며 폭넓은 군사정보 교류를 요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바다를 끼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경제 등의 교류도 바다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긴밀한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담이 끝난 뒤 나는 다케이 막료장에게 벽에 걸려 있는 흑백 사진과 몇 점의 유화 그림에 대해 물었다.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한 사진 속 주인공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였다.




구 일본해군의 제독으로 일본인들이 ‘군신’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동양의 넬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특히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는 발틱 함대를 보유한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조차도 러시아 해군을 이길 수 있을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고 제독은 이러한 예상을 깨고 발틱 함대에 대승을 거뒀다.


도고 사진과 함께 나란히 걸려있는 유화들 역시 ‘러일전쟁’ 당시 도고 제독이 이끌던 전함 ‘미카사(三傘)’의 활약을 다룬 것들이었다. 1903년 미카사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지휘 하에 연합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청일전쟁을 마치고 1905년 우리나라 진해에 도착한다. 미카사는 진해를 거점으로 훈련을 하게 되는데,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와 교전하게 된다.

막료장은 분명 한국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남중국해에서 진행하는 미국의 해상작전에 참여할 생각이 없으며 일본 단독으로 작전을 벌일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한일 간의 군사정보교류는 물론 중국과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막료장을 접견하는 공적인 공간에 왜, 일본 해상자위대는 ‘도고’ 제독의 사진과 그의 전함 ‘미카사’의 활약을 담은 유화를 벽마다 걸어둔 걸까? 일본해상자위대는 아직도 구 일본 해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가 한반도를 침탈하고 제국주의로 나아가는 기폭제가 됐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 이 기사는 2016년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세종연구소가 주관하는 한일 언론인 포럼 행사 가운데 하나로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을 인터뷰한 뒤 작성된 것입니다)
  • 日 해상자위대, ‘도고’ 제독의 영광을 꿈꾸나?
    • 입력 2016-10-05 10:03:22
    국제
일본 도쿄 중심부 신주쿠 이치가야에 있는 일본 방위성. 우리나라 국방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취재진을 태운 차량은 정문을 통과한 뒤 인솔자를 기다렸다. 5분 뒤 취재 차량은 지하통로를 지나 2백m쯤 가 한 대형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하얀 제복을 입은 해상자위대 장교 2명이 취재진을 안내했다. 건물 동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서 내리자마자 ‘일본해상막료부’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략과 전술을 짜는 브레인들이 모인 곳이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총책임자는 막료장이다. 우리나라의 해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막료장을 보좌하는 부관들이 취재진을 맞았다. 막료장 집무실 옆에는 한꺼번에 2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접견실이 있었다. 우리는 부관들이 마련한 자신의 명패를 들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정돈되고 10분쯤 지난 뒤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인 다케이 도모히사(武居智久)가 들어왔다. 어제까지 워싱턴에서 열린 2개의 국제회의에 참석했다며 주제는 둘 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해상을 만들기 위한 방안이었다고 짧게 말을 열었다.

다케이 막료장은 무엇보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한·일 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현재 한·일 간의 정보교류는 탄도미사일에 관한 내용으로 제한돼 있지만 해상 함정이나 공군 관련 동향 등도 다뤄야 한다”며 폭넓은 군사정보 교류를 요구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바다를 끼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경제 등의 교류도 바다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긴밀한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담이 끝난 뒤 나는 다케이 막료장에게 벽에 걸려 있는 흑백 사진과 몇 점의 유화 그림에 대해 물었다.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한 사진 속 주인공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였다.




구 일본해군의 제독으로 일본인들이 ‘군신’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동양의 넬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특히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는 발틱 함대를 보유한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조차도 러시아 해군을 이길 수 있을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도고 제독은 이러한 예상을 깨고 발틱 함대에 대승을 거뒀다.


도고 사진과 함께 나란히 걸려있는 유화들 역시 ‘러일전쟁’ 당시 도고 제독이 이끌던 전함 ‘미카사(三傘)’의 활약을 다룬 것들이었다. 1903년 미카사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지휘 하에 연합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청일전쟁을 마치고 1905년 우리나라 진해에 도착한다. 미카사는 진해를 거점으로 훈련을 하게 되는데,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와 교전하게 된다.

막료장은 분명 한국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는 남중국해에서 진행하는 미국의 해상작전에 참여할 생각이 없으며 일본 단독으로 작전을 벌일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한일 간의 군사정보교류는 물론 중국과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막료장을 접견하는 공적인 공간에 왜, 일본 해상자위대는 ‘도고’ 제독의 사진과 그의 전함 ‘미카사’의 활약을 담은 유화를 벽마다 걸어둔 걸까? 일본해상자위대는 아직도 구 일본 해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가 한반도를 침탈하고 제국주의로 나아가는 기폭제가 됐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 이 기사는 2016년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세종연구소가 주관하는 한일 언론인 포럼 행사 가운데 하나로 일본 해상자위대 막료장을 인터뷰한 뒤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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